‘불만의 겨울’, 동요하는 세계, 출구없는 미래
: 혁명에서 동원으로 - 갈림길에 선 유럽의 사회운동 물결
2026년 10월 30일 / 이슈 리포트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장
스페인 세입자봉기, 프랑스 학생시위, 총파업, 불만의 겨울, ‘극단주의’, 국채수익률, 부채 위기, 생존 위기(affordability crisis), 집합행위 레퍼투아르, 1789년, 1968년.
“내가 다 해봐서 아는데…” 새삼스러울 것 없는 시위
지난 10월 25일 프랑스 전역이 총파업 시위로 들끓고 있을 때 TV 정치대담 프로에 출연한 도미니끄 드 빌레뺑은 비분강개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멜랑숑이 극좌라고? 극단주의자라고? 멜랑숑은 온건좌파(soft left)야!”.
빌레뺑은 쟈끄 시라끄 전 프랑스 대통령 정권 하에서 총리(2005-2007)를 지낸 인물이다. 공화당 출신의 우파 인사다. 그것도 드골에서 데스땡, 시라끄로 이어지는 정통 우파의 대표 인물이다. 그런 그가 ‘멜랑숑은 온건 좌파’라고 말했으니 믿어도 좋다. 멜랑숑은 극좌도, 급진주의자도, 극단주의자도 아니며, 공산주의자도 아니다. 멜랑숑은 사회당 출신이며, 따지자면 현 마크롱 대통령도 사회당 출신이다(사회주의당의 프랑스와 올랑드 전 대통령 정권에서 재무장관을 지냈다). 멜랑숑은 물론 사회주의당 내에서는 ‘좌파’ 계열에 속했다. 그러나 그 ‘좌파’는 기껏해야 프랑스와 미테랑 전 대통령의 노선을 지지하는 그룹이었을 뿐이다.
지금 전세계가 입을 모아 프랑스의 ‘극단주의자’들의 소요와 ‘붕괴’를 걱정하느라 어수선하지만, 실은 빌레뺑이 말했듯이 이들은 극단주의자들도 아니며, 게다가 이 소요와 붕괴는 적어도 프랑스 내에서는 이례적인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다. 정작 극단적인 것은 이 사태를 ‘극단적’인 것으로 프레이밍 하는 시위 바깥의 인간들이다.

고등학생 시위? 물론 흔하진 않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4.19에 고등학생들의 시위 참여가 있었고 5.18에도 그랬다. 87년 직후에도 고등학생 시위가 몇차례 있었다. 프랑스의 고등학생 시위도 면면히 이어져 온 ‘ 역사’가 있다.
대표적으로 언급하자면, 1990년 10월(사회당 미테랑 정권 시절) 프랑스 전역에서 고등학생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슬로건은 ‘학교 시설 개선, 교사 보충, 적절한 수업 보장’이었다. 지금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어쩌면 시위를 벌인 이유와 주장도 똑같다. 35년전 당시 시위도 한 달여 이상 지속되었다. 그리고 막판에는 폭동과 약탈도 일부 있었다. 즉 시위의 구호도 똑같고 전개 양상도 거의 똑같다.
36년전, 지금 시위에 나선 고등학생들의 부모들이 바로 똑같이 시위를 했던 사람들이다. 부모가 했던 것을 자식들이 다시 하고 있는데,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이명박이 프랑스 사람이었다면, 지금쯤 “내가 다 해봐서 아는데…”라고 읊조리고 있었을 것이다. 새삼스러운 점이 있다면 부모가 했던 것을 자식들이 되풀이할 만큼 지난 36년 동안 아무것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며, 그동안 좌파, 우파, 민족주의자, 글로벌리스트, 리버럴, 보수주의자, 제국주의자 등등 우리가 이름붙일 수 있는 거의 모든 정치세력이 권좌를 거쳐갔다는 사실이다. 즉, 그 어떤 정치세력도 슬로건도 프랑스사회의 아무 것도 해결하지 않았거나, 실은 못했다.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폭력과 약탈도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격렬한 시위는 폭력을 수반한다. 왜냐하면, 일찍이 존 F. 케네디가 말했듯이, “불가피한 혁명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막는다면, 그 혁명은 불가피하게 폭력적인 것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즉 폭력은 그 시위가 지향하는 대상과 그 대상의 반응과 관련된 문제이지 사회운동 자체의 본질이 아니다.

다만 이번 프랑스 시위의 ‘폭력성’의 특징 중 하나는 아예 초기부터 프랑스 경찰들이 고교생 시위를 특이할만큼 폭력적으로 진압했다는 점이다. 경찰 폭력으로 고교생들이 눈이 실명되고 얼굴이 반쯤 날라가고 손이 절단된 사례들은 시위대의 ‘약탈과 폭력’ 이전에 일어난 일이다. 누가 그렇게 했나? 프랑스 국가의 경찰이다. 이번 시위의 이례성, 즉 경찰의 폭력성이 오히려 시위를 격화시키고 이에 분개한 성인 집단들(대학생, 노동자, 일반 시민)의 시위 동참을 야기했다.
실은 프랑스에서는 경찰의 폭력 진압조차도 그리 드물지 않은 ‘역사’를 자랑한다. 1961년 프랑스 파리에서 알제리 출신 이민자들이 알제리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을 때, 경찰과 극우파 조직들은 시위대를 습격해 약 100여명의 시위대를 온몸을 꽁꽁 묶고 돌을 매달아 세느강에 던졌다. 아침에 일어난 파리 시민들은 세느강에 시체가 동동 떠나니는 모습을 보며 경악했다. 알제리 독립전쟁에서만 수만명이 학살당했다. 결국 이것도 “내가 다 해봐서 아는데”에 해당한다. 문제는 왜 이번에는 고작해야 고교생 시위를 이처럼 극단적으로 진압했는가일 뿐이다.
프랑스 시위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틀(프레임)인 과잉복지나 국가부채 문제는 좀 있다가 알아보자. 보다 중요한 것은, 왜 프랑스만이 아니라, 전유럽에 걸쳐, 최소한 왜 교실에서 물이 새는 학교의 고교생들이 들고 일어난 프랑스만이 아니라, 지금 남유럽 국가들 전반에 걸쳐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가,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고 있으며 정치권력은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으며 그 미래는 어떻게될 것인가, 더 나아가, 왜 유럽 바깥의 지역들도 들썩이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번 유럽의 시위사태는 보다 근본적인 글로벌 이슈가 단지 유럽이라는 약한 고리를 통해 표출되고 있을 뿐이며, 실제 문제의 근원은 물 새는 교실을 넘어서는, 현재의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 물이 새거나 혹은 쥐가 들끓고 있기 때문인가 하는 것이다.
글로벌 시위 현황과 양상
지난 9월부터 시작된 글로벌 시위의 확산에서 첫 머리를 장식한 것은 스페인이었다. 마드리드에서 월세를 내지 못해 쫒겨나게 된 메리 카르멘 할머니 사건이 이슈화되면서 스페인에서 ’세입자 투쟁‘이 시작되었다. 수십만의 시위자들이 모여서 항의하는 시위 텐트촌이 마드리드 중심 광장등 도시 곳곳에 세워졌고 집권당인 스페인 사회주의자당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의회를 해산하고 11월 하순 총선거를 발표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의회 해산/총선 일자가 시작되자, 스페인의 세입자 문제는 선거용 정치적 이슈로 바뀌었다. 이 점이 중요하다.

세입자 문제는 임차인으로서는 ‘생존권 문제’이지만, 동시에 국가 통치에서는 주택 수요/공급 문제이기도 하며, 유동성 자산의 측면에서는 금융 이슈이기도 하며, 일자리와 임금과 관련된
노동시장 이슈이기도 하다. 그런데 입법과 총선의 문제가 등장하는 순간부터는 갑자기 생존권, 사회권, 나아가 계급 투쟁의 문제가 ‘정치적, 행정적, 법적, 미시적’ 이슈로 전락한다. 이 도시에 거주할 집이 몇 채가 더 필요하고 임대 주택은 얼마나 건설할 여유가 있냐는 셈법이 등장하고 나아가 어디다 지을 거냐, 건설비는 누가 댈 것이냐, 시간은 얼마나 소요되느냐, 주변 도시 계획은 어떻게 되느냐 등등의 온갖 ‘정책적’ 문제가 등장하고 둔갑한다.
입법과 정책 수립 및 논의 과정에서 제도 정당들은 거리의 운동을 표로 전환 시킨다. 즉 ‘’우리 당이 이기면 당신의 주거 문제 해결해줄게’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거리의 운동은 갑자기 동력을 상실하고 선거라는 정치적 과정으로 돌입하며, 임차인의 이해관계와 생존권은 정당의 득표율에 달린 문제가 되어 버리고 만다. 하지만 바로 이 시점에 똑똑히 기억해둬야할 것은, 지금 스페인 마드리드의 임차인들이 표를 던져야 하는 정당들은 바로 오늘날 이같은 문제를 만든 공범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지금 스페인의 상황이다. 유럽의 사회운동 싸이클은 스페인에서 비롯된 것은 맞다. 그러나 지금의 스페인은 선거 국면으로 돌입하여 사회운동은 제도 정치로 바뀌었고 거리의 투쟁, 사회적 총파업으로 진화를 앞뒀던 계급간 동맹과 사회적 힘은 그 에너지와 방향을 잃어가고 있다.
집권 사회당은 임차인 보호를 우선적으로 공약하면서, 이 거리투쟁을 절호의 기회로 삼아 의석 수를 늘리려는 계산으로 총선거를 제시했지만, 현재 정치지형상 선거에서의 승리 가능성은 여전히 매우 낮다. 그래서 선거후 우파가 압도적으로 당선되고 역공(백래시)이 올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왜냐하면 세입자등의 시위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를 보면 전통적 극우정당인 인민의힘(PP)과 신극우정당인 VOX의 득표를 합치면 50%를 넘을 것이라는 결과가 대부분이다. 현재의 소수파 정부인 사회주의자당은 의석수를 늘리겠지만, 그 대부분은 지난 선거에서 선거연합 플랫폼이었던 군소좌파정당들의 자리를 앗아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제도정당의 욕심이 거리의 민중의 힘이 더욱 커지는 것을 선거라는 명분으로 막아섰다고 예측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인민의 의지’(선거에서의 표)에서는 임차인은 패배한다. 그러면 거리투쟁을 잠시 주춤하면서 선거에 자신의 운명을 맡긴 임차인들은 어디를 원망해야 할 것인가? 기껏해야 패배주의가 팽배할 것이고, 운이 좋으면 국내 소요사태를 우려하는 PP와 VOX가 내부 이견차이를 명분으로 사회주의자당의 소수파 정권을 또 한차례 용인하여 생색만 낸 임차인 보호정책이 나올 것이다.
미국의 “No King Rally”와 프랑스의 바리케이드
시작은 스페인이었지만, 가장 격렬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전세계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은 프랑스다. 9월 하순 고교생 시위에서 시작된 프랑스 시위는 9월 말부터는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10월 17일, 프랑스 전역에서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작은 고등학생들의 교육 환경 개선 요구였지만, 3주가 넘어가면서 프랑스 사회와 정치에 실망한 모든 세력들이 결집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내무부 집계 50만 명이 넘은 시위대의 공통된 구호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이들 모두가 살기 어려워서, 또는 더 이상 현재의 프랑스 체제가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해서 나왔다는 점에서는 동의한다.
10월 18일 미국 전역에서는 “No King Rally”가 벌어졌다. 역시 수십만이 모였다. 이 날은 미국에서 오는 11월 3일 중간선거(상하원 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이들은 구호는 매두 단순하다. ‘No King’. 트럼프가 타겟이다. 즉 No King Rally는 사실상 민주당의 선거용 유권자 동원 집회였다.
양자의 거리는 대서양보다도 훨씬 멀다. 공간적 거리가 아니라, 시간적 거리 말이다. 그리고 시위 혹은 집회(행진)의 행동 방식 말이다. 미국인들(주로 미국 민주당원들과 지지자들)의 시위는 단지 ‘존재하지도 않는 왕(King)’을 대상으로 할 뿐이다. 이 구호는 반 트럼프 구호이지만, 동시에 참여자들 스스로가 봉건체제 하에 살고 있다는 인식, 또는 봉건적 질서로 회귀하고 있다는 그들의 인식 수준을 보여준다. 실은 체제가 ‘봉건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수괴만이 ‘봉건적 군주’일 뿐이다. 미국은 여전히 미국이라는 나라가 유럽으로부터 독립하던 1776년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유럽은 그때 왕을 단두대로 몰아내고 부르조아 계급이 노동 계급의 힘을 빌어 시민혁명에 성공하려던 때였다. 그 시간적 거리가 지금 다시 재연되고 있다.

프랑스의 시위는 다채롭다. 먼저 이 시위가 프랑스 체제를 붕괴시킬 것이라거나 혹은 대규모 약탈, 폭동이라고 믿는다면, 먼저 눈을 씻고 와도 좋다. 그렇지 않다. 이 시위는 ‘대규모’이지만, 반체제적이지도 ‘혁명적’이지도 않다. 이들이 공화국 헌법을 부인하는 것도 아니며, EU와의 관계 재설정, 더 나아가 탈퇴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정부를 구상하는 것도 아니다. 시위자들의 요구는 모두 ‘합법적’ 틀 안에 있으며, 이들이 그 요구를 관철하려는 방식도 프랑스의 역사적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시위대들이 들고 나오는 역사적 ‘소재들’(내 정의에 따르면 ‘집합행위 레퍼투아르’)들이다. 시위에서 가장 많이 불린 ‘운동가’는 “마르세이유”(프랑스 혁명 당시 봉기가, 현 국가)였지만, 그 다음으로 인기를 끈 것은 소련 군가인 “카츄사”(한국에서 문주란이 부른 카츄사랑 헷갈리지 말길 바란다)였다. 맨 마지막 가사만 수정했다(“우리가 원하는 것은 총파업”). 이 노래 “캬츄샤”는 운동가요로서는 잘 어울린다. 경쾌하고 선동적이며 부르기도 쉽다. 이번 프랑스 학생 시위에서 이 노래가 다시 유행한 것은 적어도 지난 수십년간을 지배했던 소련(공산주의)에 대한 공포, 적개심이 약화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동시에 프랑스 시위대는 자신들이 과거의 유산을 현재에 되살린다. 그리고 역사적인 유비를 통해서 역사를 현재화 하고 있다. 시위에 기요틴(왕을 참수하던 단두대)을 만들어 끌고 나오고(1789 프랑스 혁명), 바스티유 광장-공화국 광장을 점령하며(1968년 5월 혁명), 최근의 사례로는 노란 조끼가 재등장하며(2018년), 심지어는 1871년 파리 코뮨도 재현했다. 다만 1848년 2월 혁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프랑스 시위의 문제는 핵심 조직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핵심 슬로건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시위를 포괄하는 명칭도 없다. 그런데 핵심 슬로건이 없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기요틴을 끌고 나온 사람들은 마크롱 현 대통령을 지목한다. 그러나 마크롱은 임기가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이미 레임 덕 정도가 데드 덕 (죽은 오리) 상태다. 마크롱이 있으나 없으나 프랑스가 달라질 것은 없다. 핵심 슬로건이 없다는 것은 시위대가 제시하는 대안 혹은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1789년, 1871년을 끌어다 쓰는 이 젊은 시위대들은 어떤 공화국을 어떤 방식으로 수립하기를 원하는가?
시위 대열에 동참한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의 멜랑숑 당수는 정부의 재정 축소(긴축)을 원흉으로 지목하면서 국채 이자율이 높아지는 것이 문제라면 이를 타개하기 위해 프랑스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 국채를 탕감하자고 주장한다. 그런데 번지수가 틀렸다. 프랑스 중앙은행은 그럴 권한이 없다. 그 권한은 유럽중앙은행(ECB)가 가지고 있다.
프랑스는 유로존에 가입하면서(창립멤버) 스스로 일국의 통화주권은 포기했다. 프랑스 자본가들을 위해 국가 주권을 거리낌 없이 버렸기 때문에, 이제와서라도 EU와 유로존에서 탈퇴하지 않는 한, 국채 탕감 선언은 법률적으로 불가능하다. 게다가 프랑스 중앙은행이 국채를 탕감해줘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프랑스 중앙은행이 보유한 국채에서 받는 이자는 다시 프랑스 재무부로 환입되기 때문이다(중앙은행의 수익은 해당 국가의 재무부로 돌아간다). 즉 프랑스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는 달라지지만, 국채시장에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멜랑숑은 EU/유로존 탈퇴를 주장하지도 않는다. 프랑스에서 EU/유로존 탈퇴 주장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여전히 잔류로 누리는 혜택이 더 많다).
멜랑숑의 이 ‘신박한’ 주장에는 역사가 있다. 19세기 초반 제시 오웬이나 바스티아 등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이와 동일한 주장을 했었다. 그래서 다시 돌아와 말한다면, 서두에서 언급한 빌레뺑의 주장이 옳다. 멜랑숑은 극좌가 아니며(공상적 사회주의가 극좌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정신감정서가 필요하다), 극단주의자도 아니고(헛다리와 극단주의자- 즉 펀더멘탈리스트는 다르다), 단지 온건하게 틀렸을 뿐이다. 그러니 그는 체제에 위협적인 존재도 아니다. 다만 내년 4월로 예정된 대선에서는 이 거리 투쟁에 대한 열렬한 지지와 현장 참가가 그의 정당에 다소 도움이 될 것이다. 거리 투쟁에 대한 대안이 되지 못한 채 그 투쟁에 기대 선거 정치에서 좀 더 우세를 만들어보겠다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스페인의 사회주의당과 마찬가지다.
이탈리아도 유럽의 시위 물결에 합류했다. 이탈리아는 프랑스나 스페인과는 분명 다르다. 비록 뒤늦게(10월 초부터) 시작되기는 했지만, 이탈리아의 시위는 처음부터 노동자가 중심이었다. 밀라노, 튜린 등 북부 공업도시들(그리고 전통적으로 아우토노미아의 근거지)에서 대규모 노동자 파업 시위가 나타났고, 과거와는 다르게 남부의 로마나 나폴리에서도 노동자 시위가 발생했다. 이들의 시위에 기존의 가자 학살 반대 시위뿐만 아니라 학생운동 세력들과도 동조했고 주요 슬로건은 임금 인상과 긴축 반대, 반전으로 비교적 통일적이다.

이탈리아에서 이민자 문제는 주요한 정치적 이슈이기는 하지만, 정작 이탈리아 시위에서는 이민자 약탈이나 폭력 등의 이슈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실은 지난 10월 하순까지도, 프랑스에서도 약탈이나 폭력 등 ‘폭동적’ 성격은 거의 없었다. 즉 시위대의 동질성이 확보되던 순간이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경찰이 약탈과 폭동을 방관하면서 의도적으로 유도했다는 주장도 한다.
또한 벨기에서도 노동자 시위(반긴축 시위)가 10월 초에 대규모로 반짝 한동안 일어났다.
아마도 유럽에서 가장 격렬하게 시위가 발생하고 있는 곳은 알바니아일 것이다. 알바니아는 올 여름부터 트럼프 미 대통령의 사위인 제러드 큐슈너에게 천혜의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섬을 매각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격렬한 민족주의 시위가 발생했다. 최근에는 시위가 더 격화되어 매각을 승인한 대법원의 일부 부속건물이 불타기도 했고 교육부와 재무부 건물에도 방화가 있었다. 시위대는 현 라마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데 동시에 현 야당도 동반 퇴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점에서는 세르비아와 유사한 점이 있다(다만 시위 양상이 다를 뿐이다) (참조, “운동정치의 새로운 실험 – 세르비아 ‘학생 명부(Student List)’운동”, 10월30일, https://dem-labor.org/praxis/global-movements/8175).

또한 알바니아 시위는 시위 주체 조직이 여전히 불분명하다(원래는 대학생 시위가 주도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바니아 시위가 유럽에게 가장 격렬하게 확산되고 폭력적인 대치와 국가기관에 대한 집중적인 공격행위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알바니아의 생활고가 극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 민족주의가 결합되어 격렬한 가두 투쟁이 발생하고 있다. 정권이 무너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 바로 알바니아다.
또한 남유럽의 경우 지난 2010년대 국채 문제로 극심한 내홍을 겪었던 그리스, 그리고 스페인이 시위하면 반드시 뒤따라가는 포르투갈, 그리고 동유럽의 경우 친러파와 친유럽파 사이에 대립하고 있는 루마니아, 마지막으로 북유럽의 경우 다시 민족주의 통일 열풍이 불고 있는 아일랜드에서도 당장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지는 않고 있지만 언제라도 터질 위험이 있다.
유럽만이 아니다. 지난 26일의 브라질 대선에서 룰라가 승리하지 않았더라면 남미에서 반체제 투쟁도 결코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이는 역설적이지만 사실이다. 이미 칠레와 페루, 볼리비아에서 우파 정권이 들어선지 채 6개월도 되지 않았는데 시위가 발생하고 있다(주로 대학생 시위). 반면 룰라의 승리는 남미에서는 그동안 우파 정당의 승리로 위축되었던 제도권 ‘좌파’ 세력의 부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룰라의 승리가 브라질에서 신자유주의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룰라 스스로가 반성하기는 했지만, 룰라야말로 브라질에서 신자유주의의 정착에 가장 공헌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룰라의 승리는 지난 20여 년간의 자본의 승리와 이에 따른 사회적 파탄을 일단 봉합한다는 데 있는 것이지, 그 경로를 뒤집거나 전혀 새로운 경로를 추구한다는 데 있지는 않다.
최근 인도의 ‘바퀴벌레당’이나 인도네시아에서의 대규모 시위는 한편으로는 기존 정치 질서에서 배제되었던 세력들의 불만과 봉쇄된 미래에 대한 거부를 뜻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특히 인도네시아) 외세의 개입의 흔적들이 있기도 하다(미국이 의도적으로 인도네시아 정권을 압박하는 수단으로서 금융 시장을 흔들고 사회운동을 촉발시키는 혐의가 있다).
전체적으로 글로벌 사회운동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글로벌 사회운동의 국가적 지역적 양상을 살펴보면 시위 촉발 원인은 각국이 처한 고유한 경제적 사회적 모순에서 출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서 공통적인 양상은 정치적 관점에서는,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된 서구에서는 이들 거리투쟁을 민주주의 선거제도로 끌어들여 해소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이며, 제3세계에서는 그 같은 과정 자체를 사회운동이 아예 적대적 투쟁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른바 ‘affordability crisis’(생존 위기)가 이들 시위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계화는 자본주의의 경제적 착취도가 높아질수록, 국가가 이를 보완하는 방식(이른바 복지국가 모델 하에서의 재정 확대)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잠재적 위기에 봉착하면 자본과 국가는 착취율을 높이기 위해 더욱 노골적으로 노동자들을 더 쥐어짜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복지를 축소(즉 긴축)해야 한다(그게 아니라면 외부적 전쟁의 경로 모색). 왜냐하면 자본가의 관점에서는, 자본주의의 위기는 노동자들이 먹고 살만해서 일을 제대로 열심히 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래도 계속 유지되는 이유는 국가가 그들에게 ‘복지’라는 이름으로 먹을 것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대표적으로 마리오 드라기 전 ECB 총재의 유럽 성장 전망 보고서).
그러므로 자본가 계급의 시각에서 보면, 특히 복지국가의 기관이 ‘흔적’ 이상으로 남아있는 유럽의 신민들은 더 가난해질 필요가 있다. 따라서 지역적 경제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제도적 세팅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왜 시위가 글로벌 현상으로 동시적으로 벌어지는가에 대한 답은 자본가들과 정치세력들이 시민과 노동자들을 쥐어짜서 생존권 위기가 발생했기 때문이라는데서 찾아야 한다.
프랑스 위기 프레임 : ‘과잉 복지’, ‘국가 부채’
선진국의 생존권 위기라는 현상이 낯선 일이기는 하지만, 이를 자세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선진국 가운데서도 약한 고리에서 이번에 그 모순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프랑스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예측을 이미 했었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의 ’위기‘, 즉 부채 위기와 복지 위기를 다시 꼼꼼히 살펴보자(참조 ”사상 최저 분배, 사상 최고 이윤 – 미국식 이윤 모델과 글로벌 국채시장의 동요“, 2026년 09월 16일. https://dem-labor.org/praxis/issue-report/7462)
프랑스의 체제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프랑스의 ‘위기’는 15년 전에도 있었고 30년 전에도 있었으며, 45년 전에도 있었고, 58년 전에도 있었다. 그 ‘위기’는 요즘 한창 시끄러운 프랑스 국채 수익률의 장기 추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최근의 시위와 종종 비교되는 1968년 5월 혁명 당시의 프랑스 국채 수익률은 약 7%였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프랑스가 뒤집어지는 혁명의 와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5월 혁명을 전후한 시기의 국채 수익률은 거의 변동이 없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1968년 6월 5월 혁명을 뒤집는 반동시위가 대규모로 발생하고 그 직후 진행된 총선에서 우파가 승리(우파 득표율 46%, 좌파 득표율 41%)하여 의회를 재장악한 직후에 오히려 국채 수익률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즉 프랑스 국채 수익률은 국내의 정치적 변동을 반영하지 않았다.
‘68년’ 이 시기의 프랑스 국채 수익률 상승은, 68혁명때문이 아니라 그 해 가을 미국이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탈퇴하고 글로벌 달러 유통을 줄이면서 비롯된 것이었다. 심지어는 이 시기는 1차 오일쇼크(1973년) 이전이었다. 미국이 브레튼우즈 체제를 해체하고 1971년 고관세 정책을 시행하고(지난 2025년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이 시기 관세 정책의 재판이다. 대법원이 이를 위헌이라고 심판한 것도 당시 의회의 관세법 제정 취지와 법원의 관련 판결을 따른 것이다), 1973년에는 금/달러 태환 조치를 폐기하면서 글로벌 통화 체제는 요동을 쳤다. 이 시기에는 전세계 모든 국가들의 국채 수익률이 급등했는데 그 핵심은 국채가 ‘안전자산’이 아니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국채 수익률이 장기적 하락을 시작한 것은 지난 1982년 폴 볼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의 초고금리(12%까지 정책 금리를 인상했다) 정책과 이후 글로벌 달러 순환체제(이른바 유로달러 시장)의 형성으로 통화 체제가 안정을 되찾았기 때문이었다. 국채=안전자산이라는 신화는 이 때 다시 되살아났다.
그러므로 과거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프랑스의 국채 수익률은 프랑스 국내 경제/정치를 반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반영은 한다. 그러나 그 반영은 일시적인 것일 뿐이지 추세를 바꾸지는 못한다. 장기 추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프랑스 국내 사정보다는 국제 금융 시장의 동향이 더 결정적이라는 점이다.
이 챠트에서 흥미로운 점은 지난 2019-21년 프랑스 국채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프랑스만의 일은 아니다. 스위스와 독일은 그보다 훨씬 먼저인 지난 2016년 무렵에 벌써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국채 수익률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국채를 발행하면서 이자를 지불하기는커녕 오히려 이자를 받는다는 뜻이다(예를 들면, 액면가 100만원짜리 국채를 발행하면서 이를 110만원에 매각한다). 세상에 이런 장사가 없다. 빚을 지면서 오히려 이자를 받는다니. 이러면 부채 가치가 상승한다. 즉 채권 가격이 폭등한다. 채권 가의 폭등은 그 채권이 담보하고 있는 ‘실물’ 가격의 상승을 야기한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자산 ‘인플레이션’은 이렇게해서 발생한 것이다.
프랑스 국채 수익률 장기 챠트를 보면 지난 2022년 이후의 국채 수익률 상승은 급격하기는 하지만, 이것을 근거로 프랑스가 무너질 정도의 위기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프랑스 위기를 말하는 이코노미스트들조차 이 챠트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나오는 것이 바로 프랑스 국채 수익률과 독일 국채 수익률 사이의 차이(스프레드)를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챠트다.

위의 챠트를 보면, 프랑스 국채 수익률과 독일 국채 수익률 사이의 스프레드는 지난 2011년 유로존 부채 위기 수준 근처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이는 ‘프랑스의 위기’라기 보다는 ‘유로존의 위기’를 표현한다. 원칙적으로는 프랑스 국채 수익률과 독일 국채 수익률은 크게 차이가 나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두 나라 모두 동일한 통화를 사용하고 있으며, 동일한 금리 정책을 수행하고 있고 동일한 금융 규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정한 시기에는 국채 수익률 스프레드가 다르게 반응한다. 이는 양국의 경제 격차를 표현한다기 보다는, 양국 사이의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이른바 ‘Target2’라고 불리는 유로존 내부의 자금 흐름 지표다.

이 지표는 유로존 각국의 자금 흐름을 표시한 것이다. 0을 넘는 파란색 계열로 표시된 국가들(독일, 네델란드 등)은 유로존 전역에서 자금이 흘러들어온다. 반면 붉은색 계열 국가들(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에서는 자금이 유출되고 있다. 즉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에서는 화폐 부족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교과서적으로는 화폐부족 현상(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국세 수입이 감소하여 정부 재정적자가 확대된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금리를 낮추고 통화가치를 절하해야 한다. 그러나 유로존의 통화 정책은 각국의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ECB(유럽중앙은행)이 결정한다. 즉 유로존 각국은 이미 통화 주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예컨대 프랑스 중앙은행은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금융정책으로는 자금 유출을 막을 도리가 없다. 오죽하면 Financial Times가 프랑스는 유로존에 속해 있어서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동정할 정도다.
결국 프랑스로서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남은 방법은 과거 그리스 부채 위기 때처럼 폭력적인 긴축 정책을 수행하거나, 혹은 경제 외적인 방법, 즉 전쟁을 수행하는 수밖에 없다(전시 경제체제의 구축).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10월 중순 ECB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를 갑자기 사임케한 것은 시사적이다. 동시에 지난 9월 초에는 독일도 자국 출신의 이사벨 슈나벨 이사를 조기 퇴임시키기로 결정했다. 이 두 사람은 그동안 유럽에서 은밀히 논의되고 있던 압류 러시아 자산(약 3000억 달러)를 강제 몰수하는 것을 반대해왔던 핵심 인물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조기 퇴진은 독일과 프랑스 권력 엘리트들 사이에서 추가로 대러시아 강경조치를 취해 러시아를 도발키로 했다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Financial Times의 칼럼니스트인 기데온 라크만이 “유럽이 전쟁으로 빠져들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던 것도 이 같은 사정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만일 프랑스 권력 엘리트들이 폭력적인 긴축 정책을 취하는 것을 현재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프랑스의 위기의 방향은 정치적으로 마리 르펭 인민전선 후보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다. 반대로 전시 체제를 택하고자 한다면, 최근 사회당과 공공광장(place publique)의 공동후보로 선출된 라파엘 글뤽스망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글뤽스망은 지난 2005년에서 2012년 동안 그루지아(죠지아)의 미케일 샤카쉬빌리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냈다. 샤카쉬빌리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 러시아 자치령을 공격했다가 패배하고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결국 그루지야에서는 친러정권이 들어섰다. 2008년의 그루지아의 러시아 공격은 당시 부통령인 딕 체니와 존 맥케인 상원의원 등이 배후 인물로 지목된 바 있다. 지난 2014년 이혼한 글뤽스망의 전 부인인 에카 즈굴라드제는 2014부터 2016년까지 우크라이나 포로셴코 정권 하에서 내무부 제1차관을 지냈다. 글뤽스망은 지난 2017년에야 프랑스 정치에 입문했으며, 이후 사회당과 선거 연합을 구성해왔다. 굳이 역사 속에서 글뤽스망과 유사한 인물을 찾는다면 1951년 쿠데타로 루이 보나파르트 3세다- 맑스가 쓴 ‘부르메어 18일’의 주제인 “어떻게 해서 혁명이 반혁명으로 끝나는가?”에 대한 역사적 스토리의 주인공일 것이다.
프랑스 재정 적자의 원인
그렇다면 프랑스의 재정 적자는 왜 늘어나고 있으며,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아마도 당장 마크롱대통령을 원흉으로 꼽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이 상황의 가장 먼 기원은 지난 1981년 미테랑 정권 시절의 ‘3% 룰’일 것이다. 당시 미테랑 정권은 정부 재정 적자 폭을 연간 GDP의 3% 이내로 국한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정권들도 모두 이 룰을 따랐으며, EU 결성시에도 이 룰은 관철되어 모든 회원국들이 의무적으로 GDP 3% 이내로 재정 적자를 제한해야 한다. 지난 40여 년간의 3%의 누적적 결과가 오늘날의 프랑스라고 할 수 있다(게다가 프랑스는 자신이 제정해 놓고도 이 룰을 안지키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 2008년의 금융 위기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국가 부채는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GDP의 60%에 머물러 있었다. 즉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었다. 프랑스 국가 부채가 급증한 것은 2008년의 금융 위기 직후부터였다. 즉 금융 위기가 현재 프랑스 국가 부채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것이다. 프랑스의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2014년까지 계속 증가하다가 2019년 초까지는 안정세를 보였다. 그리고 2019년 하반기부터 다시 급등했다가 지금은 오히려 약간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위의 챠트는 프랑스의 ‘과잉 부채’는 복지 때문이 아니라, 금융 위기에 대한 금융적 해결책(국가가 빚을 내어 사적 금융자본을 구제금융해 준 것)에서 근본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다만 국가도 그 과정에서 약간의 덕을 본 것 뿐이다). 따라서 복지를 해체한다고 해서 과잉 부채가 해소되지는 않는다. 다만 노동자들의 몸 값이 더 싸질 뿐이며, 기존에 노동을 마치고 은퇴한 노동자들로서는 생애 저축(연금)을 강탈당하는 것뿐이다.
프랑스의 연금 소득 대체율(노동 소득 대비 연금 지급액)이 70%로 한국의 40%에 비해 월등히 높기는 하지만, 이는 노동기간 동안의 연금 납부율이 프랑스가 한국보다 월등히 높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프랑스의 연금 수준이 높은 것은 한국보다 더 많이 연금을 납부하기 때문이다. 만일 한국이 프랑스와 마찬가지의 연금 납부액을 내게 된다면, 당장 폭동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사회복지 재정이 프랑스 정부의 재정적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적자의 12%-15% 정도에 불과하다. 즉, 연금 지급액을 줄인다고 해서 프랑스의 재정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대안없는 출구, 출구없는 대안
유럽의 사회운동이 얼마나 ‘숭고’하고 ‘영웅적’인 것이든 간에, 그 양상은 체제 위기를 반영하고는 있지만, 그 위기를 인식하거나 혹은 통일적으로 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이 위기를 조성하는데 일조한 세력들과의 절연을 기초로 한 다른 투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세르비아에서 부분적으로 ‘자신들만의 정치화’가 출현했지만, 이같은 경로는 순수한 지적 담론의 장으로 이어질지언정, 유감스럽게도 현실적 정치적 전망으로 실현될 수는 없다고 보여진다(헤르만 헷세의 ‘유리알 유희’에 더 가깝다).
지금 전지구적으로 사회운동이 현실에 대한 불만과 못살겠다는 아우성을 간헐적으로 혹은 폭발적으로 담고 있지만, 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모른채 과거의 역사들을 다시 끌어오는데 그치고 있다면, 그리고 그같은 유산들이 다가올 현재의 정치적 제도, 즉 선거에서 동원되는 자원에 그치고 만다면, 이 사회운동은 고작해야 자신의 ‘시위 싸이클’을 마친 채 다시 소멸될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열심히’ 싸우지 않아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싸웠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아는 현실 내에서만, 그리고 그 현실에 적용되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이 아는 이론으로만 싸웠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의 소비이자, 동시에 역사의 낭비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미래는 없으며, 반복이 있을 뿐이다. 유럽의 겨울은 불만스럽겠지만, 그리고 영웅적인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다시 치장되겠지만, 이 상태로서는 유감스럽게도 이 이야기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이 현실이 얼마나 지속 불가능한 현재인지, 그리고 그 현재를 뛰어넘으려면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셈법을 벗어나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비로소 죽은 역사는 미래의 역사가 될 수 있다. 봄은 그 다음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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