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저 분배, 사상 최고 이윤
– 미국식 이윤 모델과 글로벌 국채시장의 동요
2026년 9월 16일 / 이슈 리포트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장
노동소득분배율(labor’s share), 국채수익률, 이윤(율), 재정적자, 이전소득, 독점, 독점, 부채, K자형 경제, 산업공동화, 주주자본주의, 미국식 사회복지모델, 한국 국채 수익률
1. 사상 최저 분배, 사상 최고 이윤
최근 미국 경제분석국(BEA)이 발표한 지난 8월치 미국의 노동소득분배율(labor’s share)이 56.8%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노동소득분배율은 전체 기업 이윤 가운데 노동임금으로 분배된 소득의 비율을 말한다. 자본주의 기본 모델에서 한 사회에서 창출된 이윤(부가가치)은 분배에 있어서 자본가의 몫과 노동자의 몫으로 나뉜다. 이중 노동자의 몫은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가족을 부양/재생산하는 소비로 쓰이며, 남는 잉여가 있다면 저축 형태로 축장된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 노동소득분배율이 낮아진다는 것은 그 사회에서 창출된 이윤이 노동자에게 보다 적은 비율로 분배된다는 것이며, 따라서 그만큼 기업의 이윤이 증가한다(자본가의 몫의 상대적 증가)는 것을 뜻한다.
(아래의 이윤 분배 분석은 이윤 창출의 근본인 생산과정에서의 사회적 필요 노동시간을 초과하는 잉여 노동의 착취에 관한 것이 아니라, 기업 잉여의 실현 및 분배 과정만을 언급한다)

이 표에 따르면 미국의 노동소득분배율은 지난 1970년대 이후 장기적인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00년 직전 일시적인 반등을 보인 이후로는 하락 기울기가 가팔라지고 있다. 사회에서 창출되는 전체 잉여 중에서 노동계급에게 ‘임금’의 형태로 돌아가는 몫이 적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같은 분석에는 여러가지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계산방법의 차이 때문이다. 미국의 씽크탱크인 Tax Foundation은 지난 50여년간 노동소득분배율이 거의 차이가 없이 일정 밴드 내에서 등락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미국 경제분석국(BEA)의 분석에도 기술적인 문제가 있다. BEA 분석은 기업의 감가상각비용(depreciation)을 이윤에 포함시켜 계산하는데, 이 경우 기업이 차지하는 이윤의 몫이 회계상으로 커지는 것처럼 나타난다. 엄밀히 말해서 감가상각비는 기업이 회수하는 비용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 화폐상의 이윤은 아니다.
감가상각비 부분을 제외하고 노동소득분배율을 계산하면 지난 1950년대 이후 노동소득 분배율은 오히려 2000년까지 완만한 상승 추세를 보이다가, 그 이후에는 급락하고 있다. 이는 미국 산업구조의 변화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까지는 미국에서 제조업이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감가상각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2000년 이후에는 IT 서비스업의 상대비중이 높아지면서 감가상각비가 기업 이윤 회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한다. 따라서 기업 이윤 증가 착시 효과도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위의 챠트는 비금융 섹터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2000년 이후에는 금융업, 보험업, 부동산업 등 서비스 산업의 상대 비중이 커지면서 노동소득 분배율은 더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제조업만 놓고 보더라도 2000년 이후에는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하는 경향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제조업 노동소득분배율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바닥을 쳤다가 이후 반등하면서 2020년 코로나 국면에서는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이후에는 다시 노동소득분배율은 감소하고 있다. 미국 경제에서 금융부문까지 포함하여 계산한다면(금융섹터는 미국 GDP의 약 7.5%를 차지한다), 장기적으로는 EBA에서 발표하는 노동소득분배율이 현실에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 챠트는 각기 다른 척도에 따른 노동소득분배율을 표시한 것이다(1973년=100)

고로 어떤 기준을 택하든, 미국의 노동소득분배율은 지난 2000년 이후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1970년대 초반 대비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이는 기업에서 창출되는 잉여 가운데 노동자들이 가져가는 몫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한 나라의 노동소득분배율이 감소한다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노동자에게 임금 형태로 돌아가는 잉여의 상대적 비중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임금 형태로 받은 잉여를 가지고 자신과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소비와 저축이다. 따라서 노동소득분배율이 낮아진다는 것은 해당 경제구성체 내에서 생산된 상품들을 소비할 여력이 감소한다는 것, 즉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매출 감소/둔화를 야기한다. 왜냐하면 자본의 재생산 도식에서 생산된 상품은 그 생산과정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임금을 가지고 다시 소비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고리가 끊어지면 이른바 고전적 의미의 ‘공황’(panic)이 발생한다. 즉 자본가의 초과 이윤으로 인한 노동자계급의 과소소비가 발생하여 이른바 디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하는 것이다(노동자계급은 노동력 이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무산자-프롤레타리아다).
둘째는, 이 경우 노동자 계급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자본가계급과 투쟁에 나서게 된다. 가장 고전적인 의미의 계급투쟁이 발생하는 것이다. 즉, 생산된 잉여 가운데 누가 얼마만큼을 가져갈 것인가를 놓고 서로 싸우게 된다. 이 때는 고전적인 혁명과 내전의 시기다.
그런데 첫번째 의미로 다시 돌아가 보자. 미국의 노동소득분배율을 계속 악화되어 왔다. 그러면 ‘소비’가 감소해야 한다(절대적 규모가 아니라, 생산에 대한 상대적 소비). 또한 미국의 경제를 이끄는 것은 소비다(GDP의 약 70%가 소비에서 나온다). 그런데 미국의 소비 내역을 세부 항목별로 분석해 보면, 70%의 소비 가운데 약 60% 포인트의 소비는 경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즉 경기가 좋건 나쁘건 전체 소비의 80%는 유지된다.
즉 미국은 소비로 굴러가는 경제임에도 불구하고 실상 소비의 변동폭은 그다지 크지 않다. 이는 한편으로는 고소득자의 소비 비중이 상대적으로 너무 커서 경기 영향을 덜 받는 탓도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소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줄 수 있을 정도로 소득의 조건이 형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노동자 계급은 도대체 어디에서 ‘소득’이 나와서 소비를 할 수 있는 것일까?

미국에서 상위 20% 소득자의 소비는 전체 소비의 59%를 차지한다. 나머지 80%의 소비가 41%를 차지한다. 즉 소득 격차에 따른 소비 격차가 극심하다. 이것이 이른바 K-shaped economy(K자형 경제)다. 하위 80%는 상대 소득이 적기 때문에 소비를 하지 못한다. 따라서 저축도 하지 못한다(미국인의 하위 20%는 은행계좌에 비상금 1,000달러가 없다). 따라서 하위 80%가 소비할 수 있는 상품은 ‘싸야’ 한다. 이것이 미국이 상대적으로 값싼 해외 공산품을 수입하는 이유다(또는 상대적으로 값싸도록 만들기 위해 달러화 강세가 요구된다). 즉 미국의 무역적자는 미국민의 80%를 먹여살리기 위한 방책이다.
그래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수입과 국내 생산을 합쳐도 여전히 국내에서 분배되는 임금 비중이 낮다면 노동자 계급은 어디에서 생존과 재생산을 위한 여분의 자금을 구하는가?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부채다. 노동력 소지자로 형성하기 위한 비용을 부채로 충당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학자금 대출이다. 다른 하나는 생존의 가장 중요한 요건 중의 하나인 주택에 대한 장기 대출이다. 이 두가지 부채는 생계 임금을 위한 노동자들의 저항 압력을 낮춘다. 일용의 소비를 위해서는 자동차 대출이나, 신용카드와 같은 부채가 주어진다.
다른 하나는 정부의 이전소득(government transfer, 그리고 비중은 크지 않지만 정부 투자)이다. 정부가 최하층이나 비상상황에 처한 대중들에게 지원을 하는 것이다.
이같은 경제의 여러 항목에서의 소득과 소비의 관계를 정식화한 것이 칼렉키-레비 방정식이라고 불리는 간단한 도식이다. 칼렉키-레비 방정식은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 총이윤(세후)=(기업 투자+배당금)-(가계저축+정부 재정 수지+경상 수지).
이 방정식에 따라 지난 70년 동안의 미국의 총이윤을 표지분해하면 다음과 같은 챠트가 나온다.

● 위에서부터 차례로 순민간투자, 순정부투자, 배당금, 정부 재정 수지, 가계저축, 경상수지 순서.
2. 재정적자가 보증하는 기업 이윤 증가, 그리고 미국식 사회복지
지난 70여년간의 변화를 살펴보면 가계저축이 큰 폭으로 줄었다. 그런데 가계 저축이 감소할수록 기업 이윤(율)은 증가한다. 동시에 경상수지는 절대 규모는 증가하고 있지만, GDP 대비 상대 규모는 감소/정체 중이다. 원론적으로는 경상적자가 감소하면 기업 이윤이 증가한다. 그러나 미국의 기업들은 독점 다국적 기업이기 때문에 여기에 회계상의 함정이 존재한다.
일단 이 문제는 넘어가자.
이윤(율)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기업 신규 투자 비율은 GDP 대비로는 추세적으로 감소 중이다. 미국의 기업 투자 전체 규모는 지난 60여년 동안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이는 기존 설비 보수/대체 투자 비중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며 신규 투자 비율은 장기적인 하락 추세에 놓여 있다. 이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미국 이윤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장 큰 폭으로 미국 이윤(율)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정부 재정 적자와 배당금의 증가다. 즉 미국 재정 적자가 증가할수록 미국 기업 이윤은 증가하며, 동시에 이는 미국 노동자계급의 임금 투쟁 유인을 감소시킨다. 역으로 이같은 물질적 조건은 미국의 노동자 대중이 생산 현장에서 직접 자본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재정’을 둘러싼 정치적 경쟁(즉 자신들이 지지하는 자본의 정치적 대표가 투표에서 승리하도록 동원되는 것)에 모든 역량을 투입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기원인 레이거노믹스가 ‘작은 정부’를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재정 지출 규모가 계속 증가한 원인이며, 미국의 재정 적자가 계속 증가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다른 말로 해서, 정부가 노동자의 임금을 보조함으로써 기업의 이윤을 늘리는 역할을 해준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하의 미국식 복지국가의 메카니즘이기도 하다. 이 메카니즘 하에서는 재정 적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해야 하며(이를 위해 정부 지출 확대뿐만 아니라, 조세 부담율을 낮춘다. 즉 의도적으로 정부 재정을 악화시킨다), 민간과 정부의 부채를 늘리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비생산적 부문, 이른바 FIRE 경제(파이넌스, 인슈어런스, 리얼에스테이트의 앞글자) 부문이 과잉 성장해야 한다.
이에 반해 조합주의 형태의 유럽식 복지국가는 정부-자본-노동이 3자 합의를 통해 자본(기업)의 독점을 보장해주는 대신에 노동자의 소득분배율을 하락하지 않게 저지해주는 협약을 체결하고 정부가 그 감시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유럽식 조합주의 모델은 이미 지난 80년대 후반에 한계를 노정했으며, 그 이후의 발전은 독일의 경우, 통독과 EU 확대에 따른 역내 식민지의 형성과 글로벌 지정학적 교란을 통해 노동력 인구를 수입함으로써 조합주의 모델에 외부적인 충격을 가해 노동소득분배율을 낮추고 기업 이윤을 늘리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이것이 자본가의 정부인 기민/기사연합의 메르켈 총리가 오히려 사민당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이주노동자 유입에 찬성하고 이를 이념적으로 지지해주는 ‘인권’을 소리높혀 외쳤던 이유이며, 동시에 이 모델이 급기야는 국내적 반발에 직면하여 민족주의적인 반이민 독일대안당이 정치적으로 성공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독일에서 이민/인권은 자본가의 필요에 의한 정치적 구호이기도 했던 것이다.
다음 챠트는 어떻게 해서 미국의 노동계급의 노동소득분배율이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총이윤이 증가할 수 있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도표이다.

가계 저축이 감소하고 정부 재정적자가 확대되면서 기업 이윤이 증가한다. 동시에 기업 신규 투자는 줄었지만, 경상수지 적자폭은 GDP 대비로는 안정적이며, 배당금은 증가했다. 이 요인들이 겹치면 미국의 기업 이윤은 과거 1980년대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추세를 형성한다.
특히 2000년 이후에는 노동소득분배율이 급속하게 하락하는데, 그 반대급부로 미국의 기업 이윤율이 급증한다. 보다 엄밀하게는 1980년부터지만, 명확하게 추세가 확인되는 것은 2000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챠트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기업 이윤율은 22%에 달한다. 지난 1930-1980년까지는 0%-5% 사이에서 맴돌았었다. 그리고 이것이 미국 기업 주가가 지난 1980년 이후 무조건 우상향한다는 신화를 만들어낸 근본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40여년 동안 미국 기업의 이윤율이 증가했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 증시의 ‘버블’에는 물질적 근거가 있다. 미국 기업들의 이윤(율)이 증가하기 때문에 당연히 주가가 상승한 것이다.
이윤율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기업의 이윤총액도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했는데, 이는 기업의 이윤 총액은 매출의 명목 증가율을 따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이 기업 이윤 총액 증가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정부가 재정적자를 지속한다면 이는 이윤율에도 유리하다. 즉 인플레이션 압력 하에서도 낮은 금리를 유지할 수 있다면, 기업의 이윤율과 명목 이윤 총액이 모두 동시에 증가한다. 반면 이 조건 하에서 노동자에게 분배되는 몫은 줄어들지만, 관행적으로 그 임상적 해결책이 정부의 원조라는 모습으로 나타났었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임금 조건, 즉 노동소득분배율 악화에 직면하여 자본을 대상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즉자적으로 국가만을 상대로 싸운다. 또는 정확히 말하자면, 국가의 바운더리 안에서 싸운다.
3. 이윤율 보존의 법칙: 해외에서 돈 끌어들이기
그런데 이 모델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미국의 GDP 대비 신규투자 비중이 감소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기존의 산업 가운데 낮은 이윤율을 가졌던 섹터가 해외로 이전하거나 아예 생산시설을 해외로 매각하고 높은 이윤율만을 미국내에 보존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른바 ‘제조업 공동화’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 이른바 ‘국가 안보’ 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더 큰 문제는 장기적으로 신규 투자 감소는 이윤 감소를 초래한다.
현재의 미국의 경제 구조에서는 미국 내에서 제조업 투자를 하는 것은 이윤율이 다른 섹터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다. 따라서 이 비효율적인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을 위해서는 높은 이자를 지불하고 자금을 구해야 한다. 즉 신규 투자를 위한 채권 발행시 금리가 높아진다. 따라서 제정신인 기업 경영진이라면 미국 내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 이를 되돌리고자 미국 정부가 개입하는데, 이것이 민주당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법안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를 빌미로 한 교역 상대국으로부터의 강제투자 조치이다.
트럼프가 한국, 일본, 유럽에게서 약 2조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요구한 것은 바로 이윤율이 떨어지는 섹터에 대한 저금리의 투자, 나아가 실제 투자 협정 내역으로 보면 아예 공짜로 미국에 투자하기를 요구한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투자원금 회수까지 수십년이 걸리는 사업분야일 뿐만 아니라, 투자 이익금도 미국이 90%를 가져가고 원금 회수 시기가 되면 이미 기존 설비는 노후화되어 거의 가치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방안은 미국 국내의 시장 금리를 낮추면서도 동시에 해외로부터의 자금을 흡수하여 달러화 가치도 보존하고 미국 제조업도 활성화시키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 초기 나왔던 미국의 초장기국채 매수안(100년채, 혹은 영구채)이 ‘산업적’ 형태로 바뀐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문자 그대로 강탈인 셈인데, 이걸 ‘잘된 협상’이라고 칭송하는 한국 정부와 언론의 태도는 어지간하다.
또 다른 문제는 이같은 미국 아윤 구조 하에서는 미국은 만성적인, 심지어는 영구적인 재정 적자가 ‘요구된다’. 즉, 미국이 재정적자를 중단하면(즉 재정 지출을 줄이거나, 혹은 증세를 하면) 미국의 기업 이윤은 감소하며, 동시에 기업 주가도 하락한다. 뿐만 아니라 배당금도 감소한다. 그리고 배당금이 미국의 전체 국민소득(national income)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18%에 달하기 때문에 배당금 감소는 소득 감소->소비 감소로 이어진다. 특히 배당금을 탈 수 있는 상위 20% 고소득 계층의 소비가 감소하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소비 둔화폭이 커진다. 즉 미국은 재정 적자를 줄이거나 멈추는 순간, 곧 불황 나아가 심각한 공황에 빠지고 만다. 따라서 미국의 제1과제는 ‘지속가능한 재정 적자’ 구조를 만드는데 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모순이 시작된다.
4. 글로벌 국채 수익률 상승 : 정책 가격에서 시장 가격으로

위의 챠트는 누가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지를 비중별로 나타낸 것이다. 이 챠트에서 짙은 붉은 색은 가격-민감 투자자들이며, 옅은 주황색은 가격-비민감 투자자들이다. 지난 2008년 이래 가격-비민감 투자자들의 국채 보유 비중은 75%대에서 40% 초반대까지 30% 포인트나 감소했다. 반면 가격-민감 투자자들의 비중은 그만큼 증가했다. 지금은 가격-민감 투자자들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이 챠트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가격-민감 투자자란 보험사, 가계, 비금융기업, 보험사, 연금 펀드, 투자펀드, 민간해외투자자 등을 가리킨다. 반면 가격-비민감 투자자는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s), 해외 정부, 해외 중앙은행 등 미 국내외의 정부 기관들을 지칭한다.
전 연준의장이었던 벤 버냉키가 미 국채 수익률이 낮은 것을 ‘global saving glut’이라고 말한 것은 해외 정부나 중앙은행이 무역흑자를 통해 얻은 달러를 미 국채 시장에 투자하는 ‘외환보유고’를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는 미국 연준이 미 국채를 매수하면서 그리고 글로벌 달러화 공급 부족에 따른 대체 통화 수단 개발에 따라 미 국채 보유 비중을 줄이면서 가격-비민감 투자자, 즉 해외 정부나 해외 중앙은행의 미국 국채 보유 비중은 감소했다.
그 자리를 대신 차고 들어온 것이 가격-민감 투자자들이다. 이들은 주로 미국내 투자자들이다. 미국 연준이 QT(보유국채 만기시 추가 매수 중단)를 시행하면서 그리고 미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생겨난 빈자리를 민간 투자자들이 채웠다. 가격-비민감 투자자들이 정책적 이유에서 미 국채를 보유했던 것과는 달리, 이들은 ‘가격’적 요인, 즉 투자 대상으로 미 국채를 대한다. 따라서 미 국채 발행량이 늘어나거나 혹은 미 국채에 대한 신인도가 떨어지면 더 높은 국채 수익률을 요구한다(즉 정부에게 더 낮은 가격-더 높은 수익률-에 국채를 팔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지난 금융위기 이후 미 국채 시장에 가장 핵심적 역할을 하는 플레이어는 바로 가격-민감 투자자중 대표격인 ‘사모 펀드’들이다. 이들은 레버리지를 써서 미 국채를 매수하여 다시 이를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위험한 거래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이것이 미 국채 수익률이 상승하는 근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즉 과거(2008년 이전)의 미 국채 수익률은 가격(수익률)이 문제가 아니었다. 단지 거래상의, 그리고 국가 무역 교역상의 필요에 의해 달러를 파킹시켜놓은 수단으로서 미 국채를 보유한 것이라면, 2008년 이후의 민간 투자자들은 미국의 경제 사정과 금융 사정에 따른 ‘적정 시장가’를 요구한다. 따라서 해외 중앙은행들이 고작 1% 금리에 만족하고 가만히 있었던데 반해서, 이들은 현재의 미국 정부의 재정상태로는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5%를 넘어도 여전히 너무 비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지난 9월 초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미 국채 시장 안정화 조치(장기 국채 매수, 단기국채 매도)를 발표한 직후에 베센트의 멘토였던 스탠리 드럭큰밀러(죠지 소로스 펀드 근무 당시 베센트의 상급자였다)가 “국채사장 조작하려 하지 말아라, 국채 수익률을 낮추려거든 재정 건전화, 즉 재정 지출을 줄여라”라고 <월스트리트저널>지에 기고한 이유이다(동시에 드럭큰밀러는 미 국채 매도 포지션을 취하고 있었다. 즉 자기 투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미 국채에서 매우 시끄러운 ‘인플레이션’ 주장들과는 달리, 실제 수익률 상승에 인플레이션 압력(소비자 물가나 인플레이션 기대치)는 거의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인플레이션 보상 국채 수익률을 보면 국채 시장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국채 수익률이 상승한다고는 보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난다. 즉, 거의 순수하게 미국내 투자자들은 미국 정부의 재정 적자를 지목하고 있으며, 그 중에 일부는 미 국채의 안정성(즉 미국이 제재를 통해 일방적으로 국채를 몰수할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다.
미 국채의 적정 시장가가 어딘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지난 40여년 동안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BIS(국제결제은행) 보고서가 지적했듯이, 현재 수준의 미 국채 수익률이 금융 위기를 예고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 국채 수익률을 떨어뜨리기 위해 미국 정부가 재정지출을 줄인다면(이는 동시에 전쟁에서 발을 빼는 것이기도 하다), 그 때는 미국민의 소득과 소비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기업 이윤 저하로 이어져 미국 증시 하락을 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이 때는 지난 2008년도에 그랬듯이 미국 가계들은 부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미국 기업들은 투자를 축소해 더 큰 경기 위축을 낳는다. 26년 회계년도에 2조 달러가 넘을 것으로 확실시되는 미국 연방정부 재정 적자 이슈가 결국은 금융 시장 전체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미 국채 수익률 상승의 또 다른 파급 효과는 만일 트럼프 행정부가 재정 적자를 줄이기를 거부한다면, 연준이 불가피하게 금리 인상에 나서게 된다는 점이다. 즉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국채 수익률 상승 조짐이 보이면 연준은 금리 인상을 통해 이를 제어하는 수밖에 없다. 이는 시장 금리 상승을 야기하고 다시 경기 위축으로 이어지지만, 역설적으로 이를 빌미로 연방정부 지출을 늘리는 정치적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5. 우리만 망할 수 없다: 글로벌 정치경제의 불안
국채 수익률 상승은 단지 미국만의 일은 아니다. 전세계 주요국가의 국채 수익률이 동시에 상승하고 있다. 물론 이는 기준점인 미국채 수익률 상승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금융이 ‘on-shoring’ 현상을 보이면서 민간 투자자들이 더 높은 시장 수익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즉 과거에는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다른 나라의 국채를 매수하면서 국채 수익률을 낮추었지만, 이제는 그런 호사가 없다. 이제는 민간투자자들이 ‘싼 국채(높은 수익률)’를 요구하며 이를 부담스러워하는 정부에게는 재정 지출을 줄이라고(즉 긴축)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국채 수익률 상승에 가장 취약한 나라는 미국이라기보다는 프랑스이며, 정치적 상황 전개에 따라서는 지난 2011년의 유로존 부채 위기 재연 가능성도 있다.

프랑스 상황이 위태로운 것은 유럽 국가들 가운데 가장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과거와 같은 옛 식민지 국가들의 강제 프랑스국채 매수도 가능하지 않고(사헬 지역 상실로 프랑스 국채 시장이 큰 타격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GDP의 55%가 정부 재정 부문에서 나오는 프랑스 특유의 국영경제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좌파연합인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쟝 뤼크 멜랑숑 후보가 ECB(유럽 중앙은행)이 보유한 프랑스 국채를 탕감해 줄 것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워 지지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국채 시장을 더 자극한 탓도 있다. 만일 멜랑숑이 2차 결선 투표까지 진출하거나 심지어는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국채 투자자들은 프랑스 정부를 파산시킬 지경까지 몰아부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영국도 비슷한데, 현재 주요 선진국 가운데 장기 국채 수익률이 가장 높은 국가가 영국이다. 그리고 영국에는 별 뾰족한 대책도 없다. 현 노동당 정권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혹은 버티기 위해서 그나마 이미 형해화된 복지 시스템을 완전히 해체해 버릴지 알 수 없는 상태다.
한국의 국채 수익률도 예외는 아니다. 흥미롭게도 지난 1년 사이 전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익률 상승폭을 기록한 국가가 한국이다. 이는 해외 부문발 이윤이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국가가 세수의 형태로 흡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명목 소득 증가에 따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당연히 일시적인 해외발 수익을 국가가 ‘횡재세’ 등의 형태로 국가가 흡수하여 이를 사회적으로 재분배하거나 혹은 재정 적자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지만, 현 정부는 ‘사적자본 소유자의 절대적 소유권’을 광신하는 순수한 자본가 혈통인 때문인지, 이를 고스란히 사적 자본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그 결과 그 중 일부가 기업내 개별적 노사관계와 임금협상등으로 나타나고 있을뿐이다. 즉 사회화되지 않은 이윤의 개별화).
따라서 한국의 명목 소득은 급등했으며 이에 따른 초과 유동성 압력이 발생하는데도 이재명 정부는 초과세수 없이 오히려 정부 재정만을 확대하는 예산안을 편성하고 있다. 부유세, 횡재세 등 부유층을 겨냥한 새로운 세금의 편성이나, 법인세를 늘리기 그리고 부동산 등으로 만들어진 이익에 대한 사회적 균등 분배등의 모든 조처들이 좌초되었다. 이는 당연히 한국 내에서 초과 유동성 압력을 만들어내며 따라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화된다. 한국은행의 지난번 금리 인상만으로는 과연 이를 잡아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무엇보다도 지난 40여년간 실패한 주주자본주의 정책을 이 땅에서 실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이 정부의 자기 제한적인 부동산 정책에서 이미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업 이윤 증가의 첫번째 요인은 재정 적자 증가, 두번째 요인은 가계 저축 감소에 있다. 그리고 한국처럼 가계 저축율이 아직 유지되고 있으며 그 주요한 형태 중의 하나가 전세금이라는 조건 하에서는 자본시장 육성을 위해서는 이같은 가계 저축을 분쇄하여 현금 흐름으로 전환(즉 월세화)할 필요가 있다.
만일 정부와 사적 자본이 진지하게 주주자본주의, 즉 자본시장 육성정책을 강행한다면 한국은 미국과 같이 장기적으로 자국의 이윤율을 보장할 수 있는 국제적 조건을 다른 나라들에 강요할 수 있는 군사적/금융적 힘도 없기 때문에 국내에서 일시적인 버블만을 형성하거나, 아니라면 정치적으로 강압적인 착취가 발생할 것이다.
지금의 이재명 정부의 수도권 부동산 정책은 바로 이같은 정책이 부분적으로 구현된 것이다. 즉 그나마 조금 모아놓은 가계 자금조차도 모두 자본의 이름으로 가져가야만 이 체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 대신에 거시 항목에서는 ‘배당금’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현재 월세살이하는 사람이 배당금 소득을 기대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이재명식 자본주의의 프로파갠더의 성공 사례로 역사책에 포함시킬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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