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파업연대기금 15주년을 맞으며

15년의 노동연대운동사 (2011~2026)

- 연대와 투쟁의 굴곡과 진퇴의 시간들

2026년 7월 30일 / 교육 선전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 이 글은 연구소 소장이기도 한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가 2026725일 열린 사파기금 15, 연대운동 15”:회고와 축하의 자리의 1부 사파포럼에서 사파기금의 15년 연대운동과 노동연대운동 전체에 대해 발표한 기조 발표문이다.)

1.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기원과 성격

 

처음 사파기금이라는 운동을 제안했을 때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리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기실 이 운동에 관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투쟁과 노동운동에 대한 말이었습니다.

시작은 소박했습니다. 파업기금도 없이 싸우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파업기금을 사회적 연대로 조성하자는 아이디어를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지원갔던 희망버스의 서울 상경길에 동행들에게 제안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파업기금’이라는 말조차 생소하여 그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반응은 좋았습니다. 1주일을 고민한 후에 2011년 7월19 일 타오르는 붉은 노을을 보면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다음 장에 있는 “제안문”입니다. 아니 제안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파기금의 첫번째 특징입니다. 사파기금 초기에 꽤 자주 거론되던 “말이 씨가 되고 행동이 된다”는 모토는 이렇게 자연스레 나왔습니다. 희망버스 도상에서 시작된 것이 사파기금입니다. 파업기금 없이 파업을 시작한다면 사회적 연대로 파업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한진중공업으로 가는 희망버스라는 일회적이고 ‘사건적’인 연대가 아니라 지속적인 노동연대를 위해 “사회적 파업기금을 조성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바로 사파기금의 두번째 성격입니다. 파업기금을 사회적 연대로 조성하기. 그것도 공공연한 조성을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이 점에서 사파기금은 이전의 노동관련 기금들, 즉 노동연대기금, 상생기금과 다릅니다. 이 기금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연대기금을 조성하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파기금은 비정규직 정규직 구분 자체를 폐기해야한다고 봅니다. 또 2011년 비슷한 시기이 출범해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등 정리해고자들에 대한 법률구조 연대활동등을 목표로 해고 통지봉투의 색을 딴 ‘노란봉투’ 기금 캠페인을 펼친 ’손잡고’와도 다릅니다. 정리해고는 철폐해야하고 이를 위한 파업기금을 조성하는 기금입니다. 누군가는 한국처럼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단체행동권, 즉 파업권이 유명무실화되고 짓밟히는 사회에서, 어떻게 파업기금을 공공연히 사회적으로 모을 수 있겠는가라면서 회의적이었습니다. 일부 지지자들은 이름을 ‘희망기금’으로 바꾸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파업기금입니다. 그래서 사파기금은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를 위한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되었습니다.

자본주의가 시작된 서유럽에서 등장한 노동계급은 자본가계급에 맞서는 자신들의 유일한 무기는 자본의’ 업’을 파하는, 즉 파업이라는 수단임을 즉각적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파업기금 (strike fund)를 모았습니다.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생계가 일정 기간 유지될 파업기금이 모이면 그들은 공장의 기계를 멈추고 공장 문을 뛰쳐나오거나 점거파업을 했습니다. 노조가 생기기 전의 일입니다. 노동조합보다 파업이 먼저였고, 파업기금이 먼저였습니다. 파업권은 노동자의 ‘권리’이기 이전에 무기였고 집합행위였습니다.

그 계급투쟁의 역사와 전통이 한국에서 사라졌습니다. 아니 워낙 파업 자체가 불가능한 한국 사회에선 파업에 대비한 국가의 법과 제도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87년 민주화 이행 이후 신생 민주노조들도 파업기금에 대한 문제의식이 초기에는 없었습니다. 자본과 국가의 동맹체제가 제도적인 허점을 방비하기 위해서 나섰고, 가장 먼저 법원이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법리밖의 기준을 제시한 판결을 내리고, 국가와 정당들이 97년 노동법으로 법제화하였습니다.

그런데 자본과 국가의 대응에 비해 조직화된 노동은 ‘파업기금’에 대한 문제의식이 형성되지 못하였습니다. ‘특별쟁의기금’이나, 노조 조합비중 일부를 ‘투쟁기금’으로 비정기적으로 분배합니다. 과연 파업기금을 별도로 조성하지 않는 노동자부대가 파업을, 사회적 총파업을 감행할 수 있을까요? 파업기금은 노동계급이 자신을 파업하는 주체로 정립하는 자기 선언이자 주체적인 준비과정입니다. 파업은 ‘준비된 전술’이어야합니다. 해서 자본주의 초기 서유럽의 전투적 계급투쟁의 역사는,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주체로서 파업을 스스로 준비하기 위해 노조 조합비와 별도로 ‘파업기금’을 먼저 조성했음을 보여줍니다.

민주화 이행 이후 한국 노조운동은 파업기금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 채, 파업을 시작한 많은 노동자들이 ‘돈’앞에 굴복하였고, 많은 노동자들이 ‘파업의 제단’ 앞에서 자신의 가족을 희생시키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파업기금의 부재는 형사상 손해배상과 민사상 가압류등의 패키지와 결합하여 급기야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완전히 유명무실화하는 기제로 공고화되었습니다.

사파기금의 모토이기도 한 “돈 앞에 스러지지 않는 사회적 연대”는 “손배가압류에 맞서는 사회적 파업기금”을 의미합니다, 손배가압류는 2000년대가 아니라 민주화 이행 이후 80년대 말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초기에는 자본과 합의로 손배가압류를 피하였거나 노조 스스로 손해배상금을 지불하여 해결하였습니다. 제도적 방책과 준비의 부족 상태에서 비정규 노동자투쟁이 2000년대 초 시작되면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손배가압류로 격심한 고통을 겪었고, 노동자들이 분신하거나 자결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그러다 2015년을 즈음하여 노동부가 손배가압류 자료를 취합하고, 민주노총이 손배가압류 사업장 리스트를 작성하는등 사회적인 이슈화가 뒤늦게 되었습니다.

사파기금은 2011년 제안서에서 노동자들의 파업기금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하여 손배가압류에 맞서기 위한 사회적 파업기금을 제안했습니다. 요약하자면 파업기금의 조성은 준비된 파업을 향한 계획이며, 노동자투쟁은 준비된 파업일 때 승리의 전망을 구체적으로 가질 수 있고, 이는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한 연대와 결합할 때 더욱 강한 사회적인 투쟁이 될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 스스로 파업기금을 조성하지 못한다면 사회적 연대로 파업기금을 조성해야합니다. “사파기금 15년, 연대운동 15년”이 된 2026년에도 이는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이고, 아직 미완성의 도전적 과제입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2026년 발족 15주년을 맞아 7월25일 “사파기금 15년, 연대운동 15년”:회고와 축하의 자리를 열었다.

 

2. 사파기금의 단계별 활동

 

사파기금의 활동 연혁은 연도별 연보로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습니다. 연보에 게재된 활동 연혁을 기초로 사파기금 연대운동사(2011-2026)를 단계별 특징으로 정리했습니다.

 

1) 초기 (2011.7.22.- 2014)
자생적이고 즉각적인 연대에서 지속가능한 연대운동으로

 

사파기금은 2011년 7월19일 페이스북에 제안서 “사회적 파업기금 조성을 위하여-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면”을 올리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단 한 장짜리 아이디어는 ‘제안서’가 되었고. 페이스북에 권영숙 제안자가 올린 제안은 많은 반향을 일으키면서 7월22일 통장이 개설되고 첫 입금이 되었습니다. 해서 7월22일이 사파기금의 발족일로 여겨집니다.
이후 사파기금은 취지에 동의하는 이들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페이스북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그룹’을 만들고, 이 그룹을 홈페이지로 삼아서 매일매일 기금 입금액을 공개하는 특이한 방식으로 연대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두 달 만에 2천만원의 사파기금을 당시 투쟁 중이던 한진중공업정리해고투쟁위원회에 보냈습니다. 이후 “돈이 모이는대로 노동자투쟁에 보내기”는 사파기금의 지원방식이 되었습니다. 또한 노동자투쟁에 필요하다고 판단시 즉각 집행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기, 개인과 상급단체가 아니라 직접 현장투쟁하는 투쟁단위에게 연대하기 등을 경험속에서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기금 지원액은 초기에 2천만원의 큰 액수도 여러번 있었지만, 차차 더 많은 투쟁에 기금을 지원하기 위해서 5백만-1천만원으로 조정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기금지원뿐 아니라 소액지원, 물품 지원등도 시작하였습니다. ‘희망뚜벅이’ 활동에 방한품 연대, 핫팩 배포는 연대활동으로는 처음 시작된 모습입니다. 전국에서 털실을 모아서 ‘희망토시’ 짜기, ‘희망돼지’ 키우기등도 연대자들의 아이디어로 진행했습니다. *다음 기금지원명단 참조

 

2) 2단계 (2015-2019)
치열한 투쟁과 연대의 이중주 현장연대의 강화

 

2015년부터 2018년은 사파기금이 가장 활발하게, 치열하게, 빈번하게 지원 연대활동을 했던 시기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사파기금의 조성액도 계속 멈춤없이 증가세였기 때문입니다.

연 7-10회 파업기금 지원이 가능했습니다. 파업기금을 지원할 곳들을 자체 선정하므로 이 자체가 큰 일이었을뿐 아니라 노동자투쟁에 대한 민감도와 투쟁에 대한 많은 경험치들이 쌓였습니다.
또한 기금연대와 함께 ‘작은희망버스’, ‘사파동행’등 현장연대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강화하여, 연 5-6회까지 쉼없이 진행하였습니다. 상근자 없는 자원활동가들의 모임이 진행하기엔 턱없이 많은 사업과 활동이었고, 회의를 열고 연대물품을 비치할 사무실이 없는 상태로 사파기금 활동가들은 활발한 연대운동을 펼쳤습니다.
사파기금 연대가 폭증한 이유는 당시 민주노총이 집행부를 구성하지 못한 채 비대위체제로 계속 표류했고 민주노총과 연맹들의 투쟁 지지와 엄호가 부족한 가운데 고립된 투쟁을 펼치는 노동자들에게 얼마 남지 않은 유일한 사회적 연대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는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라는 모토로 ‘파업기금’을 상시적으로 조성하고 체계적으로 연대운동을 펼친 사파기금의 ‘준비된 연대’가 가장 빛을 발한 시기였으며, 이는 2016년 박근혜 퇴진을 가장 먼저 구호로 외친 ‘노동자공동투쟁’과 2017년 박근혜 퇴진 직후 ‘광화문 고공단식투쟁’의 결합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동시에 이 시기는 이제 발족 10년을 앞둔 단체로서는 내부 정비와 재생산의 채비를 하지 못한 채 노동자투쟁에 전력투구한 시기였기도 합니다.

 

3) 3(2020년이후)
변화하는 정세와 노동자 투쟁의 격감 속에 새로운 모색

 

2018-9년을 정점으로 이른바 ‘장기투쟁사업장’들의 투쟁이 줄이어 정리되었습니다. 이 정리과정은 많은 의문과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이 비대위 체제를 벗어나면서, 조직노동으로부터 원심력이 일부 작동하던 노동자투쟁도 독립성을 점차 잃고 조직노동 산하로 흡수되었습니다. 또 2011년 희망버스운동이 조직노동 밖의 ‘노동연대자들’의 자생적인 운동이었다면 이제 희망버스는 조직노동이 시민을 동원하는 연대로 변질되는 등 조직노동과 사회적 연대의 관계도 표류하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의 제도화, 그리고 노동자투쟁의 승리의 전망 약화 속에서 파업투쟁이 격감합니다. 이 역시 많은 문제기를 제기합니다.

설상가상으로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사회적 연대활동과 현장 연대 자체가 국가에 의해 봉쇄되기도 하고 모든 사회운동과 연대가 축소되었습니다.
사파기금 역시 이 시기에 파업투쟁이 격감하는 가운데 ‘사회적파업기금’의 의미에 대해서, 그리고 자본주의의 체제전환 시도와 민주노조운동의 급속한 제도화 속에서 정세에 대한 진단과 새로운 모색을 시도합니다.
또한 사파기금은 팬데믹 앞에서 새로운 방식의 사회적연대활동을 고민하면서 ‘코로나19 노동재난연대기금’ 제안을 하고 기금조성과 연대를 활발히 진행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치학습, 교육선전, 사상적 기초 연구등의 활동을 강화하였습니다. 민주주의와노동학교를 다시 재개하여 코로나19 가운데 2022년 3기학교를 열기 시작해 2025년 6기 학교까지 개최하였습니다.


* 연도별 연보:
https://sapafund.org/?cat=350

2011년 :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시작하다
2012년 : “만원의 기적” 1만인 계좌 운동을 시작하다
2013년 : 노동이 말하다 ‘사파포럼’
2014년 : 새로운 현장 연대 ‘사파동행’
2015년 : 찾아가는 지역 연대 ‘사파의 작은 희망버스’
2016년 : 사파기금- 투쟁과 연대의 이중주, 기금 지원 9차
2017년 : 도약을 위한 보금자리 그리고 고공으로 쏘아올리다
2018년 : 치열한 전국 현장 연대 – 탄핵 퇴진 너머 노동자투쟁
2019년 : 노동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2020년 : 코로나19 ‘노동재난연대기금’을 제안하고 조성하다
2021년: 새로운 사무실, 새로운 10주년을 준비
2022년 : 격월 소식지 <사파동행> 첫 발행하다
2023년 : 사파기금의 결실,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발
2024년 : “절망을 직시하고 절망을 딛고 희망을 모읍시다”
2025년 : 계엄탄핵광장을 넘어 노동의 사회적연대를 향한 새로운 목소리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15주년 행사 1부로 열린 25회 사파포럼 “15년의 노동연대운동사 (2011- 2026)” 토론회 모습.

 

3. 지향과 딜레마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지향은 이렇게 정리될 수 있습니다
: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 투쟁과 연대의 이중주, 사회적 연대를 기반으로 새로운 동맹과 변혁의 주체 구성에 기여 하지만 이 지향과 목표를 위해 기여하겠다는 포부는 현실적 조건이 한계가 되고 딜레마가 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단지 사파기금 연대 15년 앞의 장애일뿐 아니라 ‘노동연대운동사 15년’이 당면한 현재의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다음 3가지 딜레마로 제시할 수 있습니다.

 

1) 단한번의 제대로 된 승리: 개별투쟁과 전체 투쟁

 

“단 한번의 제대로 된 승리”를 거두기가 너무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장기투쟁사업장들은 모두 긴 투쟁 끝에 스스로 정리하였습니다. 새로 분출한 노동자투쟁은 장기투쟁이 될 것인가, 아니면 자본의 얄팍한 회유와 교섭 조건에 응할 것인가라는 기로에서 선택에 직면합니다. 후자인 투쟁을 선택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장기화’하고, 장기투쟁끝에 노동자들은 ‘끝장투쟁’을 하지만, 이는 이전의 장기투쟁 사업장들의 경우처럼 ‘정리하는 투쟁’이 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투쟁을 끝내고 나면 노조의 조직력은 현저히 약화되고 현장에서 노조로서 최소의 생존을 유지하기도 급급합니다. 사실 자본은 투쟁하는 민주노조와 노동자들의 상태가 이 지점에 이르러서야 교섭하고 합의하고 현장에 발을 딛게 합니다. 자본은 이미 사업장 내에 대부분 복수노조 체제를 만들어두고 있으며, 장기 투쟁 속에서 많은 조합원들이 탈퇴한 상태에서 ‘민주노조’는 복귀하자마자 ‘소수노조’가 됩니다.
결국 관건은 “one for all, all for one” 입니다.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를 어떻게 실천하고 구체화하는가입니다.
이 구호는 산별화의 정신이자 구호일뿐 아니라 개별 투쟁과 연대에도 해당합니다. 하나의 노동자투쟁을 개별화하지 않고 ‘모든 노동’을 위한 투쟁으로 간주하는 것, 각 개별 노동자/투쟁을 위해서 모두의 투쟁을 전개하는 것. 즉 하나의 제대로 된 승리를 하기 위해서도 모두의 힘이 필요하고 조직된 노동 전체의 엄호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재 민주노조는 전투적 조합주의의 전투성은 물론이고 ‘운동성’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노조운동이 아니라 ‘조직노동’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민주노조들의 계급성, 운동성이 약화되고 ‘평조합원 민주주의’가 실종될수록 ‘정상조직’인 민주노총의 관료화 부후화를 방치하게 됩니다.
다시 관건은 민주노조의 운동성 회복과 민주노총의 혁신입니다. 민주노총이 단지 노정교섭을 위한 내셔날 센터일뿐 아니라 노동자 계급투쟁의 진두 지휘본부로서 기능할 있도록 혁신이 가능한가입니다.

 

2) 투쟁과 운동의 괴리

 

투쟁과 연대가 운동으로부터 멀어지는 현상입니다. 투쟁을 하면 할수록 운동으로 축적되지 않습니다. 다른 노동자들이 다른 사업장에서 똑같은 투쟁을 반복합니다. 투쟁과 운동이 괴리되고, 하나의 투쟁이 전체 노동운동의 힘으로 제대로 승리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투쟁의 구호가 오히려 운동의 침로를 흐리고, 투쟁의 요구조건이 애초에 그 운동의 목적을 상실하게 만들고, 그리하여 아주 소수의 투쟁 승리조차 운동적인 의미를 유지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또한 투쟁을 3년, 5년, 10년 이상을 한 노동자들이 ‘계급적 노조운동’을 위한 선진노동자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15년간 연대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개의 구호가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였습니다. “정리해고 철폐”는 “원직복직” 혹은 “일단 복직”으로 정리되었고, “비정규직 철폐”는 “정규직 전환” 투쟁이 되었습니다. 구호를 외치지만 실제의 목표와 요구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물론 성과는 있습니다. 투쟁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습니다(대부분 대공장 사내하청노동의 경우만). 비정규직 처우도 개선되었고 이들은 선배들로부터 ‘학습’받아서, 이젠 투쟁보다는 근로자파견법을 인정하면서 그 법의 불법성을 다투는 법률소송에 집중합니다.
비정규직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자본은 직접고용 촉탁직과 이주노동자들로 채우기도 합니다. 노동시장은 이제 이중화가 아니라 다중화되고 있습니다. 또 정리해고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제도적인 패키지의 일부라고 보지만, 정리해고 조항은 아예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투쟁 승리라고 할 수 있으며 설사 투쟁 승리했다고 해도, 운동은 승리했습니까? 투쟁의 구호는 어떻습니까?

불편한 이 질문들을 다시 던집니다. 이에 답하려면 현재의 노조운동의 조직노동화, 제도적 포섭, 계급정치적 대안 찾기 포기에 대해서 생각해봐야할 것입니다. 소위 가능한 목표란 이름하에 투쟁의 구호와 목표가 괴리를 빚고, 나아가 ‘허구적 구호’를 남발하면 당연히 투쟁의 승리가 운동적 의미를 가지는 데 한계가 있고, 투쟁이 전체 노동계급을 위한 투쟁이 되지 못합니다. 즉 “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는 두번째로 불가능해지는 악순환에 돌입합니다.

 

3) 투쟁과 연대의 괴리

 

사파기금은 3주년 토론회에서 “투쟁과 연대의 이중주”라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많은 이들이 참석해 성황리에 개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투쟁과 연대의 이중주에 대한 긴장을 드러낸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사파기금의 문제의식에 대해서 “돈만 많이 조성해서 노동자들에게 사회적 연대만 해주세요”라는 말을 거침없이 토로했습니다. 아, 이것이 ‘사회적 연대’일까요? 연대자들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너무 많이 하고, 하여야 할 말은 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새로운 구성이 될 수 있을까요?
노동자투쟁은 ‘당사자주의’라는 허울 속에서 노동자 연대를 ‘노동하는 이들의 수평적인 연대’로 보지 못하고, 도구적으로 바라봅니다. 연대자들은 주관적이고 개별화되고 (개인주의적이고), 지속 가능한 연대가 되기에 불안정합니다. 투쟁과 연대는 이중주이긴 한데, 여전히 병렬적 혹은 산술적 합 이상이 되지못합니다.

위의 모든 딜레마는 사파기금의 지향점 3가지를 성취하기 어려운 과제로 만듭니다.
사회적 파업과 사회적 연대의 문제의식, 사회적 연대를 기초로 새로운 우리를 구성하는 계급적 주체의 정립, 노동자투쟁을 넘어 사회적 총파업의 전망을 가진 민중적 동맹과 힘의 형성. 사파기금은 아마도 첫번째 과제에 필요한 마중물일 것입니다. 지난 15년 사파운동 15년 연대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속담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길을 잃었다는 것은 길을 아는 것이다”.

사회적 파업을 사회적 총파업으로, 사회적 연대를 사회정치적 동맹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더 많은 이들의 문제의식, “말이 씨가 되고 행동이 된다”는 실천력, 비관 속에서 낙관을 잃지 않는 “희망을 모읍시다”를 구체화하면서 이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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