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7 vs BRICS : 권력투쟁은 계급투쟁이 아니다
현재 G7과 BRICS 사이의 권력투쟁은 두 블록 내에서 진행되는 계급투쟁과 상호 작용할 것이다. 두 블록의 지도자, 이념가, 대중 매체는 주로 이러한 권력투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계급 변화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대중 의식과 행동주의를 계급투쟁에 집중하려면 권력투쟁과 계급투쟁을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
현재 G7과 BRICS 사이의 권력투쟁은 두 블록 내에서 진행되는 계급투쟁과 상호 작용할 것이다. 두 블록의 지도자, 이념가, 대중 매체는 주로 이러한 권력투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계급 변화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대중 의식과 행동주의를 계급투쟁에 집중하려면 권력투쟁과 계급투쟁을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
그렇다면 왜 글로벌리즘의 끝에는 역사적으로 대규모 지정학적 위기(19세기의 나폴레옹 전쟁, 20세기의 양차 대전)가 발생했는가? 이는 평화시의 통화 헤게모니(파운드 헤게모니, 달러 헤게모니)를 통한 착취가 더 이상 불가능해졌을 때 강제적 폭력적 수단을 통해 이를 관철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맑스의 말을 빌자면, 비극이었던 첫 번째도 겪었고 소극이었던 두 번째도 겪었는데, 무려 세 번째인 이번에는 웃을 것인가 울 것인가?
지금 ‘계급정치’를 주장하는 좌파들은 이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한다.
결국 다르지 않으니 분별이 되지 않고,
분별이 되지 않으니 차이가 없어진다.
차이가 없으니, 정립을 하지 못한다.
지금 ‘계급정치’를 주장하는 좌파들은 이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한다.
결국 다르지 않으니 분별이 되지 않고,
분별이 되지 않으니 차이가 없어진다.
차이가 없으니, 정립을 하지 못한다.
종속이론을 빌려서 말하자면, 미국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할수록,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도는 커진다. 그렇다면 노동운동이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이 ‘노동의 승리’인가. 노동계급의 국제주의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현재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주춤하고, 미국의 헤게머니가 위협을 받으면서 종속 이론은 다시 옛날의 영광을 되살릴까? 종속이론의 핵심 테제들,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불평등 교환이나, 그로 인한 중심부 노동자 계급의 상대적 지위 향상(이것이 이른바 ‘가든(garden)’의 실체다)에 대한 논의들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종속’에 대한 주장들이 다시 빛을 볼 세상이 온다면, 그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전히 우리는 더욱 강고한 제국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기 때문이다.
: 인간 살처분과 ‘약속된 땅’의 분노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가, 왜 어떻게 지배하는가이며 그 지배에서 벗어나야만이 비로소,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첫걸음을 디딜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유감스럽게도, 이 세계는 그 첫걸음을 영영, 또는 아주 낙관적으로라도 아주 오랫동안은, 떼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다.
미국의 노조는, 노동운동은 과연 이런 정치경제학적인 맥락 속에서 자신들의 행동과 전략을 결정할 수 있을까? 얼마나 이런 맥락을 고려하고 있을까? 또는 아예 그런 것들이 고려조건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