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이름: 권영숙

권영숙의 테제11

건국(建國)과 광복(光復)과 국가보안법- 대한민국 국가의 기원은 계속 질문해야한다

저들의 얼굴에 환희는 과연 무엇에 대한 기쁨이자 무엇을 향한 설레임이었을까? 그리고 그것을 송두리째 부수고, 현재의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을 만드는데 합의를 한 이들은 누구일까? 그들이 합의한 대한민국의 모습은 1948년 헌법과 1948년 국가보안법에 걸쳐있다.
그러므로 건국도 광복도 다 담아내지 못하는 해방정국의 국가건설 혹은 정부수립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전히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국가‘적 성격에 대한 질문도 여전히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1919년과 1948년의 한 사건과 시간으로 한정할 수 없는 국가이다

글로벌 리포트

격변의 Global South: 파산과 정변 사이에서

방글라데시와 케냐(그리고 이미 스리랑카)는 이제 겨우 서막을 알리는 전세계적 현상의 징조일 뿐이다. 제3세계 국가들은 연쇄 부도가 나거나, 혹은 부도를 피하기 위해 채권자들의 요구에 맞추어 더 심한 착취를 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부채 싸이클을 보면 부채를 낼 수 있을 만큼은 이 세계는 민주적이며 평화롭다가, 더 이상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폭압과 전쟁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자본주의 하에서 ‘화폐’는 오직 부채(신용)를 통해서만 창조된다. 자본이 증식되는 동안에만 자본주의의 관대함은 유지된다. 그리고 증식의 시대는 끝났다. 좋은 시절도 다 간 것이다.

글로벌 리포트

죽은 자들의 민주주의 : 미국 정치체제의 진퇴양난

system works라는 말은 미국에서 매우 흔하게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다”는 말로 번역되고 오해된다. 하지만 포드가 말한 system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 때 시스템이란 상층부에서, 즉 권력 엘리트들이 자신들끼리 권력을 주고 받으며 기득권을 수호하고 체제를 유지하는 ‘담합’ 구조를 말하는 것이다. 즉 권력 카르텔의 작동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트럼프가 다른 미국의 정치가들과 구별되는 점이다. 트럼프는 지난 50년간의 ‘초당적’(bi-partisan) 전통을 깼다.

글로벌 리포트

유럽 선거결과2 (프랑스 영국 선거) – 폭탄 돌리기: 출구(Exit) 없는 유럽의 도박

영국과 프랑스의 집권 엘리트들은 다가오는 위기의 냄새를 맡고 정권을 떠넘겼다. 또는 최소한 자신들이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는 않는 자리로 퇴각했다. 떠넘겨진 폭탄을 들어올리며 승리를 외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며 끝이 좋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끝이 나쁘면, 다 나쁘다. 노동계급정치가 자신의 정치를 제대로 구사하지 않는 한 선거는 스윙 게임이고, 유권자는 한 순간 ’주권‘의 행사자로 만족하며 체제를 견뎌야한다.

Review & Preview

노동계급은 자신의 법적 언어를 가지고 있는가? – 자본의 공격에 맞선 노동의 헌법적 비전

한국은 이른바 ’민주화‘ 이후 놀라울 만큼 ’법‘을 둘러싸고 사회가 재편되고 있다. 고소와 고발은 폭주하며 법이 만능화되고 있다. 미국 사회를 규정했던 ’소송사회‘는 소송의 폭주를 경험중인 한국 사회에 대한 규정으로 더 적절해보인다. 그리고 이는 법의 언어가 정치적인 언어가 될 뿐 아니라, 투쟁의 언어까지 잠식하게 만들고 있다.
과연 한국 노동계급은 자신의 계급적 언어, 정치적 언어를 가지고 있는가? 의문이다.

글로벌 리포트

유럽의회 선거 결과 분석

더 이상 세계화가 통하지 않는 세계, 즉 자본주의의 외형적 확대가 불가능한 세계에서는 이제 자신의 사지를 잘라내서 팔아먹는 내향적 신자유주의화, 말하자면 선진국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도의 강화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난 6월 10일 유럽 의회 선거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우경화가 아니다. ‘중앙’은 유지(center holds)되고 있지만(유럽 통합은 더 이상 아무도 도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중앙은 이미 자본의 압력 하에 굴복(center folds)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center holds, but center folds.

권영숙의 테제11

퀴어의 자긍심과 미국의 하이브리드 외교

미 국무부가 ‘공공외교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각국의 퀴어 퍼레이드를 지원하고 있다면, 한국 퀴어 퍼레이드에 대한 미국 대사관의 입장은 특별히 다를 수 있을까 의문이다. 한국 퀴어 운동이어떤 기준으로 미대사관등에게 자리를 허여했든간에, 단지 부스 비용 100만원만 받았든간에, 주한 미 대사관은 미 국무부의 ‘공공외교 프로그램’과 그 목적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고, 올해 서울 퀴어 퍼레이드 참여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상대 국가 시민들과 관계를 넓히고, 대중에 영향을 미치고 정보를 제공하여 미국의 국가 안보를 고양“하려는 목적으로 참여했을 것이다.
서울 퀴어퍼레이드 조직위원회는 핑크 워싱을 명시적으로 거부하고, 나아가 퀴어의 자긍성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놓쳤다. 이는 참으로 유감이다.

Review & Preview

’System Change’는 체제전환이 아니다!

한국에는 기존의 체제전환론과 다른 ‘체제전환’론이 크게 일어나고 있고, 우파부터 좌파 일부까지 이 개념을 공용하면서 이 개념 자체가 시대적 유행어가 되고 있다.
하지만 당혹스러운 점은 여기서 체제나 체제전환은 흔히 사회과학에서 사용하고 한국어로 주로 번역되어온 regime(체제)이 아니며, 체제전환도 regime transformation(transition)이 아니라 system change라는 점이다. 이에 따라 번역의 혼용으로 인한 개념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사회운동

‘미국의 봄’ (American Spring) : 미국 4월 대학 시위의 배경과 성격

divest movement 전략은 매우 흥미롭다. 원래는 지난 2000년대 초반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 일부 유럽 국가에서 시작된 운동 전략이다. 이 전략은 ‘민간 제재’(people’s sanction)캠페인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서구 국가들이 전쟁과 함께 구사하는 ‘제재(sanction)’ 전략을 역으로 국가 정책에 도전하는 운동세력이 채택하는 것이다… 양쪽 다 정치적 효과는 달성했다. 그리고 여기서 어디로 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미국의 봄(American Spring)’은 과연 올 것인가.

권영숙의 테제11

계급적 단결과 사회적 연대

내 조건을 내 조건만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비정규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비정규직 철폐로 호도하거나 핑계대지 않는 것, 그 주장으로 머물지 않고 그 주장을 실현한다는 뻔한 정규직이 되지 않는 것, 내 조건을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 노동자들의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함께 보조를 맞추고 어깨를 걸고 함께 투쟁에 나서는 것, 무임 승차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나아가 이를 한국의 모든 비정규 노동의 현실 속에서 바라보고 비정규 노동운동의 단결을 지향하는 것, 비정규 노동 철폐를 꿈이 아니라 희망만이 아니라 실천할 목표로 삼는 것, 그리고 한국의 정규직 노조 운동에 대해서 현재의 상황을 각성하고 비정규 노동운동과 계급적 단결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

글로벌 사회운동

낫과 망치 – 동요하는 서구

유럽에서 ‘녹색’이나 ‘기후’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모든 일들은 좋은 말로 하면 ‘토지개혁’, 역사상 전례에 비춰보면 21세기판 ‘엔클로져’라고 할 수 있다. 옛날에는 양이 사람을 잡아먹었지만, 지금은 ‘녹색(green)’이 사람을 잡아 먹는다…
세계화의 후퇴는 해외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면 국내에서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 격화되는 양상으로 표출된다. 코로나로 인해 억제되었던 노동의 저항은 2023년 인플레이션과 더불어 재개되었다. 만일 역사가 가르키는 바가 있다면, 저 그래프는 다시 위를 향해 치솟을 것이다.

이슈 리포트

2024년 제 22대 총선 분석 – 선거와 계급: 누구의 승리인가?

이번 22대 국회의원 총선거 역시 숨은 카드는 ‘부동산’이었다. 이를 rentier class politics (토지자산계급정치) 라고 칭하기로 한다. 윤석열 정권이 내놓은 경제정책의 정치적 희생타는 바로 부동산정책에 의해 영향받는 물가와 임대료의 교차 지점에 놓인 자영업자들이었고, 그들이 짊어질 경제적 운명이었다. 그 결과는 곧이어 4.10 총선으로 드러났다. 이것이 선거의 정치경제학이다…

이번 총선은 제도정치 내 세력 구도를 바꾸지 못했으며, 사법화된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 사이의 대립 속에서 ‘합의’를 보지 못한다면 이 체제를 안정적으로 지속하기 힘들 것이다. ‘개헌론’, 즉 ‘87년 체제의 폐기’ 가능성은 여기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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