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이름: 권영숙

이슈 리포트

언론은 어떻게 진실과 멀어지는가? – 가짜 뉴스, 언론, Disinformation (Part3)

흔히 생각하는 가짜뉴스 fake news의 정의, 즉 fact(사실)에 대한 오류(또는 의도적 왜곡)는 실은 매우 기초적인, 굳이 새삼스럽게 문제가 될 수도 없는 사안이다. 언론은 필연적으로 오보를 낼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이 오보들은 스스로 정정 가능하며, 자체적으로 검증하는 절차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진실’ (‘truth)을 왜곡하는 경우는 좀처럼 발견하거나, 인식하거나 혹은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가짜뉴스의 진짜 문제는 fact가 아니라, fact(사실)를 말하면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언론들은 자신들이 fact를 전달한다고 주장하면서 진실을 왜곡한다. 그 결과, 독자들은 언론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다. 신뢰가 없는 언론이 편집권을 독립하든 자본에 종속되든 독자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언론의 객관주의는 스스로 언론인들의 손으로 파괴되었다.
언론 스스로가 실은 자신들이 이미 disinformation을 재생산하는 인식체제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객관성의 유일한 담보자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실은 너무 뻔하게, 또는 천박하게 사태를 왜곡했기 때문에 이같은 도전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도 당연하다. 그리고 언론의 객관주의라는 외관이 무너지자, 언론의 중립성이라는 환상도 같이 사라져버렸다..

글로벌 리포트

지나간 미래, 오지 않을 과거, 제국의 망령: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과 전세계 질서

해리스가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대중에게 ‘차악’은 트럼프였으며, ‘최악’이 해리스였던 것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길게는 지난 50여년간 미국을 이끌어왔던 노선, 즉 세계화에 대한 거부였으며 그 세계화의 최종적인 이념적 버전인 민주주의 가치 동맹에 대한 기각이었으며, 가치 동맹의 절대 수호에 대한 기각이었으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기각이고 동시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기각이었다. … 대중은 현재가 지속되는 미래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과거의 일원론적(unilateral) 미국 제국과는 다른, 지역 맹주들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세계 전략을 구축하고 그 중의 약한 고리는 매우 강하게 압박하려 할 것이다. 거기가 우크라이나가 될지, 이란이 될지, 혹은 대만(또는 한반도)가 될지는 각 지역의 세력들의 대응 여부에 달렸다. 그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위하여 전쟁을 원한다면, 트럼프는 ‘평화의 사도’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전쟁에 동참할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화는 기각하더라도 세계화의 결과로서 축적된 미국의 힘을 유지하는 것만이 미국 내에서도 자신들이 세력을 확대하고 계급투쟁을 막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슈 리포트

사회지표로 본 한국의 자화상

지난 10년간의 한국 사회의 지표들은 언어상으로 시끄러웠던 온갖 사회적 정치적 동요들과는 대조적일 정도로 다른 모습들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매우 안정적이다. 수명은 증가하고 있고, 범죄도 감소하고 있다. 개인들 사이의 분쟁도 줄고 있다…그리고 고여있다. 사회 이동은 줄고 있으며, 계층 이동의 ‘전망’도 부정적이다. 움직이지 않으며, 움직일 수도 없다…마지막으로 소멸해 가고 있다. 점점 적은 수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죽음의 수는 줄어들지 않는다…
범죄와 법의 관점에서는 지난 15년의 한국 사회 변화는 범죄적 측면에서는 매우 안정화되어 가고 있는 사회, 즉 안전사회이지만, 동시에 이 사회 내적으로는 폭발압력이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거나 혹은 오히려 누적되어가고 있는 내파(內破) 상태라고 규정할 수 있다. 또한 이같은 추세가 고령화나 인구감소와 같은 인구적 요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권영숙의 테제11

한국의 도구적 민족주의와 전지구적 동맹정치

북한 체제와 정권에 대한 평가와 상관없이 지금 한국과 한국인들의 태도는 자가당착이다. 도구주의적인 민족주의다. 자신은 필요하다는 이유로 한미동맹의 재공고화는 물론, 한일군사협력도 강화하고, 심지어 NATO 주최 회의까지 들어가는 등 모든 동맹을 구축하며 자신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고 하면서, 그리고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한국이 무슨 자격으로 북한의 파병이나 친러 동맹을 자기네 안마당 문제처럼 이렇게 비판할 수 있을까라는 내재적인 비판은커녕, 어떤 의문을 제기하거나 논쟁이 시작되지도 않는다…
문제는 과연 한반도는 우크라이나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가이다. 북한이 러시아 요청으로 우크라이나에 파병하였다는 ‘설’이 나오자마자,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놓고 공격무기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엇인가 이상하지 않은가. 미국이 유럽과 대서양 동맹을 핵심으로 전지구적 정치군사전략하에서 자신의 국익을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 서구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려고 하는지 한국 사회는 얼마나 의문을 던지고 있는가? 그것이 남한 민중의 관점에서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우리는 얼마나 충분히 고민하고 있을까?

글로벌 리포트

가자 봉기 1년, 광기의 전쟁과 전쟁의 이성

가자 봉기 1년후, 그리고 이스라엘의 절멸을 향한 대학살극이 벌어진 1년후, 지금 여기서 차라리 질문되어야 할 것은, 왜 지난 2차 대전 이후 최소한 정치적으로는 공식적으로 ‘인권’과 ‘국제협력’, ‘전쟁방지’를 외치던 미국을 축으로 한 글로벌체제가 이제는 노골적으로 대량학살을 찬양하며 심지어는 핵전쟁의 위협까지도 ‘게임’의 한 부분으로 농단하게 되었는가, 왜 인류의 양심과 ‘천부인권’은 학살과 전쟁과 심지어는 ‘비인간화’를 막지 못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봉기를 통해 서구는 지난 2차 대전 이후 수립된 글로벌체제, 그리고 그 체제의 보편화된 가치들, 소위 ‘글로벌 시민사회’의 규범과 상식을 폐기하거나 혹은 일방적으로 수정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첫번째 시험대에 오른 종목들이 인권과 전쟁에 대한 국제 규약들이다. 따라서 과거의 인권적 성과들에 기초한 호소와 비난, 항의는 이제 더 이상 힘을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같은 ‘인간적 가치’를 만들어낸 토대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미친 전쟁의 광기, 그 수많은 민간인들의 죽음, 인간적 비극, 인권의 무력함과 같은 광기의 뒤안에는 냉정한 이성적 계산이 자리잡고 있다. 다만 그들은 서로 가진 무기가 다르며 힘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지겹게도 많이 죽이고, 아주 오래 갈 것이며, 인간적인 호소들은 위안이 되지 못할 것이다.

글로벌 사회운동

미국 노동조합의 얄팍한 정치, 공허한 미래-미국 노동자정치세력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대선

보잉의 파업 상황을 UAW의 관점에서 진단하면 자본가들의 ‘노동착취’이며, Teamster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세계화’와 ‘금융화’의 폐해가 된다. UAW에게는 이럴 때 노조편에 서서 파업 피켓라인에 동참해주는 대통령이 ‘진보’이며 ‘좌파’이고, Teamster에게는 애초에 이같은 상황을 만든 것이 현재의 정치권 전부이기 때문에 이들을 일소하고 세계화와 은행들을 척결해야 한다는 식이다…
결국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보여지는 미국 노동조합들의 모습은 ‘이익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서로 다른 어떤 레토릭을 쓰던지간에, 그들은 결국 이익집단정치를 구사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본(가)’에 맞서 싸울 의지도 이론도 없으며 ‘자본주의’를 폐기할 의사도 없다. 그리고 이들은 이같은 자신의 노골적인 비계급적 의식을 ‘좌파’라고 부르거나 혹은 ‘인민주의’라고 짐짓 부른다.

Review & Preview

자본주의적 파국주의(capitalist catastrophism)와 생태 아파르트헤이트

자본의 위기는 이제 ‘자본주의의 위기’가 아니라, 보편적 위기, 더 나아가 인류의 위기 혹은 전지구적 위기로 자신을 내세운다.. 물론, 현재의 ‘기후 위기’ 또는 ‘생태 위기’가 근거가 없다거나, 또는 자본가 계급이 주도하는 프로젝트에 불과할 뿐이며, 따라서 노동자 계급이 나설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본의 위기 속에서 자본은 어떻게 자신을 재구성하고 있으며, 거기에 ‘대중’은 어떻게 동원되는가 혹은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끌어지는가를 먼저 명확히 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자본주의 위기의 본성과 그 위기의 역사들, 그리고 그에 대응한 인간들의 행동과 실패들을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적 파국주의는 자본주의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자본주의적 파국주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자본과 인간 및 비인간적 본성의 신진대사 관계를 극적이고 비대칭적으로 파국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생태 아파르트헤이트의 지지를 받아 당분간은 “작동”할 수 있는 재구성이다.”

이슈 리포트

전지구적 공안정국: 공포와 검열, 공안의 가치동맹

언론의 자유, 더 나아가 표현의 자유, 그리고 사상의 자유는 단지 영국에서만 숨통이 끊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전세계적이다. 미국, 뉴질랜드, 독일, 그리고 한국등. 그 사례는 도처에서 넘쳐나고, 과거와는 유가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국가간에 서로 익히고 배우며, 공안기술의 전파가 이뤄지고 있다.

검열은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검열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환기하는 특정한 사회심리적 상태를 목표로 한다. 그것이 공포이며, 겁박이다. 그리고 이같은 공포와 겁박을 지속적으로 생산해내는 체제를 ‘공안’(정국)이라고 부른다.

권영숙의 테제11

건국(建國)과 광복(光復)과 국가보안법- 대한민국 국가의 기원은 계속 질문해야한다

저들의 얼굴에 환희는 과연 무엇에 대한 기쁨이자 무엇을 향한 설레임이었을까? 그리고 그것을 송두리째 부수고, 현재의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을 만드는데 합의를 한 이들은 누구일까? 그들이 합의한 대한민국의 모습은 1948년 헌법과 1948년 국가보안법에 걸쳐있다.
그러므로 건국도 광복도 다 담아내지 못하는 해방정국의 국가건설 혹은 정부수립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전히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국가‘적 성격에 대한 질문도 여전히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1919년과 1948년의 한 사건과 시간으로 한정할 수 없는 국가이다

글로벌 리포트

격변의 Global South: 파산과 정변 사이에서

방글라데시와 케냐(그리고 이미 스리랑카)는 이제 겨우 서막을 알리는 전세계적 현상의 징조일 뿐이다. 제3세계 국가들은 연쇄 부도가 나거나, 혹은 부도를 피하기 위해 채권자들의 요구에 맞추어 더 심한 착취를 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부채 싸이클을 보면 부채를 낼 수 있을 만큼은 이 세계는 민주적이며 평화롭다가, 더 이상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폭압과 전쟁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자본주의 하에서 ‘화폐’는 오직 부채(신용)를 통해서만 창조된다. 자본이 증식되는 동안에만 자본주의의 관대함은 유지된다. 그리고 증식의 시대는 끝났다. 좋은 시절도 다 간 것이다.

글로벌 리포트

죽은 자들의 민주주의 : 미국 정치체제의 진퇴양난

system works라는 말은 미국에서 매우 흔하게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다”는 말로 번역되고 오해된다. 하지만 포드가 말한 system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 때 시스템이란 상층부에서, 즉 권력 엘리트들이 자신들끼리 권력을 주고 받으며 기득권을 수호하고 체제를 유지하는 ‘담합’ 구조를 말하는 것이다. 즉 권력 카르텔의 작동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트럼프가 다른 미국의 정치가들과 구별되는 점이다. 트럼프는 지난 50년간의 ‘초당적’(bi-partisan) 전통을 깼다.

글로벌 리포트

유럽 선거결과2 (프랑스 영국 선거) – 폭탄 돌리기: 출구(Exit) 없는 유럽의 도박

영국과 프랑스의 집권 엘리트들은 다가오는 위기의 냄새를 맡고 정권을 떠넘겼다. 또는 최소한 자신들이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는 않는 자리로 퇴각했다. 떠넘겨진 폭탄을 들어올리며 승리를 외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며 끝이 좋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끝이 나쁘면, 다 나쁘다. 노동계급정치가 자신의 정치를 제대로 구사하지 않는 한 선거는 스윙 게임이고, 유권자는 한 순간 ’주권‘의 행사자로 만족하며 체제를 견뎌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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