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이름: 권영숙

글로벌 리포트

제국의 숙정, 혹은 정화 : 미국의 soft power의 자진 해소, 그리고 전지구 시민사회의 허상

머스크가 이끄는 행정개혁위원회(DOGE)가 단행한 것은 단지 ‘행정 효율화’가 아니다. 그것은 장기적으로는 제국의 재구성이다. 그것은 과연 제국의 숙정일까 정화일까? 엠파이어의 숙정은 뱀파이어이길 멈추는 첫걸음일까?.
그동안 미국은 ‘미국적 가치’를 외부에 이식하는 대외전략을 구사해왔다. 그것은 LGBTQ나 DEI와 같은 도덕적, 사회적 가치에서부터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적 제도, 이를 위한 ‘컬러 혁명’ 및 ‘시민사회’의 형성 등의 활동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중 가장 중요한 방법이 soft power를 통한 체제 전환이었다. USAID와 NED는 이같은 활동의 중심부에 있었다… 이른바 민주당이나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했던 ‘가치들’(LGBTQ, 인권, 페미니즘, 기후 및 환경, 민주주의 등)을 전파하고 공유하던 각국의 정부기구 및 시민단체들은 트럼프 정권의 이번 조치로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선도적인 자본가들은 무너져 가는 제국인 미국을 재건하기 위해 바닥부터 다시 쌓아올리기로 작정했으며 세계는 이제 그 첫걸음을 보고 있는 중이다….분명한 것은 앞으로 많은 것들이 여전히 같은 이름으로 불리더라도 전혀 다른 의미와 외연들을 갖게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시민사회, 제국, NGO, 민주주의, 체제전환 등.

이슈 리포트

2025년 국제 정세 전망 : 누구나 처음엔 창대하리라

2025년의 국제 질서에서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치’가 돈이 되지 않는다면, 가치가 이들의 행동의 기준이 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바이든 정권 하에서 취해졌던 가치동맹의 기치는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트럼프 정권의 대유럽 정책의 핵심은 유럽 내부에서 기존 동맹의 기초가 되는 정치세력들을 파괴하고 자신들과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동맹들을 구축하는데 있다…
20세기 초반의 국가독점자본주의와는 다른 형태의 독점자본주의가 등장한다. 여기서는 ‘국가’가 중심이 아니라, ‘여러 국가를 동시에 넘나들며 이들 국가를 지시하는 자본가’가 중심이다. 따라서 민족주의인 듯한 외양은 띄지만, 실제로는 민족주의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민족주의적 국가를 빌미로 국가를 동원하는 자본가가 지배하는 세계 체제가 형성된다.

이슈 리포트

경제, 노동 지표로 본 한국의 자화상: 한계에 봉착한 한국형 발전 모델

남한의 노동소득분배율은 절대 수준에 있어서도 세계 최하위권일 뿐만 아니라, 지난 90년대 이후의 하락폭에 있어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 직면하여 한국의 권력계급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중립적 위치를 표방하는 것은 이미 미국이나 일본의 이해관계에 밀접히 뿌리박고 있는 기득권 세력으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1) 기존 한국형 모델, 즉 수출주도 정책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거나 (2) 기존 경제 체제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미국 일본의 전략적 하청기지로 전화하는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계엄(내란) 사태는 궁극적으로는 한국이 갖는 지정학적 위치의 특수성과 국제노동분업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이제는 오히려 위험요인이 되었기 때문에 생겨난 정치적 사변이라고 할 수 있다…
비정규직 증감 추이를 보면, 20대 여성과 60대 여성의 증가폭이 가장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놀랍게도 이들이 계엄 사태 이후의 대중 시위 과정에서 각각 남태령(20대 여성)과 태극기(60대 여성)로 대표되는 상반된 시위대의 주력이기도 하다. 20대 여성들은 정치적 기회 공간이 열리자, 자신들의 사회적 계급적 지위에서 겪어야 하는 억압에 대해 ‘시민’ 혹은 ‘민주주의자’, ‘주권자’의 이름하에 싸웠다. 그러나 실은 그들은 ‘노동자’로서 싸운 것이기도 하다.

글로벌 리포트

자본가들과 권력자들 : 미국 트럼프 정권의 성격과 새로운 자본가집단의 출현

미국 대선에서 해리스와 트럼프 후보의 어마어마한 선거 자금 규모는 이번 선거야말로 미국 자본가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각기의 후보를 지지한 ‘역사적인 자본가들 사이의 투쟁이었음을 말해준다… 과거 정치에 진출한 자본가들은 상층부 협상에 자리를 차지했다면, 지금 출현한 자본가들은 글로벌 금융에 이해관계를 가지면서도 동시에 정치인에 버금가는 ‘대중적 스타’로 자신을 내세운다. 이들은 스스로 어젠다를 만들 뿐만 아니라, 이를 정치적으로 수행하고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과 수단(SNS)까지 가지고 있다. 이것이 과거 자본가와 지금의 트럼프지지 자본가들 사이의 가장 큰 차이다…
윤석열대통령에 대한 민주당의 1차 탄핵소추안과 2차 소추안의 차이를 주목해야한다… 한국의 시민들은 12월 7일 1차 탄핵 투표 때나, 12월 14일 2차 투표 때나 같은 응원봉을 들고 여의도 국회 앞으로 몰려들었지만, 실은 그 두 표결의 의미는 지정학적으로 전혀 달랐으며 정치 엘리트 집단 내에서 판단이 달라졌다는 것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 중국은 당근을 던졌고, 미국의 일부 선도적인 자본가들은 이에 호응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1차 세계화와 같이 미국이 손해보는 짓은 안하겠다는 의지는 분명히 했다. 이것이 G2의 성립 선언이며, ‘포풀리스트’ 트럼프의 계급적 본질이기도 하다; 더 많은 이윤의 추구와 이를 위해 세계를 농단하고 분할하는 것. 그리고 이 한 편의 허황한 무대 주인공의 교체를 세상은 흔히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이슈 리포트

언론은 어떻게 진실과 멀어지는가? – 가짜 뉴스, 언론, Disinformation (Part3)

흔히 생각하는 가짜뉴스 fake news의 정의, 즉 fact(사실)에 대한 오류(또는 의도적 왜곡)는 실은 매우 기초적인, 굳이 새삼스럽게 문제가 될 수도 없는 사안이다. 언론은 필연적으로 오보를 낼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이 오보들은 스스로 정정 가능하며, 자체적으로 검증하는 절차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진실’ (‘truth)을 왜곡하는 경우는 좀처럼 발견하거나, 인식하거나 혹은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가짜뉴스의 진짜 문제는 fact가 아니라, fact(사실)를 말하면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언론들은 자신들이 fact를 전달한다고 주장하면서 진실을 왜곡한다. 그 결과, 독자들은 언론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다. 신뢰가 없는 언론이 편집권을 독립하든 자본에 종속되든 독자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언론의 객관주의는 스스로 언론인들의 손으로 파괴되었다.
언론 스스로가 실은 자신들이 이미 disinformation을 재생산하는 인식체제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객관성의 유일한 담보자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실은 너무 뻔하게, 또는 천박하게 사태를 왜곡했기 때문에 이같은 도전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도 당연하다. 그리고 언론의 객관주의라는 외관이 무너지자, 언론의 중립성이라는 환상도 같이 사라져버렸다..

글로벌 리포트

지나간 미래, 오지 않을 과거, 제국의 망령: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과 전세계 질서

해리스가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대중에게 ‘차악’은 트럼프였으며, ‘최악’이 해리스였던 것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길게는 지난 50여년간 미국을 이끌어왔던 노선, 즉 세계화에 대한 거부였으며 그 세계화의 최종적인 이념적 버전인 민주주의 가치 동맹에 대한 기각이었으며, 가치 동맹의 절대 수호에 대한 기각이었으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기각이고 동시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기각이었다. … 대중은 현재가 지속되는 미래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과거의 일원론적(unilateral) 미국 제국과는 다른, 지역 맹주들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세계 전략을 구축하고 그 중의 약한 고리는 매우 강하게 압박하려 할 것이다. 거기가 우크라이나가 될지, 이란이 될지, 혹은 대만(또는 한반도)가 될지는 각 지역의 세력들의 대응 여부에 달렸다. 그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위하여 전쟁을 원한다면, 트럼프는 ‘평화의 사도’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전쟁에 동참할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화는 기각하더라도 세계화의 결과로서 축적된 미국의 힘을 유지하는 것만이 미국 내에서도 자신들이 세력을 확대하고 계급투쟁을 막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슈 리포트

사회지표로 본 한국의 자화상

지난 10년간의 한국 사회의 지표들은 언어상으로 시끄러웠던 온갖 사회적 정치적 동요들과는 대조적일 정도로 다른 모습들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매우 안정적이다. 수명은 증가하고 있고, 범죄도 감소하고 있다. 개인들 사이의 분쟁도 줄고 있다…그리고 고여있다. 사회 이동은 줄고 있으며, 계층 이동의 ‘전망’도 부정적이다. 움직이지 않으며, 움직일 수도 없다…마지막으로 소멸해 가고 있다. 점점 적은 수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죽음의 수는 줄어들지 않는다…
범죄와 법의 관점에서는 지난 15년의 한국 사회 변화는 범죄적 측면에서는 매우 안정화되어 가고 있는 사회, 즉 안전사회이지만, 동시에 이 사회 내적으로는 폭발압력이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거나 혹은 오히려 누적되어가고 있는 내파(內破) 상태라고 규정할 수 있다. 또한 이같은 추세가 고령화나 인구감소와 같은 인구적 요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권영숙의 테제11

한국의 도구적 민족주의와 전지구적 동맹정치

북한 체제와 정권에 대한 평가와 상관없이 지금 한국과 한국인들의 태도는 자가당착이다. 도구주의적인 민족주의다. 자신은 필요하다는 이유로 한미동맹의 재공고화는 물론, 한일군사협력도 강화하고, 심지어 NATO 주최 회의까지 들어가는 등 모든 동맹을 구축하며 자신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고 하면서, 그리고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한국이 무슨 자격으로 북한의 파병이나 친러 동맹을 자기네 안마당 문제처럼 이렇게 비판할 수 있을까라는 내재적인 비판은커녕, 어떤 의문을 제기하거나 논쟁이 시작되지도 않는다…
문제는 과연 한반도는 우크라이나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가이다. 북한이 러시아 요청으로 우크라이나에 파병하였다는 ‘설’이 나오자마자,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놓고 공격무기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엇인가 이상하지 않은가. 미국이 유럽과 대서양 동맹을 핵심으로 전지구적 정치군사전략하에서 자신의 국익을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 서구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려고 하는지 한국 사회는 얼마나 의문을 던지고 있는가? 그것이 남한 민중의 관점에서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우리는 얼마나 충분히 고민하고 있을까?

글로벌 리포트

가자 봉기 1년, 광기의 전쟁과 전쟁의 이성

가자 봉기 1년후, 그리고 이스라엘의 절멸을 향한 대학살극이 벌어진 1년후, 지금 여기서 차라리 질문되어야 할 것은, 왜 지난 2차 대전 이후 최소한 정치적으로는 공식적으로 ‘인권’과 ‘국제협력’, ‘전쟁방지’를 외치던 미국을 축으로 한 글로벌체제가 이제는 노골적으로 대량학살을 찬양하며 심지어는 핵전쟁의 위협까지도 ‘게임’의 한 부분으로 농단하게 되었는가, 왜 인류의 양심과 ‘천부인권’은 학살과 전쟁과 심지어는 ‘비인간화’를 막지 못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봉기를 통해 서구는 지난 2차 대전 이후 수립된 글로벌체제, 그리고 그 체제의 보편화된 가치들, 소위 ‘글로벌 시민사회’의 규범과 상식을 폐기하거나 혹은 일방적으로 수정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첫번째 시험대에 오른 종목들이 인권과 전쟁에 대한 국제 규약들이다. 따라서 과거의 인권적 성과들에 기초한 호소와 비난, 항의는 이제 더 이상 힘을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같은 ‘인간적 가치’를 만들어낸 토대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미친 전쟁의 광기, 그 수많은 민간인들의 죽음, 인간적 비극, 인권의 무력함과 같은 광기의 뒤안에는 냉정한 이성적 계산이 자리잡고 있다. 다만 그들은 서로 가진 무기가 다르며 힘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지겹게도 많이 죽이고, 아주 오래 갈 것이며, 인간적인 호소들은 위안이 되지 못할 것이다.

글로벌 사회운동

미국 노동조합의 얄팍한 정치, 공허한 미래-미국 노동자정치세력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대선

보잉의 파업 상황을 UAW의 관점에서 진단하면 자본가들의 ‘노동착취’이며, Teamster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세계화’와 ‘금융화’의 폐해가 된다. UAW에게는 이럴 때 노조편에 서서 파업 피켓라인에 동참해주는 대통령이 ‘진보’이며 ‘좌파’이고, Teamster에게는 애초에 이같은 상황을 만든 것이 현재의 정치권 전부이기 때문에 이들을 일소하고 세계화와 은행들을 척결해야 한다는 식이다…
결국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보여지는 미국 노동조합들의 모습은 ‘이익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서로 다른 어떤 레토릭을 쓰던지간에, 그들은 결국 이익집단정치를 구사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본(가)’에 맞서 싸울 의지도 이론도 없으며 ‘자본주의’를 폐기할 의사도 없다. 그리고 이들은 이같은 자신의 노골적인 비계급적 의식을 ‘좌파’라고 부르거나 혹은 ‘인민주의’라고 짐짓 부른다.

Review & Preview

자본주의적 파국주의(capitalist catastrophism)와 생태 아파르트헤이트

자본의 위기는 이제 ‘자본주의의 위기’가 아니라, 보편적 위기, 더 나아가 인류의 위기 혹은 전지구적 위기로 자신을 내세운다.. 물론, 현재의 ‘기후 위기’ 또는 ‘생태 위기’가 근거가 없다거나, 또는 자본가 계급이 주도하는 프로젝트에 불과할 뿐이며, 따라서 노동자 계급이 나설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본의 위기 속에서 자본은 어떻게 자신을 재구성하고 있으며, 거기에 ‘대중’은 어떻게 동원되는가 혹은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끌어지는가를 먼저 명확히 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자본주의 위기의 본성과 그 위기의 역사들, 그리고 그에 대응한 인간들의 행동과 실패들을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적 파국주의는 자본주의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자본주의적 파국주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자본과 인간 및 비인간적 본성의 신진대사 관계를 극적이고 비대칭적으로 파국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생태 아파르트헤이트의 지지를 받아 당분간은 “작동”할 수 있는 재구성이다.”

이슈 리포트

전지구적 공안정국: 공포와 검열, 공안의 가치동맹

언론의 자유, 더 나아가 표현의 자유, 그리고 사상의 자유는 단지 영국에서만 숨통이 끊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전세계적이다. 미국, 뉴질랜드, 독일, 그리고 한국등. 그 사례는 도처에서 넘쳐나고, 과거와는 유가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국가간에 서로 익히고 배우며, 공안기술의 전파가 이뤄지고 있다.

검열은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검열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환기하는 특정한 사회심리적 상태를 목표로 한다. 그것이 공포이며, 겁박이다. 그리고 이같은 공포와 겁박을 지속적으로 생산해내는 체제를 ‘공안’(정국)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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