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투쟁은 계급투쟁이 아니다
: G7 Vs. BRICS
2024년 1월 18일 / Review & Preview
번역 및 편집자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G7, BRICS, 계급투쟁, 권력투쟁, 사회주의
이 글은 미국의 대안언론 사이트인 <Newsclick> 2023년 10월 17일자에 실린 Richard D. Wolff의 칼럼인 “G7 vs BRICS: Power Struggles are not Class Struggles”을 완역한 것이다. 학술적인 논문이 아니라, 평이하게 대중용으로 쓰여진 짧은 칼럼이다.
서구(collective West)와 신흥국들(BRICS를 포함해, 유라시아공동체, 상해협력기구 등 다양한 개발도상국 국제협의체들) 사이의 대립 관계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글은 지정학적인 관계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이라기보다는 개략적으로 분석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같은 시각에서 본격적인 연구를 해낸 성과는 아직까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앞으로 포괄적이되 분석적인 이론적 성과를 더 찾아보거나, 혹은 만들어야할 일이다.
우리는 지정학적인 대립을 ‘열강들 사이의 투쟁’, 혹은 ‘제국주의와 식민지 사이의 투쟁’이라고 단순하게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 투쟁이 비록 그 결과로서 글로벌 지형 변화를 가져오기는 하지만, 개별 국가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에 있어서도 어떤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해야 한다. 더불어,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민족주의적 동원 형태’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바라보고 대응해야만 한다.
Richard D. Wolff는 미국의 엠허스트대학 경제학과 명예교수이자 현재는 뉴욕의 뉴스쿨 객원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미국에서 몇 안되는 정치경제학 전공자이며 구좌파(old left)의 전통을 아직도 지니고 있는 연구자다.
여하튼 이 세대도 이제 거의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더 이상은 ‘내가 다 해봐서 아는데’라고 말해줄 학자도, 언론인들도 거의 남지 않았다. 심지어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 파이프라인인 North Stream 1, 2를 폭파한 것이 미국이라고 지난해 가을 처음 보도한 전설적인 저널리스트 세이무어 허쉬는 올해 83살이다(그는 1972년 미군이 베트남 라이마이에서 수백명의 양민을 학살한 것을 특종보도해서 풀리쳐상을 받았다).
요양원에서 수의나 고르고 있을 나이에 현역으로 뛰도록 만드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님에 분명하다.
편집자 글: 권영숙
G7 대 브릭스: 권력투쟁은 계급투쟁이 아니다
G7 vs. BRICS: Power Struggles are not Class Struggles
Richard D. Wolff
원문 출처:
https://www.newsclick.in/g7-vs-brics-power-struggles-are-not-class-struggles
G7 vs. BRICS: Power Struggles are not Class Struggles
“미국에서는 자본주의를 제외한 모든 것을 토론한다. 만일 한 사회 내에 비판의 영역을 초월한 어떤 제도가 존재한다면, 당신은 그 제도의 취약점과 나쁜 경향에 대해 프리패스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 리차드 D. 울프, 2014년 인터뷰 중에서
출처: democracyatwork.info
계급투쟁(Class Struggles)은 권력투쟁(Power Struggles)과 상호작용하지만 권력투쟁과는 다르다. 도시국가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고대 갈등은 권력투쟁이었고, 각 국가 내에서는 노예와 노예상인이 계급투쟁에 참여했다. 유럽 봉건제 말기의 절대 군주제였던 영국과 프랑스는 상호간에 권력투쟁에 전력을 투입했다. 동시에, 영주와 농노 사이의 계급투쟁은 두 ‘강대국’ 권력을 내부적으로 동요시켰다.
이제 노예제도와 봉건제가 대부분 끝나고 자본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이후, G7과 BRICS, 그리고 그 회원국들과 다른 국가들 사이에 거대한 권력투쟁이 존재한다. 동시에 모든 국가에서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에 계급투쟁이 존재한다. 권력과 계급투쟁은 서로를 조건화하고 형성한다. 둘 다 역사의 핵심 양상이었으며 여전히 그렇게 남아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혼동하고 융합시키는 이념적 습관도 존재한다.
독일의 군주 카이저 빌헬름 2세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나는 더 이상 (정치적)정당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독일인만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이용해 계급으로 분열된 독일을 통합했다. 그 이전까지는 빌헬름 2세는 식민지, 세계 무역, 외국인 투자를 둘러싼 세계 강대국 간의 점점 더 심각한 투쟁으로 인해 동요되었으며 또한 전쟁 전 수십 년 동안 마르크스로부터 영감을 받은 독일 사회당의 부상에 놀랐었다.
독일의 자본주의 고용주 계급도 마찬가지로 충격을 받고 동요했었다. 노동과 자본이 점점 더 심각하게 분열되는 국가에서 독일 민족주의는 사회주의를 좌절시키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고용주 계급의 전략이었다. 그 전략의 핵심은 사람들이 계급투쟁이 아닌 국가적, 궁극적으로는 군사적 투쟁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자기를 식별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독일의 전략은 실패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군주제가 끝났으며, 사회당은 전후 독일에서 정권을 장악했다. 사회주의는 전쟁을 통해 독일에서 그 어느 때보다 훨씬 강력하게 등장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여한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모두는 전쟁 노력을 동원하며 계급의식을 훼손하고 대체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이용했다.
전쟁의 승자들에게는 민족주의가 승리를 위한 목적을 달성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주의를 패배시키거나 추방하지는 못했다. 대신 사회주의는 최초의 정부(러시아)를 장악하고 각각 대중의 관심과 참여를 끌었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로 분열되었다. 두 날개는 192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자본주의가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에게 사상 최악의 붕괴를 초래한 1930년대에는 더욱 확산되었다.
G7과 브릭스BRICS 국기들
100년이 지난 지금, 국가간 권력투쟁은 글로벌 자본주의 전반에 걸쳐 더욱 심화되고 있다. 냉전시대 패권을 쥐고 있던 미국의 힘은 이제 쇠퇴하고 있다. 식민지의 상실과 두 번의 파괴적인 세계 대전으로 인한 유럽의 쇠퇴는 계속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 모두 중국의 전례없는 놀라운 경제성장 속도와 이에 따른 글로벌 패권 지위의 상승에 직면하고 있다. 이미 중국의 동맹 네트워크, 특히 BRICS는 미국과 그 동맹국, 특히 G7과 대결하고 있다. 중국과 BRICS의 부상은 미국 및 G7과의 권력 투쟁을 더욱 가중시킨다. 이러한 부상은 또한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모든 국가와 국제 조직 내에서 권력 관계를 재편성하고 있는 중이다.
마찬가지로 계급투쟁 역시 모든 사회에서 지속되어 왔으며, 그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초점으로 진화해 왔다. 그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자들이 이제 사유재산과 자본주의로서의 자유시장, 그리고 사회주의로서의 국가 소유와 국가계획 사이의 투쟁에 점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20세기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권력 경험에 초점을 옮겨 반응했다.
국가권력과 계획은 사회주의의 목표로 일축되지는 않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점점 불충분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사회주의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포스트자본주의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이상, 또는 다른 것이 필요했다. 사회주의자들은 작업장 변화에 다시 우선 순위를 두었다. 사회주의는 공장, 사무실, 상점 내부의 자본주의적 계층 구조와 그 사회적 효과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그 내부에서 생산을 민주적으로 재조직하자는 제안을 점점 더 강조해왔다. 기업의 각 노동자는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생산할지, 제품을 어떻게 처리할지(또는 제품이 판매되는 경우 순수익)를 결정하는 데 동일한 투표권을 갖는다. 모든 작업장(가정과 기업)의 민주화는 사회주의가 의미하는 것의 중심 추진력이 되었다.
이런 종류의 사회주의는 19세기와 20세기의 거시적이고 국가 중심적인 사회주의에서 자라났지만 동시에 그것에 도전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영 기업이 계속해서 고용주-피고용자 이분법을 중심으로 생산을 조직하는 경우, 민간 소유 기업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자들의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새롭게 부상하는 사회주의적 초점은 국영기업과 민간기업의 균형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 G7과 BRICS 모두에 있어서 도전이 되었다. 더욱이 현재 빠르게 (따라서 극적으로) 변화하는 그들 사이의 권력관계는 모든 국가의 계급투쟁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련된 러시아에 대한 G7의 제재와 이것이 유럽과 미국에 미치는 인플레이션 영향은 전 세계 많은 국가들에서 인플레이션 및 인플레이션 억압 정책의 결과물로 나타났으며, 고용주 대 노동자 투쟁을 가중시켰다.
그러한 정책의 하나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급격한 금리 인상 정책은 달러화 표시 대외 부채가 많은 국가들을 압박하는 것이다. 압박받는 국가의 고용주와 노동자는 종종 계급투쟁을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반응한다.
과거와 현재의 주요 문제 중 하나는 권력과 계급투쟁을 혼동하거나 융합하거나, 혹은 한쪽만 보고 다른 쪽은 보지 못하는 경향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문제는 독일의 카이저 빌헬름 2세처럼 계급의식을 억압하려는 민족주의적 노력의 결과였다. 반면에 문화가 계급의식을 거부하거나 거부할 때 다른 문제들이 나타나는 것은 아마도 대중매체가 자본가 소유자와 광고주에 의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종종 사회주의자와 반사회주의자 모두 이같은 모두 혼란과 맹목을 기여했다. 냉전(1945-1990)과 그 지속적인 유산으로 인해 양측의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소련을 한 극으로 하고 자본주의, 민주주의, 미국 및 ‘서구’를 다른 극으로 동일시하게 되었을 때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
오늘날 새롭게 등장하는 국제경제질서에서는 경쟁적 민족주의가 다시 강해지고 있다. 미국 대 러시아와 중국, G7 대 브릭스, 남반구 대 북반구 등 글로벌 권력투쟁이 다시 한번 언론보도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권력 범주는 주요한 세계 문제에 대한 분석적 논쟁에서 계급 범주를 대체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대체는 국가의 내부 문제에 대한 논의에도 침투한다. 권력투쟁은 흔히 계급투쟁으로 오인된다. 그게 아니라면 계급투쟁은 담론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우리는 G7에 대항한 브릭스의 부상과 투쟁을 계급투쟁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들중 어떤 정부도 내부 작업장 조직의 고용주-노동자 형식을 넘어서는 ‘전환’이라는 의미에서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대체하는데 전념하지 않는다. 그들 중 어느 정부도 민간에서 공기업 소유로, 시장에서 계획으로 체계적으로 이동하는, 오래된 의미에서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데 전념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 모두 안에는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대체하는데 전념하는 그룹과 운동이 존재한다.
칼 마르크스와 여러 사람들은 대영제국과 북미 식민지 사이의 갈등, 그리고 독립전쟁과 1812년 전쟁으로 정점을 이룬 갈등에 대해서 주로 계급투쟁이 아니라 권력투쟁으로 보았다. 그 전쟁은 노예가 노예와 맞서거나, 농노가 영주와, 노동자가 고용주와 대결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권력투쟁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계급투쟁이 일어나는 순간들이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은 권력투쟁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영주에 대한 농노들의 투쟁은 빈발했다. 봉건 세력들 사이에서 나폴레옹 전쟁은 그들 모두를 약화시켰고 자본가 계급이 유럽 전역에서 봉건제 종식을 추진하도록 자극했다. 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에 대항한 지난 2세기 동안의 전쟁, 즉 권력투쟁에는 많은 계급투쟁이 얽혀 있다.
현재 G7과 BRICS 사이의 권력투쟁은 두 블록 내에서 진행되는 계급투쟁과 상호 작용할 것이다. 두 블록의 지도자, 이념가, 대중 매체는 주로 이러한 권력투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계급 변화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대중 의식과 행동주의를 계급투쟁에 집중하려면 권력투쟁과 계급 투쟁을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
BRICS 블록은 확실히 세계 경제에서 G7과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경쟁하는 블록들 사이의 권력투쟁은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사회주의 운동이 아니다. 중국이나 남반구도 현재 그러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지 않다.
미국과 G7, 그리고 북반구에 대한 중국, BRICS와 남반구의 권력투쟁은 새로운 계급투쟁을 촉발할 뿐만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모든 투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게 하는 방법은 부분적으로 우리가 권력투쟁과 계급투쟁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관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demlabor1848@gmail.com 저작권자 ©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핑백: 유럽 선거결과2 (프랑스 영국 선거) - 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