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삭소니-안할트주 지방선거의 의미
- 유럽의 방화벽(firewall)은 깨질 것인가?
2026년 9월 11일 / 글로벌 리포트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독일대안당(AfD), BSW(사라 바겐크네흐트 동맹), 이민, 러시아정책, 극우
지난 9일 독일 중부의 삭소니-안할트주에서 지방선거가 있었다. 그리고 국내 언론에도 크게 보도되었다시피 이른바 ‘극우’정당이라는 독일대안당(AfD)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를 두고 유럽에서의 극우의 준동, 혹은 전세계적인 극우의 발호로 흔히 얘기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단순한 견해일 뿐만 아니라, 사실도 아니다.

1. 반기득권 정당의 약진
이번 선거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투표율이다. 투표율이 지난 2021년 선거의 60%에서 77%로 무려 17% 포인트나 급등했다. 과거에는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던 유권자들이 일제히 투표장에 나온 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끌어냈을까? 먼저 선거 결과를 보자.
선거 결과는 독일대안당(AfD)의 압승이었다. 43.8%를 득표했다(비례대표 득표율 기준. 삭소니-안할트주는 비례투표와 지역구 선거를 통해 절반씩 지방의원을 선출한다). 지난 2021년에 비해 21% 포인트나 급증했다.
-표면상 가장 큰 패배자는 집권 기민/기사연합이다. 기민/기사연합의 득표율은 지난 2021년 선거 대비 무려 20% 포인트나 감소했다.
-기민/기사연합과 더불어 연정을 구성하고 있던 사민당과 녹색당은 지난 선거에 비해서는 지지율에는 거의 차이가 없었으나, 이는 일부 유권자들이 독일대안당이 의석 과반수를 차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른바 ‘전술 투표’(의회 진출 기준인 5%를 넘도록 의도적으로 이들 정당에게 투표한 것)에 기인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좌파 포퓰리즘 정당인 린케(좌파 연합)은 지난 선거 대비 3% 포인트 가까이 하락한 8.6% 득표에 그쳤다. 이들은 지난 2016년 선거에서는 23%를 득표했었다. 즉 삭소니-안할트주에서 지난 10년 사이에 가장 많은 지지율을 상실한 정당은 기민/사민연합과 링케였다.
-독일대안당과의 연정 가능성을 시사했던 강경좌파 정당인 BSW(사라 바겐크네흐트 동맹)는 5.3%로 의회 진출에 성공했다.
-친기업 성향의 자민당은 의회 진출에 실패했다.
선거 결과를 놓고 보면, 이른바 기득권 정당(the establishment)들의 패배였다. 당의 정책이나 이념적 색채를 불문하고 기존에 권력을 쥐고 있었던 정당들은 크게 지지율이 감소하거나 제자리 걸음을 하는데 그쳤다. 반면 이 지형의 좌우 반기득권 정당인 독일대안당과 BSW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같은 선거 결과를 놓고 독일 언론들은 ‘극우의 발호’라고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냈다. 나아가 유럽 전역에서의 이른바 ‘극우’에 대한 기사가 줄을 이었다. 9월 13일의 스웨덴 총선과 내년의 프랑스, 스페인 총선에서도 극우파 정당들이 득세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러나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번 선거는 단순히 극우의 준동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선거 결과는 삭소니-안할트주의 경제와 사회는 몰락해가고 있는데, 기존 정당들이 주민들에게 아무 것도 제시해주지 못한데 대한 분노 투표로 보이기 때문이다.
2. 절박함이 부른 분노
삭소니-안할트주는 독일 중부의 구동독 지역으로 인구 210만 명의 작은 지역이다. 실은 그 때문에 중앙정치에 커다란 파급력이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삭소니-안할트주의 인구 수가 지난 1992년에는 280만명이었는데 지난 35년 사이에 인구가 210만명으로 무려 25%나 감소했다는 데 있다. 물론 출생률 감소가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인구 감소 이유는 독일 통일 이후 지역 주민들이 구서독의 발전된 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 이주했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삭소니-안할트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독일 내에서 과거 동독에 속했던 지역들은 거의 예외없이 인구 감소를 겪고 있다. 심지어는 과거 바르샤바 조약국들(폴란드, 발틱 3국,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체코, 우크라이나)은 예외없이 엄청난 인구 유출을 겪고 있다.
게다가 독일 통일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구동독 지역은 구서독 지역에 비해 여전히 낙후되어 있다. 삭소니-안할트주의 1인당 평균 GDP는 구서독 지역에 비해 약 20%가량 낮으며, 실업률은 전국 평균 6.4%보다 훨씬 높은 8.1%를 기록하고 있다. 인구는 감소하고 실업률은 높으며, 소득증가는 정체되어 있는 것이 삭소니-안할트주, 그리고 인근 구동독 주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젊은 세대는 일자리와 기회를 찾아 떠나고 있으며,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은 해외로부터 유입된 이민자들이다. 이민자들은 특히 헬스케어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이같은 경제 구조가 세대별 투표 성향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 왼쪽에서부터 순서대로, 기민/기사연합, 독일대안당, 린케, 사민당, 자민당, 녹색당, BSW, 기타 순.
이번 선거결과 기민/기사연합은 70대 이상 연령대로부터는 독일대안당과 동일한 표를 받았다. 이는 이들 세대가 이민자 노동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세대들이기 때문이다. 반면 젊은 층에서의 기민/기사 연합 지지도는 거의 붕괴 수준에 이르렀는데, 이는 젊은 층들은 현재의 정치 질서에 결사적으로 반기를 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주요 경제활동 인구인 30-59세까지의 세대에서 독일대안당에 대한 지지가 절대적인 것도 같은 현재의 경제상태에 대한 불만의 표출로 해석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중소정당이지만, 삭소니-안할트주에서는 집권 세력에 근접했던 좌파당(린케)에 대한 지지율이 계속 감소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미 삭소니-안할트주의 주민들에게는 린케조차도 기득권의 일부라고 간주되고 있다는 흐름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지난해 연방정부 총선에서 린케가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낸 것과는 전혀 배치되는 흐름이다. 오히려 과거 린케의 주 근거지인 구동독 지역에서는 당에 대한 지지도가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대신 린케는 구서독 지역에서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3. 이민, 러시아, 그리고 EU
선거 운동 기간 중에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것은 이민 문제였다. 이민 제한을 당의 주요 정책으로 내걸고 있는 독일대안당, 특히 삭소니-안할트 지역당은 보다 강경한 ‘이민자 송환/추방’(remigration)을 구호로 내세우고 있다. 출구조사 결과로는 이같은 이민 이슈가 투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정작 삭소니-안할트주는 독일 내에서도 이민자의 비중이 가장 적은 주라는 점이다. 독일의 평균 해외 이민자 비율은 18%에 달하는데 비해서, 삭소니-안할트주의 이민자 비율은 9.3%에 불과하다. 독일대안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다른 주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정작 이민자 비율이 낮을수록 독일대안당 지지도가 더 높다. 따라서 이민 이슈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즉 이민자 그 자체보다는 손쉬운 이민을 가능케하는 상위의 제도, 즉 EU와 솅겐조약(유럽자유통행조약)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발이다.
물론 시기적으로는 삭소니-안할트주의 이민주 숫자는 지난 2022년 이후 갑자기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인한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대거 독일로 유입되었으며 일자리가 거의 없는 삭소니-안할트주까지 몰려들었다고 볼 수 있다. 삭소니-안할트주의 이민자 19만명 가운데 약 30%에 달하는 6만 8천여명이 지난 2022년 이후 유입된 이민자들이다. 따라서 이같은 급격한 증가에 대한 반발이 독일대안당의 ‘이민제한’ 구호가 통한 사회적 조건임에는 틀림없지만, 여전히 이민자 비중은 독일 전체 수준에 비하면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선거 과정 중의 또 다른 특징은 대외정책에 관한 것이다. 지방 선거에서 대외정책이 이슈가 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특히 러시아에 대한 독일 연방정부의 적대 정책이 중요한 선거 이슈가 되었다. 그리고 독일대안당과 BSW만이 러시아 우호 정책을 지지했다. 동시에 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파괴된 독일과 러시아를 잇는 천연가스 파이프 라인인 노스 스트림의 복원을 요구하고 있다(4개 파이프 라인 가운데 아직 1개는 손상되지 않은 상태다). 또 다른 중요 이슈는 ‘독일 민족주의’에 관한 것인데, 이는 교육 자치와 관련이 있다. 독일대안당의 자치 교육 구호는 ‘more Bismark, less Hitler’였다. 즉 더 이상 전범국으로서의 책임을 지는 가해자 교육은 줄이고 독일 통일과 민족주의를 발흥시켰던 비스마르크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의 이슈와 선거 결과를 종합해보면, 독일대안당의 승리는 결국 독일 민족주의, 혹은 독일 주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보여준다. 이민자 이슈는 문제의 본질이라기 보다는, 그 본질이 현상적으로 드러난 ‘증상’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 문제의 본질은 EU에 대한 불만과 경제상태에 대한 좌절에 있다.
선거 직후의 독일 기득권 정당들의 반응을 보면, 그들도 이같은 문제를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독일 기민/기사연합은 선거 직후 연방의회에서 독일대안당이 이민 정책을 수정하지 않는 한, EU가 향후 5년간 삭소니-안할트주에게 지원토록 예정되어 있던 지역개발금 29억 유로를 지급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일개 지역 주에서 벌어진 선거 결과에 대한 대응이 자그마치 EU 차원이었던 것이다.
이는 삭소니-안할트주 선거가 그 근저에 있어서는 결국은 EU에 대한 거부를 뜻하고 있음을 피차간에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기민/기사연합이나 사민당, 녹색당 등이 이번 선거 결과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단지 독일대안당의 이러저러한 ‘극우적’ 정책이나 이념들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 정책이 추구하는 최종 결과가 기득권 정당들의 이해관계를 최종적으로 보증하는 EU 통합 강화에 역행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는 독일 지역적 차원에서의 브렉시트 투표라고 할 수 있다. 정작 EU 자체는 정치적 도마 위에 오르지 않았고, 그럴만한 권한도 없는 투표였지만, 유권자들이 표현한 것은 EU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리고 이는 지난 2016년 영국에서 브렉시트가 통과된 것과 동일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당시 필자가 썼던 칼럼을 잠시 인용해 보자. 왜냐하면 아무 것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브렉시트는 대중의 현 체제에 대한 비토라는 점이다. 투표 전 영국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국민 62%가 브렉시트 이후 경제가 다르지 않거나 나빠질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그들은 이민자들을 내쫓고 경제사정이 호전되길 기대한 것 보다 유럽연합에 대한 반대, 체제에 대한 비토를 선언한 것이다. 설사 그것이 ‘대안’ 없는 ‘출구’(엑시트)라도 말이다. 이는 투표 후 SNS에서 본 영국민의 소감과도 일치한다. 그는 영국인들이 “red as hell(무지 화가 나 있다)”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엘리트들은 대중의 이런 상태를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극우파는 대중의 분노에 편승, 체제를 뒤흔들고 자신의 정치적 승리로 만들었다. 반면 이번 투표에서 노동당의 좌파 당수 코빈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브렉시트 앞에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잔류만 외쳤다. 그는 유럽의 ‘인도주의적 군사개입’은 반대했지만, ‘유럽적 가치’ 담론 앞에서는 약했다. 그것이 유럽 신좌파의 모습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이상의 좌파적인 것이 있어야 했다. 왜 대중이 브렉시트를 지지하는지 이해했어야 했다. 대중의 체제에 대한 불만을 사회체제 변혁의 대안으로 이어갔어야 했다. ‘사회적 유럽’이라는 말이 자본의 전횡을 위한 빛 좋은 핑곗거리가 된 지 오래고, 국경 없는 노동자들을 악무한의 ‘바닥을 향한’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유럽체제가 내세우는 ‘유럽적인 가치’를 사수하는 것이 대중과의 이반이라는 사실. 영국 브렉시트 투표는 그것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는 알고 보면 전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우파는 체제를 공격하고, 진보는 오히려 체제의 수호세력이 되는 현상. 브렉시트에서 보듯 유럽 사민주의자들은 유럽체제의 수호세력이 되어 자본이 짜놓은 프레임을 유지하고 그 체제의 생존을 연장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의 민주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87년 민주주의체제가 만들어낸 민주주의가 불평등을 약화시키긴 커녕 확대하고 부의 양극화를 가져오면서 ‘민주주의 환멸’이 극심한데도, 그래서 그것을 사회적 토양으로 삼아 우익정치가 발호하는데도, 한국의 민주·좌파세력은 87년 헌정질서를 사수하고 회복하자는 주장을 펼친다. 과연 진보적인가?
지금 전 지구적인 현상은 우파가 우파를 공격하고, 좌파는 우파가 짜놓은 시스템을 사수하는 체제 보수세력이 되고 있다. 하지만 대안 없이 출구도 없지만, 출구 없이 대안도 없는 것이다. 탈출을 꿈꾸지 않으면서 대안을 말하는 담론은 공허하다.”
(권영숙, “브렉시트, 대안없는 출구”, <경향신문> 2016년 6월 27일자. 링크 https://v.daum.net/v/20160627212324029)
그래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독일대안당은 과연 극우 정당, 또는 파시스트정당인가? 독일 연방정부의 헌법수호청은 독일대안당을 위헌 소지가 있는 정당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특히 삭소니-안할트주의 독일대안당 지도자인 울리히 지그문트에 대해서는 위험 인물로 지정해 감시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언제든지 헌법재판소에 독일대안당의 해산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현실적으로는 거의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독일대안당의 성장 과정을 보면 이들을 단순히 극우라고 치부하는 것은 지나치게 사태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독일대안당은 지난 2013년 기민/기사연합 정치인들 가운데 일부가 EU 통합에 부정적인 견해를 표출하며 창당한 정당이다. 즉 애당초 뿌리가 기민/기사연합이었다. 초기 창당 멤버들은 2016년 브렉시트를 전후로 대부분 축출되고 이후에는 다양한 세력들이 몰려들었다. 이중에는 과거 제3제국(나치)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파시스트 후예들도 있으며, 이민자들이 독일 사회를 파괴하고 있다는 강경파들도 있고, 또 일부는 이른바 LGBTQ(woke)에 반대하는 보수적인 기독교주의자들도 있다. 여기에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는 중앙정부와 EU의 반러시아 정책에 반기를 든 반전주의자와 친러파까지 합세했다. 즉 매우 다양한, 잡탕 정당이다. 이들을 묶을 수 있는 최대공약수는 앞서 언급한 독일민족주의와 반EU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선거 직후 일부 독일 언론에서 삭소니-안할트주의 선거에서 핵심이슈는 “이민자 문제가 아니었다”고 주장한 것도 사실이며(왜냐하면, 독일대안당 중앙당의 정책은 무조건적인 반이민이 아니라, 선택적 반이민, 즉 독일 사회에 동화되지 못하는 불법 이민자에 대한 규제 정책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현재의 독일의 상태에 대한 불만세력의 집합체인 것도 사실이다. 이민자 이슈는 단지 이같은 근본적 문제들이 표면화되는 계기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사회적 보수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정작 독일대안당의 공동대표인 알리스 바이델은 동성애자에 파트너는 스리랑카 출신의 이민자다. 따라서 한국적 관점에서의 ‘보수주의’와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경제정책도 신자유주의 노선을 고수하고 있으며(기민/기사연합과 거의 차이가 없다. 오히려 기민/기사연합만큼 친기업적이지는 않다), 단지 대외정책에서 두드러진 차이를 보일 뿐이다. 게다가 기민/기사연합의 메르츠 총리와 바이델 대표는 출신 배경도 비슷하다. 메르츠 총리는 헤지펀드인 블랙록 출신이며, 바이델 대표는 골드만삭스 출신이다. 둘 다 자본시장에서 성장한 인물이다.
4. 유럽의 방화벽
지난 1년 가량의 독일 정당지지 여론조사를 보면 독일대안당은 약 30% 정도의 지지를 받아 최선호 정당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집권당인 기민/기사연합은 20% 안팎에서 계속 하락하고 있는 추세이며, 연정파트너인 사민당과 녹색당은 10% 초반대를 기록하고 있다. 기민/기사연합과 사민당, 녹색당을 합쳐도 지지율이 50%를 넘지 못한다. 게다가 현 메르쯔 총리에 대한 국정수행 지지도는 10% 초반대를 기록하고 있다. 20세기의 정치 전통에서는 총리를 교체하거나, 조기총선에 나섰을 지지율이다(요즘은 정치인들이 뻔뻔해져서 지지율이 폭락해도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바이델 독일대안당 대표가 삭소니-안할트주 선거 직후, 메르츠 총리의 수명은 올해 크리스마스까지라고 큰 소리를 친 것은 나름 이유가 있다. 현재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미국의 거의 10배 수준에 달하는데 러시아 적대정책으로 그나마 우회수입되던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이 감소했기 때문에 재고량이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만일 올 겨울에 한파가 찾아온다면 독일인들은 살인적인 가스값을 지불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 온다면 메르츠가 자리를 유지하기 힘들다. 그리고 조기총선이 열린다면 독일대안당은 제1당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유럽 정치에서의 관행이자 불문율인 이른바 ‘방화벽’(firewall), 또는 ‘가림막’(ringfence)라고 불리는 극우정당과의 제휴 금지 정책이다. 독일대안당은 제1당은 될 수 있지만, 의석 과반수를 차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다른 군소정당과의 연정이 불가피한데, 다른 정당들은 독일대안당이 극우라는 이류로 연정을 거부하는 있다. 당장 삭소니-안할트주만 해도 과연 주정부 구성이 가능한지 의문스러운 상황이다.
5.3%의 지지율로 의회 진출에 성공한 좌파 정당인 BSW는 여기에서 독특한 포지션에서 새로운 정치 공학을 선보이고 있다. BSW 당 대표인 사라 바겐크네흐트는 선거 과정에서부터 ‘어떤 정당과도 제휴할 수 있다“면서도 ”독일대안당의 강경파인 울리히 지그문트가 아닌 제3의 독립적인 인물이라면 연정에 참여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이민자 문제에 대해서는 보다 완화적인 정책을 수행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독일 정치에서는 처음으로 방화벽을 깨는 정당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BSW는 지난해 총선과 지방선거 과정에서도 이같은 노선을 취해 좌파들 내부에서 이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고, 급기야는 원칙적인 노선을 주장하는 일부가 탈당하고 연방의회 진출에 실패하기도 했다. 만일 BSW가 연정 노선이 아니라, 단순히 좌파 정책을 답습하기만 했더라도 구동독의 공산당 출신들과 서독의 신좌파들이 연합한 린케가 아니라 BSW가 좌파의 대표정당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왜 BSW가 이같은 정책을 취하는지는 한편으로는 정치공학적 관점에서, 다른 한편에서는 이들이 독일대안당을 ’극우‘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더 크게는 독일대안당이나 BSW 모두 반EU 노선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러시아에 대한 태도도 둘 다 친화적이기 때문이다.
바겐크네흐트가 보기에 유럽 정치의 방화벽은 단지 ’극우‘로 치부된 정치집단에게만 붙여지는 타부가 아니다. 좌파들에게도 그 방화벽은 적용된다. 즉, 급진 좌파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정당이 나서면 기득권 정당들은 독일대안당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도 어떠한 종류의 연정도 거부하는 방화벽을 친다. 따라서 정치공학적 관점에서 아예 이같은 타부를 깨버리는 것은 분명 전술적으로 의미가 있다.
예컨대 프랑스의 경우에는, 좌파의 멜랑숑 후보는 1차 예비선거에서 승리하더라도 2차 결선에서는 당선이 유력한 인민전선의 마리 르뼁 후보에 대해 35:65로 열세를 보인다. 그런데 정작 1차도 통과하지 못할 마크롱의 후계자인 아딸 후보는 만일 2차 결선에 진출한다면 48:52로 르뼁과 근소한 접전을 벌일 것으로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는 프랑스 대중들과 정치세력들이 ’극우‘라는 인민전선 르뼁에 대해 방화벽을 치는 것보다도 더 강력하게 강경 좌파에 대해 방화벽을 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른바 중도들은 극우는 용인할지언정, 좌파는 용인하지 않는다. 이런 조건이 각인된 대중들은 처음부터 좌파를 ’당선가능성‘ 문제 때문에 배제해버리는 투표 행태를 보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독일도 이는 마찬가지다.
BSW의 선거공학적 전략은 결국 제도권 우파 정당들에게만 유리한 ’방화벽‘전략 자체를 해체함으로서 우파 정당들을 제외한 정당 정인들의 ’당선가능성‘(electability)에 대한 대중의 ’제도화된 회의‘를 먼저 불식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동시에 제도정치에 진출한 좌파 정당의 정치는 어떤 방식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이 실험의 성패를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이들의 전략과 성공여부는 ’극우파 척결‘이라는 명분 아래 사실은 동일한 ’극단‘이란 이름으로 좌파에 대한 방화벽을 치고 있는 남한의 정당정치에서 자립해야하는 진보 좌파정치에게도 시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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