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이재명 정권의 ‘123국정과제’ 한국 부르조아의 자신감과 발전노선의 수정

이재명 정권의 ‘123국정과제’

한국 부르조아의 자신감과 발전노선의 수정

- <전망과실천>의 국정기획위원회 보고서 분석에 기초한 재론

2025년 9월 25일 / 이슈 리포트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123국정과제, 국정기획위보고서, 개헌, 대자본가, 발전전략, 진짜 성장, 자본의 대약진, 생산적 금융, 국가펀드, 검찰개혁, 남북관계 

이재명 정부 배후에 있는 자본가들의 ‘진보성’

지난 9월 13일 이재명 정부는 국정과제 123개 항을 공개했다. ‘123국정과제’는 정권인수위원회 역할을 했던 국정기획위원회가 지난 6월17일 내놓은 ‘대한민국 진짜 성장을 위한 전략“보고서를 현실적 조건에 따라 수정 보완한 이재명 정권의 정책 청사진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보고서와 ’123국정과제‘는 그 원칙과 방향에 있어서는 거의 동일하다. 즉 <전망과실천>이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공약부터 국정기획위 보고서까지 일관되게 분석한 내용이 정확했음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이재명정권은 ’대한민국 새로 만들기‘를 선언했고, 그것은 ’진짜 성장‘이라는 이름하에 대자본가 즉 재벌 중심의 ’자본의 대약진‘을 핵심으로 하며, 이를 위해 전지구적인 지정학과 지경학, 특히 트럼프2기 정권과 협조를 통해 ’한미 자본가 동맹‘의 구축 및 이를 위한 ’국내 계급투쟁의 적극적인 봉쇄‘에 나서고 있다 (참조: ”이재명 정권의 성장 전략(1)- 자본의 대약진 운동(Great Leap Forward)“, 2025년 7월4일, 그리고 “이재명 정권의 성장 전략(2) – 자본과 노동: 한미 글로벌 자본가동맹과 국내 계급투쟁의 봉쇄”, 2025년 8월8일).

그러나 123국정과제는 국정기획위원회의 보고서와 대조할 때 몇가지 중대한 수정 사안들도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는 국정과제 123개 항목을 분석하면서 <전망과 실천>이 시도한 이쟁명 정권의 정책방향과 이념적인 성격에 대한 분석이 어떻게 ‘국정과제’를 통해서 관철되고 구체화되었는지와 어떤 것들이 변화 수정되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분석하려고 한다.

먼저 국정과제 전반을 꿰뚫고 있는 정치적 관점, 그리고 이를 가능케하는 근저에 있는 정치적 힘을 먼저 거론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그 힘은 한국에서 ‘일반 민주주의’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한국 부르조아 계급의 힘, 나아가 자신감이며 동시에 이들이 과거의 한국 경제 발전 노선(모델)이 한계에 직면했을 때, 자신들의 주도로 이를 타개해 나가려는 시도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다지 놀랍지는 않게도, 이같은 정치적 힘의 경제적 동기는 국정과제(그리고 국정기획위 보고서)에는 거의 드러나 있지 않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몇 가지 지점은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지난 8월호 <전망과실천>에 실린 “권영숙의 테제11-이재명 정권의 사회경제정책과 사회경제적 이해관계” 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국의 대자본가들은 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정권을 지지했다. 심지어는 이재명의 ‘친노동적’, 혹은 ‘진보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표면적으로는 이같은 자본가들의 지지의 이유는 ‘사회 통합’을 위해서라고 포장되어 있다.

또는 이는 9월 발표된 ”123 국정과제”이 인용한 (주옥같은?) ‘금언’들을 빌자면, “대화 민주주의야말로 현대 정치의 핵심적 원리(앤소니 기든스)”, “개인의 자율성과 다양성 속에서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기반하여 결속을 이루는 것이 통합(에밀 뒤르껭)”이라는 사회철학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이 인용 부분은 이재명 정권의 국정철학 수립에 참여한 김호기 등 자유주의 사회학자 정치학자들의 영향력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흥미롭지 않은가, 한국의 모모한 사회과학자들 특히 사회학자들이 대거 이재명 정부의 스피커는 물론이고 통치철학의 기초를 닦고 나아가 국정기획위원회 보고서와 123국정과제에도 그 흔적을 많이 그리고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앤소니 기든스가 누구인가? 바로 영국의 노동당과 보수당의 양당체제에 대해서 ‘노동당’의 이데올로그가 돼 ‘제3의 길’을 주창하면서, 토니 블레어등의 우경화를 급속화 시킨 인물이다. 그리고 뒤르껭? 아마도 이런 모든 변화를 ‘사회적 연대와 결속’, 공동체주의로 말하고 싶겠지).

이재명 정권의 수립 과정을 살펴보면, 비록 국정과제에는 그 흔적이 희미하게 밖에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자본가들은 놀랍게도, 보편적 사회적 가치를 위해서, 노동의 권리 신장에 동참하며 민주주의를 강화하며 나아가 남북관계의 개선을 희망한다는데 동의했다. 이토록 놀라운 ‘인간적인’, 혹은 ‘도덕적인’ 자본가는 귀한 구경거리이기조차 하다. 그러나 이미 앞서의 글들에서도 지적하였듯이 한국 자본가계급, 특히 재벌 그랑 부르조아지의 개과천선을 갑자기 자본가계급에서 발견된 인간성의 발로에서 찾아서는 안된다. 즉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가’와 인간적일 수 없는 자본주의쯤은 아직은 구분하고 있어야한다. 그것이 현존 사회주의를 그다지도 비판했던 무리라면,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균형적인 시각’이라고 할 것이다.

한국 자본가들의 ‘진보성’ (역사의 유물론적 발전법칙은 믿지 못하지만, 유물론자로서 현실 인식과 진단에서 엿보이는)은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이후의 사태 전개 과정에서, 비록 전혀 다른 것으로 해석되기는 하지만, 이제는 제법 알려지고 있는, 한국 자본가들에 대한 일련의 도전들에 대한 응전의 결과다.

지난 8월 25일 미국 백악관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와 회담한 뒤 방명록에 서명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비록 언론이나 학자들은 트럼프의 재선을 미 대선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놀라운 사건으로 알리기 시작했지만(심지어 미국에서도 낸시 프레이저 같은 ‘맑시스트’ 석학조차 다시는 트럼프 2기는 오지 말아야하고 올 것이라고 예상조차 못했지만. 왜 대중의 상태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을 왜 미국의 ‘프로그레시브 좌파/리버럴’은 눈감고 있었을까), 미국 내의 파워엘리트들의 동향을 살펴보면 지난 2023년 여름 무렵부터 이미 더 이상 바이든 노선으로는 미국 자본가들의 이익을 제대로 관철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선거 3개월 전인 2024년 9월 무렵에는 이미 승패는 결정되어 있었다 (참조: 죽은 자들의 민주주의 : 미국 정치체제의 진퇴양난, 2024년 07월 18일)

트럼프는 미국의 대자본가들이 원하는 것, 즉 세계화의 중단과 세계의 분할, 미국 국가 재정의 해결 및 패권 국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동맹의 폐기와 재구성 등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재등장하게 된 것이다.

왜 바이든은 안되고 트럼프 치세 하에서는 이같은 일들이 가능한가? 그것은 도덕이나 그들이 가진 정치적 신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실제로는 둘 다 거의 동일한 수준의 사회 밑바닥 인물들이다).
양자의 차이는 퍼포먼스, 즉 기존 체제를 파괴하는 업무를 하는데 있어서 누가 더 비이성적이며 몰상식하고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이며, 그리고 바로 그같은 비합리성 덕분에 대중들의 맹목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느냐에 달린 것이었다. 이는 마치 종교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참조: 지나간 미래, 오지 않을 과거, 제국의 망령: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과 전세계 질서, 2024년 11월 14일).

트럼프 정권의 국정과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Project 2025’가 완성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따라서 글로벌 대자본가들은 이미 향후 일어날 일들을 상당한 정도의 정확성을 가지고 예측하는 것이 가능했으며, 그 안에서 한국의 위치와 한국에게 요구될 것들도 분명하게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여기서 다룰 일을 아니지만, 윤석열의 계엄도 이같은 상황 변화에 따른 기존 권력 집단의 대응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변화하는 정세 속에서 한국의 대자본가들이 이재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그의 금융관에서 찾을 수 있다. 이재명은 한국에서의 자본시장 육성에 적극적이었으며(그 뿌리는 노무현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22년 대선에서도 이미 한국 원화의 보유 통화(reserve currency)화를 주장했다.

물론 원화가 보유 통화가 되면 엄청난 장점이 생긴다. 그러나 원화가 국제적 보유 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 있다. 한국의 금융기관이 유로달러 시장에 진출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때부터 시도되었던 금융자본으로의 진출은 사실상 대부분 실패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최단 방법은 이미 사멸해 가고 있는 유로달러 시장에 새롭게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미국으로부터 달러화를 상설적으로 조달받을 수 있는 통로를 여는 것이다. 이것이 트럼프 관세에 대해 이재명 정권이 ‘달러 스왑’을 요구하는 이유이다.

한국 부르조아 계급의 자신감

앞으로의 세계는, 아마도 향후 20 여년 동안은, 느슨하게 여러 개의 권역으로 나뉘어진 블록들의 대립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지난 40 여년간 진행되어 온 세계화가 막을 내린다는 요란한 신호이며, 기존의 글로벌 헤게머니를 상실할 위험에 처한 서구에서 먼저 시작된 거대한 흐름이기도 하다(최초의 신호는 2016년의 영국의 브렉시트).
이같은 국제적 변화에 대응하여 각 나라들은 자신들의 조건에 따라 각기 다른 대응을 추구하고 나섰다. 한국의 지난 10년간의 정치적 변동 역시 이같은 변화 속에서만 설명될 수 있다.

지난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자본주의 발전 경로(또는 국가 자본주의적 발전 모델) 속에서 성장해온 한국의 자본가 계급은 각 분파가 처한 조건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이같은 대외적 환경 변화는 지난 60여년 간의 한국형 자본주의 발전 방식의 지속이 불가능해졌으며, 특히 기존 발전 방식의 폐해로 인한 사회적 대립이 심지어는 자본 축적에 위험을 초래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국의 자본가들은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었다.
하나는 기존의 발전 노선을 지속하는 것, 그리고 이같은 모델이 대내외적으로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에 기존의 동의 체제(자유민주주의)를 상당 부분 폐기하고 더 극단적인 노동착취 체제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자신들이 스스로 전통적 산업자본에서 첨단 산업으로 그리고 이를 가능케해주는 금융자본으로 전화하면서 기존의 지체된 사회적 정치적 세력들을 제거/통합해가는 경로였다(참조: 경제, 노동 지표로 본 한국의 자화상: 한계에 봉착한 한국형 발전 모델, 2024년 12월 30일).

여기서 한국의 자본가들은 후자를 택했으며(내부적으로는 반발이 있더라도 대자본을 중심으로 한 자본가 계급 전체로서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 정치적 표현이 바로 이재명이었다.
이재명 정권은 정치적으로는 민주화 세력을, 경제적으로는 글로벌 경쟁자로 성장한 한국형 다국적 기업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권 장악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같은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정권 인수위원회 역할을 대신했던 국정기획위 보고서와 이를 현실화한 국정개혁과제 보고서를 대조하면서 이들의 핵심 과제에 대해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는 두 가지 핵심으로 요약할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국가 주도 산업화로부터 국가 주도 금융자본 육성 모델로의 전환

이같은 전환이 전면적으로 제조업 산업 발전 노선을 폐기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글로벌 관점에서 더 이상 경쟁력을 갖지 못한 제조업을 노동시장 착취를 통해 인위적으로 유지하는 국가의 기능을 지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존의 저임금/차별임금 노동시장에 기초한 제조업에서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이를 질적으로 변화시켜 첨단 산업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이를 위해 국가와 민간 금융자본이 함께 금융자본을 육성하는 역할을 국가 주도/후원하에 달성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한국 내의 계급 관계의 재편은 물론, 한국의 대외정책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즉 현 정권은 한국 자본주의의 도약, 질적 전환을 위한 자본가 계급의 선택이다.(참조: 한반도 지정학과 지경학, 그리고 위기의 징후와 폭발들. 2025년 04월 09일)

이재명 정권의 국정과제 보고서는 이를 ‘세계를 이끄는 혁신전략’에서 “성장을 북돋는 금융 혁신”이라는 항목으로 설정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지대 자본에서 생산자본으로의 전환)을 위한 100조원 플러스 펀드의 설정, 자본시장 혁신, 디지털 자산 생태계 구축(크립토코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재명 정권이 기획하는 금융자본으로의 전환은 서구의 역사적 사례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은행자본의 성장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정과제 보고서에 은행자본과 관련된 내용은 단 하나도 없다.

국정보고서가 제시하는 경로는 ‘펀드’다. 그런데 이 펀드는 단순한 ‘국가펀드’가 아니다. 예컨대 이미 김대중 정권 시절부터 ‘기술신용보증기금’과 같은 국가가 자금을 설정한 펀드는 존재했다(왜 역대 민주당정권이 ‘펀드’를 중시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한국 자유주의 정치와 민주정치의 한계를 들여다보는 좋은 소주제가 될 만하다)..

이재명 정권이 말하는 ‘펀드’는 민관 합동으로 첨단 산업(인공지능, 에너지 고속도로, 바이오 등)에 투자할 재원을 공급하는 곳이며 동시에 이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형성되어야 할 자본시장의 주요 행위자들이기도 하다. 이것이 향후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는 국정과제 보고서만 갖고서는 가늠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미 그 일단은 다음과 같이 구체화되고 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한국 정부와 블랙록은 인공지능, 재생에너지 분야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한국을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글로벌 허브로 성장시키는데 뜻을 모았습니다….하정우 인공지능 미래기획수석비서관은 MOU에 국내 인공지능 및 재생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협력, 한국 내 아시아-태평양 인공지능 허브 구축 협력, 글로벌 협력 구조 마련 등 3대 방향이 포함되었다고 설명했다”(<JTBC> 9월 23일자, “이 대통령, 블랙록과 MOU 체결…’한국을 아태 AI 수도로”).

블랙록은 IT업체도 아니고 재생에너지 관련 기업도 아니다. 세계 최대의 펀드다(자산 규모 12조 달러). 따라서 블랙록의 역할은 ‘자금’을 대는데 그치지 않고, 단순 투자자가 아니라 향후 사업까지도 공동결정하는 적극적 참여자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블랙록은 영국의 케이어 스타머 노동당 정부와도 이와 유사한 협약을 맺었다(참조: “부자들을 위한 노동당”, 2024년 6월 7일).

지난 2024년 11월 영국의 스타머 총리와 세계 최대 펀드인 Blackrock의 CEO인 래리 핑크는 영국 민영화 및 민관공동펀드 구성에 합의했다. 출처 Flckr

이같은 사업들에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그러면 어떻게 이 자금을 마련할 것인가? 경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외부로부터 자금을 투자받아서, 다른 하나는 외부에서 대출을 받아서. 그리고 두 가지 경로 모두에 있어서 자금조달이 용이해지고 금리가 낮아지기 위해서는 ‘달러 스왑’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권의 숨은 계획 중의 하나는 기존의 달러 스왑마저도 일방적으로 폐기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이 점에서는 한국 정부와 트럼프 정부 사이에 이견이 생긴다. 이재명이 난데없이 ‘주권’을 강조하고 “달러 스왑 없는 3500억불 미국 제공은 IMF 구제금융을 불러온다“고 ‘민족주의자’로서 나선 것은 애국심이겠지만, 동시에 그 애국심의 근거는 한국 자본가들의 이해관계 나아가 그들의 생존 조건이기도 하다.

즉 그는 한국 자본가들의 이해를 대변하여 미국의 자본가 대표(트럼프)와 협상하고 있으며, 동시에 이런 발언이 공개적으로 가능할만큼 미국의 힘이 약화되었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또한 블랙록과 MOU를 체결했다는 것은 한미 간에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협상은 진전되고 있으며, 아마도 11월 APEC 회담에서 조인식을 가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이같은 한국 자본주의의 질적 전환은 이재명의 소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제도권 일반 민주주의자들과 한국의 대자본가들 사이의 물밑 대타협의 소산이기도 하다(최소한 지난 2월에는 이같은 타협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국정과제에 나타난 ‘진보’와 ‘민주주의’는 이같은 선진적인 자본가들의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의 틀안에서만 가능하며, 실제로 결코 그 경계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 계엄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이재명 정권이 윤호중 내무부 장관, 정성호 법무부 장관,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같은 ‘통합파’(또는 민주당 내 강경파들에 의하면 이른바 ‘수박들’)로 채워졌는지도 이런 관점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자본가들은 일부 구체제 정치권력을 제거하는데는 동의하지만, 그러나 전면적인 민주주의와 진보를 위한 체제의 정화(숙정)에는 동의하지 않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자본가들의 이같은 의사는 ‘통합’이라는 구호로 표현되며 이에 동의한 것은 민주당 내 무늬만 ‘강경’파들이 그토록 수호하고자 하는 이재명 본인이다. 즉 국정과제와 국정기획위 보고서에서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는 ‘통합’은 이재명 대통령의 의지이며 의사이자, 심지어 결단인 것이다.

그리고 이 ‘통합’은 당장은 계엄 및 검찰 권력 해체/처벌 과정에서 시끄러울지라도 결국은 관철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국정기획위 보고서와는 달리, 노동정책의 경우 노동이사제 및 노동법원 검토 등과 같은 전향적 정책이 국정과제에서 제외되었다. 또 개정된 노조법 2,3조가 애초 입법안과 논의 취지와는 달리 크게 약화되었다. 하지만 심지어는 제도화된 노동조차도 국정과제 상의 노동정책의 방향은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는 듯 찬성 입장을 밝히고 있으며 단지 그 ‘개혁’이 문장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촉구할 정도로 거의 전적으로 현 정권의 계급적 성격에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다(참조: 국정기획위원회 노동 분과 보고에 대한 민주노총의 입장, 9월 13일)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사회적 헤게머니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스스로 자신하고 있는 한국 부르조아 계급의 자기 판단에는 중대한 오류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노동과 소위 시민사회와 사회운동단체들은 대정부관계로, 혹은 민주 대 반민주(내란)세력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재명정권의 정책방향의 기저 혹은 배후에는 한국 자본주의와 한국 대자본가계급이 있다.

‘한미 자본가동맹’ 구축을 향한 진통

한국의 대자본가의 입장에서는 ‘민주화된’ 한국 정부는 미국으로부터의 압력을 방어하는 유용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큰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달러 스왑이 갖는 이점은 실제로 어마어마하다.

달러 스왑이 이뤄지면, 미국에 헌납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한국은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한국을 거점으로 한 한국발 달러화의 글로벌 사우스 투자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신흥시장개척에도 절대적으로 유리하다(일본과 영국 등 미국을 제외한 다른 선진국들의 세계화 기간의 발전은 비록 중앙은행의 보증은 없었지만, 암묵적 보증 하에서 유로달러 시장에서 달러를 조달하고 다른 종속적 국가들에게 달러를 공급해 주면서 이뤄졌다).

이런 경로를 잘 밟는다면 한국은 단숨에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다. 한국의 선진국 안착은 동시에 한국 자본주의의 새로운 등급이 될 것이다. 따라서 국정과제에 ‘G7 +’라고 표시된 것은 단지 허황한 얘기만은 아니다(한국을 포함시켜 G8을 만들자는 논의는 이전에도 있기는 했다).

물론 반대급부도 있다. 최근의 한국은행 연구보고서가 시사하듯이, 달러 익스포져가 클수록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한다면 한국 경제는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게다가 미국이 언제라도 달러 스왑을 일방적으로 중단할 위험도 존재한다(미국은 이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상수로 놓고 보아야 한다. 한미 FTA는 의회 비준까지 받은 국제조약이지만, 이를 미국이 일방적으로 파기한다고 해서 저지할 수 있는 도리는 하나도 없었다). 미국이 달러 스왑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IMF 시즌2 (외환위기)가 될 것이다.

달러가 넘치면 주윤발처럼 불쏘시개로 쓸 수도 있다. 주윤발은 위조화폐범을 연기했다. 출처 <영웅본색>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해서 한국은 미국에 영구적으로 종속되기를 자처해야 한다. 이재명이 사실상 실용외교 노선을 포기한 듯, 한미동맹에서 벗어나지 않겠다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즉 한국 자본주의의 질적 성장의 담보는 국가 공동체 그 자체가 된 것이다. 비록 그것이 지금 성장하고 있는 동안에는 마치 그럴듯한 동업자로 보일지라도 말이다.

결국 한국은 주권의 이름으로, 민주적으로, 자신들의 주권을 제한했다. 바로 올해 2025년 을사년에 일어난 일이다. 늘 민주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자신들의 유일한 절대적 존재조건이라고 느끼며, 자본주의의 성장이 민주주의의 강화라고 사고한다. 그 끝에는 MAGA가 기다리고 있다.

민주주의의 공고화(domocratic consolidation)와 개헌

현 이재명 정권은 윤석열 정권으로 대표되는(그러나 해방 이후 사실상 국가 정책을 주도해 왔던) 이권화된 관료집단(테크노크라트)과의 경쟁/대립 속에서 이른바 시민사회의 ‘공동선’이자 사회운동 모두의 ‘마스트프레임’으로 재구축된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대중을 장악했기 때문에 ‘일반 민주주의’의 과제를 수행해야할 정치적 숙제도 안고 있다. 이같은 과제는 행정적으로는 처리하기 어렵지 않지만, 이들이 정치권력들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과제다. 동시에 기존의 한국 자본주의 발전 경로가 정체됨에 따라 사회적으로 세대/성/계급별 대립이 격화되면서 이를 정치권이 해소하지 못하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87년 헌법의 개헌은 바로 이 지점에 위치한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대한민국 진짜 성장 보고서’가 주로 사회경제적인 주제 중심으로 구성되고 민주주의와 개헌등 정치적인 이슈는 축소되어 있었다면, 123국정과제는 전면적으로 개헌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사회적 갈등을 정치가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것이 국정개혁 보고서가 제시하는 개헌의 기본 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당연히 당파적 성격이 가미된다. 3.1 운동과 임시정부로부터 시작해 4.19, 5월 광주를 헌법 전문에 명시함으로써 이런 국가의 역사적 정통성을 세우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자임하는 민주당 역시 자신의 역사적 정치적 정통성과 정당성을 새로 부여하려고 한다(물론 이는 해방이후 조선공산당등을 축출하고 국가보안법을 서둘러 만들고, 좌익 소탕에 무력함을 넘어서 방조 동조했던 한국 민주당정치의 뿌리를 생각하면 자신의 ‘역사 세탁’이기도 하다) (참조: ”건국(建國)과 광복(光復)과 국가보안법- 대한민국 국가의 기원은 계속 질문해야한다“. 2024년 08월 22일).

그러나 동시에, 이런 관점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위배할 수 있는 권력의 행사를 배제하여 정치가 사회적 대립의 해결장소라는 것을 헌법적으로 보장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한국 자본가들이 느끼고 있는 위험, 즉 극단적 사회적 대립으로 체제 동요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이는 이제 한국 사회 내부에서 사회적 대립이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그것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한국 부르조아 계급의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한국의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헤게머니를 장악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정과제에서 제시된 개헌의 포괄적 목표는 “국민주권 실현과 대통령 책임 강화”로 되어 있다. 제목만 놓고 보면, 국정기획위 보고서와 다르지 않지만, 중요한 몇가지 차이가 있다. 이는 이재명대통령과 현정권의 ‘정치전략’이기도 하다. 앞으로 다가올 정치일정은 이 핵심적인 차이를 중심으로 발전하고 전개될 것으로 예견할 수 있다.

첫째, 국정기획위에서 제안했던 의회 권력 강화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예컨대 국정기획위에서는 감사원을 국회 산하 조직으로 이관하는 문제가 논의되었지만 국정과제에서는 아예 누락되어 있다. 또한 국정기획위에서 결론내지는 않았지만 의회 권력 강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예산 편성권도 전혀 변동이 없다(국회의 예산 심의권을 강화하는 방안들만 제시되어 있다). 또 국정기획위에서 제안한 책임총리제(총리의 국회 추천)도 국정과제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권력 구조에 대한 헌법 개정의 방향은 대통령 책임 강화(계엄에 대한 보다 엄격한 제한 등)라는 부분적인 측면에만 머물 것으로 보인다.

둘째, 엘리트간의 권력재편과 제도적 개혁의 방향이다. 이재명 정부의 검찰 개혁은 정치적으로 매우 시끄럽기는 하지만, 헌법적으로는 지엽적인 문제일 뿐이다(검찰의 영장청구권 독점을 폐지하는 것 이상의 헌법적 조치는 거의 필요치 않다. 모두 국회의 입법 사안일 뿐이다). 국정과제에서는 검찰을 해체하고 법무부의 탈검찰화, 검찰 수사 기능의 행안부 이전(중수청 신설)등이 제시되어 있으며, 현재 정부와 민주당의 발언들을 보면 이같은 구조 개편이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중수청의 민주적 통제에 대해서는 국정과제에서도 여전히 언급이 없다(경찰청에 대해서는 국가수사위원회의 통제 강화). 또한 중수청의 수사 대상은 오히려 현재의 검찰의 수사 대상보다도 확대될 수도 있다(국정과제에는 중요 범죄로만 국한되어 있다).

셋째, 개헌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하지만 거의 거론되고 있지 않은 또 하나의 사안은 남북한 문제다. 국정과제는 ‘남북 관계 화해 협력 전환, 남북 기본 협정 체결로 한반도 리스크를 한반도 리스크로 전환’하겠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지난 문재인 정권 하의 남북 관계 스탠스와 거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

또 북핵 문제에 있어서도 ‘핵 동결(freeze)’를 기본 정책으로 하고 있는데(북한의 추가적인 핵 개발 동결), 이는 북한이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비핵화를 목표로 내걸 경우, 아예 남북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또한 북한의 ICBM 개발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남한도 미국과의 핵/재래무기 동시 훈련 계획을 지속한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이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남한이 여전히 대북 침략 의도를 갖고 있다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북한의 핵은 그 투척 수단의 관점에서는 남한이 주요 대상이 아니라 주일미군이며, 현재 개발중인 ICBM은 직접 미 본토를 겨냥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반도 비핵화 원칙은 명목상은 남아있지만, 사실상 형해화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북한의 대남 기본 노선은 지난 2021년을 기점으로 ‘1민족 2국가’로 수정되었다. 지난 1971년 남북간의 평화통일 3대 원칙에서 파생되었던 ‘1국가 2체제’(북한의 관점에서는 고려연방제) 구도는 폐기되었으며, 따라서 북한의 남북한 관계에 대한 기본 원칙은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밝혔듯이, ‘적대하는 별개의 2개의 국가’다.

남한이 이를 해소하고 남북 관계에 돌파구를 열기 위해서는 개헌에 있어서 영토조항(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과 대법원 판례(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것)에 대한 수정이 가능한 헌법 조항의 개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정과제의 개헌 및 남북 관계 항목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여전히 문재인 정권의 ‘평화통일론’이 보다 강화된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북한의 관점에서는 헌법상 영토조항 수정 없는 남한의 대북 정책은 흡수통일에 지나지 않으며, 심지어는 ‘1국 2체제’조차도 될 수 없고, 따라서 이재명 정권이 어떻게 나오든 굳이 스탠스를 변화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남북한 관계는 계속 경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조건 하에서는 이재명 정권이 북한쪽에 제시할 카드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한반도 리스크(현실적으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존할 것이다.

이 문제는 단지 남북한 관계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과 사실상 동맹관계를 재구축한 러시아는 북한이 남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정도에 상응하여 남한과의 관계를 재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남한은 이미 러시아와는 공식적으로는 경제 관계를 거의 끊어버린 상태지만,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한 글로벌 사우스 시장에 한국이 진출하기 위해서는 남한도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 만일 러시아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남한의 글로벌 사우스 시장 확대 정책은 상당한 장애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넷째로, 개헌 논의 대상에 유엔 인권협약에서 권하고 있는 사회권, 경제권 등의 기본적 권리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부분적으로는 사회권은 헌법 개정 논의 사항이 아니라, 법률적 정책적으로 기본사회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으로 갈음하고 있다. 또 교육권 주거권 건강권 적절한 생활 수준에 대한 권리 등 인간 존엄성 실현에 필수적인 사회경제적 권리도 정책적 고려 대상일 뿐, 헌법적 명시 대상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재명 정권의 국정과제 보고서의 개헌 논의는 사실상 권력 구조와 헌법 전문에 그칠 뿐이다. 이 부분은 향후 개헌 과정에서 논란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국정과제에서 제시된 개헌의 또 다른 문제는 그 시점이다. 국정과제 보고서에서는 개헌 국민투표 회부 시점을 2026년 지방의회 선거나 2018년 총선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2026년 개헌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국회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최소한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2026년 개헌 투표가 실시된다면 이는 전면적인 헌법 개정이 아니라, 극히 일부 조항(예컨대 사법 개혁 및 대통령 권한 관련)만을 손보게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이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또한 이같은 성격의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이른바 87년 체제는 종언을 고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된다는 것을 뜻한다.

보다 현실적인 시점은 2028년 총선과 동시에 개헌을 하는 것이다. 이 때는 계엄-내란과 관련된 사법 절차들이 마무리되고 근본적으로 한국 사회를 전환시킬 방안들(민주당의 장기 집권)이 어느 정도 구체화된 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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