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2025년 국내정세 전망 – 한반도 지정학과 지경학, 그리고 위기의 징후와 폭발들: 계엄탄핵국면의 의미와 탄핵후 한국 정치경제, 지배계급의 선택

2025년 국내정세 전망

한반도 지정학과 지경학, 그리고 위기의 징후와 폭발들

: 계엄탄핵국면의 의미와 탄핵후 한국 정치경제, 지배계급의 선택

2025년 4월 9일 / 이슈 리포트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장

트럼프 상호관세, 세계화, 마라라고협정 QUAD, 한반도 지정학, 경제발전전략, 내수, 가계부채, 테크노크라트 정부, 계엄 선포, 탄핵, 헌법재판소, 87년체제, 헌정질서, 헌법적 힘, 6.3대선, 개헌론, 제헌권력

1부. 한반도 지정학과 지경학
– 
 계엄탄핵국면의 지구적 맥락 

1. 감자가 잘못했네

미국의 트럼프 정권은 왜 한국에 고관세를 부과하는가? 감자 때문이다. 농담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이다.
하워드 루트닉(미 상무장관), 4월 3일 FOX News 인터뷰: “한국은 지난 2012년에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하기로 하면서 그 대신에 미국의 농산물과 식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그런데 한국에 진출한 맥도널드(패스트 푸드 체인)는 한국에서 프렌치 프라이를 팔지 못한다. 왜 그런지 아느냐? 한국이 감자의 원산지 증명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 주에서야 감자 원산지 증명을 철회하겠다고 우리에게 밝혀왔다. 이게 무역장벽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세계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물론 감자가 이렇게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은 감자는 핑계에 불과하며, 단지 눈여겨 볼 것은 루트닉 상무장관만이 아니라, 스테판 밀너 백악관 부보좌관, 피터 나바로 전 백악관 통상보좌관, 그리고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현 미국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유독 ‘한국’을 꼭 집어서 불공정 무역의 사례로 언급한다는 점이다.
그 구체적인 사례가 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루트닉은 한국이 미국의 자동차와 반도체를 ‘훔쳐갔다’고 주장했고, 트럼프는 ‘한국은 돈이 많으니’ 우리에게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수식. 상품수지 적자분을 수입액으로 나누었다. 출처:<CNBC>

이를 한국 언론에서는 단순화시켜서 주한미군 주둔 비용이라고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는 트럼프를 너무 ‘졸’로 보고 하는 얘기다. 그는 고작 몇 억 달러 푼돈에 연연할 인물이 아니다.

트럼프가 8일 한국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통화를 한 뒤 올린 트위터에서 한국의 협상 대표팀이 오고 있다고 희희낙낙했으니 실제로 무엇이 흥정에 오를지는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한덕수 권한대행, 그리고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행정부를 운용하고 있는 테크노크라트 전체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기꺼이 트럼프에게 ‘퍼 줄’ 처지 혹은 위치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트럼프와 통화 직전에 한덕수는 대통령 권한대행임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 대통령 몫 2인을 돌연 임명함으로써 헌재 내에 ‘알박기’에 들어갔고 야당은 한덕수가 눈에 뻔히 보이는 ‘위헌적’ 행위를 하더라도 재탄핵을 감히 감행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왜냐하면 트럼프가 한덕수와 전화통화를 했다는 것은 그를 현재 한국의 공식적인 정권으로 그리고 대화 파트너로 인정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인정’한 인물을 탄핵하기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특히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더욱 그럴 것이다. 

말인즉슨, 이제는 지금쯤 짧은 영광에서 깨어나 권력층에서 밀려나고 있는 일론 머스크의 분노의 트윗이 우스꽝스럽게도 맞기는 하다; “하버드대학을 나왔다는 것은 오히려 나쁜 일이다. 이 벽돌보다 더한 돌대가리야”. 머스크가 관세정책을 비난하며 이번 사태의 배후 주역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고문을 두고 한 얘기다. 여기서 우리는 한덕수도 하버드를 나왔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만일 한덕수가 미국과 어떤 ‘계약’을 맺게 된다면(혹은 이미 저 비싼 ‘통화료’ 값으로 약속했다면), 예컨대 의회 승인까지는 필요치않지만 한국에는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협정’을 맺는다면(예컨대 한미행정협정-소파), 6월3일 대선에서 뽑힐 차기 대통령은 과연 그 협정을 ‘직무대행의 월권’이라고 무효화시킬 수 있을까?
이는 헌법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헌재 재판소라는 제도가 준비되어 있다. 물론 설마 하버드대학까지 나오신 고급하신 지성께서 이런 일을 하시리라고는 생각지 않아야겠다만 글쎄다. 세상에 워낙 별별 일이 다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2. 전쟁을 위한 관세

트럼프 정권이 느닷없이 이른바 해방절(liberation day)을 선포하면서 부과한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는 실은 ‘상호’적인 것도 ‘관세’에 관한 것도 아니다. 심지어는 세금에 관한 것조차 아니다.

배경은 이것이다. 지난 40여 년간의 세계화 (globalization)의 결과, 미국은 파산했다. 기업으로 말하자면 부채가 영업이익보다 구조적으로 많은 상태이며, 심지어는 이자 지불액이 영업이익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현상태에서 국내 세금을 늘려서 혹은 공공 지출을 줄여서 부채를 줄이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
그래서 미국은 아예 부채(국가 부채)를 안 갚기로 작정했다. 바로 이것이 고관세의 진정한 목적이다. 돈을 떼먹기 위해서 먼저 상대방의 돈을 갈취하는 것이다.

트럼프 정권이 기획하고 있는 관세 정책의 다음 국면으로 보이는 이른바 ‘마라라고 협정’은 미국으로부터 무역흑자(상품수지)를 기록하고 있는 국가들에게 저금리의 100년짜리 미국 장기국채를 의무적으로 매입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미국은 향후 100년 동안 부채 걱정없이 살 수 있다. 그리고 100년 동안의 인플레이션율을 감안한다면 실은 이건 아예 공짜에 다름없다(년간 2%의 인플레이션만 계산해도 100년이면 그 가치는 1/5 이하로 떨어진다).
그러니까 미국의 계획은 관세로 협박해서 그동안 무역 상대국이 벌어들인 돈을 공짜로 떼어가겠다는 것이다.

앞서 1932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선포한 첫 번째 정책이 금달러 교환비율 수정(당시는 금 태환제)이었다. 금 1온스당 8.3달러이던 교환비율을 35달러로 물타기를 했다. 당시 <Financial Times>는 이를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부도’라고 비난했었다.
그 때 루즈벨트의 물타기는 트럼프의 마라라고 협정에 비하면 애들 장난에 가깝다. 아마도 19세기 초 아이티가 프랑스에서 독립하면서 거꾸로 식민지 상실 비용을 프랑스에 배상한 사건 정도가 비견될 만 할 것이다.

버블에 관한 한 미국의 연방준비은행보다도 더 자료를 많이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오크트리 캐피탈의 설립자인 하워드 맑스는 4월 8일 블룸버그TV와 인터뷰에서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은 지난 2차 대전 이후 가장 큰 세계적 변동이다. 그동안 각국의 경제적 통합(세계화)는 전쟁을 회피하기 위해 상호의존성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냈던 것”인데, “고관세 정책은 이같은 국제 체제를 무너뜨린다”고 말했다.
그렇다. 아마도 칼 폴라니가 살아있었더라면 ‘전쟁 없는 80년간’이라고 불렀을 상대적 안정기의 기반을 트럼프는 무너뜨렸으며, 그 다음에 올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3. 자본의 경쟁 – 미중관계의 본질 

어차피 대놓고 강탈할 바에야 미국이 굳이 중국을 타겟 삼아 전쟁 불사를 선언할 이유는 없다(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최근 전군에 중국과의 전쟁에 대비하라는 메모를 넘겼다).
그런데도 미국이 여전히 중국에 죽고 못사는 이유가 있다.

미국 기업의 해외 이윤 추이 출처 :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미국 기업들의 이윤 추이를 보면, 지난 2020년의 코로나 사태 이후 이윤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런데 이 이윤은 미국 내에서의 인플레이션(즉 기업의 상품 가격 인상)에 기반한 이윤 인플레이션이었다.
반면 미국 기업들이 해외 기업들과 경쟁한 결과로 얻는 해외이윤은 미국 기업들의 독점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8-19년의 고점을 여전히 하회하고 있다.
즉 미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다른 기업들에게 뒤쳐지고 있거나 혹은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다른 국가에서는 디플레이션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지나간 미래, 오지 않을 과거, 제국의 망령: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과 전세계 질서”, 2024년 11월 14일 참조)

전자(해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뒤쳐지는 것)의 경우에는 가장 유력한 ’범인‘은 중국이다. 중국 기업들의 기술 혁신 및 시장 점유율 확대 속도는 굉장히 빠른 상태이며, 지난 2018년 트럼프 1기 정권에서 대중국 기술봉쇄 조처(화웨이 제재로 대표되는) 이후 오히려 그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
즉 미국의 이제까지의 대중국 봉쇄는 거의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 따라서 미국 기업들로서는, 그리고 미국 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미국 정부로서는 이제까지의 단순한 제재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아무런 실익이 없다. 
다른 말로 해서, 미-중간 대립의 근본적 성격은 자본간의 경쟁이며, 국가는 기업들이 피말리는 국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동원한 피튀기는 기계다.

미국에서 벽돌보다 단단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 교수 출신의 나바로 같은 특수한 예를 제외한다면, 현재 트럼프 관세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세력들은 월가의 채권 브로커(루트닉 상무장관), 월가의 통화/채권브로커(베센트 재무장관), 그리고 실은 군산복합체인 실리콘밸리의 투자자의 대부인 피터 티엘 등이다.
즉 트럼프가 그리고 MAGA 광신도들이 그토록 원하는 ’제조업‘ 기업가들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지나친 관세를 우려한다.

한국에서 최상목 재무장관이 고작 2억원 어치 미국 국채를 매입한 것으로 욕을 먹고 있다면, 미국 국채를 수억 달러 어치를 들고 있는 루트닉을 생각해 보라. 미국 국채 가격이 상승(국채 수익률 하락)하면 루트닉은 떼돈을 번다.

미국이 ’재정적자‘ 축소에 목숨을 걸고 온갖 재정 지출을 줄이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면, 드디어 1조 달러를 넘어선 국방예산을 생각해 보라. 그 돈은 실리콘밸리로 갈 것이며, 만약 전쟁이 하나 더 발발한다면, 실리콘밸리는 골든밸리가 될 것이다.

중국에 대한 ’전쟁론‘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또 이제는 전통적인 제조업을 넘어서 실리콘밸리의 첨단산업에 도전하고 있는 중국기업들을 도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서구 언론이나 한국 언론들이 뭐라고 떠들던 간에 중국은 대만을 침공할 의사가 적어도 현재로서는 없지만 반대로 미국이 대만을 무장시킨다면(예컨대 극단적으로 미국이 대만에 핵무기를 배치한다고 가정해 보자), 중국은 일국 통일은 물론이고 해상 통행로 차단 위험 때문에 전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진다.

미국의 입장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것, 즉 중국이 경쟁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아직도 미국의 힘이 더 세다고 간주되는 지금 시점에, 중국을 전쟁을 포함한 수단으로 봉쇄하여 내부적인 압력에 의해서 내파(implosion)하도록 유도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미군의 직접 개입까지도 포함하는 기존 대미 종속국가들을 동원하는 전략이 당연히 포함된다(가장 대표적인 곳이 필리핀이다. 필리핀에서는 마르코스 현 대통령과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두테르테 전 대통령을 전격적으로 체포하여 국제형사재판소로 보내는 한편 중국을 도발할 수 있는 미사일 배치를 강화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개헌을 통해 유화적 권력 분점을 꾀하려는 시도는 실은 훗날 기술적인 법적 정치적 핑계를 구실삼아 반대파를 압살하려는 잠재적 기도라고 할 수 있다).

4. 미국의 전략과 한반도, 계엄정국 

한반도는 바로 이같은 미중 대립 구도의 한복판에 있다. 미국으로서는 대만을 직접 동원해 중국을 겨냥하는 것은 미중간 전면적 군사적 대립의 위험 때문에 어렵지만, 키우고 있는 개들을 동원해서 이웃을 물게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윤석열 정권 하에서 계엄 직전 무인기를 평양으로 보내고(이제까지의 보도로 보면 휴전선을 관리하고 있는 유엔사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국정원이 백령도에서 평양으로 무인기를 보낸 것으로 나타난다. 즉 군부의 직접 개입은 회피한 셈이다), 과거 연평도 포격 사건의 전례가 된 지역에 해안포를 발사하는 등 북한에 대해 직접 도발했던 것은, 바로 이같은 미국의 이해관계와 남한 내부 현 집권세력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계엄 두 달 전인 지난해 10월 말 APEC 정상회의에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윤석렬 당시 남한 대통령과 회담한 것은 남한의 전쟁 도발 위험이 매우 컸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시사한다(이 회담은 윤석렬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이뤄진 한중 정상회담이었다).
당시 중국 Global Times 보도를 보면, 시진핑은 한국에 대해 지역 불안정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적어도 계엄 두 달 전 상황에서는 남한 쪽의 군사도발 유도 행위가 중국이 용인할 수준을 넘어섰던 것으로 보이며, APEC 정상회의에서 시진핑-윤석열 첫 정상 회담 이후에는 남한 정권의 대북 도발은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들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안정이 실은 중국과 북한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남한이 오히려 도발자 지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같은 상황 전개는 뒤에서도 언급하겠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 변화가 매우 유동적이며 남북한의 행동 여하에 따라서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상태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한의 정치적 변동(계엄-탄핵)에 대한 미국의 태도, 특히 트럼프 정권의 반응은 현재까지는 거의 드러난 것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미국의 정보공동체(Intelligence Community) 내에서 트럼프 지지가 확정된 것은 지난해 7월 무렵이었으며, 윤석열 정권이 쿠데타를 본격적으로 기획하고 추진한 것은 비록 지난 2023년 하반기 무렵이기는 했지만, 정작 그 시행 시기는 미국 정권 교체기(동시에 주한 미국대사와 주한 미군사령관 교체 시기이기도 했다)에 맞췄던 것을 보면 미국 트럼프 안보라인과의 일정한 교감은 존재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상대방(트럼프 안보라인)이 노골적으로 지지/반대를 표명하지는 않는다. 다만 간접적 통로를 통해 또는 선문답과도 같은 모호한 언어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명할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정권이 윤석열의 계엄을 지지했는지는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러나 최소한 이들이 한국의 계엄 사태를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정황은 존재한다.

예컨대 윤석열의 계엄 선포가 3시간 만에 한국 국회에서 190:0의 만장일치로 해제 결의안이 통과된 직후 트럼프의 오른팔인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에 국회 표결 사진을 올리면서 “Wow”라고 썼다.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한국 국회에서 만장일치 계엄 해제 투표 결과를 보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출처 : 트위터

만일 계엄 선포 그 자체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면, 일반적으로는 계엄 사진을 올리고 ’충격‘이라고 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머스크는 의회 표결 장면 사진을 올리며 ’충격‘이라고 썼다. 이는 계엄에 대한 놀라움이 아니라, 계엄에 대한 반응(국회 표결 결과)에 대한 놀라움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즉 계엄 그 자체는 미국 당국이 인지하고  있었거나 놀라운 일이 아니었으며, 계엄에 대한 한국 의회의 신속한 반응은 그들이 예상했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나 군 및 정보기관 출신인 김병주, 박선원 의원들도 계엄 해제 이후 “계엄령 선포 계획은 사전에 알고 있었으며 단지 그 시기가 12월 10-15일 무렵으로 예상하고 있었다”고 밝힌 바 있는데, 당연히 한국 야당 의원들이 아는 정보를 미국 정보당국이 모를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또한 그 진위여부는 불확실하지만 뉴스공장의 김어준 대표도 “(자신에 대한) 계엄군의 체포 계획을 외국 대사관으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즉, 계엄은 일반 대중들에게는 ’뜻밖‘의 사건이었지만, 그러나 정치권과 주한 해외기관 등에게는 이미 알려진 공지의 사실이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계엄 자체에 대한 트럼프 정권의 지지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그러나 최근의 한미간 접촉 사례와 그 이후의 사건들을 보면, 트럼프 정권은 최소한 현재의 테크노크라트가 끌어가고 있는 권한대행 정부를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이는 반대로 트럼프 정권이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는 간접적인 사인이기도 하다).

계엄이후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가결되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평의가 한창 진행되는 중 서울 중심가에서 윤석열 탄핵선고 촉구 집회가 열리던 지난 2월 6일 신원식 안보실장과 마이크 왈츠 미 안보보좌관 사이에 대화가 이뤄진 뒤 한국에서 극우시위가 터져나왔고, 트럼프 정권이 윤석열을 지지한다는 주장이 탄핵 반대 시위대 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4월 8일에는 트럼프와 한덕수 대행 사이의 전화 통화가 이뤄졌다. 이는 윤석열의 운명에 대해서 미국의 태도가 어떤지는 불확실해도 헌재의 탄핵 인용 판결 이후에 들어선 한덕수 ‘과도 정권’에 대해서는 미국이 대화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와 한덕수의 전화 통화는 국내 언론에 의해서 ‘정상통화’라고까지 불렸다. 

따라서 헌재 재판관 임명 등에 대해서 한덕수 대행이 위헌적인 행동을 할지라도 국회가 그를 재탄핵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매우 협소해졌다(미국이 공인한 파트너를 한국 내에서 자체적으로 제거하기는 매우 힘들다. 박근혜의 경우에는 미국이 거의 노골적으로 탄핵을 지지했으며, 이것이 집권 여당이 자신들의 대통령인 박근혜 탄핵의 선봉에 선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계엄 이후 현재까지의 과정에서 미루어 본다면, 미국은 한국의 민주주의 프로세스 자체에는 손대지 않지만, 그러나 어떤 세력이 정권을 장악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리고 누가 들어서든 미국의 이익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미있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같은 미국의 태도는 향후 내란 세력 처벌은 물론, 대선 과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의 계엄 실패로 인해서 적어도 당분간은 트럼프의 정책 수행 방식인 ’escalate to de-escalate’(긴장완화를 위한 긴장 강화) 정책이 한반도에서 통용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신 미국이 살려줄 수 있는 한국의 정치세력들을 통해 한국에서 뜯어낼 수 있는 이권들은 훨씬 많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헌법이 말하고 헌법재판소가 탄핵 인용 판결문에서 인용한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말은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국민들 중에 누구도 이같은 ‘정치’와 ‘정책’에 표를 던진 사람은 없으며, 심지어는 질문받지조차 않았으며, 따라서 주권이 승리했다고 환호작약하는 그 순간에 실은 국민의 주권은 부정당하고 있었거나,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5. 사라질 QUAD

지난 1월 미국의 씽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는 한국 외교안보 관련 전문가들을 상대로 한미 관계 및 한중 관계에 대한 간단한 의견 조사를 했다..아주 의미있는 답변들이 제출되었다.

이 설문에 대한 관련 전문가들의 답변을 보면, 이미 이 시기는 윤석열이 국회에서 탄핵 소추된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대외정책이 지난 문재인 정권 때의 투 트랙 노선(외교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포기하고 미국 주도의 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자 동맹)에 참여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들은 윤석열 탄핵이 기각되거나 혹은 인용되더라도 다음에 들어서는 정권이 한미(일)동맹을 더 강화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약간 뜻밖이기는 하다. 이들은 민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더라도 한미 관계는 살짝 어려워지는 정도로만 보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실은 질문 그 자체이다. 브루킹스 연구소가 묻고 있는 것은 한국의 정치변동이 동아시아 동맹에 미치는 영향과, 그 다음으로는 한국이 중국을 통해 북-러 밀착을 저지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이 두 문제가 미국 정책 당국이 현재 한반도와 관련하여 주목하고 있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외교안보 라인이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트럼프가 한덕수와 통화한 것을 보면 내부적으로는 둘 다 부정적인 결론을 내린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실은 브루킹스는 문제를 잘못 제출했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자 동맹인 QUAD는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에는 사실상 형해화되고 있다.
최근 인도는 중국과의 국경 분쟁을 덮어두기로 하고 양국간 관계 강화에 힘을 쓰고 있다. 그 배경에는 약간 새로운 측면이 있다; 지난 3월 말 인도의 쟈이샹카르 외무장관은 “왜 인도는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딘가?”하는 기자의 질문에 “그건 미국이 중국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다소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이는 트럼프 정권이 겉으로는 매우 시끄러운 중국 봉쇄 정책을 말하지만, 실은 중국을 QUAD보다도 우선 순위에 놓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런 미국의 대외정책 하에서는 인도도 중국과 대립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
즉 이런 와중에 전문가들 역시 굳이 한국이 QUAD에 참여하느니 마느니 먼저 나서서 얘기할 이유도 없게 된 것이다.

이같은 대외 환경 변화는 이미 삼성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삼성의 이재용 회장은 3월 이재명 민주당 당 대표와 만난 뒤 중국에서 시진핑 주석이 개최한 기업인 회의에 참가했다. 이 회의는 전세계에서 약 80여명의 대기업 CEO와 금융투자자들이 모이는 대규모 회의였다(애플의 팀 쿡도 참석했다). 자본가들은 여전히 자본의 이해를 위해서라면, 국경을 넘고 국가를 넘어서 손을 잡고 있다. 특히 이재용 삼성회장이 이재명을 만난 후 중국 시진핑이 주최한 세계 기업인회의에 참석했다는 점을 주목하자.  

삼성의 중국 접근은 미국이 지금 관세 문제로 중국과 결사항전이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는 뜻밖의, 그리고 무모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향후 미-중 관계, 그리고 향후의 한국 국내 정치를 간접적으로 말해준다(삼성은 이 정도를 파악할 정보력은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지금의 요란한 소음은 멀지않아 잠잠해질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한반도 정세가 급작스럽게 결정적으로 악화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볼 수 있다.

물론 de-escalation의 시기가 오기까지는 아직 좀 더 시간이 남았다. 트럼프 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Project 2025>는 트럼프 취임 180일 이내에 주요 정책을 전격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는데(이 때가 escalation의 시기이다), 대략 7월까지는 매우 시끄러울 것이며 그 정해진 ‘약속 대련’ 중에 한반도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시진핑의 EU 방문도 7월로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놀라운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정책결정자들은 de-escalation도 예상하고 있기 때문에 적대적인 돌발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 시장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 증시는 급락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같은 하락은 의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베센트 재무장관의 말을 그대로 빌자면, 올 상반기에 예정된 약 6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채를 저금리로 차환하기 위한 디플레이션 충격 유도가 첫 번째 목적이며, 두 번째는 미국 증시가 버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이를 선제적으로 예방하는 조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급락의 시기가 지나면 다시 증시 부양책이 나올 것으로 이미 시장은 예상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역설적이지만, 미 장기국채 금리는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
시장 투자자들은 베센트가 원하는 정도로의 국채 수익률(30년물 기준 4% 이하)로 떨어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증시가 약 20%는 추가로 하락해야 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중국의 대외정책은 ‘안정화’와 ‘무한버티기’에 있다. 중국은 트럼프 정권의 전격전이 오래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주변국의 상황이 급변하는 것을 저지하고 중국에 대한 관세 공격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판단한다.

실제로 트럼프가 신경질적으로 100%가 넘는 대중국 관세를 부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씨티은행은 중국의 GDP가 약 0.5% 포인트 하락하는데 그칠 것으로 보고 있으며, 골드만삭스는 약 2% 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분석한다.
즉, 관세 충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 내부적으로 흡수할 수 있을만한 정도라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장기전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대선 트럼프 승리 분석 기사에서도 언급했듯이(“2025년 국제정세 전망, 누구나 처음엔 창대하리라“, 2025년 1월 31일), 미국과 중국은 대립적이며 경쟁적인 글로벌 헤게머니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 여부를 놓고 외교적으로, 경제적으로 각축을 벌이고 있는 중이며, 바이든 정권에 비해 달라진 것은 적어도 트럼프는 중국을 이같은 경쟁상대로 ‘인정’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상호 인정 뒤에는) 상호간에 타협의 여지가 생긴다. 다만 아직까지는 힘겨루기 단계이기 때문에 갈등이 조금 더 증폭될 여지는 있다.

2부. 한국 경제
– 계엄탄핵국면의 정치경제학적 맥락 

1. 내수 침체, 부동산, 부채

지난 2022년 이후 한국 경제 통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소매판매의 감소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소매 판매 추이. 출처 : 통계청

2022년은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매판매 총액은 오히려 감소했다. 이는 국내에서의 상품 소매 판매가 극히 부진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 요식업 및 유통업 부문 소매판매의 감소폭이 컸는데, 이는 이른바 중소자영업자, 또는 흔히 ‘시장’이라고 불리는 사업양태에서 커다란 변동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경기 변동 지수. 출처 : 통계청

한국의 경기변동 지수를 보면 미래 경기를 보여주는 경기 선행지수 변동치는 2023년 이후 완만하게나마 반등하고 있는데 반해서, 현재 경기를 나타내는 경기동행지수 변동치는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인다.
이는 실물 체감경기가 매우 나쁘다는 뜻이며, 따라서 집권세력에게 매우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경기동행지수 변동치가 반등하지 못하고 흘러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가장 큰 이유는 건설/부동산 부문의 부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건설경기 지수. 출처 : 통계청

건설업의 부진과 더불어 일용직 노동자의 감소도 함께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업율은 여전히 낮게 유지되고 있으며, 고용률은 약간 높아졌다.
수출 부문은 2022년, 23년 두 해 동안 부진하다가, 24년 초부터는 반등하기 시작했다. 또 설비투자는 큰 폭은 아니지만 완만하게나마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현재의 한국 경제를 요약해서 말하자면, 외부 시장을 겨냥한 투자 및 생산 부문은 그런대로 호조를 보이는데 비해서, 내수를 구성하는 중요 요인인 건설 및 부동산 부문이 부진하고 이것이 국내 소매판매 위축을 야기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같은 소매판매 위축은 자영업자들의 몰락을 야기했으며, 이로 인한 정치적 사회적 불만이 팽배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승리 요인 가운데 하나는 자영업자들의 지지였다.(“2024년 제 22대 총선 분석 – 선거와 계급: 누구의 승리인가?“, 2024년 04월 18일 참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또한 왜 정부는 이같은 건설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건설 부양책(흔히 신도시 개발이나 대규모 국토 개발이 쓰인다)을 쓰지 않고 있을까?

다음 통계에 그 해답이 있다.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 추이.출처: 한국은행

지난 1997년 IMF 구제금융 이후 한국 경제는 두 개의 축으로 유지되어 왔다. 하나는 시장경쟁력을 가진 독점대기업의 해외 시장 공략이며, 다른 하나는 주택 건설 및 인프라 개발을 통한 내수 경제였다.

이 두 가지는 거의 독립적으로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산업적으로 거의 연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을 겨냥한 한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국내에서 수직적 계열 하청화를 통해 초과 이윤을 벌어들이는 기업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독점대기업의 이윤이 임금으로 전화되어 경제 전체를 순환하는 구조가 아니었다.

정부 당국은 이를 보조하기 위해서 정책적으로 건설부문 진작책을 썼으며 이것이 주택값 상승과 이른바 토건족의 발흥을 가져왔고, 나아가 지대계급(rentier class)의 성장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대 계급의 정치적 성격에 대해서는 “제22대 총선 분석-선거와 계급: 누구의 승리인가?” (2024년 04월 18일) 참고.

다시 말해서, 한국에서의 토건족의 형성은 단지 주택 수요나(내 집 마련 욕망), 투기적 토지 거래 혹은 건설기업들의 호구지책으로 마련되었던 것이 아니라, 수출 주도 산업화 경제 모델 하에서 하청기업들이 종속적으로 수직 계열화되어 내수 시장과 상대적으로 분리된 순환 싸이클을 가지게 된 결과, 그로 인한 부작용을 완화하고자 정부가 인위적으로 부양한 산업정책의 필연적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의 출범을 전후하여 지난 2022년 이후의 약 4년 여 간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감소는 2000년 대 초반 이래 지속되었던 이같은 투 트랙 정책에 있어서 중대한 변동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같은 변동이 발생한 이유는 단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의 발생으로 인한 상대적 고금리 시대의 도래를 꼽을 수 있다.
가계 부채의 절반을 차지하는 주택 관련 부채에 있어서 금리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금리가 높아지면 이자 부담 때문에 주택 매입을 위한 대출은 감소하며 이같은 과정을 de-leveraging이라고 부른다.

보다 구조적인 이유로는 한국에서 주택 관련 민간부채 비율이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매우 높기 때문에 금융시장에 급격한 변동이 발생하면 금융 위기로 전화할 가능성이 높아서 정책 당국이 인위적으로라도 부동산 경기를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국제결제은행은 한국의 가계부채에 대해 계속 경고해왔다).

가계 대출 증가율이 둔화되면 주택 거래가 감소하고 이는 신규 주택 건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건설업 일반이 침체된다. 동시에 건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주로 일용공)들의 숫자가 감소하고 이는 저임금 가계의 소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부동산 거래업도 동시에 부진에 빠지며 관련 서비스업종도 침체에 들어간다.

2. 테크노크라트정권의 해법과 민주당의 해법 

문제는 왜 윤석열 정권이 이같은 디레버레징을 추진했는가, 혹은 이것이 자연스러운 시장의 과정이라면 왜 이같은 내수 침체를 방관했는가 하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정치 집단은 선거를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스스로는 이같은 디레버레징을 시도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디레버레징은 외부로부터의 강제에 의해 수행된다. BIS(국제결제은행, 부채 및 금융 시스템 관리), IMF(국가 재정 건전성 관리), OECD(산업정책 관리)등의 국제기구는 강압적으로 이같은 경제적으로 고통스럽고 정치적으로 손실이 되는 전략을 수행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기구들이며, 한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동시에 이는 왜 윤석열 정권이 아무런 정치적 베이스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힘에 입당한지 고작 몇 개월만에 후보가 되고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대답도 시사한다.
만일 정치적 기반을 가진 정치집단이 이같은 과업을 수행했더라면 그 집단은 다음 선거에서는, 그리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고통스러운 과정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아무런 배경도 없고, 따라서 굳이 유권자들에게 책임질 필요도 없고 인기에도 연연해하지 않는 집단이 과제를 수행한다(유럽의 사례를 보면 이런 경우에는 테크노크라트 정권이 들어선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출신이며, 그의 정부는 일종의 테크노크라트 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즉 2022년 이후의 디레버레징 과정은 이미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과제였으며 이를 수행하기에는 아무런 정치적 부담도 가지지 않는 검찰 출신의 윤석열 정권이 차라리 적합했을 것이다. 동시에 이로 인한 대중적 반발이 생겼을 때도 공안 검사 출신이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예비적 성격도 가진다.

한국에서 외부 국제기구의 이같은 업무를 대리하는 특수한 성격의 테크노크라트 집단은 바로 F4로 통칭되는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 참석자들인 한국은행장, 금감원장, 재무장관, 금융위원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재정과 금융, 화폐를 총괄하는 책임자들로 정부의 정책적 노선에 자유롭게 자신들의 권한을 행사하고 조율한다.

동시에 윤석열 정권은 이같은 내수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완만하기는 하지만 긴축 재정을 편성, 운용했는데 이 역시 정치 집단이 권력을 잡았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과제였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같은 정권은 일종의 불임성 정권이다. 즉, 처음부터 대중적 지지를 겨냥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 정권을 탄생시키지 못한다. 소속 정당의 재집권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는 박근혜대통령의 탄핵의 경우에서 보듯이 정권과 정당을 약간은 구분해야한다. 

F4에서 발생한 최근의 가장 흥미로운 사건은 이복현 금감위원장이 상법 개정안의 거부권 행사에 반대하면서 사임 의사를 밝혔다가 철회한 일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적극 지지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주주에 대한 이사의 책임 강화)은 경제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기업 구조와 사업 방향에 영향을 미치며 이를 통해 거시 경제 일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기존의 대주주들이 기업 잉여를 주주에게 환원하지 않고 분할상장 등의 편법을 통해 주가는 억압하면서도 자신들의 부는 늘려나가는 관행을 저지하는데 있다. 따라서 기업 소유주들의 저항이 매우 거셌다.

이재명 대표가 금융투자세(주식 차익에 대한 과세)를 포기하는 대신 들고 나온 상법 개정안은 구조적으로 주주의 발언권을 높여 기업의 자금 조달이 용이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다. 즉 투자 촉진책인 것이다. 그리고 이 ‘투자’의 주체는 국내 자본이라기 보다는(국내에서는 그럴만한 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외의 자본(특히 중동 및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따라서 만일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이재명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확실시된다), 국내 증시 부양 효과와 역외 자본의 국내 유입 효과가 동시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반면 이 조치는 해당 기업의 노동자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소지가 있다. 따라서 전체 경제의 파이는 커지는 반면에 개별 기업에서의 노동쟁의 가능성은 더 커진다.

이재명이 대통령이 될 경우, 노동정책에 있어서는 임금 형태에 있어서 포괄임금제를 폐기하거나 수정하고 노동시간 단축(주 4.5일제) 정책을 어느 정도 추진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는 문재인 정부가 소극적이나마 감행했던 비정규직 축소 정책을 수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고용형태(정규직/비정규직)의 문제를 임금의 문제(비정규직의 급여가 높으면 정규직이 아니더라도 괜찮지 않느냐고 발언)로 치환해서 다룰 것이다.
또한 경제정책, 특히 소득정책에 있어서는 지난 대선 때의 공약인 기본소득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경기 부양의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전국민에게 25만원 씩 나눠주는 정책은 추진해보려 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의 한국 경제 상황에서는 이런 짜투리 정책만으로는 일시적인 효과일 뿐, 경기 부양이 가능하지 않다는데 있다. 결국 기업이 부채를 늘리거나(투자 확대), 또는 가계가 부채를 늘리는 방안(주택 경기 활성화)에 손을 대야만 한다.
만일 이재명 정권이 다시 가계 부채 증가를 용인한다면, 주택 가격 상승이 다시 한번 발생할 수 있다.
과연 이재명 정권이 이같은 경기 부양책을 국제기구와의 갈등 없이 풀어나갈 수 있는지, 그리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높아질 가능성에 대한 비장의 대책이 있는지는 현재로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무역 부문에 있어서는 민주당 정권은 문재인 정권의 미중간에 ‘투 트랙’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과의 마찰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외교적으로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오히려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여 미국으로부터의 손실을 만회하려고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여하튼 
만일 미국과 무역 관세 부문에 대한 조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는 상당히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이에 대해서는 “썩은 동앗줄- 트럼프 관세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2024년 11월 14일 참조)

3부. 국내 정치: 87년체제의 막장 

1. 87년 체제와 민주주의의 파시즘적 기초 

이번 계엄-탄핵 사태에서 두드러지는 점 중의 하나는 ‘87년 체제’라는 용어가 광범위하게 쓰였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87년 체제라는 표현보다는 6공화국이라는 용어가 더 자주 등장했지만, 계엄 이후에는 정당을 막론하고, 그리고 이 체제 수호파나 혹은 체제 전환을 요구하는 쪽 모두 87년 체제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같은 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정치인이든 학자든 상관없이, 엄밀한 개념적 정의를 전제하고 쓰는 경우는 드물다.

이같은 표현의 교체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과거의 용법이 단순히 6공화국의 헌법적 측면만을 지시하고 있다면, 87년 체제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법적인 측면보다는 그것을 둘러싼 정치적 지형적 측면들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른바 87년 체제는 ‘체제 변화’(regime change)라는 측면에서는 엘리트간의 정치적 거래(political compromise)에 의해 출발하였다. 하지만 거래에 의한 이행을 둘러싼 맥락은 보다 정치경제학적인 맥락을 담고 있다(“윤석열 탄핵과 ‘촛불의 운동정치와 87년 체제의 이중전환(2018)의 현재성”, 2025년 01월 31일 참조).

따라서 여기서 분석적 차원에서 6공화국(헌법) 그 자체와 그것을 탄생시킨 ‘헌정질서적 힘들'(constitutional forces)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 헌정질서적인 정치적 힘이 단일하지 않았으며, 그 힘들 사이의 우열도 명확하지도 않았다는데 있었다.

현재의 헌법(6공화국)을 탄생시킨 정치적 힘은 넓게 보았을 때, 다음 두 가지였다; 5공화국의 주축이었던 독재 권력과 이에 대항했던 야당, 그리고 그들과 연계된 ‘재야’라고 불리던 민주화운동세력이다 (부분적으로는 87 민주화 운동의 주축이었던 학생운동이 존재하지만, 그러나 이들은 사실상 헌법수립 과정에서는 배제되었다. 변혁운동을 지향하던 좌파세력과 노동자운동 세력도 배제되었다) 
그리고 이 두 힘은 각각 여러가지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세력들을 자기 구성 요소로 포괄하고 있었다.

흔히 ‘군부독재’로 불리는 5공의 정치 세력들은, 우선 정치적 기원에 있어서 실은 단순한 ‘군부’만으로 구축된 것은 아니었다. 전두환 군부의 헌법기초 기구였던 국가보위비상입법회의의 인적 구성을 살펴보면 유신 정권의 일부 구정치인들과 매우 흥미롭게도 초기적인 ‘신자유주의자’(시장주의자)들을 포함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아직까지도 정치권에 ‘브로커’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김종인이다(뒤에는 버마 아웅산에서 사망한 김재익 당시 청와대 경제 수석. 그는 한국에 시장경제 도입을 추진한 대표적인 경제관료였다).

경제정책에 있어서 출범 초기 직후를 제외하고는(출범 초기는 강제적으로 자본통폐합이 국가 주도에 의해 이루어졌다), 전두환 정권은 매우 흥미롭게도 시장자유주의 정책을 지향했으며(심지어는 유신의 가격 통제 정책은 82년을 전후해서 폐기된다), 나아가 사회자유주의 정책(학원 자유화, 통금 폐지 등)을 수행했다.
즉 한국에서 자유주의의 형성 과정에서 전두환 정권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들이 역설적으로 보이겠지만, 오늘날의 한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의 한 축을 여전히 이루고 있다.

따라서 유신과 5공은 정치적으로는 동일한 독재(군사독재) 형태라고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며, 심지어는 서로 대립적이기까지 한 체제였다.
이를 단지 주도세력(군부)이 동일하고 대중을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억압했다는 이유로 연속성 하에 놓은 것(5공을 유신의 후계자로 보는 것)은 오류다.

제5공화국의 전두환. 출처: 경향신문

흥미롭게도 브라질이 한국과 거의 유사한 이행과정을 겪었다. 전임 보우소나르 정권은 군부 출신으로 군부와 검찰의 지지하에 권위주의적 체제를 수립했지만, 동시에 이 체제에는 하위 파트너로 원리주의적인 신자유주의 정당이 존재하는 권위주의-자유주의 동맹 체제였다.
5공도 이와 유사한 권위주의-(신)자유주의 동맹 체제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이 점이 그 이전의 유신 정권과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유신 정권은 그 출신은 군부로 5공과 동일하지만, 그러나 기본적으로 국가 계획 경제 모델(국가 자본주의)을 지향하고 있었다. 경제기획원은 그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 더구나 박정희의 유신 모델은 단지 노동시장을 겨냥했을 뿐만 아니라, 강력하게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지향했다(한국 민족주의의 뿌리 중의 하나는 유신이 양성한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이며, 이들이 오늘날의 ‘국뽕’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즉 5공(전두환 정권)은 정치적으로는 동일한 군사독재 형태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실은 매우 대립적인 전혀 상이한 이념과 물적 기반을 가진 정치체제였다.
이 대립은 그 후로도 이어져 5공의 신자유주의의 계보를 이은 이명박 정권과 유신의 민족주의적 계획 경제 모델의 계보를 이은 박근혜 정권의 갈등으로 표출되었다.

한국 정치 지배층에 있어서 이 두 대립적 요소는 이들 모두에 대항한 이른바 ‘민주화 세력’(서구적 시민 민주주의 이념 및 내수 산업에 기반을 둔 소상공인 지향 정치 세력)들에 대한 경쟁에 있어서는 협력했지만, 그러나 실은 이 양자의 대립은 민주당계에 대한 정치투쟁 강도만큼이나 강력했으며, 결국 이것이 박근혜 탄핵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로 작용한다.

그런 점에서, 놀랍게 들리겠지만, 한국의 민족주의와 신자유주의(나아가 자유주의 일반)의 뿌리 중의 중요한 하나는 바로 파시즘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의 민주주의(또는 민주화)에 있어서 여전히 ‘반민주적’ 혹은 ‘파시즘’적 성격을 온존시키는 중요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2. 87년 체제의 역설: 6공화국 수립 세력의 약화

87년 이후의 한국 자본주의의 변화는 정치 세력의 균형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97년 IMF 구제금융을 고비로 한국에서는 수출 경쟁력을 가진 독점대기업의 지배적 위치가 강화되고 IT 중심의 신산업(신흥자본가)이 부상하면서 여기에 종사하는 새로운 노동자 계층이 탄생했다.

반면 기존의 내수 및 중소자본은 낮은 생산성과 시장개방으로 인한 외부로부터의 상품 유입으로 낮은 이윤율에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따라서 노동자들에게 줄 수 있는 잉여가 감소하여 이것이 이른바 노동시장 이중화의 경제적 배경이 되었으며 이는 노동의 조직화나 노동의 투쟁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는 한국의 정치 과정에서 이미 탄생기에 배제된 것도 부족하여 이후의 전개 과정에서도 노동이 독자적인 정치적 세력으로 성장하거나 심지어는 하위 파트너로 참여하는 것조차도 봉쇄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국에서 산업화에 따른 광범위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형성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적 체제전환에 핵심인 이른바 자유주의-노동 동맹(Lib-Lab 동맹)이 부재하는 것은 바로 한국의 산업화는 서구에서 비교적 장기간에 걸친 안정적 계급형성의 과정을 밟지 않고 급속한 성장 과정을 거친데다가 그나마도 외부적 영향에 좌우되는 경제적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권영숙, 2018. “촛불의 운동정치와 87년체제의 이중전환”, <경제와사회>117호).

이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기존의 제헌권력들의 힘의 균형에도 변화가 초래되었다. 무엇보다도 87년 주역의 하나인(6.29 선언의 주역들) 구5공 세력의 힘이 약화되었다. 이는 한국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했다.

5공 세력은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세력들과 손을 잡고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출범시키는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이들의 재임 과정 중에는 격렬한 대중반발이 뒤따랐고(광우병 시위, 세월호 시위), 의회 선거와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는 조금씩 영토를 상실해갔다.

이른바 ‘중도’ 표방은 이런 조건에서 탄생했다. 즉 기존의 구군사독재 잔재 세력이나 민주화 세력과는 다른 신흥중산층을 겨냥한 정당이나 정치인의 탄생이 그것이다(예컨대 안철수나 민주당 내에서 김한길 정대철로 대표되는 정치적 타협주의자들).
그러나 이들은 정치적 하부조직을 형성하는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역설적으로 민주화 과정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민주주의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던 정치세력들(지역적으로는 TK)의 완고한 존재 때문에 오히려 그 입지가 줄어들었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대연합이라는 슬로건은 여전히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보수’로 불리는 정치세력이 민주적 과정을 방해하거나 나아가 아예 부인하는 기조를 드러냈기 때문에,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에도 여전히 ‘민주주의의 필요성, 또는 민주주의 공고화’라는 구호가 호소력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대표적으로 안철수의 정치행보가 보여주듯 중도 일부는 보수와 통합했고 일부는 기득권 중도 보수세력과 일체화되면서 3세력이 되지 못했다. 게다가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심화되고 한국적 모델의 진화 가능성이 약화되자 기존 체제에 대한 불만 세력들이 독자적인 ‘진보’ 정당으로 뭉치지 못하고 민주주의 리버럴 세력에 흡수됨으로써 보수 세력의 입지는 점진적으로 약화되었으며, 2020년 총선과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동시에 한국 경제의 부진으로 인한 잉여의 감소는 이들의 물적 기반을 위협했으며 따라서 계엄 이전까지, 비록 윤석렬 정권은 들어섰지만, 87년 체제의 기원으로서의 반민주 엘리트 지배층의 정치적 힘은 약화일로를 걷게 되었다.

3. 위기의 징후들과 폭발 – 발전전략의 한계, 지정학적 부담, 지배계급의 선택 

한국의 계엄의 정치경제학적 배경은 지난해 12월 창간 1주년 특별 기획(2) “경제, 노동지표로 본 한국의 자화상: 한계에 봉착한 한국형 발전모델”(2024년 12월 30일)에서 언급한 바 있다.

이를 다시 간략히 요약하면, 글로벌 자본가 연합인 OECD, IMF의 부채 억제 권고는 특히 민간가계부채 수준이 높은 한국에서는 재정긴축이 장기적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는 과제임을 말해주며, 따라서 한국의 자본가와 정치엘리트들은 대중의 반발을 분쇄할 수 있는, 기존과는 다른 체제를 구축할 필요성이 생긴다.

이같은 상황에 직면하여 한국의 권력계급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중립적 위치를 표방하는 것은 이미 미국이나 일본의 이해관계에 밀접히 뿌리박고 있는 기득권 세력으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1) 기존 한국형 모델, 즉 수출주도 정책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거나 (2) 기존 경제 체제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미국 일본의 전략적 하청기지로 전화하는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1)의 경우에는 환율(원화 가치 하락)이 가장 중요하며, 동시에 내수 소비를 붕괴시켜 부채 디플레이션을 유도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정치적 반발이 나타나기 때문에 강제적 규율(민주주의의 정지)을 부과해야할 필요성이 생긴다. 이것이 계엄의 경제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즉 IMF 외환위기에 준하는 경제 위기를 통해 착취도를 강화하려는 것이었다.

(2)의 경우에는 단지 내부의 강압적 통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미 한국의 자본가의 상당수는 중국이나 글로벌 사우스와도 이해관계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2)의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계엄 정도가 아니라, ‘외환’과 같은 외부적 충격이 요구된다. 이 때는 전시계엄의 형태로 나타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시뮬레이션은 해봤을지언정 실행은 포기했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계엄(내란) 사태는 궁극적으로는 한국이 갖는 지정학적 위치의 특수성과 국제노동분업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이제는 오히려 위험요인이 되었기 때문에 생겨난 정치적 사변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한국의 성공비결, 한국형 성장 모델이 한계에 직면했기 때문에 나타난 정치적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계엄(내란) 사태는 궁극적으로는 한국이 갖는 지정학적 위치의 특수성과 국제노동분업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이제는 오히려 위험요인이 되었기 때문에 생겨난 정치적 사변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한국의 성공비결, 한국형 성장 모델이 한계에 직면했기 때문에 나타난 정치적 표현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한국의 정치적 위기는 반드시 선제적으로 그 이후에 뒤따를 경제적, 국제적 위기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격변의 Global South: 파산과 정변 사이에서”, 2024년 08월 08일 참조)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6년의 노동법 개정 파동은 실은 지배 집단에서 이후 벌어질 경제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선제적 대책이었는데(1996년 초에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일본계 은행들의 특별 달러 공급 요청을 거부하면서 이미 유로달러 시장의 위기가 예견되었고 그 해 여름 무렵에는 주요 투자자들은 거의 모두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만일 1996-7년의 사례를 참고한다면 윤석열 정권은 이후의 정치적 경제적 위기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으며 이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 친위쿠데타로 표출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위기의 성격은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미국의 소프트파워의 자기 해체(다원주의 확산 정책의 종료)와 무차별 고관세로 표현되는 글로벌 공급망 차단, 세계화 중단 시도에서 그 일단을 찾아볼 수 있다(다른 하나는 한반도에서의 지정학적 변화에 따른 남한의 위치 변화다) (제국의 숙정, 혹은 정화 : 미국의 soft power의 자진 해소, 그리고 전지구 시민사회의 허상”. 2025년 02월 15일 참조, 또한 “썩은 동앗줄 – 트럼프 관세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2024년 11월 14일 참조)

트럼프 정권이 기획하는 국제 노동분업 질서 하에서는 한국 경제는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는다. 하나는 미국의 의도에 따라 순수히 초과착취를 용인해 주는 것이며(이는 한국 제조업의 붕괴와 지난 산업화 기간 쌓아올린 국민의 부의 상실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다른 국가(특히 중국)들과 공조하여 미국에 대항하는 것이다.

물론 후자의 경우에도 상당한 정도의 경제적 손실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최소한 전면적이고 구조적인 경제적 추락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만들어준 미국과의 상당한 정도의 절연이 불가피하며, 이는 동시에 해방 이후 미국과의 기생적 관계에 의존하여 자신의 경제적 정치적 부를 축적해 온 세력들의 기반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로는 이미 계엄이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CNN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길을 걷지는 않겠다”고 말함으로써 기각되었다).

따라서 지배층 일반의 이해관계의 관점에서는 미국의 초과 착취보다는 미국과의 절연이 훨씬 손실이 크고 따라서 미국의 초과착취로 인한 손실을 대중들에게 떠넘기면서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강압적 국가 체제가 유력한 대안이 된다.

이는 대중들의 의사를 묻는 ‘민주적 과정’하에서는 이뤄지기 힘들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중단이 지배층의 관점에서는 불가피하며 이를 위해서는 먼저 헌법이 중단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계엄의 진정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계엄령 포고문에 ‘모든 정치 행위 금지’ 조항이 들어간 것은 바로 이 때문이며, 그 배경으로 중국과 북한이 제시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 집권세력이 감지한 위기의 실체는 무엇일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경제적인 것이며 이는 이미 트럼프 고관세 정책으로 인한 한국 자본주의 모델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회의로 나타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인 것으로, 한반도에서의 상황 변화의 가능성이다. 한반도 사태는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에 따라 극히 유동적이며(이것이 북한이 남한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전혀 움직이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정반대의 양극단이 모두 가능한 상태다.

첫 번째 가능성은 윤석열 정권이 시도했던 것처럼 한반도에서의 긴장 상태를 유도하여 ‘준전시화’하는 것이다. 이 경우 중국의 대응 여하에 따라 서구가 러시아를 상대로 우크라이나 카드를 쓴 것과 동일한 정책이 한반도에서 펼쳐질 가능성이다. 즉 동아시아에서의 중국에 대한 군사적 카드로 쓰기 위해 남한을 총알받이(cannon fodder, 북한식 표현으로는 대포밥)로 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반대 방향으로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극적인 긴장 완화, 즉 관계 정상화 정책을 쓰는 경우다.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는 현재 유엔사를 매개로 한 ‘휴전’ 상태이며, 만일 이를 ‘종전’ 또는 평화협정 상태로 전환한다면 남한에 주둔한 미군의 전략적 지위는 북한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것으로 변화한다.

만일 이같은 상황에서 남한이 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거나, 혹은 미군과 동일한 군사적 노선을 추구한다면 이는 국제법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적대자로 규정된다. 
그러므로 중국은 한반도 평화조약 하에서 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는 남한에 대해서 경제적인 압력을 가할 유인이 충분히 존재한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은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 경우 한국은 극심한 경제난에 처할 것이며 기존의 한국 경제 모델을 송두리째 수정해야만 할 것이다.

윤석열의 쿠데타 기도가 이 중에서 어떤 것을 가리키는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그러나 여전히 남한 외교안보정책의 실권자인 김태효 안보실 2차장의 노선을 감안해보면, 남한의 지배 세력은 제2의 경로(한반도 평화안)보다는 제1 경로(한반도 분쟁화)를 선택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분쟁은 전쟁으로 비화할 격렬한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긴장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4.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개헌론을 넘어서 

윤석열의 쿠데타는 6공화국을 만든 세력들 가운데 한 축이 이 체제로는 더 이상 자신들의 이익을, 그리고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인식 하에 기도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즉 87년 헌법의 개헌세력 중 주요한 한 축이 스스로 자신들이 사인한 계약을 파기했다는 점에서 87년 체제, 이른바 6공화국은 그 수명을 다했다.

헌법재판소. 출처 : MBC

헌법이 아니라, ‘체제’를 유지시키려는 마지막 노력은, 사실 헌법재판소의 탄핵선고 이후 갑자기 등장한 개헌론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우원식 국회의장까지 나서면서 제기된 개헌론들을 대략 요약하면,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책임총리제를 추진하는 이원권력(이원집정부)이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개헌안의 핵심은 ‘권력 분점’에 있다 말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이겠다고 하지만, 사실은 대중의 다수의 선택이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지 못하도록 방어하는데 있으며, 그런 점에서 개헌 기획 의도에서부터 반민주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같은 이원화된 권력이야말로 미중 간의 대립이 첨예하게 부닥치는 한반도에서 기존 지배층의 입지를 그나마 유지해주는 정치적 방식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많은 ‘민주인사들’이 그 솔직함과 성급함에 동시에 놀라기도한 ‘우원식 개헌론’의 숨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한동훈의 개헌론은 더 적극적으로 이원권력을 추구한다. 그는 상하 양원제를 선호하는데, 이는 연방제를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유럽 특히 영국과 대영제국의 구 식민지들에서 주로 발견되는 상하원제야말로 봉건 귀족제의 유산을 ‘상원’제로 계승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연방제를 위한 밑그림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지역적 분할 통치를 가능하게 만드는 행정 구획의 재편이 그렇게 기능할 수 있다. 최근 광역자치단체의 합체, 예컨대 충청광역연합이나 대구경북광역연합등이 그렇다. 

그리고 이같은 인위적인 정치 베이스 재편은 이미 서구에서 시도된 바 있다. 벨기에는 작은 영토의 국가이고 중앙집권적 단일 정부로 시작했지만, 지난 70년대 이후 약 30여년의 과정을 거쳐 인위적으로 지방자치제를 강화하더니, 급기야 두 개의 지역국가 연방으로 분리되었다(플랑드르와 왈로니아). 왜 이런 연방제를 택할까? 그 이유도 역시 이원집정제의 개헌론과 비슷하다. 지역적 분할통치를 통해서 정치적 안정을 꾀하는 것이다. 좋은 말로 하면, 헌정질서를 변경하여 체제적인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물론 현 단계에서 개헌론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당장 집권이 눈 앞에 다가온 민주당이 이 안을 받아들일리 없으며, 대중적 동력 또한 매우 약한 상태다. 특히 직선제 대통령제에 손대는 것은 아직도 87년 민주화의 기억이 남아있는 베이비부머 세대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어젠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헌정 위기를 계기로 헌법 수정 요구는 다음 정권 하에서는 본격화될 것이며, 그러나 그 실현은 지금의 정치세력을 반영하기 보다는 현재의 반헌법세력을 어느 정도 청산한 이후 ‘기울어진 운동장’ 하에서 다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개헌론자들은 자신들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이며 대선이 끝나기 전까지는 아직도 여러 가지 사건들이 돌출적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2024년 12월 3일 ‘계엄의 밤’은 뜻밖의 ‘사건’이었지만, 그러나 동시에 6공화국을 구성해온 정치경제적 질서가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조건 하에 놓여 있었다는 점에서, 그래서 언제라도 ‘이벤트’가 터져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점에서는 전혀 뜻밖이 아니기도 하다.

1987년 이후 근 40년에 이르는 ‘장기 6공화국’의 경로는 정치적으로는 민주화와 자유주의자들의 헤게머니 확립, 경제적으로는 한국의 다국적 자본의 성장, 사회적으로는 자본주의 성장에 내몰린 과잉 경쟁 속에서 사회의 점진적인 쇠락으로 특징지워진다. 그리고 비록 헌법은 아직 유지되고 있더라도, 공화국은 끝났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동시적으로 작용했다고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결과로 형성된 계급적 조건이 유신-5공-비자유주의적 신자유주의 분파-신우익으로 이어지는 구동맹 세력에 더이상 유리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이처럼 구동맹 세력의 정치력이 약화되어 가는 가운데,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변동이 예견되고 그 안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그 이후 수십년간에 걸쳐 형성될 새로운 정치 지형을 선제적으로 장악하고자 한 이들은 친위쿠데타와 같은 모험주의를 택했으나 그 결과 패배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패배, 즉 윤석열 쿠데타의 실패는 이질적이고 적대적이기까지 한 ‘6공화국 동맹’의 해체와 몰락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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