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권영숙의 테제11

계급적 노동운동의 가능성을 향하여​- 한국 노조운동의 진단과 미래 전망​

과연 노동계급운동은 민주화의 경로를 바꾸는데 얼마나 기여하였습니까? 자유주의적 정치민주화를 사회적인 민주화로, 급진적이고 좀더 평등지향적인 민주화로, 나아가 자본주의 철폐를 향한 민주화로 만들었습니까? 노동계급의 단계로 노동계급의 경제적인 차이들을 얼마나 해소했습니까? 조직화된 노동계급은 얼마나 민중의 호민관으로, 사회적 동맹을 구축하면서 이 사회의 변혁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까?…
노동조합에 대한 ‘계급적’ 관점, 노조운동이란 이름 앞에 ‘계급적’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것, 그래서 끊임없이 노동을 계급형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고민하는 것, 계급적 노조운동을 지향하는 노조의 활동과 투쟁과 운동을 여하히 시도하고 실천하는 것이 기본 시각과 자세로 정립되어야할 것입니다. 그것이 민주노조운동의 미래와 전망을 지금과 다른 방향으로 틀어내는 ‘자기 혁신’과 전환의 열쇠일 것입니다. 민주노조운동의 ‘민주’를 급진화할 수 있는 길입니다.

현장쟁점 민노의 창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비상계엄이후 노동자의 비상사태는 끝나지 않았다

이 과정만 보더라도 세종호텔의 정리해고는 코로나19라는 전염병 재난을 틈타서 정리해고법이라는 악법이 정규직 해고와 이후 외주화를 통한 비정규직을 확대시키고자 하는 자본의 의도와 편의만 봐주는 노동악법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정리해고라는 독소 조항이 노동법에 있는 한, 재난을 틈탄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대학살’, 그리고 어용노조가 아닌 민주노조 파괴 공작은 피할 수 없다. 그렇지 않은 경우, 노조는 결국 회사와 자본가들의 인정에 호소하고 도리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권영숙의 테제11

노동자정치세력화의 파국적 현주소

결론적으로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대답은 노동자정치세력화라는 모호한 개념을 버리고 계급정치라는 정확한 개념으로 계급적 민중적 정치를 설계하는 것이다. 노동자정치세력화로 이뤄졌던 기존의 전략, 기획을 모두 기각하고 새로운 계급적인 정당- 운동의 상을 정립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노동자가 아니라 좌파정당, 계급정당을 만들어야한다. 노동자들중 선진노동자들, 계급적인 노동자들이 좌파정당 계급정당의 주촉으로 서야한다. 그리고 좌파계급정당은 계속 노동계급 대중과 민중을 설득하면서, 노동을 중심으로 한 사회정치적 계급간 동맹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한다. 노동자중심의 사회정치적 동맹정치를 통해서, 다음 정치를 기획해야한다. 그것은 의회에 의원들을 ‘파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입법’과정에 개입하는 것, 반민중적 정치인들에 대한 ‘소환’운동을 통해서 징치하는 것, 그리고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정치기획이다.

현장쟁점 민노의 창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사망이 증명하는 현실

한화오션이 이렇게 지난 9월9일 추락사에 대해서만 유독 발빠르게 대처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이번 비극적인 사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 나가지 못할만큼 직접적인 관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우조선도 현재 한화오션도 조선하청지회는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산재사고 현장 조사 참여를 불허했다. 조선소에서 산재사고로 죽음에 이르른 노동자 태반이 사내하청노동자인데 그 노동자들의 대표조직인 조선하청지회가 ‘당사자가 아님’이라면 도대체 누가 당사자일 수 있나?
조선하청지회가 현장 선전을 할 때 노동자들에게 늘 하는 마지막 인사가 있다
: ‘오늘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투쟁!’
이 인사말이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삶이고 현실이다.

글로벌 리포트

격변의 Global South: 파산과 정변 사이에서

방글라데시와 케냐(그리고 이미 스리랑카)는 이제 겨우 서막을 알리는 전세계적 현상의 징조일 뿐이다. 제3세계 국가들은 연쇄 부도가 나거나, 혹은 부도를 피하기 위해 채권자들의 요구에 맞추어 더 심한 착취를 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부채 싸이클을 보면 부채를 낼 수 있을 만큼은 이 세계는 민주적이며 평화롭다가, 더 이상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폭압과 전쟁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자본주의 하에서 ‘화폐’는 오직 부채(신용)를 통해서만 창조된다. 자본이 증식되는 동안에만 자본주의의 관대함은 유지된다. 그리고 증식의 시대는 끝났다. 좋은 시절도 다 간 것이다.

연구자의 시선

노동조합운동과 법률투쟁 – 그 다음 또는 그것과 함께

노동조합운동은 법률투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우리 스스로 이 질문을 던져야 하는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노동조합운동이 법률투쟁으로 쉽게 축소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노사분규 소송 하나하나에서의 승패 자체가 운동의 최종적인 목적지일 수는 없다. 판결이 내려진 그 다음 또는 그것과 함께 노동조합운동이 채워나가고자 하는 바를 고민할 수 있어야 법률투쟁에 의존하거나 종속되지 않는 경로를 모색할 수 있다.

연구자의 시선

중국에도 노동운동이 있는가?

현재 중국은 분기점에 서있음이 분명하다. 시진핑 체제는 이를 ‘신시대’라고 명명하는 동시에, 현재 중국이 직면하고 있는 빈부격차, 부정부패, 생태 위기, 부채 증가, 경제성장 둔화, 미국등 강대국들과의 갈등 등 여러 국내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산당으로 일원화된 강력한 권력집중이라는 정치적 선택을 했다. 이 과정에서 당 중앙은 다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강조하고 강력한 이데올로기 단속에 나섰지만, 기층에서는 조금씩 그 본질적 성격이 무엇인지, 과연 누구를 위한 사회주의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권영숙의 테제11

계급없는 진보정치, 그리고 좌파없는 노조정치

1987년 민주화이행이후 민주, 진보, 그리고 좌파
노동없는 진보정치와 진보없는 노동정치의 표면을 걷고 보면, 정작 시야에서 영영 사라지는 것은 조합주의와 조직노동을 넘어서는 ‘계급’의 문제의식, 그리고 진보와 노동자주의 양자를 뛰어넘는 좌파의 이념적인 지도력(헤게모니)이다. 결국 정치적으로 ‘계급정치 없는 진보정치, 그리고 좌파없는 노조정치’라는 두 가지 정치세력화의 방식만이 쌍생아처럼 나란히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어느 것도 좌파 중심의 계급정당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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