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2026년 국내정세 전망

자본과 인공지능의 태평성대와 궁핍의 시대

:권력과 부의 재배치를 통한 재착취의 가동

2026년 2월 11일  / 이슈 리포트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전략적 자율성, 달러/엔 환율, 위안화, 원화, 지불준비통화(reserve currency), 탈달러화(de-dollarization), 행정구역 통합, 인공지능, 자본시장, 한미전략투자공사, 노동정책, 노조법2,3조, 자유주의 헤게모니, 좌파

1. 동북아시아 지정학과 지경학
한중일의 각기 다른 고민들

동북아정세는 엄격히 말하자면 국제 정세에 속하지만, 편의상 국내 정세에 포함시킨다. 편의 이상으로 동북아시아의 지정학과 지경학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일본과 대만, 중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한국에도 비슷한 패턴과 동일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점에서 국내정세 전망은 동북아시아의 정세, 그것을 정치경제학적 질서를 해명하는 것에서 출발하기로 한다.

(1) 엔화의 추락과 자민당 대승

지난 1월 8일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은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정작 사나에 다카이치 총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평화헌법 개헌은 참의원 의석을 고려할 때 최소한 2년간은 불가능하다. 말만 무성하고 정작 무엇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는 안개 속이다.

그러나 선거 운동 기간 중에는 몇가지 흥미로운 사건들이 있었다. 하나는 중국이 그동안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개입 발언을 문제삼아 중단했던 전략물자에 대한 대일수출을 허가했다는 뉴스이고, 다른 하나는 자민당이 식료품 관련 소비세를 한시적으로 중단하면서 부족세수를 외환보유고를 털어 충당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 규모는 약 320억 달러 가량이다. 미국은 금을 팔아서 적자를 메우고 일본은 외환보유고를 털어서 적자를 메우려고 한다. 매우 희귀한 일이며 실은 일본에게는 매우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국가 전략자산을 파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본의 외환보유고는 약 1.6조 달러 가량 된다). 그런데 정작 일본 엔화는 달러화 대비 약세를 거듭해서 일본 금융시스템에 불안요인이었다. 보유 외환을 소모하면 엔화는 더 약세가 되지 않을까?

일본 엔화가 약세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명들이 있다. 그러나 그 중에 어떤 것도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금리차(미국 국채와 일본 국채의 금리 차이)는 과거에는 들어맞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과 일본 10년물 국채 수익률의 차이와 달러/엔 환율 추이, 출처 : Trading Views

일본 중앙은행은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 양적완화를 통해서 일본 국채의 수익률을 조작해왔다(yield curve control). 그러나 코로나 사태 이후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면서 더 이상 이같은 국채 수익률 조작(즉 가격 조작)이 통하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아예 일본 중앙은행이 금리 통제력을 상실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엔화의 명목 환율이 이처럼 치솟았는데도 정작 일본의 상품수지는 더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 상품 수지 추이, 출처 :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물론 서비스수지와 자본수지를 포함한 경상수지는 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 폭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금리가 상승하면서 과거 일본이 해외에 투자한 자산에서 더 많은 수익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이처럼 경상수지가 흑자라면 엔화 환율 약세가 설명되지 않는다.

지난 2024년 초 블룸버그통신에 짧은 기사가 실렸다. 미국 재무부가 일본의 달러화 공급 요청을 거부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뉴스는 여러모로 의문을 남겼다.
첫째, 일본은 순채권국이다(해외 자산이 부채보다 많다). 게다가 상품수지는 적자였지만, 경상수지(상품수지+서비스수지+자본수지)는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외환보유고가 1.6조 달러가 넘는다. 이런 나라가 달러가 부족하다고? 심지어는 일본중앙은행은 미국 연방준비은행과 통화스왑 협정을 맺고 있다. 달러가 부족하다면 일본 중앙은행이 연준에게 요청해 달러롤 얼마든지 조달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일본 재무부가 미국 재무부에게 달러화를 요청할 이유가 무엇인가?

어떻게 된 일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전례가 있는 사건이기는 했다. 1996년 1월에 일본 은행들은 뉴욕 연준을 통해 연준이 달러화를 공급해줄 것을 요청한다. 당시 그린스펀이 의장이었던 연준은 1월 FOMC(연준 통화정책 회의)에서 이 요청을 매우 불쾌히 여기며 거절하기로 결정한다. 지난 24년 일본 재무부의 요청을 거절한 미국 재무장관 쟈넷 옐런이 신임 연준 이사로 임명되어 처음으로 참석한 FOMC 회의가 1996년 1월 회의였다. 그리고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지난 97년의 아시아 금융 위기는 본질적으로 일본의 금융 위기였다. 물론 정작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은 한국이나 태국, 말레이시아 등은 일본계 은행들로부터 달러를 공급받던 2차 하청국가들이기는 했다.

1997년 금융 위기 당시 서울은행 노조원들이 쟁의를 벌이고 있다. 출처 : Federal Reserve History

지난 24년 초 일본 재무부는 미국 재무부에 달러화 공급을 요청했다. 달러가 부족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 재무부가 미국 재무부에 달러 공급을 요청했다는 것은 이미 중앙은행간 달러 스왑 협정을 맺고 있는 미국 연준이 일본 연준의 달러 공급 요청을 거부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점은 매우 의아스럽다. 지난 해에 영란은행과 유럽중앙은행(ECB)이 산하 은행들에게 달러화 공급이 완전히 끊겼을 경우에 대비한 비상계획을 세워놓으라고 지시한 것도 의문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아마도 일본의 사례에서 위험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엔화는 2024년 이후에도 계속 약세를 보였다. 지난해에는 debasement trade(달러화 기피 거래)가 유행하면서 달러화가 다른 선진국 통화 대비로는 크게 약세를 보였고, 심지어는 개발동상국 통화 대비로도 약세였는데도 유독 엔화만(그리고 원화도) 약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만일 미국이 선택적으로 일본의 달러 접근을 차단할 수 있다면, 이는 일본에게는 재앙이 될 것이다. 즉, 일본은 통화주권을 상실했으며, 따라서 금융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미국이 시키면 시키는대로 다 해야 한다.

그러므로 다카이치 총리의 자민당이 압승을 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다카이치가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며, 만일 불가능하다면 그저 평범한 미국의 개에 머물게 될 것이다. 즉 현재의 일본의 조건에서는 ‘전략적 자율성’ 같은 것은 없다. 다만 상전이 시키는 것을 자신의 의사인 것처럼, 즉 전략적 자율성인 것처럼 포장하는 일만 남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어찌어찌 무사히 지나가더라도 여전히 일본의 문제는 남는다.

일본 산업생산 추이, 출처 :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일본의 산업생산이 추세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은 그 이유가 노동력 인구 감소 때문인지, 또는 다른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지 아직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어쨌든간에 일본 산업의 경쟁력은 쇠퇴하고 있는 중이며, 아직 그 바닥을 알 수 없다. 그리고 다카이치의 이민정책으로는 산업 침체를 저지할 수 없을 것이다.

(2) 위안화의 국제화

  중국은 지난 2월 초에 시진핑의 ‘위안화 국제화’ 연설을 공개했다. 위안화 국제화는 꾸준히 진행되기는 했지만, 시진핑이 이를 공식적인 주요 과제로 설정했다는 점에서는 그 무게에 차이가 있다. 그러나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는 흔히 말하는 ‘지불준비 통화’(reserve currency)로의 지위 상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위안화의 지불준비 통화화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시진핑의 연설에 따르면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서 중국은 금 보유를 확대해 위안화 기초 자산을 늘리고, 대외교역에서 위안화 결제를 적극 추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위안화 국제화의 달성 경로는 ‘탈달러화’(de-dollarization)에 있다.

동시에 위안화의 가치를 금과 결부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위안화를 금 본위통화(금 태환)로 만들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인민은행(중국중앙은행)의 재무제표를 건실하게 만들기 위해 기초자산을 안정적으로 확충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리고 위안화 국제화는 흔한 오해와는 달리, 중국이 무역적자를 통해 위안화를 세계로 유포하지 않고서도 가능하다. 달러가 그야말로 ‘킹왕짱’이었던 시절인 지난 1945-1970년대까지 미국은 무역 흑자국이었다. 즉, 미국 달러는 해외로 유출되지 않고서도 기축통화가 될 수 있었다.

더불어 중국은 중국 은행이나 기업들이 모든 종류의 디지털 코인사업에 참여하는 것도 금지시켰다. 미국이나 유럽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공식화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중국은 이를 완전 금지시킨 것이다. 이는 중기적으로 세계에 서로 다는 두 개의 통화체제가 들어설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와 함께 중국 상업은행들에게 달러화 exposure를 추가적으로 하지 말도록 지시했다. 현재 중국 상업은행들은 공식 외환보유고(미국채 약 6800억 달러 어치 보유) 이외에도 약 3,000억 달러에 이르는 달러화 표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중국도 유럽, 영국과 마찬가지로 급작스러운 달러 공급 중단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올해 년초부터 중국 내에서 가장 큰 변화는 군부에 있었다. 당 중앙군사위 부주석인 장유샤가 실각했다. 지난 3년 사이에 3명의 군사위 부주석이 숙청되었다. 이를 두고 군부 쿠데타 설이나 시진핑이 군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만 침공을 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루머가 돌고 있는데 문자 그대로 루머에 불과하다.

중국 공산당은 창건 이래 철저히 군에 대한 당 우위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항일전투의 영웅이자 통일전쟁 영웅인 팽덕회가 지난 1959년 여산회의에서 모택동 주석의 대약진 운동 실패를 비판했다가 숙청된데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에서는 군부의 모반은 상상할 수 없다. 다만 당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숙청 이유는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부정부패(이건 군부에 일반적인 현상이라 새롭지 않다) 이외에도 ‘당 기율 위반’을 들고 있는데, 이는 군부가 당의 노선과는 다른, 독자적인 움직임을 취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장유사 숙청과 같은 날 발표된 미국 국방전략 백서에 “미군과 다른 나라 군부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의 강화‘라는 항목이 있는데, 아마도 이것이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 2021년 미국에서 트럼프 1기 임기 종료 혼란기에 미국의 밀러 합참의장이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에게 전화를 걸어 ”트럼프 대통령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미군은 중국과 전쟁을 할 의사가 없으니 오해하지 말라“고 말했던 것이 드러난 것처럼, 미군과 인민해방군 사이에는 핫라인이 개설되어 있다. 이 핫라인이 단지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 소통 통로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만일 그 이상의 역할, 즉 만일 미군과 인민해방군 사이에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간접적 의견교환을 하거나 당에서 정해준 것 이외의 의사 통로를 갖는다면 이는 당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문제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국가의 군대가 아니라 여전히 당의 군대이며 따라서 당 지도노선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할 수 없다.

또 다른 가능성은 장유사가 군 내부에 파벌을 형성했을 가능성이다(장유샤는 태자당 출신이며 산서군벌 출신인데, 옛날붙터 산서군벌이 파벌 형성으로 악명이 높다). 즉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하나회‘ 숙청에 해당할 수 있다. 또한 이번 군부 숙청이 대만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볼 이유도 없다.

중국 공산당의 대만 정책은 여전히 현상유지에 머물러 있으며 다만 중국의 대응이 강경해지는 것은 이 현상유지를 훼손하려는 시도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즉 서구 안보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중국은 대만에 대해 무력을 사용할 이유가 현재로서는 전혀 없다. 뿐만 아니라, 주변국(한국, 일본)과도 대립적 관계를 맺을 이유도 없다. 중국은 2035년까지는 수세적 균형이라는 전략적 단계를 설정하고 있으며 이를 수정할 상황 변화는 아직 없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대만 포위 훈련 지도. 출처 : Focus Taiwan

다만 중국 내부의 경제적 측면은 그다지 밝지 않다. 중국은 15차 5개년 계획을 시행하는 첫해인 2026년에 지방에 대한 통일성 강화를 목표로 내세웠는데, 이는 기존 개방개혁 과정에서 발생했던 지방에 대한 권력 이양을 상당 부분 회수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중앙집권이 강화될 것이다. 이는 경제계획의 통일성을 강화하려는 시도인데, 역설적으로 이로 인해 상당기간 오히려 성장률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이같은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소비진작책을 시행할 예정인데 이로 인해 수입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으며 한국과 아세안이 가장 큰 수혜 대상이 될 것이다.

중국의 외교는 미국과의 거리두기와는 달리 유럽에서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프랑스, 영국, 독일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거나 방문할 예정이며 무역협상에도 진전이 있었다. 또 하이테크 산업 투자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인공지능 분야는 오히려 실용적으로 산업에 적용하는 수준에서는 미국보다도 앞서 있다.

지난 25년 초에 글로벌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는 ”한국, 일본, 대만의 환율이 함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대만은 벗어났지만 한국과 일본은 동일 궤도로 움직였다. 왜 이런 동조화가 발생했는지는 알 수 없다.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원화와 엔화 환율은 서로 반대방향으로 움직였다. 즉 달러 대비 엔화 강세기에는 원화가 약세였고 반면 엔화 약세기에는 원화가 강세였다. 그러나 금융 위기 이후에는 원과 엔의 환율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3) 원화는 왜? – 환율보다 미국의 압력

  더 흥미로운 것은 엔화 환율과 마찬가지로 원화 환율도 한국의 교역이나 경제성장률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역상대국 통화 가치를 바스켓으로 묶어서 인플레이션률로 조정한 ’실질실효환율‘(또는 실질 광의 환율) 추이를 보면 한국의 원화는 금융 위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금융 위기 시의 원화 가치를 나타내고 있다.

즉 교역 상대국 통화 대비 원화의 실질 가치는 계속 하락 중이다. 일본 만큼은 아니지만, 이는 한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한국 원화의 실질실효환율, 출처 :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25년 중에 원화 환율은 뜨거운 감자 중의 하나였고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가 ’유투버‘ 운운하면서까지 환율 방어에 나선 적도 있다. 한국은 약 44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원화 환율이 상승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누구도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총유동성 증가율이나 금리차로 원화 환율을 설명하는 것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이후 원화 환율이 다소간 안정된 것은 정책 당국의 미시적 조정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외국환예금의 초과지불준비금에 대해 이자를 지급키로 하고 연기금이 헷지 명분으로 달러화 선물을 매도했으며 이밖에도 외국계 투자자들에게 환 헷지 비율을 완화해주었기 때문이다. 즉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으며, 원화 환율 불안정성은 언제든지 다시 찾아올 수 있다.

지난 1월 미국 재무부가 연준에게 지시해 달러/엔 환율에 대한 거래상대방 검사를 수행하겠다고 발표한 뒤에 엔 환율과 원 환율은 동시에 일시적으로 급락하기는 했지만, 이는 실은 구두개입에 불과하다. 실물 달러가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국의 진짜 고민은 원화 환율이 아니다. 미국으로부터의 압력이다. ’총독부 정책‘을 우리말로 쉽게 풀어서 전달해 주는 전략국제연구소(CSIS)의 ’검은머리 미국인‘ 빅터 차는 지난 2월 6일 SK관련 연구소 초청 강연에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던 시기는 지나갔다”고 말했다. 한국은 한국과 중국 중에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하는 강요 하에 놓여 있으며 중국이 한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하고 있기 때문에 동맹국간 공조를 통해 이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경제는 장기적으로 미국 중심 공급망을 선택하는 방향성이 분명해지고 있다면서 한국과 동맹국들은 중국에 대해 ’경제판 나토‘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판 나토란 일종의 연환계를 말한다. 그는 한국이 중국이 필요로 하는 OLED의 절대적 공급자인 점을 예로 들면서 어느 한 나라가 중국의 경제적 압박에 나토의 공동방위 조항처럼 연대 방위에 나서 이같은 무역상의 우위를 무기화하여 중국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빅터 차의 발언은 왜 최태원 SK 회장 겸 대한상의 이사장이 21세기판 대동아공영권인 ’한일 경제공동체‘를 주장하는지 짐작케 해준다. 차는 개별 국가로서는 중국에 맞서기 어렵기 때문에 중견국들끼리 공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이를 동아시아에 적용한다면 한일 경제공동체 또는 ’아시아 경제 나토‘가 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해서 중국이 일본을 공격하면 한국이 나서서 싸우라는 것이다. 역시 종주국의 이론가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Victor Cha 전략국제연구소 연구원이 지난 2018년 주한 대사 후보 물망에 오르던 때 CNN 인터뷰에서 북한에 강력한 경고 발언을 하고 있다. 출처 : CNN

문제는 이같은 압력은 이미 진행되고 있으며 국내 자본들 사이에서도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찬반이 엇갈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왜 별 일도 아닌, 대한상의 ”상속세 피해 부자 이민 늘어”라는 보고서가 그토록 이슈가 되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이 대통령 “대한상의가 이런 짓을···엄정하게 책임 물을 것”, 2026.02.07. https://www.khan.co.kr/article/202602071159001)

현재 이재명 정부 내에서도 이른바 ’동맹파‘와 ’자주파‘ 사이에(둘 다 정확한 명칭은 아니다) 이 문제를 놓고 이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난데없이 ’원포인트 개헌‘(헌법 서문 개정)을 들고 나왔는지, 그리고 양당간 합당 논의가 갑자기 나왔는지도 이런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해하기 쉽다. 즉 현재 적어도 민주당 의회내 세력 구도에서는 아시아판 나토에 찬성하는 세력이 더 많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는 지난 24년 계엄/내란 직후의 상황과는 180도로 달라진 것이다. 계엄/내란 직후인 12월 12일의 1차 탄핵안 상정 시에는 민주당의 탄핵안은 “윤석열 정권의 과도한 친미노선”이 근거로 명시되어 있었다. 결국 1차 탄핵안은 부결되었으며, 외교노선 부문을 삭제한 2차 탄핵안이 국민의힘의 일부 세력의 동의를 얻어 통과되었다. 그리고 고작 1년 만에 민주당조차도 자신들의 스탠스를 뒤집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권영숙, “2025년 국내정세 전망 – 한반도 지정학과 지경학, 그리고 위기의 징후와 폭발들: 계엄탄핵국면의 의미와 탄핵후 한국 정치경제, 지배계급의 선택”, 2025년 04월 09일)

이같은 미국의 압력은 분명 한국에게는 엄청난 족쇄로 작용한다. 개헌론이나 합당론이 나온 것은 현 정권 내부에서도 그 위험을 충분히 알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어떤 결론이 날지는 미지수다. 굴복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높기는 하다. 대신에 남북 관계에 있어서는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는 것으로 절충할 것으로 점쳐진다.

결절점이 되는 사건은 국회에서 관세 관련 대미투자법안이 통과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한국으로서는 최소한 미국에서 대법원이 위헌심판을 내리는 순간까지는 최대한 지연시켜야 한다. 그리고 트럼프로서는 대법원에서 합헌 판결을 받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설사 위헌 판결이 나더라도 협상안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먼저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국회는 필요하다면 개헌안이든 아니면 집단 사퇴 쇼라도 하든지 간에 이를 저지시킬 의무가 있다. 훗날 역사책에 을사오적으로 올라가기 싫다면 말이다.

트럼프가 입으로는 한국을 모범 동맹국이라고 치켜세우는 것과는 달리, 주한 미국대사는 지난 24년 12월 3일 이후 공석이다. 심지어는 대사대리조차도 임기가 다 되어서 본국으로 돌아갔는데도 트럼프는 후임을 지명하지 않았다. ’동맹국‘에게는 있을 수 없는 대우다. 이는 트럼프가 말로는 뭐라고 하든 간에 한국의 현 정권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현 정권의 노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한미 관계는 그다지 평탄하지 않다. 계엄/내란, 탄핵과 같은 엄청난 정치적 패착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이 고개를 쳐들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 한국의 제도정치 그들은 왜 싸우는가?

지난 2025년의 국내 정세를 쓸 때만 해도, 민주당의 장기 집권 전략(동진전략)은 순조로울 것처럼 보였다. 물론 동진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는 6월의 지방선거에 민주당은 압승을 거둘 것이다. 특히 부울경 지역에서 약진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은 어느 지역에서 승리할 것인가가 관건이라기보다는 득표율이 훨씬 중요할 것이다. 만일 득표율이 35%를 하회한다면, 이는 전면적인 패배로 간주할 수 있다. 이 때는 국민의힘은 내부적으로 재편 압력이 발생하여 다시 헤쳐모여를 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선거 및 장기 집권 전략과 정치지형에 대해선, 권영숙, “21대 대통령선거 분석- 전쟁(戰爭)과 정쟁(政爭) 사이 : 민주주의, 세대, 그리고 계급전쟁”. 2025년 6월 26일)

민주당의 문제는 당면한 선거가 아니라, 다음 두 가지 사안에 있다. 첫째, 국민의힘을 주변화(marginalize)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난 1년여의 정치적 호조건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을 무력화시키지 못했다는 것은 단순히 외부의 압력(국제적 압력) 때문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동시에 민주당 내부에서도 분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즉 두번째 사안은 민주당의 자기 분열이다.

이는 민주당이 근본적으로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는 세력들의 어정쩡한 연합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이는 지난 87년 이후의 민주당의 성립 조건이었다), 동시에 이를 한묶음으로 만들어내지 못한 지도력의 부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열성 지지자들은 이를 ’민주주의‘라고 치장하지만, 실은 각기 다른 세력들이 각기 다른 목표를 추구하기 때문이며 결국은 합당 파동을 계기로 ’파벌‘(이재명 대통령 수호를 명분으로 한 70명의 서명 의원)을 형성하는데 이르렀다. 이처럼 노골적인 파벌 형성은 3김씨 시절 이후로는 처음이다.

지난 2월 3일 민주당 의원들이 이재명 대통령 공소취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출처 : 연합통신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는 이같은 내부 분열을 행정구역통합(예컨대 대구광역시와 경북을 통합해 대경특별시로 재구성)이라는 방식으로 봉인하려는 것으로 판단된다. 비록 이재명 정권 출범 초기의 국가계획 보고서에 행정구역 통합이 과제로 제시되어 있기는 했지만, 아무런 여론 수렴이나 준비없이 급작스럽게 행정통합이 의제로 나오고 사실상 실현되는 것은 민주당 내부에서 형성되고 있는 파벌을 지역적 이해관계로 재분할하려는 정치적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념과 노선을 지역으로 대체하려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민주당 내부의 분열이 폭발적인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행정구역 통합은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는 나름 근거가 있다. 그러나 지역 균형 발전과 지역 분권화는 서로 다른 개념이다. 문제는 현재의 행정구역 통합은 이 둘을 서로 혼동하고 있다는데 있다. 수도권 집중화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인구적 문제들은 심각하지만, 이를 중앙의 권한을 지방에 양도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오히려 통합된 각 지역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앞세우며 다른 지역과의 경쟁으로 주민들을 몰아넣는다. 국민의힘에서 발의한 대경특별시 법안에 명시된 투자자유지역 최저임금 차등화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과 같이 영토가 작은 국가에서는 굳이 권력을 지역에 분할할 이유가 없다. 과거에는 지역에 국가의 재원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다수당이 되거나 아예 중앙권력(대통령)을 장악해야만 했다. 따라서 권력이 중앙에 집중되는 반면에 법적 행정적 서비스는 전국에 통용되는 보편성을 갖게 되었다. 이는 지방의 권력자에게는 무익한 일이다. 반면 행정구역통합을 통해 권력의 분산화가 이루어지면 지역적인 권력만으로도 충분한 이윤을 누릴 수 있다. 게다가 통합 행정구역들은 서로 경쟁하기 때문에 대중의 삶의 조건은 오히려 더 악화된다(예컨대 경쟁적 세금 감면. 광주형 일자리도 그같은 사례에 속한다).

실은 이는 이명박 정권 때 시도했던 일이기도 하다. 이명박은 이같은 지역 분할/대립을 공간적으로 분할해서 달성하려고 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대운하였다. 즉 이명박은 아예 땅을 갈라서 상호 고립시킨 뒤에 서로 경쟁시키려고 했다. 지금의 행정구역 통합은 지방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은 그럴듯 하지만 실은 대운하의 정치적 버젼에 지나지 않는다.

이같은 분할은 오히려 국민들의 동질성을 제약하고 분열적으로 만든다. 동시에 자연스럽게 기존의 대통령 중심제는 이원집정부제로 전화할 기틀을 만들 것이다. 게다가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도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예컨대 2024년 12월 3일의 사건들을 생각해 보라. 만일 이 일이 밤이면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접근도 어려우며 인구조차 희박한 행정수도에서 벌어졌다면, 소위 그렇게 자랑하는 ’시민들‘이 나서서 국회를 수호할 수 있었을까?

박정희가 시내 한복판에 있던 국회를 당시에는 버스로 가기도 어려웠던 여의도 섬으로 몰아넣은 것은 우연이 아니며, 부지가 없어서도 아니었다. 엘리트들끼리 권력을 담합할 때는 공간적으로도 민주주의의 광장은 대중으로부터 멀어질수록 편리하다.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리버럴들이 청와대, 국회, 헌법재판소 이전을 찬성하는 기괴한 모순이기는 하다. 만일 수도권 집중화가 그렇게 문제라면 주요 권력기관을 부산으로 이전하는 것이 맞다. 최소한 거기는 대중들이 몰려갈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행인 하나 보이지 않는 과천 정부제2종합청사에서 시위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가시성‘은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이다.

이재명은 신년사에서 “에너지가 풍부한 남부의 반도체 벨트부터 인공지능 실증도시와 재생에너지 집적단지까지, 첨단산업 발전이 지역의 발전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설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이재명의 지방주도 성장은, 자본의 망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반도체- 인공지능- 첨단사업. 낙후된 지역경제로서는 눈이 번쩍 뜨일 말들이다.

그러나 여기서 핵심은 바로 맨 앞에 있는 단어다 “에너지가 풍부한 남부”. 이재명에게 지역, 혹은 지방을 보는 시선은 낸시 프레이저 식으로 말하면 “식인 자본주의”나 다름없다. 아니 더 정확하게 칼 맑스가 이미 말했듯이, 자본주의에서 수탈과 착취는 한 몸이다. 그것은 낸시 프레이저가 말하는 것과 같은 경계가 없다. 그것은 국제적으로도 그러하고 국내적으로도 그러하다. 이제 “낙후된 지역경제들’은 중앙 정부가 내놓는 돈다발 속에서 정신을 못차릴 것이다. 그렇게 더욱 깊숙히, 이재명의 ‘진짜 대한민국 만들기’와 자본가를 위한 ‘진짜 성장’에 더욱 복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삼성, SK등과 미국발 글로벌 자본이 손잡은 반도체와 인공지능 산업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 공급원이 될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 체인에 한국의 “낙후된 지역경제”도 하나가 된다.

이재명정부 에너지 고속도로 개념도, 출처 : 에너지경제                  

근데 이 대통령은 이런 지역경제 투자를 다음과 같은 ‘부의 재분배’와 교묘하게 연결시켜 말한다. 즉 “온 국민이 힘을 모아 관세 협상을 성공적으로 타결했지만, 그로 인한 혜택이 일부 대기업 위주로 돌아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아주 솔직하게 말한다. 10.29 한미 관세 합의의 본질이 그랑 부르조아, 대자본의 초국적 글로벌 동맹을 위한 대약진의 발판이라고 말한 것도 의식한 듯한 표현이다.

하지만 그것은 갑자기 지역경제와 정치의 분권화를 연결해서 ‘낙후된 지역경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등치된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이 말이 훨씬 구체적이다. “정부는 ‘고용 중심 사회’에서 ‘창업 중심 사회’로의 전환에 발맞춰”. 고용중심사회에서 창업 중심사회로의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즉 고용을 팽개치고 창업은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노동자는 최소한 자본가들이, 아니 자본주의가 먹여 살릴 책임이 있다. 그래야 일을 시킬 수 있고 노동자들을 재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업하는 ‘청년’들은 이제 자본주의의 최소한의 복지, 심지어는 고대 노예사회에서도 주어졌던 권리조차도 누리지 못할 것이다.

3. 이재명 정부의 2026년 사회경제정책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같은 모순은 이재명 정권의 특징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최근 입법된 가짜뉴스/혐오 금지법도 실은 언론 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재명 정권이 성과라고 자부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근본적으로 인간의 보편성을 훼손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정부는 기업들에게 형사적 처벌보다는 경제적 처벌(벌금, 배상금 부과)가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법은 단지 ’효율성‘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는 없다. 중대재해를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중대재해가 인간의 침해불가능한 생명, 신체 안전권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이를 경제적 처벌로 바꾸는 것은 자연적 인간이 아닌, 노동력 가치의 훼손에 대한 배상으로 귀결된다. 양자는 법철학적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경제적 처벌은 인간을 (노동력)상품으로서 전제하기 때문이며, 공공성을 경제적인 손익 관계로 치환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과 신체는 이웃집 잔디가 아니다. 뭉갰다고 벌금내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나마도 법원이 1호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에서 대표이사에게 행위의 책임 인과관계가 확실치 않다고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아예 형해화되어 버렸다. 노동법을 잘못 만들었든지, 혹은 법이 자본주의적 인간관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스스로 고백한 것이든지 둘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노조법 2,3조 역시 마찬가지다. 시행령은 이미 법원에서 판례로 확정된 것조차도 후퇴시켜버렸다. 이렇게해서 법은 헌법을 배반하고, 시행령은 법을 배반한다. 근대 프랑스 헌법 제정 때부터 반복된 역사이기도 하다.

이같은 모순은 검찰 개혁에서 정점을 이룬다. 법원 개혁은 헌법 개정을 필요로 하지만, 검찰 개혁은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에게는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 사안이 왜 이렇게 시간을 끌고 공전하는지는 오리무중이다.

흔히 검찰 존치론자들이 주장하는 ’경찰 부패/무능론‘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검찰이 무능하지 않은 것도 부패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누가 덜 나쁘냐를 따지기 보다는 어느 기관이 우위에 서든 간에 그 기관들에 대한 민주적 감독을 어떤 방식으로 수행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이점에서는 경찰이든 검찰이든 말이 없다. 예컨대 미국처럼 대배심(grand jury;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민간 배심제)를 두어서 검찰/경찰 사건에서의 수사/기소 적절성을 따지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검찰/경찰 문제는 행정적이고 공안적인 문제일 뿐이지 정치적이거나 혹은 근본적인 국가 체제를 바꾸는 사안이 못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고 이재명 정권 하의 검찰을 옹호하거나(법무부 장관), 혹은 “검찰은 전혀 믿을 수 없다”는 검찰 폐지론자나 모두 자신들의 이해를 말할 뿐이다.

멕시코 같은 국가는 아예 헌법 개정을 통해서 기존 판사들을 모두 해임하고 전원 선거로 선출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나라도 차라리 사법 개혁 그 자체가 목적이라면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 이재명 정권 하의 검찰 개혁은 처음의 정치적 숭고함과는 달리 이제는 기술적이고 지엽적인 갈라먹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만일 진정으로 ’법 기관‘을 개혁하고 싶다면 변호사법부터 바꾸어 대폭 문호를 개방하고 징계권을 의회에 주어야 한다.

87년 이후의 ’개혁‘들은 대부분 이번 검찰개혁과 유사한 경로를 걸었다. 즉 최종적으로는 적당히 말로만 포장된 채 구시대의 잔재들을 그대로 온존시키는데 머물렀다. 이것이 유시민이 말한 ’개혁의 어려움‘이라면, 개혁을 할 필요가 없다. 혁명을 하면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데 왜 되지도 않는 개혁을 하겠다고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가? 한국의 리버럴의 건강성(24년 12월 3일)은 고작 1년여 만에 리버럴의 자가당착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들은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다음 총선이 다가올수록 자가당착은 정신병으로 심화될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노동정책은 자본 특히 대자본의 인식과 요구대로 가는 것이다. 대략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주 4.5일제 근무제를 보자, 이것은 누구를 위해서인가? 노동계급 전체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혹은 노동시간 0에 시달린다. 플랫폼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이 없다. 그런데 주 4.5일제에 대하여서는, 관련 노조들과 더불어 정부는 아주 적극적인 태세다. 그건 또 왜일까? 그러면서도 쿠팡에서 산재 사망이 줄을 잇고 있는데, 대통령과 민주당은 그에 대해서 ’통탄‘한다고 하더니, 대형마트들의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입법을 추진한다고 2월 8일 발표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노조법 2,3조이다. 윤석열과 달리 이재명은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심지어 민주당 의원들의 발의로 노조법 2,3조를 입법했다. 그러나 자신이 뽑은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 노동부 장관으로 하여금 자본의 이해를 그대로 반영한 ‘시행령’을 발표하도록 두었다. 그러니 이게 ‘진정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일하러 갔다가 죽음으로 돌아오고 마는, 비정규직노동자들 중심의 산업재해의 이유가 무엇인지 ‘노동자’출신이라는, 그리고 노동문제에 대해서도 마치 ‘현인’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이재명 대통령은 알면서도 침묵한다. 한국에서 비정규직이 있는 이유는, 자본이 비정규직을 원하기 때문이다. 산업재해가 빈발한 이유는, 자본 위주의 한국 사회경제체제를 국가가, 정치가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본에 굴종을 넘어서 총자본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약속하는 대통령이 있다.

이재명 정권의 ‘진짜 성장’은 수출 대자본의 글로벌 자본으로의 도약을 통해서, ‘성장’을 통해서 분배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123>이 그렇게 써놨고, 이대통령이 방송과 신문등 언론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의 ‘진짜 대한민국’은 결국 성장을 통한 분배라는 구태의연한 과거의 레퍼토리를 21세기 버전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좀더 진보적인 노동정책을 체계적이고 풍부하게 내놓을 것이라고 여전히 생각하는 이들은 지금에서라도 이 환각에서 깨어날 필요가 있다. 이재명대통령은 대선 후보였을 때부터, 그리고 이후 “국정과제 123 보고서”를 냈을 때부터 노동을 부차화하였다. 분배와 불평등 문제를 부차화하였다. 이는 올해 대통령의 신년사로 더욱 명확해졌다.

신년사에서 그는 저성장을 해결하면 노동문제도 분배와 불평등도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 경제가 ‘위기’에 있다는 대자본가들의 문제 제기에 이재명은 반대론을 펼치지 않고 경제 산업 노동 부동산 모든 정책의 전제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 경제가 저성장에서 탈출하여 ‘진짜 성장’으로 파이를 키우는 것이 먼저이고, 그 다음 분배도 불평등도 노동도 문제 해결될 것이라는 것이다. 많이 들어본 프레임 아닌가? 맞다. 박정희의 개발국가의 프레임이었다.
김대중, 노무현등 자유주의 정권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벗어난 지금, 이재명은 글로벌 초국적 자본가들의 동맹에 맞춰 한국 대자본의 성장노선을 택했다. 그 길에 분배, 평등, 노동권 등은 부차화된다.

다만 이재명 대통령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몫을 받기 위해서 “한판 싸울 필요가 있다”라고는 언급한다. 다만 지금은 분명히 아니라는 뜻이며, 그것이 파업이나 투쟁과 같은 노동계급으로서의 행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훗날‘ 자본과 노동 사이의 대타협을 둘러싼 갈등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플랫폼자본주의의 하이테크에 올라타지 못한 노동자들은 그때까지는 배를 곯을 것이다. 혹은 저 높은 하이테크 타워로부터 추락하여 밑바닥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4. 자본과 인공지능의 태평성대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발표한 ’2026년 이재명 정권의 경제 성장 전략‘은 단 두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인공지능과 자본시장.

먼저 26년 경제 전망을 보면, 한국은행의 기업 경기 실사나 성장 전망치, 산업동향 등을 고려할 때 지난 25년 3분기에 경기는 바닥을 치고 반등 중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경기동행지수(현재 체감 경기)는 계속 부진하며 내수는 여전히 움츠러 들어있다.

반면 4분기 들어서 기업 매출 및 영업이윤율은 개선되었다. 26년에는 2% 성장을 전망하고 있는데(25년 1%), 이는 정부가 대폭적인 확장적 재정 정책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26년 정부 예산은 전년 대비 8.1%나 증가했다. 그리고 이 증가분은 대부분 기업 직접 지원 및 민간투자 활성화에 분배되었다. 성장 전략 보고서에서 복지 관련 정책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가장 큰 특징은 반도체 의약품 등 전략 산업 육성 지원금과 특히 인공지능 관련 정부 투자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과거 세금 감면, 규제 철폐와 같은 소극적 성장 유인책(passive incentive)와는 달리 정부가 직접 투자 및 기술개발 주체로 나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따른 대미투자를 담당하기 위해 ’한미전략투자공사‘를 설립하여 대미 투자 및 조선 협력을 도모하도록 계획이 잡혀있는데, 이 기금의 재원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만일 이 재원이 순전히 정부 재정에 의한 것이라면 대만이 미국과의 합의에 따라 대미투자(2000억 달러)를 하는 방식과는 다른 것이다. 대만은 정부 재정을 소요하지 않고 보증재단을 만들어 이 재단에서 보증을 서는 방식으로 달러를 조달하여 미국에 투자토록 계획하고 있다(26년 69억 달러. 10년에 걸쳐 2000억 달러 투자이기 때문에 연간 100억 달러여야 하는데 언론에 보도된 계획에는 69억 달러만 나와있다).

2026년 정부 경제성장 전략 도식 출처 : 재정경제부

또 수출 증대를 위해 전략 수출금융기금 신설을 계획하고 있다. 방산 및 원전 등 대규모 프로젝트 지원용이다. 이 역시 미국에 대한 투자를 위한 재원 조달용 기금이라고 할 수 있다. 수출금융기금은 기금을 토대로 레버리지를 써서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도록 계획하고 있는데 이것이 대만과 유사한 형태다. 그러나 이같은 레버리지 자금 조달은 정부의 ’우발채무‘로 잡히기 때문에(왜냐면 결국 정부가 부채를 보증한다), 국채 시장에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인공지능이든 첨단 산업이든 결국은 정부가 재원을 제공하고 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형태로 되어있는데(수많은 기금, 펀드가 새로 설립된다), 이는 모두 자본시장 육성의 밑바탕이 된다. 정부는 ’첨단산업 지원, 국내 주식투자 장기투자 등 자금 흐름을 대전환‘한다고 성장전략에서 밝히고 있다. 이는 집권 계획서 상의 주택 대출을 억제하고 자본시장을 육성해 크레딧을 증시로 돌려 생산적 금융이 되도록 한다는 내용과 일치한다.

그러나 이미 선거 공약에서 밝힌 코스피 5000을 달성했기 때문에, 이같은 자본시장으로의 자금 유인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장기투자 유인(즉 배당금 확대)이 존재해야만 한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의 이윤율로는 배당금이 심지어는 시중은행 금리보다도 높기가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기업들이 이윤을 높일 수 있도록 다른 보조금을 주어야 한다. 과거에는 세금의 형태였다면, 이제는 기업들이 했어야 할 일들, 기술개발, 해외시장 개척, 투자 재원 공급 등을 정부가 행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여전히 부동산 시장은 억압될 필요가 있다. 대신에 이는 부동산 가격을 하락시키겠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이재명 정부에겐 주거정책이 없다. 부동산 가격 정책은 있지만, 그것은 자본, 투자의 관점에서의 정책이지 주거정책은 아니다. 그래서 그는 “부동산에 비정상적 자원 배분을 반드시 바로잡아야”한다고 말한다. 그 자원들을 주식시장으로 보내서 자본시장을 더 두툼하게 형성하고, 대기업들의 글로벌 ‘도약’을 위한 더 큰 자본시장이 되도록 인도 중이다. 그러므로 역설적으로 부동산 시장에서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왜냐하면 여전히 한국 기업들에게 장기투자할 유인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사 기업 이윤율이 높아지더라도 그것을 배당금 형태로 자본가들이 지불할 유인 역시 크지 않으며, 배당금이 주어지더라도 그것은 결국 돈 많은 부자들의 몫이다. 심지어는 사회 전체로는 이같은 자본 소득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결국은 미국에서처럼, 기업의 이윤의 배분을 놓고 주주 자본가와 노동자들 사이에 배분 문제가 발생할 것이며, 당연히 주주 자본가가 승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무장지대 출처 : Alliierten Museum

결론: 궁핍한 시대, 궁핍한 대안

대통령은 “올해에도 ‘페이스메이커’로서 북미 대화를 적극 지원하고”라고 한다. 이 말 뭔가 이상하다. 이재명은 남북관계를 북미 문제로 대체해버렸다. 그리고 남북한중 한쪽의 대통령이면서, 심지어 북한을 ‘남한’의 영토로 간주하는 ‘헌법’의 최후의 지킴이라는 책무를 부여받았는데 페이스메이커가 돼서 북한과 미국 대화를 적극 지원한다고 말한다.

지금껏 이런 식으로 남한의 ‘국제적인 위상’을 드러낸 대통령은 없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렇게 남한의 ‘변화한 국제적인 위치’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대통령도 없었다. 왜냐하면 여하튼 북한은 ‘우리 민족’이므로. 우파와 자유주의 포함해서 보수 양대 집권세력들은 북한에 대해선 남으로 간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 정권의 통일정책은 새로운 ‘진전’이다. 물론 이것을 남한이 주도적으로 주체적으로 선택했다고 볼 수 없다. 북한이 남한의 민족,통일정책에 대해서 선을 긋고 스스로 ‘두 개의 국가’를 선언했고, 미국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명확한 입장을 한국의 자유주의 정치세력에게 요구했다. 그 결과 민주당은 선택했고, 윤석열의 계엄 이후 탄핵을 거치면서 미국의 ‘승인’을 받았다. 12.3 계엄과 6월 대선은 그 결과이기도 하다.

근데 과연 이 선택은 이재명대통령이 원하는 ‘페이스 메이커( pace maker)’의 역할이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남북관계를 푸는 방식, 나아가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평화공존하는 방식이 될 수 있을까? ‘페이스’는 영어로 pace다. 그렇다면 그 보조, 걸음은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이며 그 걸음의 주체는 무엇을 한다는 것인가? 즉 남한은 북한에 대해서 뭘 하겠다는 것인가?

그것은 민주주의적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나름 학식있는 동맹파와 자주파가 난상토론을 벌여 결정되면 그만인 것인가?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그 시작으로서 “남북관계 복원을 거듭 모색할 것”이라고 했는데 과연 현재의 전지구적인 지정학적인 정세 속에서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구체적인 안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우리는 안다. 강대국, 제국의 이해 속에서 페이스’나 맞추는 것으로는 남북관계가 복원될 리가 없다는 것을, 복원되어도 그건 남북 양쪽 집권자들의 정치적인 야망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유주의자들은 이를 ‘민족주의’와 ‘진보’의 이름으로 찬양한다. 인공지능은 번창하지만, 인간의 지성은 갈수록 궁핍해지고 있다. 먼훗날 우리는 인공지능의 삶을 오히려 부러워할 때가 됐다.

올해 2026년은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다. 분명히 한국사회는 2026년이라는 해가 아주 중요한 ‘징검다리’가 될 해가 될 것이다.물론 2026년 6.3 지방자치단체 선거는 2025년 윤석열 계엄의 정세적 효과 속에서 당연히 민주당의 절대적인 우세 속에서 열릴 것이다.

국힘은 여전히 ‘내란 옹호정당’이라는 오명 속에서 이전의 지지율이 3-40% 빠진 상태에서 선거를 치르겠지만 현정부가 이재명의 민주당 정권이라는 것도 분명히 현실이다. 여기서 전자의 변수가 강력하지만, 동시에 후자 즉 현 집권 자유주의 정당에 맞서는 대항마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지, 아니면 그 가능성이라도 타진해볼 수 있을지 그를 위한 ‘징검다리’가 될 해이다 (대선이후 개헌론과 그 향배의 예측에 대해선 권영숙, “이재명 정권의 ‘123국정과제’ 한국 부르조아의 자신감과 발전노선의 수정”,2025년 09월 25일)

결국 올해는 다음 2028년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2030년 대통령 선거로 가는 길목에 놓여지게 된다. 한국 사회는 여하튼 2030 대통령선거와 그 과정에서 분명히 나타날 개헌 국민투표까지 결부되는 ‘선거의’ 나날들‘을 5년간 보내고 있다.
이 시기는 결국 민주당의 ‘동진 전략’과 좌파의 부재라는 위기 속에서 자유주의 헤게모니가 확실하게 공고화될 수 있는가 아니면, 우파 정치의 부활 및 집권 가능성 혹은 양대 보수정당 구도 하에서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한 좌파정치의 시동을 걸 수 있는가의 전환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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