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친구들’ (Good Fellas)
가난한 이스라엘인들을 돕기 위해 가자 주민들에게서 약탈한 전자제품들을 싸게 파는 이 단체는 이스라엘 명으로 ‘HaHevre Hatovim’, 영어로 하면 ‘Good Fellas’, 한국어로는 ‘좋은 친구들’이다.
가난한 이스라엘인들을 돕기 위해 가자 주민들에게서 약탈한 전자제품들을 싸게 파는 이 단체는 이스라엘 명으로 ‘HaHevre Hatovim’, 영어로 하면 ‘Good Fellas’, 한국어로는 ‘좋은 친구들’이다.
가자 봉기 1년후, 그리고 이스라엘의 절멸을 향한 대학살극이 벌어진 1년후, 지금 여기서 차라리 질문되어야 할 것은, 왜 지난 2차 대전 이후 최소한 정치적으로는 공식적으로 ‘인권’과 ‘국제협력’, ‘전쟁방지’를 외치던 미국을 축으로 한 글로벌체제가 이제는 노골적으로 대량학살을 찬양하며 심지어는 핵전쟁의 위협까지도 ‘게임’의 한 부분으로 농단하게 되었는가, 왜 인류의 양심과 ‘천부인권’은 학살과 전쟁과 심지어는 ‘비인간화’를 막지 못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봉기를 통해 서구는 지난 2차 대전 이후 수립된 글로벌체제, 그리고 그 체제의 보편화된 가치들, 소위 ‘글로벌 시민사회’의 규범과 상식을 폐기하거나 혹은 일방적으로 수정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첫번째 시험대에 오른 종목들이 인권과 전쟁에 대한 국제 규약들이다. 따라서 과거의 인권적 성과들에 기초한 호소와 비난, 항의는 이제 더 이상 힘을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같은 ‘인간적 가치’를 만들어낸 토대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미친 전쟁의 광기, 그 수많은 민간인들의 죽음, 인간적 비극, 인권의 무력함과 같은 광기의 뒤안에는 냉정한 이성적 계산이 자리잡고 있다. 다만 그들은 서로 가진 무기가 다르며 힘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지겹게도 많이 죽이고, 아주 오래 갈 것이며, 인간적인 호소들은 위안이 되지 못할 것이다.
divest movement 전략은 매우 흥미롭다. 원래는 지난 2000년대 초반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 일부 유럽 국가에서 시작된 운동 전략이다. 이 전략은 ‘민간 제재’(people’s sanction)캠페인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서구 국가들이 전쟁과 함께 구사하는 ‘제재(sanction)’ 전략을 역으로 국가 정책에 도전하는 운동세력이 채택하는 것이다… 양쪽 다 정치적 효과는 달성했다. 그리고 여기서 어디로 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미국의 봄(American Spring)’은 과연 올 것인가.
미국 대통령 후보 경선 투표지에는 “‘Uncommitted(지지후보 없음)이라는 선택지가 함께 놓이게 된다. 유권자들은 예비경선에 등록하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후보들중에 선택하고싶은 후보가 없을 경우에 대비해 ‘지지후보 없음’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가 이런 제도는… 하지만 이들도 참 딱하지만, 당장 4월10일 총선이 코 앞에 닥친 한국을 보니 사돈 남 말할 처지가 아니다. 한국은 미국처럼 보수양당 독점의 정치제도를 민주화이행이후 계속 유지해오고 있으면서, 양당에 ‘지지후보 없음’을 주장하는 이들을 대변할 그나마의 선거제도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마스와의 전쟁이 아니다. 가자 지구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을 겨냥한 절멸의 전쟁(war of annihilation)이다.”
: 인간 살처분과 ‘약속된 땅’의 분노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가, 왜 어떻게 지배하는가이며 그 지배에서 벗어나야만이 비로소,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첫걸음을 디딜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유감스럽게도, 이 세계는 그 첫걸음을 영영, 또는 아주 낙관적으로라도 아주 오랫동안은, 떼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