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1일 / 이슈 리포트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글로벌금융체제, 세력권, 전략적 자율성, 미 국방전략백서, 달러무기화, 금, 은, 외환보유고, 재정적자, 중견국(middle power state), 속주 국가, 중앙은행, 이란 시위, 베네수엘라 사건, 사모펀드, 자본전쟁(capital war)
우리가 지금 보는 것들은, 비록 그것이 돌연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은 이미 오랜 기간 누적되어온, 또는 투사되어온 것들의 ‘현실화’다. 오늘날 세계의 이 정신 사나운 난동은, 그런 점에서, 이미 한참 전에 결정된, 또는 이럴 줄 모르고 합의되고 수행된 실천들의 결과물이다.
이 난동, 또는 하이브리드 전쟁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이 광란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글로벌 금융체제의 변동
지난 1970년대 후반 이후 세계화를 주도한 미국의 경제 체제, 더 정확히는 ‘체제’ 그 자체는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로 ‘소비’를 지탱하고(이를 통해 명목 성장률을 유지하며), 이렇게 초과발행된 ‘달러’를 무역 적자 형태로 해외로 수출한 뒤, 이를 해외 정부 기관 및 중앙은행들이 외환보유고를 축적하고 이를 다시 미국 국채 매입에 투자하는 글로벌 순환 구조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으로 기능한다. 흔히 말하는 쌍둥이 적자(무역적자와 재정적자)는 따라서 ‘한 쌍’이며 어느 한쪽이라도 궤도에서 이탈한다면, 미국의 체제 전체가 흔들린다.
여기서 대미교역에서 무역 흑자(정확히는 상품 수지 흑자, 서비스 및 자본계정을 포함하는 경상수지 적자폭은 이보다는 훨씬 적다)를 기록하는 이른바 ‘산업국가들’(특히 중국, 일본,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역할은 상품을 주고 달러를 수입하여 이를 다시 미국에 수출(투자)하여 이윤을 얻는 것으로 규정된다. 문제는 이 일련의 순환 과정에 ‘문제’가 생겼을 때다. 예컨대 미국의 재정적자가 급격히 감소한다거나, 혹은 미국에서 달러를 수입한 국가들이 이를 다시 미국 국채에 투자하지 않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미국 연방정부 부채와 글로벌 외환보유고 추이 (단위: 백만 달러) / 푸른 색은 글로벌 외환보유고, 붉은 선은 미국 연방정부 부채
이른바 ‘세계화’가 시작된 지난 80년대 초반부터 지난 2014년까지는 미국의 재정적자는 해외 국가들의 외환보유고와 거의 동일한 비율로 증가했다. 즉, 해외의 투자자들은 미국 국채를 자신들에게 달러가 생기는 만큼 매입했다.
그러나 위의 챠트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지난 2013년 이후에는 이 비례 관계가 깨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계속 ‘함수적으로’ 증가하는데 반해, 해외 국가의 외환보유고는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IMF 기준 2014년 2분기 말에 12조 달러에서 2025년 3분기 현재 13조 달러). 이 액수는 여러 통화로 구성된 외환보유고를 달러 환율로 환산한 것이기 때문에 달러 약세기에는 마치 외환보유고가 증가한 것처럼 통계상으로는 나타난다).
다른 말로 해서, 지난 2013년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무제한 양적완화(QE)를 시행하여 은행들에게 준비금(reserve)를 늘리게 하고, 지난 2020년 코로나 사태 때에는 전쟁시를 제외하고는 유례가 없는 양적완화를 시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상품 수지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각국의 외환 보유고는 증가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 상품수지 적자 추이, 출처: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
오바마 정권 시절에 발생한 이같은 변화는 선포되지 않은, 적어도 대중들에게 명시적으로 전달되거나 동의를 얻지는 않은 글로벌 체제 전환이었다. 지금 트럼프 정권이 하려고 하는 것들은, 바로 이같은 2014년 이후의 글로벌 전환이 미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 하에 이것들을 뒤집거나, 또는 그 손실을 최소화하고 이득은 최대화하려는 시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지 2014년 이전의 세계로의 귀환(실은 2008년 금융 위기 이전의 글로벌 정치/경제 체제로의 귀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트럼프로 대표되는 정치 세력이 기획하는 것은 아예 1970년 대 이전의 세계, 즉 세계화 시기 이전의 세계이며, 나아가서는 애초에 pax Americana가 형성되던 시기의 세계, 즉 1920년대 체제로의 귀환이며 이를 위해 시간을 벌거나 혹은 미국 내부를 재편성하고 이에 맞추어 세계 전체를 재편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달러, 보편적 화폐의 종말
이같은 미국의 역할 변화는 기존에 세계화를 유지했던 두 축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두 축은 바로 ‘달러’와 ‘세계 경찰’(world cop)이다. 세계화 과정 속에서 달러와 세계경찰은 ‘보편적인 것’으로 전지구적으로 부과(imposing)되었다. 수많은 국제기구와 국가들 사이의 ‘합의들’은 이같은 보편성의 부문별, 지역적 표현들일 뿐이다. 그리고 이 보편성은 외부의 공격 때문이 아니라, 자체 모순으로 붕괴했다. 달러부터 보자.
위에서 미국 재정적자와 글로벌 외환보유고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했으며, 그 불일치가 확대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왜 외환보유고는 증가하지 않았는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금융 자본의 과잉 증식과 이에 뒤따라 가지 못한 실물 경제 사이의 괴리(이는 금융 자본의 ‘담보’ 가치 하락으로 표현된다)에서 발생한 것이었으며, 그 진앙지는 미국 외부에 존재하는 역외달러 시장(이른바 유로달러 시장)이었다. 이 위기는 미국에서 일단 급한 불을 끄자 2011년에는 유로존 부채 위기로 전파되었고 결국 그 해 11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스위스 중앙은행 등 6개국 중앙은행은 무제한 달러 스왑 협정을 맺기에 이른다(미국 연준이 이들 국가에 달러 공급 보증). 이걸로도 해결이 안 돼서 결국 2013년부터 그리스 부채 위기로 유로존 위기가 재연되자 결국 연준은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당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이같은 달러 순환 체제에 불만이 컸다. 왜냐하면 현실에서는 미국은 자신들의 달러를 사실상 공짜로 외국에 제공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이같은 중앙은행의 양적완화는 국채 가격을 왜곡시켜 만일 갑작스러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운용 여지가 극도로 제한되기 때문이었다(현재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그는 이같은 글로벌 금융 체제의 모순을 축적된 달러를 다시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외국에게 돌렸는데, 이를 ‘global saving glut’, 즉 외국이 대미 교역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자국내에서 소비로 전환하지 않고 미국 국채에 투자하여 국채 가격을 왜곡시킨다는 것이었다(버냉키는 이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따라서 그는 양적완화를 시행하면서 그 혜택을 보는 외국이 소비를 늘리고 외환보유고를 줄이기를 원했다.
공식적인 ‘협정’은 없었지만, 그 뒤 BIS(국제결제은행)의 스탠스를 보면 이같은 연준의 주장에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이 추종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가 바로 표1에서 보는 것과 같은 미 재정적자 증가 추이가 글로벌 외환보유고 증가 추이보다 훨씬 앞서는 경향이었다. 즉 외환보유고를 더 이상 늘리지 않기로 한 것은 최소한 각국 중앙은행들(결국은 각국 정부들) 사이의 합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미국이 해외로 수출한 ‘달러’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모든 금융 체제는 폐쇄체제이기 때문에 일단 발행된 화폐는 부채 소멸 없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글로벌 총 부채는 2014년 이후에도 오히려 함수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기 때문에 이 달러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어디로 갔을까? 일차적으로 해외의 정부들(연기금, 국부펀드)과 중앙은행들은 벌어들인 달러로 미 국채를 사는대신 ‘금’을 매입했다. 이것이 금 값이 지난 2014년 대비 4배 가량이나 상승한 이유다(금 값은 지난 2018년부터 본격 상승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지난해 말에는 외환보유고에서 금이 차지하는 달러화 환산 총액이 달러화가 차지하는 몫보다 더 커졌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중앙은행들이 금을 4배나 더 매입한 것은 아니었다. 중량 상으로는 지난 2014년 이후 중앙은행들의 금 보유 규모는 약 20% 증가하는데 그쳤다. 그러면 이 ‘금’들은 어디에서 났을까?
미국 금 수출 추이(비통화 금, 단위 백만 달러), 츨처 :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버냉키는 금에 ‘통화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는 자산으로서의 금의 성격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금을 ‘야만적 유물’(barbaric relics)이라고 부른 것은 존 메이너드 케인즈였지만, 버냉키도 그에 못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지난 2022년 이후 미국의 금 수출은 급증했다. 지난 2025년 2분기에는 무려 350억 달러에 달했고, 3분기에도 205억 달러를 기록했다. 아직 4분기 통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도 연간 1,000억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즉 이미 지난 2024년부터 미국은 해외 국가들에게 국채를 파는 것이 아니라, 금을 팔았다.
트럼프 집권 뒤 미국의 무역적자가 감소한 것은 ‘관세’ 때문이 아니라, 실은 금의 매각과 관세 부과 이전에 미리 비축해 두었던 의약품의 수입 감소 때문이었다. 실은 미국의 상품 수지에 있어서 트럼프 고관세 효과는 거의 없었다. 즉 관세는 무역수지 감소에는 효과가 없다. 실은 아예 처음부터 무역수지 개선이 일차적인 목표가 아니었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국제 금 값은 달러화 가치 절하 추세에 힘입어 계속 상승 중이다. 출처 : First National Bullion
그러면 트럼프의 관세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외부의 자본과 대외정책을 자신들에게 우호적으로 전환하도록 강요하는 협박 수단에 불과했다. 그래서 100%, 200%라는 터무니없는 숫자를 불렀던 것이다(그리고 이런 임무에는 트럼프가 제격이다). 다른 말로 해서, 미국은 다른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강탈’하기 위해서 관세로 위협한 것이며, 소위 ‘동맹국’들이 이같은 요구에 굴복하여 자신들의 부를 자진 상납키로 한 것은 이들 국가에 ‘주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의 정권이 ‘선방’했다고 평가받는 것은 처음부터 100% 불러놓고 15%로 깎았다는 인식을 퍼뜨리는데 트럼프의 연기가 훌륭히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미국이 상품 수지 적자로 해외로 유출한 달러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미국 증시가 흡수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해외에서의 미국 자산 매입 총액은 증시가 국채시장을 넘어섰다. 즉 어쨌든 달러는 미국으로 되돌아왔으며, 그러나 국채 시장이 아니라 증시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국의 서학개미들도 톡톡히 한 몫했다.
미국으로 환류된 달러가 미 국채 시장으로 들어가느냐, 증시로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미국의 금융 구조가 달라진다. 미 국채시장으로 간다면 미국은 국채수익률(금리)가 낮아질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제 전반에 있어서 ‘보편적으로’ 낮은 금리로 인한 수혜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증시로 들어간다면, 그 자금은 선택적으로 투자된다. 즉 더 높은 기대 수익률, 혹은 성장 전망을 가진 기업들에게 집중되며 이는 특정 성장 섹터 기업 주가를 ‘버블’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미국은 이에 대응할 ‘소재’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인공지능.
인공지능 관련 기업들(엔비디아,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증시로 자금이 쏠림에 따라 훨씬 싸게(즉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처럼 버블이 형성되면 이른바 스타트업들도 활성화된다. 이들은 벼락부자를 꿈꾸며 기술개발에 매진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산업이 성장한다. 즉 미국에서의 인공지능의 ‘버블’은 제도적으로 유도된 것, 최소한 구조적으로 그같은 버블이 가능한 상태가 갖춰진 상태에서 발생한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자연적’, 혹은 ’인간의 탐욕‘에 의한 것은 없다. 어떤 탐욕도 그 탐욕을 가능케해주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
문제는 과연 인공지능이 지금 열광하고 있는 것만큼의 ’효과‘, 즉 생산성을 높여줄까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현재로서는 대답하기 어렵다. 연구자들 사이에도 분석이 엇갈린다. 그러나 최소한 현재의 LLM(대규모 언어모델)로는 이성적 추론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거의 확증되고 있으며, 또 인공지능이 산업현장에 채택된다고 해도 단기간 내에 생산성 개선이 현실화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점은 거의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노동시장에 대한 영향도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어쨌든 현재의 주장들, 즉 “인공지능이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아직까지는 극히 일부의 분야를 제외하고는 그런 사례는 없다. 다만 경기 부진으로 인한, 혹은 코로나 시절의 과잉 고용을 해소하는 핑계로 기업들이 노동력을 줄이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세번째 이슈, 즉 앞으로는 누가 미 국채를 사줄 것인가?
여전히 외국인이 사 준다. 다만 예전처럼 직접 사지 못한다.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중간 매개를 인위적으로 도입해서 사실상 해외로 유출된 달러화를 강제로 미 국채 시장으로 돌아오도록 강요한다(무기로서의 스테이블 코인 참조).
그리고 전통적인 은행(투자은행)과 코인 세력이 충돌하는 곳도 바로 이 지점이다. 전통적인 은행 세력을 대표하는 JPM의 CEO인 제이미 다이먼은 다보스 포럼에서 ”참을만큼 참았다. 이제는 반격해야 할 때“라고 선언했다. 연초 이후의 글로벌 자본 시장의 요동은 이런 자본들간의 공방을 반영하는 것이다. 미국 하원은 스테이블 코인 법안인 이른바 ’clarity bill’에 대해 아직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동시에 이같은 미국의 달러 무기화 전략은 국제적 충돌을 야기한다.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보편적 통화 역할을 하던 달러화가 미국이라는 일국의 통화로 그 성격이 전환되면, 각 국가들이나 권역들은 각기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통화망을 구축하거나 혹은 기존의 달러화 통화 체제에 대한 접근권을 놓고 서로 각축하게 된다. 이것이 지난 1월 다보스 포럼에서 브리지워터캐피탈의 CEO인 레이 달리오가 말한 ‘자본전쟁’(capital war)이다.
미국 연방준비은행 엠블렘
중앙은행 독립성의 신화의 종말
이 과정을 트럼프의 관점에서 본다면, 미국이 종이(국채)를 팔 수 있는데 ‘실물’(금)을 판 것은 미국 국부에 손실을 본 것이다. 트럼프 정권의 경제/금융팀(베센트 재무장관, 루트닉 상무장관, 마이런 경제자문 겸 연준 임시 이사)은 이같은 체제에 동의하지 않는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월가의 투자자 드럭켄 밀러를 멘토로 죠지 소로스 펀드의 실무자로 금융인 생활을 시작한 이들은 세계화 금융 체제가 형성되던 시기의 균열에서 떼돈을 벌었던(1992년 영란은행 파운드 공격) 경험에서 형성된 금융관을 기본으로 한다.
이들은 중앙은행이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보며(즉 중앙은행은 금융시장을 백업해서는 안된다), 금융시장은 참가자들 사이에서 돈놓고 돈먹기로 결정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연준의 차기 의장 자리를 놓고 ‘중앙은행의 독립성’까지 운운해 가며 시끄러웠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반면 그린스펀과 버냉키, 옐런, 파웰로 이어지는 1980년 대 후반에서 지금까지의 중앙은행의 역할은 금융시장의 ‘안정성 유지’였으며 이를 위해 중앙은행들은 은행 섹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때 중앙은행들이 이를 막기 위한 무제한적인 조치(예컨대 양적완화)를 취해야 한다는 컨센서스를 갖고 있었다.
트럼프가 케빈 와시를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한 것은 바로 이 컨센서스를 파기하기 위한 것이었다. 케빈 와시는 그가 매파냐 비둘기파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폴 크룩만이 말한 것처럼, 와시는 ‘정치적 동물’, 즉 시세 따라 가는 인물이다. 더구나 그 ‘시세’는 행정부가 아니라, 의회다. 미국에서 연준 감독권한은 의회가 가지고 있으며 버냉키가 퇴임하면서 차기 의장인 자넷 옐런에게 ”누가 연준의 보스인지 잊지말라‘고 충고한 것은 유명한 얘기다.
즉 중앙은행의 독립성 같은 것은 아예 처음부터 없었다. 버냉키와 옐런은 2주에 한 번씩 재무장관과 정기오찬을 했으며 통화정책을 논의했다. 만일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더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와시의 지명이 논란이 된 것은, 흔히 언론에 보도된 것과 같은 금리나 연준의 보유 자산 축소 때문이 아니라, 정작 와시가 명시적으로 언급한 ’연준의 체제 전환(regime change)’에 있다.
연준은 통화정책 기구이지만, 동시에 금융감독기관이자 이론생산기구이기도 하다. 와시와 트럼프 재무/경제팀의 목표는 연준이 시장 보증자로 나서는 것을 차단하는데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해 연준이 가진 권한을 축소하고 연준의 ‘가이던스 기능’을 약화시키는데 있다. 이렇게되면 연준은 지난 2008년 금융 위기시에 발휘했던 ‘최종대부자’ 역할을 하지 못한다. 물론 실제 위기가 발생하면 최종대부자 역할을 하겠지만 선제적으로 그 위기를 방지하는 규제 역할은 하지 못한다. 이는 사적 자본에게는 기회가 된다. 즉 와시의 지명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적 금융자본의 기회 보장에 관한 것이며, 지금의 금융 조건에서 사적 금융자본이란 전통적인 은행자본이 아니라 금융위기 이후 급속하게 성장한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s)를 말한다.
만일 와시가 의회 청문회를 통과한다면(못할 수도 있다), 그것은 사모펀드의 전성시대를 예고한다. 전세계적으로 크레딧(신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반면에 이를 제어하기 위한 장치들이나 혹은 이미 달러의 보편적 성격은 스스로 종말을 고했기 때문에 확장하는 크레딧 시장에 접근하기 위한 다양한 각국의 통화 체제들 사이의 경쟁과 대립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는 달리오가 말한 것처럼 ‘자본 전쟁’의 양상을 띠겠지만, 그러나 확장기에는 전면적인 전쟁으로 비화하지는 않는다.
전쟁은 그 체제가 망할 때 발생하며, 만일 역사적 전례를 본다면 이 체제는 매우 빠르게 종착역에 도달할 것이다. 1920년대 연준이 공개시장 조작(open market operation)를 시작한 것은 1923년이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격동의 20년대’가 진행되다가 고작 5년 만에 파국으로 끝났다(대공황의 시작이라는 월가 증시 폭락은 1929년이었지만, 실제 미국의 크레딧 붕괴는 이미 1928년 하반기에 발생했다).
그런데 와시 지명 과정에서 와시라는 인물보다도 더 흥미로운 사건이 발생했다. 트럼프가 파웰 의장에 대한 수사를 지시하면서 조기 퇴임 혹은 금리 인하를 요구했을 때, 파웰 의장이 공식행사에서 이를 비판했을 뿐만 아니라, 주요국 중앙은행장들이 연서명으로 중앙은행 독립성을 요구하는 비판 성명을 낸 것이다. 여기에는 BIS(국제결제은행)을 위시하여 유럽중앙은행(ECB), 영란은행, 호주 중앙은행, 캐나다 중앙은행등이 망라되어 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여기에 한국은행장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이다.
중앙은행장들의 비판 성명서는 단지 미국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 각기 자국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한 방어막을 공동으로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금융자본이 이같은 글로벌 공동실력 행사에 참여할만큼 성장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며(심지어 이창용 한국은행장은 자신이 퇴임해도 한국은행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 정권의 금융/통화정책과 대립적이라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전혀 놀랍지 않게 정작 가장 ‘독립성’이 의심받고 있는 일본중앙은행은 이 연서명에서 빠졌다.
중앙은행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통화정책이 아니라, 규제정책이라는 측면에서의 중앙은행의 권력은 사실상 약화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민간자본들이 날 뛸 시간이 왔다. 한국에서의 그 명패는 ‘자본시장’이 될 것이다.
미국의 내부 모순 – 생산성의 저하와 민간 투자의 부진
왜 미국은 이런 불편한 선택을 했을까? 미국 내부의 모순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노동생산성 추이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상승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락하고 있는 중이다. 생산성이 감소한다는 것은 장기적인 성장률 전망치가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유가 뭐가 되었든 미국은 쇠락 중이다. 더 이상 미국은 천조국이 아니다.
미국이 해외에서 미국에 투자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안되서기 때문이다. 다음 챠트를 보자.
미국 민간투자 추이(GDP 대비, %), 출처 : EPB reserch
이 챠트는 미국의 GDP 대비 순민간투자 비율 추이를 표시한 것이다. 지난 2차 대전 이후 70년대 말까지는 미국의 민간투자는 평균 GDP의 약 8% 수준이었다. 80년대부터 2008년 금융 위기 시기까지는 평균 6%로 하락한다. 그리고 금융위기 이후에는 3.9% 수준으로 떨어졌다. 즉 미국의 민간투자가 GDP 대비로는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투자(public investment)는 감소폭이 더 심해서 70년대까지의 GDP 대비 3% 수준에서 금융 위기 이후에는 0.8%로 떨어졌다.
투자는 미래의 생산성이며, 성장이다. 장기적으로 GDP 대비 투자가 감소한다는 것이 잠재 성장률이 낮아지며, 생산성 증가율도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서는 미국 내부의 경제적 관점(자본의 기대 이윤율 관점)에서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산업에 대한, 또는 미국이 이미 기술에서 뒤쳐져서 그 간격을 좁히기가 불가능한 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투자 유치가 그 본질적인 성격이다.
그리고 이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유독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이미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3년에 ‘반인플레이션법안’으로 미국은 외부 자본에 인센티브(규제 철폐, 세금 감면, 토지 제공 등)를 주고 산업을 유치하려고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실망스러운 것이었으며, 실은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미국 전체로서의 노동력 가격은 너무 비싸며(이를 신흥국 수준을로 낮추어야 수지가 맞는다. 그러나 미국 전체로서의 노동시장 조건으로 보면 이는 불가능하다), 동시에 이미 제조업 공동화가 너무 진행되어 인력을 구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했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업체인 TSMC는 연간 보고서에서 대만 내 공장과 미국 텍사스주의 공장에서 동일한 설비로 동일한 공정을 가지고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는데도 불구하고 대만 공장의 영업이윤율이 미국 공장에 비해 무려 8배 가량 높은 것으로 발표한 바 있다. 이런 조건이라면 아무리 미국내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해도 외부 자본이 미국에 투자할 유인이 없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미국 정부가 취한 방식은 강제 투자였다.
미국이 강제 투자를 요구하는 것은 미국에서 이윤율이 증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민간투자가 GDP 대비로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요구하는 해외자본의 민간투자는 미국 내에서도 영업이윤율이 낮은 산업 섹터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원금회수까지는 요원하며, 실은 이 투자금은 전혀 되찾을 가능성이 없다. 왜냐하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자본을 투자한 동맹국이 미국의 이해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에는 언제든지 이 자금을 ‘몰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전시에나 발동되는 ‘비상경제 무역법’을 원용하여 관세 및 투자를 강요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더 정확한 역할은 이 돈(한국의 경우 3,500억 달러)은 미국이 한국에게 동맹을 강요하기 위한 담보금이다. 한국이 미국의 동맹에서 이탈한다면 당연히 미국은 이 돈을 떼먹을 것이다. 궁금하면 미국이 지난 200년 동안 어떻게했는지 역사책을 보라.
보편적 세계질서의 붕괴와 중견국들의 ‘전략적 자율성’의 한계
보편성이 사라지는 것은 달러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그동안 미국이 자임해 왔던 세계 경찰로서의 미국의 역할, 즉 보편적 세계 질서의 보증자로서의 미국의 안보 전략도 함께 사라졌다. 그 결과 지역안보/군사동맹이 재편된다. 그 밑그림을 미 국방부의 2026년 국방전략백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예년 같으면, 미국 국방부가 연례 국방전략 백서를 발표할 때는 떠들썩했다. 최소한 장관이 기자회견을 하거나, 혹은 비디오 컨퍼런스라도 했다. 그런데 이번 국방전략 백서 발표는 아예 사전 예고도 없었고, 주말인 지난 23일 조용히 국방부 웹사이트에 올라왔다.
먼저 미국 국방전략 백서부터 보자. 아주 평이한 세간 언어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국방전략’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는 위에 요약한 (1)번부터 드러난다. 지난해 12월에 발표된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 백서’에서 ‘경쟁적 라이벌이지만 공존 가능한’ 대상으로 규정했던 중국에 대해 ”전쟁할 생각 없다. 체제교체 regime change도 안한다(즉 중국 내부 혼란 유도하지 않겠다), 봉쇄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국방전략’이 아니다. 만일 미국이 전쟁할 생각이 없다면, 당연히 공식 대외문서에는 전쟁이란 표현을 쓰지 않으면 된다. 굳이 전쟁할 의사 없다고 표명하는 국방전략은 금시초문이다. 게다가 국가안보전략에서는 대만에 대해 ‘현상유지를 흔드는 시도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썼는데, 국방전략은 아예 언급도 없다.
이 백서를 보면, 지난 1월 26일 일본의 사나에 다카이치 총리가 또 갑자기 ”중국의 대만 침공시 거주 일본인과 미국인을 구출하기 위해 일본이 개입하겠다“고 발언한 맥락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이 대만 침공 경우에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기(또는 못하기) 때문에 일본이 개입하여 미국인을 구출하겠다는 뜻이 된다.
다카이치 발언은 중국의 대만 침공시 미국이 개입할 명분을 선제적으로 제거한다. 즉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명분은 대만 거주 미국인들의 보호인데, 일본이 그 역할을 대신하겠다고 나섰으니 미국은 할 말이 없어진다. 따라서 다카이치의 발언을 반드시 중국을 자극하는 것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 자체로 이중적인 발언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12월의 난데없는 중국의 대만 공격시 개입이라는 포괄적 발언에 비하면 이번 발언은 훨씬 그 폭이 좁고 구체적이다.
게다가 지난 12월의 다카이치 발언에 대해 중국이 희귀원소 및 군수전용 제품에 대한 수출 허가제를 발표하기는 했지만, 그동안 어디에서도 실제로 중국이 관련 제품의 대일본 수출을 제한했다는 보도는 나온 적이 없다(게다가 일본 중의원 선거를 이틀 앞두고는 중국은 대일본 전략물자 수출을 허가했다). 즉 중국은 바깥으로는 적당히 체면을 챙기면서도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다카이치는 내부적으로는 정치적 지지도가 상승하는 효과를 얻었다. 이것이 말하자면 ‘middle power state’(중견국)의 ‘전략적 자율성’이다.
한국에서 칭송을 받았던 캐나다의 마크 총리의 ‘반제국주의’ 발언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다보스 포럼에서 카니의 발언, 즉 ”rule-base international order는 허구다“라는 말은 실은 전혀 미 국방전략 백서의 스탠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미 미국이 이를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즉 카니는 반제 투쟁 발언으로 해석될 그럴듯한 얘기들을 했지만, 실은 그저 주어진 경계 안에서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대신에 영란은행 총재 출신으로 선출직도 아닌채 총리로 임명된 마크 총리는 현재 국내적으로는 60%가 넘는 고공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캐나다가 중국과 자동차 등 제품에 대해 관세인하 무역협정을 맺은 것에 대해 트럼프가 100% 관세를 매기겠다며 발작한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트럼프도 당연한 얘기를 한 것에 불과하다. USMCA(미국 캐나다 멕시코 사이의 자유무역협정, NAFTA의 개정판)에 따르면 조약국은 다른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려면 사전에 다른 조약국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즉, 캐나다는 미국의 동의없이는 중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트럼프의 보복관세 발언은 협정에 벗어난 것이 아니며, 카니는 “캐나다는 중국과 자유무역 협정을 맺으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서둘러 진화하고 나섰다.
이 사건 역시 캐나다의 ‘전략적 자율성’과 그 자율성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과장된 수사들에서 기름을 빼고 나면, 트럼프가 비록 험악한 듯 보이고 다른 국가 지도자들은 저항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서로가 정해놓은 경계 안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큰 이득을 얻기 위해 꼼지락거리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 새로움은 ‘본질’이 변해서가 아니라, 상황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전략적 자율성은 실제로 존재하는 변화이기도 하다. 미 국방부의 국방전략은 패전국가의, 그러나 완패까지는 하지 않은 국가의 패전 수습책에 더 가깝다. 국방전략 전체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지금 싸울 힘이 없으니 동맹 방어는 동맹국들이 알아서 하고 대신에 미국을 지원하고, 우리는 방어선을 뒤로 물리고 그동안에 시간을 벌어 전쟁 준비를 하겠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그대로 따라줄 ‘동맹국’이 과연 있을까? 여기서 미국의 고민은 시작되며, 속주들의 반란이 시작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 일본, 한국, 대만 등 대미 무역흑자국들을 상대로 관세를 빌미로 강제투자를 요구했을 때 대부분의 반응은 미국이 ‘강탈’해 간다는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냥 돈을 뺏기는 것이라면, 아무리 이들 국가들이 호구라도 그냥 순순히 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름의 저항(이른바 전략적 자율성, 혹은 주권의 수호)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은 투자 협상 원칙으로 ‘상업적 합리성’(commercial rationality)를 요구했으며, 정작 미국과 MOU가 이뤄진 다음에도 다들 차일피일 시간만 끌며 눈치를 보고 있다. 급기야는 트럼프가 한국을 특정해 의회를 비난하며 또 다시 관세 위협을 가하는데까지 이르렀다.
트럼프가 악을 써대니 한국도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2월 중에 국회에서 처리를 언급하고 있지만, 실은 가장 좋은 방책은 최대한 시간을 끌며 미 대법원에서 판결이 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일본은 총선을 핑계로 대미 투자를 미루고 있고, 유럽은 그린랜드 사태를 핑계로 미루고 있다.
속주 국가의 반란(insurgency of vassal states)
“행복한 속국, 불행한 노예”(happy vassal, miserable slave; 벨기에 바르테 데 베버 총리의 다보스 포럼 발언. 미국과 유럽간의 관계 변화에 대한 언급)의 도식은 여기서 탄생한다.
2차 대전 이후 유럽은 미국의 속국으로서 편안한 삶을 누려왔다. 그러나 미국의 힘이 약화되면서 미국이 자기 이해에 몰두하면서 유럽을 ‘착취대상’으로 간주하자 유럽인들은 불행한 노예의 삶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즉 유럽은 더 이상 미국의 이해에 부합하지 않는다. 유럽이 ‘반미’를 해서가 아니라, 유럽의 자본가들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자 곧장 미국과 배치되는 위치에 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럽 자본가들과 정치인들의 핵심적인 공통의 이해사안은 ‘유럽 통합’이다. 즉 기존의 느슨한 국가 연합 형태인 EU를 연방제 형태의 국가로 전환시켜내는 것이다. 이는 EU가 기존의 팽창주의적 정책을 중단하고 기존의 회원국가들 사이의 상호강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럽공동부채(EU debt pool)다. 우크라이나 전쟁 비용 원조를 핑계로 유럽 정상들은 압류하고 있는 러시아 자산(약 2300억 달러)을 사용하는 대신에 EU 회원국 정부가 공동 보증하는 유럽공동체 채권을 발행키로 했다. 유럽공동채권 발행 논의는 지난 2011년 그리스 부채 위기 때부터 꾸준히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유로존이 워낙 궁지에 몰려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제안이지, 전혀 현실성이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EU는 국가가 아닐뿐만 아니라, 국가가 될 수도 없다고 대부분의 정치인과 대중들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 부채 위기 때만 해도 EU는 국가가 아니라 유럽 각국 간의 느슨한 상호협의체에 불과했다.
그리고 지난 10여년간의 지정학적 변동과 러시아라는 ‘적대세력’의 발명,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럽 각국 정부의 과잉 부채는 유럽 공동 채권, 그리고 유럽통합정부라는 길에 결정적인 한걸음을 내딛게 만들었다. 즉 유럽통합론자들에게는 ‘위기가 곧 기회’였다. 오히려 정반대로 유럽통합이 심화되기 위해서는 적당한, 통제가능한 위기가 필요하다. 이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근본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을 하면서도, 실제로 전쟁으로 비화되지는 않는 전쟁, 그러나 ‘적’이라는 내부적 공포를 만들어 내는 전쟁, 이것이 유럽이 원하는 외부적 조건이며 우크라이나는 여기에 부합한다.
지난 2025년 2월 나토 군사훈련 모습. 출처: Euronews
러시아는 이같은 유럽의 행동을 미국의 사주라고 판단하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 10일 타스통신 인터뷰에서 “지난 25년 1월의 푸틴과 트럼프 사이의 알래스카 회담의 정신은 이미 죽어버렸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전쟁의 종식을 약속했지만, 실제로 행해진 것은 배신행위 뿐이며 더구나 ‘완전한 경제적 지배’를 원한다”고 말했다.
푸틴과 트럼프 사이의 ‘합의’(공식적으로 공개된 바는 없다)는 단지 우크라이나 전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7월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러시아의 국부펀드 책임자였던 키릴 드미트리에프와 미국의 2명의 억만장자 사이에 비밀회담이 있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드미트리에프는 우크라이나 종전 회담의 러시아쪽 대표이기도 하다. 지난해 10월까지는 미-러 사이에 협상이 지속되었고 휴전/종전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했지만, 지난해 11월 이후 러시아에 대한 테러공격이 강화되었고 러시아와 사실상 동맹관계인 이란에 대한 공격도 강화되었다. 최근에는 러시아군 정보국 부국장에 대한 암살 시도도 발생했다(러시아는 영국, 폴란드, 우크라이나 3개국의 합동작전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물론 유럽 내부에서 전략적 자율성에 대한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커져가고 있다. 최근 유럽에서는 비자카드나 마스터카드와 같은 미국 신용사에 대한 의존을 탈피하고 독자적인 유럽 신용카드망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데, 이는 미국이 글로벌 달러 체제에서 외부를 완전히 차단할 경우에 대비한 주장이다(ECB도 보유 달러화를 자산으로 달러화 채권을 발행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즉 달러 무기화에 대한 대응책이다).
말하자면 유럽은 미국이 전면적으로 자기 이익을 주장할 때를 대비하여 ‘자율성’을 논의 중이다. 그리고 이같은 위험은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완전한 경제적 지배’를 경고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유럽은 내부적인 취약점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트럼프는 단지 ‘미국적’ 현상만은 아니다. 지난 40여년간의 세계화의 불평등은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불신을 야기했으며 그 결과 대중들의 정치적 정향이 변화했다.
유럽의 정치의식 변화 추이 / 출처 : <The Economist>
미국은 이같은 유럽 내부의 대중의 정치 의식 변화를 레버리지로 삼으려고 하며, 이는 유럽 내정에 대한 간섭으로 나타난다. 동시에 유럽의 정치 엘리트들에 대한 개인적 공격도 강화되고 있다.
최근 공개된 엡스타인 파일은 본질적으로 미국 내부보다는 유럽의 정치인들을 겨냥한 것이다. 엡스타인은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과정에서 JPM에 흡수합병된 베어스턴스 은행 출신으로 국제적 정보 네트웍을 운영했으며 유럽과 미국의 정치인 경제계 인사들을 상대로 ‘자산관리자’ 역할을 했다. 엡스타인의 활동 시기는 미국과 유럽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전성기였기 때문에 당연히 엡스타인 네트웍에는 그같은 흐름에 수혜를 보는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현재 영국의 케이어 스타머 총리는 측근이 엡스타인 관련 인사인 것으로 밝혀져 사임 압력을 받고 있다. 결국은 사임할 것으로 보인다. 노르웨이 전대통령이나 네델란드 프랑스 거물 정치인들도 연루자로 비난받는 중이다. 즉 엡스타인 파일은 유럽에서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정치 세력을 숙청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중이다.
식민지의 저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대외 개입 사례는 우크라이나, 가자 지구, 이란, 이라크, 시리아, 베네수엘라 그리고 아프리카(나이지리아)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지역에 대한 미국의 개입 전략에는 공통점이 없다. 왜냐하면 이들 국가들이 놓인 지역이 각기 다른 세력권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납치극
먼저 베네수엘라 사례를 보자.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납치한 것은 실은 매우 특이한 사례에 해당한다. 미국이 중남미 국가 지도자를 납치한 전례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같은 납치의 경우에 미국은 해당국가에 대한 regime change(체제 전환이든, 정권 교체든)를 병행적으로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경우, 비록 마두로를 납치하고 군사작전을 벌이기는 했지만 기존 베네수엘라 정치세력 구도는 변경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유럽에서 야권 지도자 마차도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면서까지 정당성을 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정치 체제를 변화시키지 않았다. 게다가 납치 뒤에 델시 로드리게즈 임시 대통령과 맺은 협약은 실은 지난 2024년 마두로가 미국의 원유회사들과 맺은 협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마두로가 맺은 원유협정을 시행하지 못하게 했던 것은 바이든 정권의 제재였다.
이렇게 해서 베네수엘라는 매우 괴상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는데, 트럼프가 석유메이져 CEO들을 백악관에 불러 연 회의에서 BP나 쉘 같은 메이져들은 ‘투자 불가능’이라면서 베네수엘라 투자를 거부한데 반해서 24년 마두로와의 협정에 포함되었던 쉘만 이를 수용했다. BP의 투자 불가능 주장은 근본적으로 베네수엘라에서 regime change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장기적인 투자 안정성이 없다는데 있다.
왜 트럼프가 엄청난 무력을 과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regime change를 시도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의 전례를 감안하면 베네수엘라에 안정적인 친미정권을 수립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베네수엘라에서 내부적으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미국의 이해만 관철되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 방식을 아예 제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베네수엘라는 마두로가 잡혀가는 대신에 미국으로부터의 제재가 부분적으로 해제되었으며, 미국은 베네수엘라 원유에 대한 판매로를 장악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원유 판매 대금을 카타르에 개설된 보호예수계좌에 예치한 것은 베네수엘라의 독자적인 예산편성권을 제한한 것으로 이 지역이 미국의 식민지라는 것을 분명히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은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판매하는 세일즈맨 역할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임무도 떠맡았다. 최근에 미국이 중국과 인도에게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구매하도록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는데, 이는 미국이 원유 판로를 책임지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경제난을 해결하지 못하면 그 책임도 함께 지게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때는 베네수엘라 내부에서의 반미 운동이 강해질 것이다. 어쨌든 가장 우호적인 조건 하에서조차 미국은 regime change를 강행할 수 없다는 것은 중대한 힘의 균형의 변화, 그리고 미국의 대외전략 변화를 상징한다.
이란 시위의 경우
이란의 경우는 가장 성공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실패가 두드러진 사례다. 먼저 이란 사태에 대한 서구 언론의 프로파갠더와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언론들이 받아적고 있는 이란 관련 기사는 그 출처가 대부분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의 하수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팔레비 왕조의 후계자로 등장하는 인물은 이란 내에서는 아무런 영향력도 없을 뿐만(한국에서 왕씨가 고려 부흥 운동을 하는 정도의 영향력이다) 아니라 오히려 반감의 대상일 뿐이다. 이같은 가짜 뉴스에 빠져서 마치 이란 내에서의 민주화 운동이 불가피한 것처럼 인식하거나 혹은 이란 정권을 악마화하는 것은 자유주의자들의 환각에 지나지 않는다.
먼저 이란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시간대 별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란 사태는 내부의 반정부/반체제 운동과 외부의 개입에 의한 사보타지/테러가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건’으로서는 이란 시위는 지난 12월 15일부터 시작한다. 이 날을 기점으로 이란의 정유공장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 및 생계 보장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12월 28일 중소자영업자들이 일제히 시위에 들어가면서 대규모 운동으로 전화했다.
문제는 이같은 ‘시위’의 근본 원인에 관한 것이다. 서구언론은 이를 신정체제의 억압이나 혹은 정책 당국의 경제정책 실패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 다보스 포럼에서 당당히 주장한 것처럼 ”미국이 달러 공급을 끊어서 은행들이 파산하고 경제 위기가 발생“한 것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었으며, 동시에 지난 1979년 이란 혁명 이후의 반복적인 체제 위기의 근본 원인이었다.
이번 사태가 평범한 시위에서 대규모 시위, 또는 폭동으로 전화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11월 하순부터 갑자기 이란의 은행들이 달러 부족 사태를 겪으면서 연쇄 파산했다. 이란 중앙은행은 글로벌 달러 시장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기때문에 이를 저지하기 위해 화폐를 발행했고, 이는 순식간에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났다. 뱅크런과 물가폭등이 겹쳐지면서 중소자영업자들이 시위에 나섰고 올해 1월 3일부터는 대규모 폭동으로 발전했다. 즉 이번 이란 사태의 배경에는 사실상의 국가 파산이 있었다. 베센트가 자랑한 것처럼 미국의 금융 공작이 효과를 발휘한 것은 분명하지만 어떤 경로로 전개되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1월 3일은 동시에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가 이란에 연결된 날이기도 했다. 즉 과거 이란 정부가 전통적으로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사용했던 인터넷 차단을 우회하는 경로가 미국에 의해 개설된 날이다(같은 날 한국에도 스타링크가 연결되었다). 그리고 1월 7일부터 1월 11일까지 격렬한 무장 충돌이 발생했다.
문제는 바로 이 시기다. 이란 정부는 1월 7일을 전후해서는 스타링크를 차단하는 방식을 찾아냈고 따라서 가장 시위가 격렬했던 시기의 정보들은 사실상 확인하기 어렵다. 이란이 스타링크 차단에 성공한 이유는 러시아와 중국의 기술적 지원 때문이라는 이란 내부 보도가 있었는데 이 역시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동시에 이란이 역으로 스타링크 수신자를 역추적하여 시위대를 체포했다는 이란 내부 언론 보도도 있었다.
이번 사건이 과거와 다른 점은 외부의 개입 그 자체는 아니다. 이란의 반정부 시위에서 외부의 개입은 늘 있었다. 이번 사태의 특징은 무차별적인 파괴에 있다. 지금보다 훨씬 규모가 컸고 이란 체제에 가장 위협적이었던 지난 2009-2011년의 시위 당시에는 시위나 진압 모두 상당히 폭력적이기는 했지만 무차별적인 파괴는 없었다. 게다가 구호도 당시에는 명확했던 반면에 이번 시위 전개 과정에서는 그같은 ‘통일된 정치적 슬로건’이 없었다.
이란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시위 과정에서 이슬람 사원 수백 곳이 파괴되고 구급차와 학교 도서관 등이 파괴되었는데 이 역시 과거와는 다른 점이다. 이를 이란의 신정체제에 대한 폭력적 반감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이란은 순수한 신정체제가 아니며(세속 권력과 신정 권력 사이의 절충적 타협 체제다), 설혹 현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반감이 있더라도 시아파 교리상 이슬람 사원을 파괴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게다가 이란은 서구에서 선전되는 것과는 달리, 타종교에 대해서 다른 중동 국가에 비해 훨씬 관용적이다. 바로 이 때문에 이슬람 사원이 파괴되었다는 것은 외부의 개입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란은 공식적으로 이스라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의 테러리스트들이 침투하여 파괴 폭동을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1월 3일 이후의 시위 과정에서는 이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이란 정부가 테러리스트들에게서 압수한 무기라면서 공개한 영상에 나오는 소총들도 대부분 터키제 무기이며 일부 무장 습격 사건은 영상으로 확인된 바 있다.
문제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란 시위는 초기의 자발적 저항과 후기의 외부 개입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그 성격을 명확히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초기의 노동자 파업이나 소상공인 시위 때에는 정부와 시위대 사이에 대화와 협상이 존재했다. 그러나 1월 3일 이후에는 전혀 그같은 징후가 없다. 1월 3일 이후의 시위 양상은 정치적 구호나 목적보다는 순수하게 파괴와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상자은 이 시기에 발생했다(약 3100명 사망). 현재까지 얼마나 많은 인원이 체포/구금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즉 시위 후기는 이란 사회 내부의 혼란과 공포 그 자체가 목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언론은 정부 소식통을 인용하여 모사드(이스라엘 정보기관)가 이란 시위에 개입했다고 공공연하게 보도했다. 또 이란 시위에 대한 서구의 프로파갠더를 보면 미국의 개입도 분명하다. 동시에 러시아와 중국의 개입도 분명하다. 중국은 1월 7일 ”이란에서의 외부 세력의 준동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번 사태는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 즉 정치적 여론을 우호적으로 만들기 위한 악마화 작업일 가능성이 높지만, 동시에 이는 이란 내부의 권력 지형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이란 내에는 79년 혁명 이래 서구와의 타협을 주장하는 온건개혁파와 이슬람 세력,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세력의 3개 분파가 권력을 공유해 왔다. 현재의 마수드 파제키쉬안 대통령은 온건개혁파인 reform front 출신인데, 지난 9일 이란혁명수비대(IRGC)는 reform front의 주요 지도자들을 반혁명 혐의로 체포했다. 이는 이란이 미국과의 핵협상에서 주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항전의지를 대내외적으로 천명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이란은 미국이 공격을 해 올 경우 내부의 동요를 선제적으로 차단하고 이를 전면적인 전쟁으로 확대하는데 주저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이란의 현정권이 서구와의 타협을 모색하면서 주요 생필품에 대한 보조금을 폐지하고 시장 자유화를 모색하는 등 시위 원인 중의 하나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이란은 지난 40여년간의 경제 봉쇄로 인하여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어서 전면적인 폐쇄 경제 체제로 가거나 아니면 서구에 굴복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갈림길에 놓였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이란 시위는 이란 내부의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미쳤으며 미국도 이란을 영영 놓치거나 아니면 전쟁이라는 불편한 선택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만일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게 된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글로벌 전략은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이 배후에서 지원하는 한은, 이란에게 미국이 요구하는 길을 따르거나 아니면 regime change가 아니라 순수한 파괴밖에 없다는 협박이 더 이상 통하지 않으며, 그 결과 ‘힘을 통한 평화’라는 구호는 전쟁을 해도, 전쟁을 하지 않아도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베네수엘라나 이란의 사례를 보면, 미국의 목표는 이전과는 달리 regime change라는 옵션은 아예 배제되어 있다. 이는 뒤집어 말하자면, 누가 지역정권이 되든 상관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며, 이 때문에 오히려 전략적 자율성을 부추기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는 미국의 안보전략 원칙인 ‘유연한 현실주의’(flexible realism)의 적용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국 대외정책이 임기응변으로 표류할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미국이 이란에 대한 압박에서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명확하지 않으며, 그게 무엇이든 미국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들도 극히 제한적이다.
결론 : 모험주의적 불장난의 가능성
트럼프 정권의 대내외 정책의 결과로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가능성은 매우 높아졌다. 물론 민주당의 의회 승리가 미국의 정책 노선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볼 근거는 전혀 없다. 왜냐하면 트럼프 정권의 정책은 이미 지난 2014년 오바마 정권 시절에 그 초석을 놓은 것이며, 바이든 정권 시절에 이미 모색 심화되었던 것의 연속선 하에 있기 때문이다.
민간자본(사모펀드) 자본가들과 소수의 하이테크 독점자본의 이해를 반영하는 트럼프 정권으로서는 이같은 미국내의 정치적 균형 변화는 자신들의 이해를 크게 해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타개할 수 있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미국 내에서의 정치적 실패를 선제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 또는 정치적 실패가 명확해지기 이전에 선제적으로 최대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트럼프 정권이 모험주의적 선택을 할 가능성은 매우 높아졌으며 이미 중국 러시아 유럽 등은 그같은 가능성에 대비해 대책을 마련 중에 있다.
이는 각 지역별로 정치적 경제적 분산화 및 블록화를 야기할 것이며, 동맹들 사이의 이합집산이 거듭되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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