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2026년 국제정세 전망

칼 위의 역사, 길 위의 역사

: ‘제국 없는 제국주의’, 그리고 위기의 차이와 반복

2025년 12월 31일 (2026년 1월4일 미국 베네수엘라 침공후 수정) / 이슈 리포트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미국국가안보전략(NSS), 베네수엘라, 참수작전, 역외사법권 (long-arm jurisdiction), 유연한 현실주의(flexible realism), 세력권(sphere of influence), 금본위제(stable coin), 은(silver), 화폐평가절하(debasement), 금융위기, 제국, 제국주의

역사는 돌아보아야 알 수 있다. 그리고 흔한 오해와는 달리, 미래 또한 그 돌아봄 속에 존재한다. 이 기묘한 시간의 중첩, 원본과 짝퉁이 겹쳐 상영되어 흐릿한 그리고 분해되지 않는 뭉텅이로 우리 앞에 제시되는 것, 그것을 우리는 현재라고 부른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다.

1.차이와 반복

역사는 되풀이된다. 아마도 무한 도돌이표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역사 속에서 행위하는 주체들이 과거를 모방하여, 혹은 자신들에게 유일한 또는 가장 효과적인 그리고 어쩌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인식하며 행한 모든 행동들은 각기 다른 무대와 조명하에 놓여있다. 그래서 오늘날 흔히 디지털 풍화라고 불리우는 것처럼, 그것은 반복될수록 원본과 멀어지며 더욱 우스꽝스럽고 기괴해지며, 따라서 그 결과는 더욱 터무니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일단 이 ‘차이’들을 깨닫고 나면, 이번에는 원본과 그 뒤의 무수한 사본들이 겹쳐져 상영된다. 그렇게 하여 진실과 거짓은 뒤섞이며, 사실과 오류는 동반하며, 행위는 목적을 배반하고 결과는 의도를 벗어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정치’라고, 그리고 ‘역사’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2026년 신년 벽두 1월 3일에 베네수엘라의 도시들을 침공하고 군대를 투입하여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주엘라 대통령을 납치했다. 바로 같은 날이다. 1990년 1월 3일 부시 시니어는 파나마의 노리에가 대통령을 납치했으며, 2020년 1월 3일에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가셈 솔레이마니 장군을 살해했다. 미국이 날짜를 맞춘 것은 고의적이다. 점성술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어쩌다보니 그 날이 길일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은 ‘날짜’에 광적인 집착을 보인다.

1월 3일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를 폭격하고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납치해서 미국으로 송환, 뉴욕 구치소에 구금하고 자국 재판에 회부했다.

실제로는 이 사건은 그다지 중요하지도, 놀랍지도 않다. 진정으로. 미국이 이른바 ‘역외 사법권’ (long-arm jurisdiction, 역외에서 자국법을 수행하는 것)을 실행한지는 이미 40년이 넘었다. 미국 해군이 공해상에서 단지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제재(sanction)을 부과한 대상이라는 이유만으로 타국의 선박을 압류하고 선적 화물을 털어가며 선원들을 처벌한 것도 이미 40년이 넘는 관행이다. 트럼프라서 꼭 이렇다고?

공해상에서 미국 해군의 무제한 무력 행사를 용인한 법률이 미국 의회를 통과한 것은 1984년이며 그 발의자는 현재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인 척 슈머다. 아마도, 지난 2016년 대선을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이 “내가 대통령이 되면 이란을 공격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모양이다. 여태까지 당신들은 뭘 보고 있다가 이제 와서 놀란단 말인가.

정권이 바뀌어도 늘 같은 일들이 반복되는데 대해,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이를 아주 재치있게 표현한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누가 당선이 되든 검은 양복을 입고 슈트케이스를 든 신사들이 들어닥쳐 브리핑을 하면 그대로 된다“.

이렇게 해서, 마치 오늘 처음 안 것처럼 깜짝 놀라는, ’이 놀라운‘ 미국의 실력 행사는 17세기 사략선(해적)을 충실하게 뒤따르고 있으며, 이미 사망한 베네수엘라 전대통령 챠베스의 묘를 폭격한 데 이르러서는 ’gansterism’이라는 미국 네티즌들의 한탄이 사실이 되고 만다. 즉 현재의 미국은 ‘국가’가 아니라, 적어도 1648년 30년 전쟁의 참혹 끝에 할 수 없이 모두가 합의한 베스트팔렌 조약의 ‘제도적 권력을 가진 주권국가’라는 최소한의 기준도 미달하는 수준까지 내려갔다. 이 점에 있어서는 놀라운 발전이며, 이것을 역사의 발전, 또는 진보라고 부른다면, 그게 맞다.

한 체제가 우아하게 품위를 가지고 퇴행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것도 역사의 전개이며, 이 역사의 행로에서 각기 1억을 죽인 양차 대전의 결과로 탄생한 전후 질서가 이제는 망했다거나 혹은 맑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썼던 문구를 좀 비틀어서 표현해보자면, 이제 자유.평등.박애가 해병.포병.드론병으로 대체되었다고 해도 역사가 나아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여하튼 이것도 역사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이 역사야말로, 그 과거의 찬란한 문명과 교양, 이념이 얼마나 가소로운 허위 위에 서 있었는지, 그리고 이 체제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도대체 이 체제의 권력자들이 어떤 궁지에 몰렸길래 이 찬란한 허울(facade)을 스스로 무너뜨리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현재의 역사에서 무엇을 읽어낼지는 당신의 책임이다. 다시 이 역사를 반복하고 싶지 않거든.

지난 2025년 11월 발표된 미국 국가안보전략 보고서 표지

2. 미국의 국가안보전략(1) 유연한 현실주의, 그리고 베네수엘라 사례

지난 11월 발표된 트럼프정부의 국가안보전략(NSS national security strategy) 백서는 시작부터 다소 황당하다. 전문가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평이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일관성이 없다. 안보와 국제 질서에 대한 보편적인 원칙의 제시없이 ”미국의 이해가 미국의 안보“라고 선언하며 국제적 책무에 대해서는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만일 박사 과정 학생이 학위 프로포절을 이따위 써서 제출했다면 지도교수는 자신의 ‘지도’ 능력에 대해 한탄했을 것이고, 기업체에서 상사에게 이런 보고서를 냈다면 당장 다음달부터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됐을 것이다. 그 정도로 일관성이 없으며, 마치 여러 사람이 작성한 메모를 따붙이기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같은 비일관성은 트럼프 정부 안보팀의 ‘무능력’의 탓이 아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전략이 특성상 비일관된 것이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미국 내에서의 ‘의견’(이해관계)의 통일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보편적인 국제 질서를 전세계에 강요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이들은 ‘유연한 현실주의’(flexible realism)를 제시한다. 여기서 리얼리즘이란 자신과 대상의 현실적 능력 그리고 조건에 맞추어 되는 만큼만 한다는 것을 뜻한다. 시쳇말로 하자면, ”되면 한다“. 반대로, 안되는 것은 안한다. 되는 것도 많이 되면 많이 하고, 많이 안되면 조금만 한다. 그래서 ‘유연한’ 것이다. 따라서 여기저기서 각기 차별적인 목표와 수단이 제시된다. 이들에게 세계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며, 세계가 보편이든 아니든 아예 관심조차도 없다. 다만, 유일한 절대적 목표가 있는데, 그것은 ‘국경의 확립’이다.

간략하게 발표한 안보전략의 목표를 살펴보자.

  • 국경의 확립이 최우선 과제다 –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미국을 방어하고 이민을 억제하며 에너지를 확보하고 무역과 외부의 정보 공격으로부터 미국을 지키는 것이다.
  • 그러기 위해서는 군대가 세계에서 가장 ‘막강’해야 한다.
  • 군사력의 기반은 산업(제조업)이기 때문에 우리는 강력한 산업 기반을 원한다(아직은 거기에 못미친다는 얘기다)
  •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소프트 파워’를 계속 유지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의 미국의 행위에 대해서 ‘변명’할 생각없다. 대신에 각 지역의 문화적 경제적 ‘차이’는 인정해 주겠다.
  • 우리는 미국의 영광스러운 과거 및 정신력을 되살려 나갈 것이다.

다음은 각 지역별 목표다.

  • 우리는 서반구(western hemisphere; 남북미 대륙)가 합리적으로 안정적으로 잘 관리되기를 원한다. 그렇게 해서 (중남미의 불안정성으로 인한) 이민이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오지 않게 되기를 원한다. 또한 이 지역이 외부의 침투나 중요 자원에 대한 소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다른 말로 해서 ‘트럼프적 색채를 띈 몬로 독트린’이다.
  • 우리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그동안 이루어진 미국의 이익 훼손을 중단시키고 원상회복시키기를 원한다. 이 지역은 자유롭고 오픈된 통행이 보장되어야 한다.
  • 우리는 유럽의 자기 확신과 정체성을 회복하면서 유럽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할 것이다.
  • 우리는 중동에서 원유와 원유 파이프라인을 적대 세력이 장악하는 것을 저지할 것이다.
  • 미국의 선진기술, 특히 인공지능, 바이오테크,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미국의 기술과 표준을 보장하기를 원한다.

지난 1월 3일의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이같은 미국의 안보전략이 적용된 첫번째 사례였다. 정확히 전략 지침을 따랐다.

첫째, 미국은 전면적인 침공은 안한다. 즉 지상군 투입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베네수엘라 내부 사회를 동요시켜 오히려 대규모 난민을 발생시키고 이는 미국으로의 불법 유입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른바 ‘참수 작전’, 즉 지도부만 외과적으로 도려내는 작전을 택한다. 그렇게 해서 마두로가 끌려갔다. 그리고 대규모 지상군 침공은 미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지지를 받고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둘째, 베네수엘라가 공격 대상이 된 이유는, 마두로가 사회주의자라서도 아니고 단지 베네수엘라에 원유가 많이 매장되어 있기 때문만도 아니다. 단순하다. 미국에게 남미는 ‘내 땅’이다. 내 땅에 남이 와서 흥정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누가? 중국이.
중국은 마두로 정권의 개발사업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고 침공 당일에도 시진핑 주석의 특사가 카라카스에서 마두로와 3시간 동안 회담했다. 대규모 투자 양해각서 체결이 예정되어 있었다. 즉 이번 침공은 중국에 대한 경고다. 동시에 전세계 어느 나라의 지도자가 됐든 미국의 이익에 반하면 물리적 공격을 한다는 전례를 확실하게 보여주도록 기획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는 매우 이상한 점들도 많다. 첫째는 베네수엘라의 군사적 대응이 전무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시누크 헬기(수송용 헬기)가 눈에 훤히 보일만큼 낮은 고도로 카라카스 시내를 돌아다니는데도 베네수엘라군의 대공포는 전혀 대응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군은 러시아제 manpad(휴대용 대공미사일)을 5000대나 가지고 있다(그밖에 스웨덴제등도 수백대 있는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까지 언론 보도나 수많은 휴대폰 영상들을 보아도 헬기에 대응한 사격이 없다(단 한 개의 대응 사격 영상만 확인했다. 트럼프가 미군 헬기가 피격되었다고 말했는데 아마도 그 영상인 듯 하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상공에서 미군 아파치헬기와 시누크헬기가 낮게 날고 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는 군사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미군의 작전이 그만큼 완벽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미국과 베네수엘라 사이에 사전에 협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후자는 음모론이기는 하지만(최초 발원지는 베네수엘라의 야당에서 나왔다),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다른 사례들과는 달리 미국은 마두로를 제외하고는 다른 정부 고위관료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 결과 부통령인 델시 로드리게즈가 대통령 직무대행으로 나서서 베네수엘라 사회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또한 여전히 현 내각은 챠베스-마두로 충성파로 구성되어 있다. 즉 마두로는 제거되었지만, 베네수엘라의 정치 권력에는 변동이 없다. 그런데 부통령인 델시 로드리게즈는 마두로만큼이나 강경파다. 그의 아버지는 지난 1970년대 미국의 지원을 받는 독재정권에 항거하다가 체포되어 고문으로 죽었다. 베네수엘라의 대외, 대내 노선이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할 요인은 현재로선 없다.

마두로 납치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트럼프가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운영하겠다(run)“고 말한 것은 이를 염두에 둔 발언일 것이다. 동시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베네수엘라 우파 정치인 마챠도에 대해서도 ”베네수엘라인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고 차기 지도자 후보에서 제외한 것은 사전에, 향후 정국에 대해 베네수엘라와 협의가 되어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으로서도 타협의 필요성은 있었다. 사실상 해상봉쇄 상태에서 중국과 러시아로부터의 지원에만 의존할 수도 없고, 다른 남미 국가들도 방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다만 이들이 미국의 직접 개입에 대해서는 우려하고 있던 것도 분명하다(지난 2024년 중남미 국가들은 베네수엘라의 내부 불안정이 난민 문제를 야기해 자신들의 국가에도 위험을 초래한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현재 국면에서 베네수엘라도 ‘출구 전략’은 필요했으며, 트럼프 정권으로서도 지난 11월의 지방선거 참패 이후에 뭔가 ‘성공하는 꼴’을 지지자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절대적 필요가 있었다. 동시에 이 성공이 ‘정치적 반대파’들에게 명분을 부여해서도 안되는 것이었다.
양자의 이같은 어중간한 입장과 트럼프의 안보 전략이 합쳐지면 훌륭한 한 편의 드라마가 탄생한다.

베네수엘라의 집권 단결사회주의자당은 권력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어차피 불가피한 자원 개발에 숨통이 트이고(지난 11월 마두로가 미국에 원유 개발 참여를 촉구한 일은 아무도 기억 안한다), 미국으로서도 남미는 내 땅이라는 선언과 다름 없는 몬로 독트린을 수호하는 것처럼 보이며, 동시에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하면서도 최소한의 유혈사태로 우크라이나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에 대해 외교적 우위를 가지면서도 중국의 남미 침투를 저지하는 용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베네수엘라 사태는 이번 사건을 시작점으로 하여 ‘장기화’될 것이다. 왜냐하면 양쪽 모두 명분에서 서서히 후퇴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며, 나아가 트럼프는 올 11월의 중간선거 때까지 마르고 닳도록 베네수엘라를 우려먹을 정치적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 마두로에게는 무엇이 보장될까? 지난해 12월 온두라스 대선이 있었다. 부정선거로 얼룩진 선거였는데(너무 노골적으로 개표 부정을 저질러서 약간 아연할 지경이다), 개표 부정 논란으로 선거 한 달만에 트럼프가 지지하는 나스리 아스푸라 후보(부정개표의 주범이다)가 당선자로 확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는 흥미로운 일을 저질렀다. 미국에 400톤이 넘는 코카인을 밀수한 혐의로 미국으로 송환되어 재판에 넘겨져 45년 형을 받은 온두라스의 전대통령 올란도 헤르난데즈를 사면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뉴욕연방법원에 ‘나르코-테러리즘’(마약테러리즘) 혐의로 기소된 마두로의 혐의가 헤르난데즈의 혐의와 동일하다. 즉 그는 마두로에게 ‘사면’이라는 선례를 미리 제시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트럼프라서 가능하다.

이것이 미국의 정보공동체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지지한 이유이기도 하며(왜냐하면 트럼프는 어떤 모순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이나 할 사람이기 때문에), 트럼프가 그러면 내가 욕을 먹는 대신 돈이라도 챙기겠다고 너무나도 천연덕스럽게 개인 치부에 부끄러움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정치인들이 트럼프에 비해 어떤가 하면, 비교 대상으로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민주당)을 보자. 낸시 펠로시는 하원의원 생활 30 여년 동안 재산이 80만 달러에서 1억 3천만 달러로 늘었다. 스스로 펠로시보다는 천 배는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트럼프에게는 수십억 달러도 자신의 재능에 비하면 적은 돈이라고 여길 것이다. 미국의 이해를 위해서는 지금의 미국은 트럼프가 필요하며, 나중에 트럼프에게 그 모든 모욕을 뒤집어 씌울 것이며, 그 때를 대비해 트럼프는 더 많은 돈을 치부할 것이다. 상호 아름다운 상승작용이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드라마의 현혹 속에는 한 가지가 빠졌다. 의도적으로 그 삭제를 알아채리지 못하게 무대가 화려하게 장식된 탓이다. 이 ‘작전’은 레짐 변화 (regime change)가 아니다. 그냥 수뇌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3. 미국의 국가안보전략(2) – 세력권(sphere of influence)

트럼프 정권의 안보전략 백서의 두 번째 특징은 ‘세력권’(Sphere of influence; 혹은 영향권)이라는 지역적 개념의 도입이다. 그리고 이런 세력권 개념틀로 현재 전지구적 정치와 지역정치를 이해하면 정확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역별로 각기 다른 안보 목표를 설정하며,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미국의 이권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한, 각 지역에서 독자적인 자기 영향력을 가지는 것을 허용한다. 이것은 19세기의 세력권 개념과 매우 유사하다. 이시다 전 총리가 ‘혹시 이번에 독립?’이라는 헛된 기대를 품거나, 유럽의 정치인들이 ‘독자적인 유럽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이 목줄을 느슨하게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12월 중순에 러시아의 이른바 ‘새도우 플리트(shadow fleets)’인 원유 운반선이 지중해에서 드론 공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이 유조선은 러시아 국적선으로 보도되었지만, 러시아 전문가들은 중국 선적 선박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배는 베네주엘라산 원유를 선적하고 있었다. 드론은 그리스에서 발사되었으며, 이탈리아를 지나서 지중해의 공해상에 위치해 있었다. 즉 미국은 중국의 민간선박을 공격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베네주엘라에 대한 경제협력 태도를 전혀 바꾸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국이 대만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미국의 안보전략 백서에는 대만 관련 항목에 ”어떠한 현상 변경 시도도 반대한다(oppose)“라고 되어있었다. 그러나 이번 백서에는 ”현상 변경 시도를 지지하지 않는다(do not support)“라고 되어 있다. 즉 중국 – 대만 관계를 누군가가 변경시키려 해도 지지하지 않을 뿐이지 반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묵인). 이 배경 하에서 일본의 대만 관련 발언(사나에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안보 변동시 일본 개입’ 발언과 고이즈미 방위상의 대만 인근 도서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 배치가 나온 것이다.

대만 해협에서 훈련하는 중국 해군과 해경, 지난 2025년 12월 중국해군과 광동성 해경이 대만 연안에서버린 포위 훈련 작전지도. 출처 : 중앙통신사

일본은 미국의 식민지다. 이제는 다들 늙거나 죽어서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듯 한데, 지난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의 저작물들, 특히 경제나 정치 논문에는 ‘미국의 식민지로서의 일본’이라는 표현은 아주 흔한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식민지였으며, 지금도 식민지다. 전임 이시다 총리는 아예 이를 노골적으로 표명한 적도 있다. 그는 취임 직후인 2024년 가을에 ”어쩌면 이번에 일본이 드디어 주권국가가 될 수도 있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이시다 전 총리의 퇴임 직후 나온 연설은 보다 안쓰럽다. 그는 2차 대전의 경험을 환기하면서 ”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주만을 일으킨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연설 속의 진주만은 지금은 ‘중국’이다. 그는 일본 사회의 극우파의 발호로 자민당이 반중 스탠스를 취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는 이미 무모한 도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중국에 하소연한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일본)가 사정이 곤궁해서 이러는 거니까 좀 봐달라“는 하소연이기도 하다. 주인이 물으라고 하면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는 옆집 아저씨에게 짖어대는 시늉이라도 할 수밖에 없다.

다카이치 총리가 대만 개입 발언을 노골적으로 철회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더 이상 전선을 확대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이런 일본 내부 사정을 고려해 준 것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미국의 안보전략 백서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안보 분담에 있어서 ”일본과 호주는 단지 분담할 뿐만 아니라, 고통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즉 니들이 총알받이 해!라는 뜻이다.

놀랍게도 여기에는 한국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단지 ‘일본, 호주 그리고 그밖의’(the beyond)라고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한국은 들어갈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뒤집어 말하면, 한국은 잘하면 우크라이나 신세를 면할 수 있다. 일본은 무조건 붙박이로 끌려들어 간다.

이번 발표된 신안보전략중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략에서 한국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더불어 돈, 돈, 돈 항목에서 나오거나, ”쟤들이 우리 돈을 뺏어갔어요“라고 우기는 대목에서나 한국은 등장한다(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 서술된 것의 요약이다. 트럼프 정권의 안보전략 백서를 보고 든 개인적인 첫 느낌은 ”이거 혹시 중학교 2학년이 쓴 것 아닐까?“하는 의문이었다. 어쨌든 솔직해서 이해하기는 편하다)

한국에서의 이른바 ‘반중’ 정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난해 새롭게 책정된 미국의 반중국 프로파갠더 공작 예산은 16억 달러에 달했다. 그리고 아마도 이 예산이 한국만큼 확실한 효과를 내는 곳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을 ‘레밍’이라고 폄하한 전 주한미군사령관의 발언은 실은 폄하는 아니었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에는 해당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선의 병사들. 출처 : 이코노미스트

하지만 작용에는 반작용이 작용한다. 전지구적 지정학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지난 9월에 이어 두번째로 우크라이나 협상을 중재하는 와중에 우크라이나는 푸틴의 여름별장(다챠)이 있다는 로브로고드에 91대의 자폭 드론을 보냈다. 이 사건 직후 푸틴은 트럼프와 통화했고 트럼프는 ’오 나는 몰랐다‘고 답했는데 물론 이건 러시아도 믿지않는다. 우크라이나의 모든 공격은 미국의 지시나 정보제공이 없이는 불가능하기때문이다. 전선에서 800km나 떨어진 지역으로 정확히 드론을 보내기 위해서는 위성좌표가 필요하다.

문제는 그것이 푸틴의 다챠가 아니었던 것이다. 러시아 군사 블로거들에 따르면 드론의 공격 목표는 러시아 전략핵 사령부 통제소였다. 비록 그것이 재래식 무기라고 할지라도 핵무기 시설에 대한 공격은 핵공격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미국은 당연히 드론 공격이 성공할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경고용 대리 공격이다. 그리고 다음날 푸틴은 군복을 입고 TV에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마도 조만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게도, 유럽에게도, 러시아에게도 전쟁은 필요하다. 우크라이나에게도 전쟁은 필요하다. 그 나라의 인민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도자라고 칭해지는 사람들, 이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 그리고 전쟁만이 계급투쟁을 억압하고 은폐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필요하다. 이 위험한 불장난은 오래 계속될 것이다.

중국은 그럼 어떤 입장인가? 시진핑의 신년사를 보아서는 당장은 국제적 분쟁을 원치는 않는다. 시진핑은 국내 수요 진작과 기술발전, 그리고 지방정권에 대한 통제 강화를 언급했다. 후자가 특히 중요한데, 이는 중국에서 중앙집중화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는 중국이 ’제국‘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미국에서 ’민주적 퇴행‘이 심화될수록, 그 반대쪽에 있는 중국에서도 중앙집중화 즉 권위주의적이고 통제적인 색채는 강화될 것이다. 양자는 서로의 거울이다.

트럼프 정권의 안보전략에서 표방된 지역적 세력권의 허용은 광범위한 후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즉 밥상에 숟가락을 올리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힘이 있다는 것을 과시해야만 한다. 태국/캄보디아 분쟁이나, 예멘을 둘러싼 사우디아라바이아와 아랍토후국연방 사이의 사실상의 전투,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분쟁의 재연 등은 과거 미국이 헤게머니를 장악하고 전세계를 통제하고 있을 때는 상상하기 힘든 사건들이다. 미국이 물러선 자리에서는 도토리들이 키재기 경쟁을 통해 힘의 고저를 결정해야 한다. 그걸 꼭 폭탄을 던져서 측정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한숨만 나오지만, 영장류가 아직은 그 수준에 머물고 있으니 도덕경을 읊어봤자 소용이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국의 ’보편주의에서의 후퇴‘는 그 부담 때문에 불가피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사건(예컨대 전쟁)을 통한 전격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퇴위를 통한 점진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이같은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4. 제국없는 제국주의 국가독점자본주의 경로에서 직면한 저항들

왜 미국은 유럽에 대해서는 그토록 냉담할까? 아마도 메르쯔 독일 총리가 가장 정확하게 요약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냉전 당시 중국-소련 관계와 비슷하다”. 1960년대 중국과 소련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노선 대립으로 무력 충돌까지 갔다(비록 소규모지만). 트럼프 안보전략 백서에도 유럽이 정체성을 찾는다면이라는 전제 아래, 동맹이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은 서로 발전 노선이 다르다. 유럽은 여전히 인구 확대(이민자 유입 유도,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주변지역이 분쟁화되어야 한다)와 내부적 통제의 강화를 우선 과제로 두고 있다. 이는 유럽이 더, 혹은 덜 자유주의적이거나 인권과 인도주의 같은 ‘가치’를 우선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유럽의 자본이 지향하는 바가 미국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유럽은 과거의 유산으로 인해 기득권 자본의 힘이 너무 강하다. 따라서 미국 방식의 민간 복수 화폐제(스테이블 코인)를 택하지 않고, 중앙집중화된 중앙은행 디지털 코인(CBDC)을 선호한다. 동시에 이를 통해서 EU가 명목상의 관세자유지역이 아니라, 실질적인 ‘연방국가’ 형태로 나아가기를 원한다. 이 지점에 있어서는 미국과 유럽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배치된다. 심지어 유럽중앙은행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지난 9월 “유로화가 (달러화를 대체해) 글로벌 기축통화가 될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트럼프가 브뤼셀에 해병대를 보내지 않은 것만 해도 많이 참는 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달러로 먹고 사는 미국에게 유로화가 기축통화 자리를 노린다는 것은 치명적인 위협이다. 트럼프가 유럽을 두고 “미국을 갈취(rip-off)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작해야 연준의 달러 공급으로 부지하는 주제에 이제는 상석을 노리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렇다고 뾰족하게 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도 다급하고 유럽도 다급하기 때문에 서로 절충하거나 혹은 한쪽이 굴복하고 들어가 여지가 너무 적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미국과 유럽의 관계(갈등)는 제국주의냐 아니냐, 혹은 어떤 제국주의냐의 문제가 아니라, 각기 어떤 내부 자본의 이해관계를 가졌느냐, 그리고 양자가 절충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그런데 현재 구도에서는 타협이 안된다.

지난 12월 말, 미국은 전 EU 상무위원장인 티에리 브레통에 대한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브레통은 상무위원장 재임 당시 미국의 big tech기업들(구글, 트위터, 아마존, MS등)에 대해 반독점법을 적용해 벌금을 부과하고 가짜뉴스 제재를 위한 정보 검열을 요구했던 인물이다. 미국이 EU 고위관료를 제재한 것은 흥미로운 사건인데, 이는 미국은 자신들의 독점적 이익을 위해서는 동맹이고 뭐고 없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즉 미국의 제국주의는 중심부/주변부 할 것이 공평하게 적용된다. 동지도 없으며, 동맹도 없다. 오직 독점자본의 이익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마치 미국이 제국주의처럼 보이는 이유인 동시에 실은 제국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제국은 자신의 보편성을 세계에 강제한다. 그리고 그 보편성 자체가 자신의 이윤이 된다. 열강으로 격하된 제국주의적 국가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존하기 위해 앞뒤 안가리고 달려든다. 세계 질서는 universalism(보편주의)에서 ‘나 먼저(America First)로 내려앉고 따라서 서로가 자신의 이윤을 찾아 적대하는 보편적 적대의 상태로 전화한다.

이 적대는 실은 힘의 약화를 반영하며, 힘의 약화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고, 쪼그라든 세력 안에서 최대한의 이윤을 뽑아내기 위한 의도적 혼란의 조성을 목표로 하며, 이런 세상에 도덕과 가치를 논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그럴듯 해보일지는 몰라도, 인민들에게 세상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며, 그 배후의 힘들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칼 슈미트가 조롱했듯이, 무력한 자유주의자들의 아우성에 불과할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이 총자본으로서의 국가의 역할, 즉 국가를 위해 모든 사회세력이 특정한 정치 권력 또는 이념 앞에 복종하는 형태로 나아가지 못하고 기껏해야 개별 자본들(기업들)의 이해관계를 다소 강압적으로 외부에 강요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그치는 것은 바로 트럼프 정권이 각기 이해관계가 상이한 개별 자본들을 하나로 묶을만큼의 힘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며, 해외의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을 압도적으로 묵살할만큼 독점적 경쟁력을 가지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즉 내부의 노동의 저항 때문도 아니며,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산발적 저항을 하는 이른바 ’민주적 기관들‘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미국 내에서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체제가 더 효과적이다‘라는 주장들이 나오는 것을 우려해야 한다. 미국이 권위주의 체제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독점자본의 영향력이 더 커지다는 뜻이며 파시즘으로 나아가자는 대자본가들의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 문제는 미국 자본주의의 물질적 기초다. 미국은 현재 상태로는 독자적인 산업 기반을 가질 수가 없다.

미국 제조업 고용 추이. 바이든 정권의 반인플레이션이나 트럼프의 관세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 제조업 고용 인구는 계속 감소 중이다. 출처 : 미국 노동통계청

미국 제조업 생산 지수. 지난 2007년 11월 이후 계속 완만하게 하락 중이다. 즉, 미국의 제조업 생산은 감소하고 있다. 출처 :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이는 관세를 통한 reshoring(제조업의 미국내 귀환)이 전혀 의도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지난 2025년의 미국 제조업 총고용은 오히려 감소했으며, 별로 놀랍지 않게도 미국의 제조업 생산도 감소했다. 즉 미국은 전면적인 국가 체제 개편을 하고 싶어도 현재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 그것으로 국민들을 먹여살릴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독점적 경쟁력을 가진 일부 산업의 이해 관계에만 선택적으로 사활을 걸며(예컨대 인공지능, 무기산업, 항공우주산업, IT 소프트웨어 등), 이들의 이해는 반드시 미국의 국가주의 이해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시장이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전면적인 독점자본주의 국가로 나아가는데는 한계가 있으며, 이는 정치 세력들의 이데올로기가 아무리 파시스트적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우왕좌왕(또는 굳이 좋은 말로 한다면 유연한) 동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6년에도 이 추세는 전혀 반전될 신호는 보이지 않는다. 만일 미국의 글로벌 달러 공급이 타이트해진다면, 미국의 경기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실질 관세율(약 11%)의 인플레이션 효과는 아직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최근의 페터슨경제연구소 리포트에 따르면 관세 효과로 인한 향후 최소 5% 포인트 가량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존재한다), 미국이 글로벌 달러 공급을 늘린다면 오히려 미국의 인플레이션률은 높아질 우려가 있다. 이는 연준을 진퇴양난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트럼프는 차기 연준 의장을 압박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겠지만, 그때는 지난 1925년 스트롱 뉴욕연준 총재가 범한 치명적인 오류, 즉 걷잡을 수 없는 버블을 키우게 될 것이다. 어느 쪽으로 가든 좋은 길은 없다.

유럽의 경제는 미국보다 훨씬 부진하다. 독일의 제조업 공동화는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왜 독일이 이같은 선택을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독일은 단지 수동적으로 경쟁에서 밀린 것은 아니다. 독일 경제는 체제 전환을 하고 있으며, 제조업 강국에서 금융자본주의 중심 국가로 스스로를 변모시키고 있다.

지난해 전세계 증시 상승률 1위는 한국이었지만, 독일 증시(DAX30)의 상승률도 매우 높았다. 특히 독일 은행주의 상승률이 두드러졌다. 독일의 은행시스템은 ECB의 기반이다. 독일의 금융주가 상승한다는 것은 전세계의 자금이 유럽, 특히 독일로 몰린다는 것을 뜻한다(미국 증시의 상승률은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았다. 지난해 전세계 최저 상승률을 기록한 곳은 인도다. 인도의 전략적 진퇴양난, 혹은 전략적 중요성의 하락을 표현하고 있다).

5. 국제통화체제, 위기의 차이와 반복

여전히 달러화는 모든 통화 가운데 가장 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통화들을 상대로 한 가치에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최종적으로는 달러화를 기준으로 유로화나 엔화가 계산된다). 이는 달러화가 건전해서가 아니라, 지난 100년 동안 달러화 부채를 기초로 모든 화폐들이 발행되었기 때문에, 즉 달러화 부채가 막대하기 때문에 달러화는 여전히 보편통화로서 작동한다.

달러화의 경우, 화폐의 가치하락(debasement)은 달러화와 다른 통화들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달러화와 상품(특히 화폐적 성격을 갖는 금속들)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바로 금과 은이다. 금과 은의 가격이 오르는 것은 산업활동이 활발해져서가 아니라, 달러화로 표시되는 자본들이 상품으로 이동(또는 탈출)하기 때문인 것이다. 금으로 옮겨갈 때는 엘리트(체제의 기존 권력) 세력이 강해질 때이며, 은으로 옮겨갈 때에는 이 글로벌 통화체제를 바꾸려는 세력들을 대변한다.

과거 100년간 은의 역사는 그것을 말해주며, 은의 강세는 그런 의미에서 달러화 통화 발행자로서는 매우 유감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 중국이 2026년 1월부터 은의 해외 유출을 금지했기 때문에 은 가격을 결정하는 시장 메카니즘이 은 상승을 얼마나 억제하든 간에, 여전히 은 가격 상승 가능성은 남아있다. 즉 화폐 가치절하 (debasement)는 2026년에도 지속될 것이다.

만일 은이 저지된다면, 그 때는 상대적으로 은만큼은 위력이 크지 않다고 할지라도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통화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의 유로화 기축통화설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미국이 자신들의 ‘위력’을 끊임없이 과시하지 못한다면(당신들의 화폐를 미국은 무력으로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미국 달러화의 가치는 서서히 하락할 것이다.

그러나 달러화의 가치 하락이 달러화 가격(명목 환율)의 약세를 반드시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달러화 부채를 가진 채무자에게는 부채 부담보다 더 빨리 달러화 유동성 증가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현재와 같은 상대적 고금리(연준의 금리 수준은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다)하에서는 여전히 달러화 부족 현상에 시달린다.

IMF에 따르면 지난 2025년은 지난 금융위기 이후 가장 많은 개발도상국이 달러화 부족으로 인한 채무불이행이나 채무조건 재협상에 나선 한 해이기도 했다. 선진국 통화를 대상으로 한 달러 인덱스는 하락했지만, 개발도상국 통화를 대상으로 한 달러 인덱스는 오히려 상승했다. 즉,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는데도 불구하고 달러화 부채가 많은 국가에게는 달러화 부족 현상이 오히려 심화되었던 것이다.

만일 달러화가 debasement를 이유로 점점 더 적게 사용된다면, 즉 달러화 유동성이 오히려 감소한다면 달러화 가치 하락에도 불구하고 개발도상국의 달러 조달 부담은 더 커진다. 따라서 달러화를 조달하기 위해서 자국 통화를 더 약세로 가져가 미국으로부터 무역 흑자를 달성하려 하며, 이는 역설적으로 미국의 물가에는 안정요인으로 작용한다.

더 큰 위험은 돌연한 디플레이션 충격의 가능성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해 여름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가 과도한 부채와 레버리지로 위험 상태에 이르렀다고 경고했다. 지난 금융 위기 이후 글로벌 투자은행의 활동은 위축되었지만, 그 자리를 대신하고 나섰던 것은 사모펀드들이었다(한국에서도 시끄러운 MBK나, 쿠팡에 투자한 마사요시 손의 비젼펀드 등이 익숙한 사례다. 우리가 헤지펀드라고 알고 있는 대부분의 펀드들은 사모펀드다). 글로벌 대출의 50%가 이제는 은행이 아니라, 사모펀드 섹터에서 발생한다.

2008년 금융위기 시의 전례를 본다면 BIS 경고 이후 약 12-18개월 뒤에 실제로 금융 위기가 발생한다. 2008년 금융위기도 2006년 여름에 이미 BIS에서 경고한 바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사모펀드 중 하나인 아폴로 캐피탈이 기존 포트폴리오를 대거 정리하고 현금 보유 상태로 돌아선 것은 이같은 위험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더 위험한 것은 지난 12월 8일 BIS에서 미국 증시(S&P500)와 금이 버블 상태에 돌입했다고 경고한 것이다. 물론 버블이라고 해서 금방 터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미국 증시와 금의 가격 상승은 debasement 투자의 일환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기존 debasement 논리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금이 하락한다면, 은도 하락하며, 미국 증시 버블이 터진다면 미국 국채 시장이 동요할 것이고 은행시스템으로 그 위험이 전파될 것이다(결국 사모펀드에게 대출을 해준 최종 주체는 은행들이다). 그러면 다시 연준이 나설 것이다. 그러나 연준은 디플레이션 충격을 동반하지 않는 구제금융(QE)을 해줄 수 있을까? QE가 다음 금융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역사가 동일한 실패를 거듭하는 것은, 차이와 반복을 반복하는 것은, 단지 광기여서가 아니라, 그것 이외에는 다른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1920년대가 어떻게 전개되고 어떻게 파국으로 이르렀는지 알고 있으며, 지금은 각기 그 역할을 바꾸었고, 그리고 이 역사를 피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과거와 동일한 미래에 도달할 것이며, 인간이 어떤 경로를 택하든 사물의 법칙, 사물의 전개 과정은 기계적이며 독립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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