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계급적 노조운동의 가능성

-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진단과 미래 전망

2025년 12월 31일 / 권영숙의 테제11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자본주의, 제국주의, 고공농성, 구로동맹파업, 민주노조, 계급적 노조운동, 자생성, 노동해방

오늘날 일제하 평양 고무공장 노동자로 을밀대 위에서 고공농성을 감행한 강주룡은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만큼이나 화제로, 소설로, 연극으로 다뤄지고 있지만, 그가 평양의 ‘적색노조’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은 놓칩니다, 전두환정권 시절 서울 구로공단에서 일어난 1985년 구로동맹파업에 대해서도 학생출신 위장취업자들과 선진노동자들의 준비된 파업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자연발생적인 파업의 분출이었다고 쉽게 규정하는 것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2025년 6기 민주주의와 노동학교 강의에서 제가 염두에 두고 있는 노조는 아마 일제하에서라면 ‘적색노조’라 불렸겠죠. 당시 적색노조, 적색농조로 불리던 대중조직이 있습니다. 엄혹했던 일제 치하에서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운동활동가들은 공장을 넘어 농업노동자들까지 노조로 조직하였습니다.

1931년 평양 을밀대 지붕위에서 고공농성중인 평양고무공장 적색노조 소속 노동자 강주룡의 유일하게 남은 사진 

지금 한국의 노조는 질적으로 무엇이라고 분류할 수 있을까요? 이렇듯 노동조합의 유형과 성격은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변화해왔습니다. 자본주의의 다양성 만큼이나, 역사적으로 국가적으로 노조의 모델과 유형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노조는 현재의 모습이 고정태가 아니며 이미 변화해왔고, 앞으로도 변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그리고 특히 한국의 노조운동과 노동운동이 후퇴하고 있다는 것은 명확합니다. 지금 좌파든 노동이든 간에, 계급도 잊고 운동성도 퇴보하고 있다는 것도 너무 명확합니다. 그에 맞춰 노동조합론이나 노동운동론 역시 그만큼 혼탁해질 대로 혼탁해진 주제가 됐습니다. 현재 노동조합론 강의는 대부분 실무 교육에 치중합니다. 운동론이 아닙니다.

노동조합 이론에서 노동조합의 역사적인 성격, 노조의 기원과 변화 과정, 국가마다 다양성, 노조 유형의 다양성 등에 대한 논의는 축소됩니다. 노동조합을 ‘계급형성’과 연결하는 계급적인 시각은 아예 단절되고 있습니다. 계급형성의 시각이 단절되면, 사회적 계급내 계급 간 동맹에 대한 문제 의식도, 자본주의 철폐의 가능성도 사라집니다. 자본주의는 이런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사랑합니다.

노동조합론은 언제나 똑같지 않고 무엇이나 다 뻔하지 않습니다, 결국 핵심은 단지 노동조합론이 아니라 어떤 노동조합론이냐입니다. 이번 학교 강의는 노동조합론에서도 ‘계급적 노동조합운동’론의 시각에서 강의하고 이를 가로막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진단을 거쳐, 이를 향해 한발이라도 더 나아가는 문제의식과 방향을 제시하려고 했습니다.

올해는 민주노총 30년입니다. 우리가 6기 민주주의와 노동학교를 여는 시간, 민주노총은 발족 30주년을 맞아, 자체적으로 다양한 평가 토론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과연 그 평가는 자화자찬 이상의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자기 연민과 위로 이상의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30년의 역사를 자기반성과 상호반성 속에서 돌아볼 수 있을까요? 되돌아보고, 역사라는 ‘기억의 우물’에서 무엇을 길어 올리고, 역사라는 ‘기억의 전투의 장’에서 어떻게 계급적 주체를 일으켜 세울 근거를 확보할 수 있을까요?

그러려면 민주노총의 30년 역사를 더욱 자기비판적으로 바라봐야합니다.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봐야합니다. 자기 혐오와 자기 폄훼도 문제이지만, 자기 연민과 자화자찬으로 도배질하기에는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민주노조운동은 한편으로 제도적인 포섭, 다른 한편으로는 제도적인 배제의 공간으로 스스로 자신을 밀어 넣고 있습니다. 노조 혐오와 ‘좌파 절멸’로 특징지어진 한국사회가 민주화이행이후에도 여전히 만들어내는 질곡 속에서 노조에 대한 낭만화, 신화화가 강력하지만, 우리는 노조에 대한 낭만적인 신화를 넘어서서 계급적 노조운동의 상을 봐야합니다.

1987년 6월항쟁이라는 ‘민주화 이행’에 노동계급은 준비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조직화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와 독재에 맞서는 자신의 이념과 이론으로 무장된 선진적인 부대도 강력하게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70년대 자생적인 노동자투쟁이 남긴 ‘민주노조’의 기억과 80년대 변혁운동과의 ‘조우’를 통해서, 계급적 노조운동의 초보적인 걸음을 단지 시작하였을 뿐입니다.

군부쿠데타이후 들어선 전두환 정권에 의해 학생운동 및 좌파들과 더불어 가장 탄압받으면서 궤멸되다시피했던 자생적 ‘민주노조’들이 1984년 청계피복노조의 복구투쟁을 시발점으로 꿈틀대면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고, 전국 각지에는 학출 위장취업자들이 ‘노동계급 속으로’ 들어가 변혁의 사상으로 노동계급을 조직화하는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1985년 구로동맹파업이라는 ‘지역적 정치파업’이었습니다.

1985년 서울 구로동맹파업의 불씨가 되었던 대우어패럴 공장 점거농성 모습                    

그리고 1987년 영남지역 노동벨트로부터 ‘노동자대투쟁’의 봉화가 올려졌고 위로 북상하여 전국에서 노조 민주화 투쟁이 확산하였습니다. 7월 8일 울산의 현대정공의 파업에서 시작하여 현대자동차, 현대미포조선등으로부터 확대된 지역의 ‘불법’ 자생적인 파업은, 부산 구미 창원 등 남부를 거쳐 북상하면서 서울 경기권으로 확산되었고, 이 과정에서 2500여개의 ‘민주노조’ 혹은 ‘민주화된 노조’가 탄생하였습니다.

1987년 6월 민주화이행이 정치 엘리트간에 ‘6.29선언’이라는 이름의, 좁고 협애한 이행방식인 ‘거래 (deal)에 의한 이행’으로 정리되려는 순간 7,8,9월 3개월간 지속된 ‘노동자대투쟁’은 자유주의적 민주화의 경로에 계급적인 색채를 흩뿌렸습니다. 이후 민주화의 경로에 대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그 결과가 1991년 전노협의 발족이었고 이어 1995년 민주노총의 발족입니다. 이때 등장한 노조들과 내셔날센터을 두고 우리는 ‘민주노조운동’이라고 합니다.

전노협의 상징과 같은 모토였던, “노동해방”. 피로 쓰여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노동계급운동은 민주화의 경로를 바꾸는데 얼마나 기여하였습니까? 자유주의적 정치 민주화를 사회적인 민주화로, 급진적이고 좀 더 평등지향적인 민주화로, 나아가 자본주의 철폐를 향한 민주화로 만들었습니까? 노동계급의 단결로 노동계급 내 경제적인 차이들을 얼마나 해소했습니까? 조직화된 노동계급은 얼마나 민중의 호민관으로, 사회적 동맹을 구축하면서 이 사회의 변혁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까?

흔히 한국의 독립노조운동을 ‘민주노조운동’이라고 이름 부릅니다. 민주노조라고 부르고 그 노조들의 총화인 내셔날 센터는 민주노총이라고 불립니다. 산하 산별들 업종들도 ‘민주’라는 이름으로 ‘어용노조’인 한국노총과 구분짓습니다. 이제는 그 호칭을 당연한 듯이 여깁니다.
하지만 그 이름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민주노조는 역사적인 이름입니다. 역사 속에서 즉 맥락 속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중요한 전통이지만 동시에 넘어서야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민주노조운동에 붙는 ‘민주’는 노조운동의 질과 미래, 전망을 제한하는 족쇄가 될 수도 있고, 자기 변화와 혁신을 향한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1995년 민주노총 창립식                   

1995년 창립한 민주노총의 과제는 민주노조운동의 자주성, 전투성에 기초하여 변혁성을 실현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민주노총 스스로 내세우는 핵심적인 ‘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주성, 전투성, 변혁성은 병렬이 아닙니다. 이것은 3자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자주성, 전투성, 변혁성에 필요한 것이 바로 ‘민주성’입니다.

민주노조운동에서 민주노총에서 그 민주성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조합 민주주의’여야할 것입니다. 그것이 ‘민주노조운동’에 있어서 ‘민주’의 의미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석될 때에만 민주노조의 민주성은 자주성, 전투성, 변혁성을 잊지 않을 것이고, 그 3자의 공고한 결합에 대한 일종의 존재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실천해야만 민주노조운동이 87년 체제의 ‘민주’와 구분되는, 그것을 넘어서는, 자유주의로부터 독립한, 독자적인 계급적 노조운동과 계급정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자유주의 liberalism이상으로 보지 않는 87년 체제에서, 민주노조운동은 다른 민주주의를 꿈꾸고 외치고 실현해야할 과제를 숙명처럼 안게 되었습니다. 그 호칭은 바로 그런 복합적이고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 과연 지금 그렇습니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에 대한 ‘계급적’ 관점, 노조운동이란 이름 앞에 ‘계급적’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것, 그래서 끊임없이 노동을 계급형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고민하는 것, 계급적 노조운동을 지향하는 노조의 활동과 투쟁과 운동을 여하히 시도하고 실천하는 것이 기본 시각과 자세로 정립되어야할 것입니다. 그것이 민주노조운동의 미래와 전망을 지금과 다른 방향으로 틀어내는 ‘자기 혁신’과 전환의 열쇠일 것입니다. 민주노조운동의 ‘민주’를 급진화할 수 있는 길입니다.

이제 계급적 노조운동은 실천은 물론이고 뇌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된 전망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주류적인 시각과 실천이라면 우리가 원하는 미래는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상투적인 노조 활동과 개념에 찌들대로 찌들어 핑계만 찾는 뇌와 몸에 새로운 노동조합에 대한 시각으로 각성의 시작을 열길 바랍니다.
민주노조운동이 계급적 노조운동의 가능성으로 한발 더 나아가길 바랍니다.
계급적 노조운동의 미래속에서 노동계급의 해방, 민중의 해방 세상을 전망으로 세울 수 있길 바랍니다.

* 이 글은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와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함께 주관 주최한 6기 민주주의와노동학교중 1박2일 캠프 토론회에서 강사였던 권영숙 소장의 기조발언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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