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언젠가 부자가 될 수 있을까?
: 모두에게 공평한 버블은 없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2025년 6월 26일 / 글로벌 리포트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국가가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주면 애국자가 된다. 정치권력이 민을 부자로 만들어주면 성군이 된다. 잘 먹고 잘 살자는데 누구도 이견이 없는 세상에서 정치의 지상과제는 ‘부자 만들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국민을 부자로 만들 것인가? 임금을 높혀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씨알도 안먹히는 소리다. 월급 모아서 부자된다는 것은 자본주의에 반한다.
이와 관련 흥미로운 그래프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지난 1971년(세계화 원년) 이래 미국의 주식 가격 상승률(배당금 포함)은 임금상승률의 무려 22배가 넘었다. 간단히 말해 자본가(주식 소유자)는 지난 50여년 동안 평균적으로 임금노동자보다 22배의 자산 증식 효과를 누렸다는 것이다.
그들이 뭘 잘해서가 아니다. 그냥 주식 사놓고 기다리면 됐다(이게 재테크의 천재 워렌 버핏의 성공의 비결-buy and hold-이다).
이로써 자본주의에서는 주식은 무조건 우상향한다는 신화가 생겼다. 즉 주식투자자(금융자산계급)의 수익률이 임금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을 팔아 버는 수익률보다 월등하게 높다.
표1) 미국의 임금상승률과 주식 가격 상승률 장기 추이
더구나 금융자본주의 하에서는 돈은 노동이 아니라, 자본이 돈을 번다. 돈 놓고 돈 먹기다.
따라서 국가가 국민들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길은 노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돈을 통해서 즉, 이미 보유하고 있는 자산의 가격을 부풀려주거나 혹은 새로운 투자가 대박을 치는데 있다.
이처럼 일 안해도 쌓이는 부(wealth)를 ‘paper wealth’라고도 한다. 왜냐하면 그 부를 집단적으로 현실화(현금화)하는 순간에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기 때문이다. 보다 상식적인 용어로는 ‘거품’(bubble)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주식은 여윳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 매달 월급 받아서 생활해야 하는 임금노동자는 그런 여유가 없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표2) 미국 상위 1%와 중산층이 차지하는 부의 비중 추이
미국 사회의 상위 1%는 중산층 60% 전체보다도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국민의 약 45%는 증시에 참여하고 있다. 즉, 주식 투자를 한다.
그러면 주식 가격이 오르면 모두에게 혜택이 되지 않을까? 아니다. 주식 투자는 주택(부동산) 테크에 비해 돈많은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더 유리하다. 주택은 저금리 모기지로 구입할 수 있기라도 하지만, 빚을 내서 주식을 매수해서 수익을 내는 것은 금리와 변동성이 극도로 낮아야지만 가능하며 그나마도 정보 측면에서 개인들은 뒤쳐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 가계의 자산 가운데 49%가 주식이지만, 하위 50% 자산 가구가 보유한 미국 주식 비중은 고작 1%에 불과하다.
표3) 미국 가계 자산 중 주식 비중
결론적으로 주식과 주택을 비교하자면, 주식은 주택보다도 훨씬 더 부자들의 놀음이다.
그래서 주택 가격 상승이 주식 가격 상승보다도 오히려 자산 불평등을 낮춘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도 있다.
그러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미국과 정반대의 구조를 갖고 있다.
지난 2021년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분위별 자산.소득 분포 및 국제비교>라는 정책자료집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모두 자산과 부동산, 자산과 거주주택의 상관관계가 자산과 금융자산보다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즉, 금융자산이 많은 경우보다 부동산 또는 거주주택 자산이 많을수록 가계의 자산이 클 확률이 높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즉 한국에서는 사실상 ‘주택=가구 자산 전체’이며 따라서 특히 부유층일수록 다주택 소유 및 토지자산 등에 가계 자산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주택 가격 상승이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표4) 한국의 분위별 가계 자산액 및 구성비
반대로 이는 금융자본의 입장에서는 돈의 무덤이다. 전통적인 상업은행들은 주택 담보 대출이 안정적 수입원이지만, 주택시장은 유동성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 특히 가계 자산의 거의 대부분이 주택 하나에 묶여있을 경우에는 유동성은 더 낮아진다. 더구나 한국은 주택 소유자의 대부분이 고령화에 접어드는 시기이기 때문에 주택 시장 유동성을 유도하기 힘들다.
따라서 은행대출(화폐 창출)은 주택에 집중되는데, 이렇게 창출된 화폐는 콘크리트에 갇혀 있는 죽은 자본이 된다. 이는 금융자본 전체로서는 엄청난 손실이다. 요즘 유행하는 식으로 말하자면, 돈이 돌지가 않기 때문이며, 따라서 금융시장 전반에 유동성이 확대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제결제은행(BIS)의 바젤3 규제에 따라, 올해 7월부터는 은행대출은 성장률에 사실상 연동된다. 즉, 성장율이 낮으면 은행 대출을 확대하는 것이 어려워지며(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위험 비용을 추가 부과하기 때문에 은행으로서는 경제적 유인이 감소한다), 이는 기존의 주택 대출까지도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오는 7월부터 바젤3가 규제가 본격화되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기존 부실대출을 청산하여 은행의 대출 여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정권의 부실부채 탕감책은 실은 채무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은행 장부 클린화를 목표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미 부동산 자본은 이를 선제적으로 겨냥하여 여전히 은행 대출이 주택 대출을 선호할 것이라고 배팅하고 있다).
지난 2010년대 후반 이후의 거의 대부분의 금융연구 보고서들은 한국 금융시장의 가장 큰 문제를 과도한 주택 담보 대출과 가계의 금융자산 대부분이 현금, 예금 등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을 꼽고 있다(한국은행 ‘2022년 주요국 가계 금융자산 비교’). 금융자본의 관점에서는 주택에 묶인 돈도 죽은 자본이지만, 동시에 현금, 예금 형태로 존재하는 돈도 죽은 자본에 속한다. 왜냐하면 현금, 예금 역시 금융 시장에 투입되지 않는 자본이기 때문이다(은행이나 개인 금고에 축장될 뿐이다).
그러나 현재 여윳돈이 있는 가구의 투자 의향 조사를 보면, 과반수가 은행 예금을 선호하며 주식 투자는 10%도 넘지 않는다. 이를 주식 시장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은행 예금을 낮추고, 주식을 매수하면 절대로 잃지 않는다는 신화, 혹은 국가가 대놓고 증시 지수 목표치를 정해놓고 증시 진입을 권유하는 돈 놓고 돈 먹기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 “코스피 5000”이라는 구호는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이것은 민주당의 ‘정치적’ 슬로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금융자본의 요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재명 정부의 ‘먹사니즘’하에서 우리도 언젠가 부자가 될 수 있을까?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여유자금(예금, 현금 보유)이 가장 많은 인구집단은 50대다. 그리고 이들은 이재명 정권의 가장 열렬한 지지기반이기도 하다.
그러나 좀 더 좁혀보면, 50대 중에서도 강남 거주자들이다. 다만 이들의 수익률은 주택 상승으로 인한 기대 수익률보다는 좀 낮아질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본다면 증시버블이 주택버블보다는 훨씬 용이하기 때문에 결국 최종 승자는 이들 50대 강남 거주 가구, 즉 사회 엘리트들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정권이 중도-보수를 내건 것은 레토릭이 아니라, 현실을 지칭한 것이다.
그 다음 수혜계층은 큰 규모의 자영업자(쁘띠 부르조아)들이다. 한국의 현재 경제 상태, 즉 소비 부진으로 인해 가장 곤란을 겪고 가장 급진화된 집단들이기도 하다. 그 다음 수혜 기대 계층은 40대가 된다. 즉 버블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이 ‘환상적’ 금융자본주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진짜 복병은 증시 버블을 지속할 수 있는 한국 기업들의 이윤율이나, 민간가계의 여유자금이 얼마나 동원될 수 있을까 따위에 있지 않다.
표5) 한국의 크레딧 싸이클
이 챠트는 뮤추얼 펀드인 Fidelity가 각국의 크레딧 싸이클을 분석한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BIS 조사국장인 클라우디오 보리오가 개념화한 크레딧 싸이클(부채 확장/수축도 경기처럼 일정한 주기를 갖는다) 개념을 원용해 작성된 이 챠트를 보면, 한국은 크레딧 싸이클 후기(수축기)의 중간쯤에 와 있다. 이 싸이클은 대략 10년을 주기로 반복된다.
전면적인 수축 국면(종종 이 시기에 금융위기가 발생한다)까지는 약 2년 가량 남았다. 그리고 금융시장에서 2년이란 시간은 오지 않을 영원에 가깝다. 꿈을 깰 때까지는 모두가 행복하며, 모두가, 이것이 꿈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미움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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