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공화국'을 향하여 - 헌법 자체에 대해 질문하다
"법과 정치, 그리고 공화국의 미래" 연구소 창립 2주년 심포지엄
2025년 6월 26일 / Review & Preview
글 <전망과실천> 편집부
현대의 민주주의는 ‘헌법적 틀’ 내에서 ‘정치’를 하는 것으로 흔히 간주된다. 즉 헌법이 정치의 양식, 한계, 상태를 선제적으로 규정하고 ‘정치’는 이같은 조건 아래서 그 구체적인 수단과 정책을 대중의 참여를 통해 수행하는 체제가 현대 민주주의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대한 ‘누락’이 있다. 그렇다면 이 ‘헌법’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며, 헌법을 만드는 과정(제헌)에 대중들은 어떻게, 얼마만큼 참여했는가, 즉 ‘민주주의’를 규율하는 그 헌법 자체는 얼마나 인민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단지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논쟁의 영역인 것은 아니다. 예컨대 지난해 윤석열의 계엄으로 인해 촉발된 남한의 헌정 위기는 아주 구체적으로 법과 정치 사이의 관계, 그 대립과 공존,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인민의 의지란 무엇인가를 묻는 기회를 제공했다.
윤석열 정권이 기도한 계엄은 윤석열로 대표되는 정치집단이 현재의 정치적 구도 하에서는 기득권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수행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내란’적 성격을 갖게 된 것은 계엄의 수행 방식이 기존 헌법 및 법이 지정한 과정을 뒤따라서는 도저히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때문에 단지 헌법상의 대통령의 계엄 권한이 허용하고 있는 헌법의 일부분 뿐만 아니라, ‘정치’ 그 자체도 정지시켜버리려 했기 때문이다. 즉 윤석열 정권은 헌법의 바깥에서 헌법적 권능을 행사했다. 이것이 ‘내란’의 실체였고, 이에 대해 민주당의 의회파는 ‘민주주의 수호’를 내걸고 헌법을 옹호했으며, 이것이 지난해 12월 3일부터 올해 6월 3일 대선에 이르기까지의 정치적 드라마를 관통하는 기본 테마였다.
문제는 이같은 드라마에서 누가 승리했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헌법을 위반하여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쪽이나, 헌법을 수호하여 권력을 장악하려고 하는 쪽 모두에게 있어서 공통적으로 결여된 것은 그 헌법 자체에 대한 물음이다. 즉 흔히 ‘87년 체제’라 불리는 6공화국 헌법이 과연 ‘인민의 의지’였던가, 또는 지금 국면에서 인민의 의지와 이해에 복무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거의 제기되지 않았다. 계엄탄핵국면에서 핵심적인 문제였던 ‘법과 정치, 그리고 공화국의 미래’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론적, 실천적인 질문이다. 닫힌 공화국에서 열린 공화국을 상상하고, 헌법적인 힘을 구체적으로 기획하고 실현하여야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심포지엄 기조발제자와 발제자들
지난 6월 14일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는 민주주의법학연구회와 공동 주최로 ‘법과 정치, 그리고 공화국의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창립 2주년 기념 공동 심포지엄에서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은 기조발제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탐색한다.
권소장은 헌법의 제정 과정, 즉 헌법을 만든 정치적 힘으로서의 제헌권력은 평화로운, 그리고 인민의 참여가 보장되는 공평한 계약의 당사자들이 아니라, 힘의 관계가 (주로 전쟁, 내전에 의해) 이미 일방적으로 그 우위가 결정된 집단이라는 현실 역사와 이를 이론화한 문헌들에 주목한다. 여기서 근대 민주주의는 그 기원으로서의 전쟁(내전)을 은폐하고 정당화하는 기능을 한다. 이것이 인민의 의지로서의 민주주의가 자신을 탄생시킨 헌법적 힘을 넘어서려고 할 때는 일상적으로 잠재적 위기(민주주의 실패) 하에 놓이는 이유이다.
20세기 후반의 제3의 민주화 물결 하에 탄생한 개발도상국의 여러 입헌민주주의 체제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비교적 비전쟁적 방식(국제적 개입이나, 내부 정치엘리트 분파들 사이의 비내전적 타협)에 의해 수립되었으며, 그 후퇴도 급격한 권위주의로의 전환이라기 보다는 ‘점진적인’ 헌법적 퇴행(constitutional backsliding)의 과정을 밟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권소장은 이같은 퇴행을 저지하고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것은 ‘헌법’을 수호하거나 혹은 이미 고착화된 세력관계를 표명하고 있는 기존 헌법이 지정한 방식에 따라 헌법을 ‘수정’(개헌)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헌법을 만드는 인민의 힘(제헌권력)이 곧 정치 그 자체가 되는데 있다고 주장한다.
기조발제에 대한 토론자로 나선 오동석(아주대 교수, 헌법학)은, 발제자의 문제제기를 따라가며 그렇다면 제헌권력의 일상화를 위한 구체적 경로가 어떤 것인지 묻는다. 그는 87년 (헌법)체제 하에서 기존의 ‘진보’도 그 그 체제의 공고화를 위한 수혜를 누린 일부일 수 있으며, 이 헌법 체제를 수호하는 사법적 제도와 기관들(헌재를 포함하여)에 대한 ‘대결’, 즉 끊임없는 헌법의 재입법화를 위한 인민적 정치의 압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최종적으로는 “권력자를 단죄하는데 공화국의 예외적 권력을 행사하고, 그 과정에서 그 예외적 권력을 삭제하는 다시 예외적 권력을 통해 새로운 헌법 규범을 강화하고 헌법 체제를 재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19세기 프로이센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행정법(국가의 기능)이 어떻게 수립되었으며, 그 계급적 성격이 어떻게 발현되는가를 천착한 이계수(건국대 법대)는 19세기 전반에 걸쳐 유럽의 국가(행정)는 부르조아계급의 타협과 지배의 결과라고 지적한다. 그는 행정법이 “국가가 자본의 축적과 발전을 위해 행하는 인프라 투자와 같은 사안이 아니라, 전체로서 경제와 사회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 무관심하며 선택적”이라고 지적하면서 국가를 운영하는 방식으로서의 법룰적 체제에 대한 재평가를 제시하고 있다.
김종서(민주법연 회장)는 ‘사법권력의 민주적 통제’라는 발표에서 해방 이후 한국에서의 헌법의 역사를 다룬다. 그는 87년 체제의 헌법이 사실은 ‘자유민주주의’조차도 수용하지 못할 만큼 닫힌 안보법 체제이며 이 체제를 위협하는 어떠한 선거제도도 정당도 용인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체제의 헌법, 나아가 법 체제 전체를 휘감고 있는 ‘계급사법’에 대해서 극복의 대상이라고 말하는데, 과연 그것은 극복 가능한 것인가? 그리고 왜 극복하여야하는 문제인가? 토론자인 권영숙 소장은 이 점에 대해서 집요하게 반문하고, 이를 자신의 기조발제의 논지와 연결시켜 토론하였다.
마지막 발제자인 윤현식(민법연)은 ‘헌법개정과 공화국’에서 구체적인 제7공화국 개헌론을 검토하고 있다. 시민적 덕성을 공화국과 연결하는 그의 논지에 대해서 토론자 한상희 전 건국대 교수는 해방이후 헌정사를 통해서 보충하였다.
종합토론 장면
(종합토론)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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