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이재명의 대선 슬로건 “진짜 대한민국”이 의미하는 것: 21대 대선 당선 유력 후보 이재명의 공약 정책 이념 평가

이재명의 대선 슬로건 “진짜 대한민국”이 의미하는 것

: 21대 대선 당선 유력 후보 이재명의 공약 정책 이념 평가

2025년 5월 22일 / 이슈 리포트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87년체제 48년체제 3당합당 동진전략 개헌 실용주의중도 기본보장 지분형모기지 자산버블 민간공조(governance) 민영화 사모펀드

1. 역사적 정통성의 문제

이재명 후보의 선거 슬로건은 “진짜 대한민국‘이다. 김문수 후보의 슬로건은 ”새로운 대한민국’이다. 둘 다 대한민국을 거론하지만, 양자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재명의 슬로건은 이전의 대한민국은 ‘진짜’가 아니라는 함의를 갖고 있다. 단지 개헌이나, 6공화국, 7공화국과 같은 미래에 대한 규정이 아니라, 과거 전체를 재편한다는 뜻이다.
반면 김문수의 슬로건은 개헌을 암시하지만, 7공화국이라는 보다 좁은 의미를 갖는다.
즉 김문수의 슬로건은 계엄과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드러난 우파쪽 개헌파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 이재명의 슬로건은 대한민국 자체를 재규정하겠다고 나선다. 즉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가 생각하는대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금과 다르게 재구축하겠다는 야심이 보이는 구호이고, 실제로 하려는 시도다.

대한민국 역사에는 난점이 있다. 1945-48년을 거치면서 남북한이 분단되는 과정에서 남북한 모두 자신들의 역사적 정통성을 내세우기 애매한 상태에 놓였다.
남한은 당시의 국제 정세에 힘입어 ‘국제적인 합법성’은 인정받았지만, 그러나 제헌 및 정부 수립 과정에서의 외세(미 군정)의 절대적 영향력과 독립운동 및 친일파 청산 문제에 있어서 이른바 ‘자주성’을 내세울 처지가 못된다.
제1공화국 이래 남한의 헌법이 3.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를 역사적 뿌리로 내세우는 것(심지어는 이승만은 상해 임시정부에서 탄핵된 대통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은 실은 자신에게 결여된 역사를 문장(헌법전문)으로 때우는 일종의 ‘참칭’에 불과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후의 남북한간의 체제 경쟁에서 역사적 정통성의 문제에 계속 부닥칠 수밖에 없었다. (권영숙, “건국(建國)과 광복(光復)과 국가보안법- 대한민국 국가의 기원은 계속 질문해야한다”, 2024년 08월 22일 참조)

이같은 역사적 조건 하에서는 남한은 북한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었으며, 따라서 법률적 의미의 평화조약과 같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불가능한 것이었고 이는 남한의 대외 정책을 협소화했다.
이재명의 진짜 대한민국은 헌법전문에 단지 5.18 정신을 넣어 민주주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의 역사 문제를 해결할 의사가 있음을 은연중 시사한다. 물론 아직까지는 해결 의지만 보이고 있을 뿐,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하지만 나는 이 점을 지금 그리고 앞으로 계속 주목하고 있고 주목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지 김대중, 노무현등이 시도한 과거 역사 재평가로 멈추지 않고, 윤석열 쿠데타로 인해 6월항쟁후 87년체제, 6공화국을 만든 엘리트간의 ‘협약’이 깨져있는 상태에 대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출처 : <연합통신>

2. 정계개편과 민주당의 동진전략, 실용주의 중도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선거 과정에서 터져나온 민주당의 개헌안은 단지 계엄과 관련된 ‘적폐’ 청산이나 민주주의의 강화와 관련된 좁은 의미로 볼 수는 없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얼마전까지 당내 김부겸등이 제안한 개헌론등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이번 대선에는 공약으로 내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대선 선거 유세를 시작하고, 본인의 당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자 (지지율 50%를 처음 넘어섰다), 5월 18일 개헌에 대한 입장 나아가 구체적인 개헌 방안을 제시했다.

이재명 대선 후보가 제시한 개헌 방향은 크게 보았을 때, 이원집정부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책임총리제 수준을 넘어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를 명시하고 있으며, 대통령의 권한 중에서도 순수하게 행정적인 측면을 제외한 권력행사와 관련된 인사권(검찰총장, 감사원장 등)에 있어서 의회의 동의를 받아야만 한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개헌안이 관철될 경우에는 대통령의 권력은 현재의 6공 헌법에 비해 크게 제한된다. 반면 의회권력은 훨씬 커진다.

이는 지난 계엄 이후의 정치 과정에서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행정부와의 소통이 완전히 단절되면서 얻은 교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실은 현행 6공 헌법으로도 국회는 대통령의 권한을 크게 제약할 수 있다. 심지어는 윤석열은 이를 계엄의 명분으로 삼기조차 했다. 대통령의 거부권을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거부권을 거부하면서 계속 입법 시도를 하고, 이는 대통령 중심제라는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무력화하는 시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대통령중심제라는 헌법상 권력기관에 대한 명문 규정이 되고 만다. 대통령중심제를 선호해온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정치적 투쟁에 있어서 작년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된 상황에서 더욱 입법기관인 의회 중심 정당인양 움직이고 있었다.

문제는 이같은 의회의 권력이 법 조문상으로는 이미 존재했었는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실행된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라는 점이다.
이는 87년 이후 지난 계엄 이전까지는 실제 정치권력의 행사는 법 조문 상에 주어진 권한을 행사하여 유권자의 의지를 행사했다기 보다는 각 정당들 사이에 적당히 타협하는 담합구조에 의해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3권분립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중심제라는 헌법상 권력구조를 유지하고 인정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담합구조는 그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이같은 담합 구조는 지난 이명박 정권 하에서 아예 법제화되기도 했다. 바로 ‘국회 선진화법’의 골자가 바로 그것이다. 선진국형- 사실은 의원내각제의 필리버스터등과 여러 제도들을 통해서 국회내로 ‘정쟁’을 중심화하는 것이었다.
다만 의회권력의 타협자들도 지난 24년 총선 결과와 같은 야당이 개헌선인 2/3에 근접한 의석를 확보하는 경우를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며, 이 총선의 결과가 한국 정치 관행을 근본적으로 갈라놓은 분수령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87년 체제 출범 직후에 이와 유사한 정치 지형이 나타난 적이 있었다. 노태우는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그러나 그 다음해 열린 총선에서는 패배했고 지역을 기반으로 한 이른바 여소야대가 형성되었다.
이 초유의 사태 앞에서 ‘여당’은 누구이고 ‘야당’은 누구인가에 대한 짧은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대통령의 정당이 여당인가, 아니면 국회 다수당이 여당인가. 이는 대통령중심제와 ‘3권 분립’의 충돌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고, 결국 87년 헌법 자체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지만 언제나 예민한 논쟁은 그렇듯이, ‘역린’을 건드린 것처럼, 두 보수정당은 적당히 타협했다. 즉 대통령의 정당이 여당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한 보충으로, 대통령이 된 자는 집권 정당에서 ‘당원 탈퇴’를 하자는 제안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당정협의’라는 이름의 여당 – 대통령 관계도 문제였다. 하지만 문제는 봉합되어 윤석열 정권에 이르렀다.

당시 여소야대의 정국 운영과 ‘통치’에 어려움을 겪던 노태우 정권은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여 포퓰리스트 정책을 부분적으로 수용했다. 그리고 이로 멈추지 않고 결국에는 1990년 3당 합당을 만들어냈다. 김대중에게 먼저 합당제안을 했다고 하는데, 김대중은 ‘야당’이고 다음 집권을 꿈꾸면서 거절했다. 김영삼은 받아들였다.
일부에서는 일본의 자민당 일당독점 체제와 유사한 ‘보수대연합’ 시도라고 진단하였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반면 이것을 계기로 김대중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정당이 꿋꿋이 차기 집권이 유력시되는 정당으로 유일하게 남았고, 이로써 민주화이행이후 ‘보수 양당 독점’체제가 구축되었다.

필자는 이를 해방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국가보안법의 입법을 통해서 정립된 한민당과 한독당 양당만이 남는 ‘48년체제’의 복귀라고 규정하였다. 즉 87년 체제의 수립은 동시에 해방이후 좌파를 궤멸시키고 성립한 48년.체제의 복귀이기도 한 것이었다. 아이러니다. ‘민주화’가 결국 진보 좌파 부재의 정치적 공간 만들기로 회귀했다는 사실은 말이다(48년 체제의 수립을 국가보안법 입법과 연결한 필자의 글은 위의 “건국과 광복과 국가보안법- 대한민국 국가의 기원은 계속 질문해야한다” 참조). 
그리고 지난 계엄 이전까지는 이같은 3당 합당의 영향권 내에서 한국 정치는 이뤄졌다. 다른 말로 하면 민주화이행이후 한국 정치는 해방직후 한독당과 한민당의 후예인 보수 양당이 제도권 정당정치를 독점하는 체제였다.

그리고 2024년 12.3 계엄은 민주당의 ‘정치’에 두 가지 교훈을 주었다. 하나는 의회권력이 ‘합법적으로’ 행정부를 대신해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3부 권력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행위를 할 수 있는 권력기관이라는 것을 발견했으며, 다른 하나는 1990년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구조가 윤석열의 계엄으로 최종적으로 파산했다고 판단하고 3당 합당 구조의 해체, 혹은 더 나아가서 역3당 합당 구도를 형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여기에서 민주당은 두 가지 집권 전략을 수립했다. 하나는 87년 민주화이행 이후 3당 합당의 후계자이지만 이제는 내부 분열과 대중적 지지 약화로 동력이 떨어진 정당 국민의힘을 내부로부터 파내오는 것이다. 예컨대 국민의힘의 주요 인사인 홍준표를 영입하기 위한 작업을 하는 것이나 개혁신당에서 이준석과 결별한 인사들을 영입하는 것이다.

이는 단지 ‘조직’적 측면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은 이를 위해 기존의 ‘진보’정당이라는 착시를 일으키도록 만들기까지 한 중도 이념을 폐기했으며, 이재명의 표현을 빌자면 ‘실용주의 중도정당’ 또는 ‘보수정당’으로 자신을 자리매김했다. 즉 이제까지 ‘보수’인 국민의힘과 대비되어 자신들을 제한하고 있던 ‘유사 진보’(psuedo-progressive)라는 명찰을 완전히 떼내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 민주당의 정책을 보다 자유롭게, 즉 보다 용이하게 자본의 이해와 일치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김대중, 노무현등은 자본가들의 이해, 그것도 심지어 대자본가들의 이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결정적인 국면마다 그들의 ‘국민 전체’보다 자본의 이해를 선택하였지만, 정치적 레토릭과 이념적인 수준을 말할 때는 모호한 단어인 ‘민주’, 그리고 때로는 심지어 ‘진보’라는 말도 가져가고 참칭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재명이 민주당은 ‘실용주의 중도’, 혹은 ‘중도보수’라고 말한 것은 과거 민주당이 ‘서민의 정당’으로 자신들의 이념을 포장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가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권영숙, “
노동조합 정치가 아닌 좌파 계급정치: 노동계급정치와 ‘노동자정치세력화’는 같은가? (2)” 2023년 12월 07일 참조)

이같은 이념적 재정비 작업은 정규재나 조갑제와 같은 ‘전통적’ 우파 이론가들을 흡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동시에 그동안 ‘진보’로 표방되었던 기존 민주당 정책들은 이제는 ‘정상화’라는 슬로건으로 바뀐다(문재인 정권하의 ‘적폐 청산’에 해당하지만, 적폐청산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동시에 행정적인 슬로건이기도 하다).

이는 탈진보적이며 동시에 효율성을 중시한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이재명이 자신을 유능한 행정가로 내세우는 것도 이같은 조건하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구 국민의 힘 인사들의 영입은 단순히 이번 대선을 앞둔 득표 전술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조직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지금 민주당은 거대한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적실성 여부를 떠나서 현재 한국의 정치 지형에는 이에 저항할만한 세력들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정치지형은 지역적으로는 동서로 나뉜다. 지난 2024년 총선 결과 지도 출처 : <중앙일보>

다르게 말하자면, 이는 지역적으로는 1980년대 미국 공화당의 남부전략(southern strategy)에 비견할만한 동진전략(eastern strategy)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선거 구도에서 동서를 가르고 있던 지역 구도에서 민주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동쪽(TK, PK)에 교두보를 만들고 이를 점차 확대해가려 할 것이다.
이는 최종적으로는 3당 합당의 해체, 혹은 민주당이 최종적으로 기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역3당 합당’으로 완성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하자면, 민주당과 이재명은 87년 민주화이행이후 유지되어 온 기존의 3당합당 카르텔을 먼저 무너뜨려야 한다. 그리고 이재명은 이를 위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계엄과 관련하여 유죄가 확정되는 경우,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 위헌 소송이 가능하다(물론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협박용으로만 쓰이지 실제로 행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검사, 경제 관료등 윤석열 정권의 핵심이었던 테크노크라트에 대해서는 검찰과 재정경제부를 무력화하면 이들은 매우 얌전해질 것이기 때문에 사실 지엽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민주당은 자신을 ‘중도’를 표방하고 국민의힘이 몇 개로 쪼개지거나 혹은 세력이 극도로 약화된 자민련 방식의 삶을 강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는 87년 민주화이행이후 감행됐던 방식, 즉 3당합당을 통해서 ‘보수대연합’을 시도한 것과 정반대다. 이는 민주당이 중심(center)화되는 플랜이다.

이에 대해서 필자는 이미 2008년 박사논문에서 ‘자유주의 헤게모니’라는 개념을 제출하고, 자유주의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방법으로 민주당이 한국의 이념적 정치 지형에서  자신을 ‘중앙’에 위치지우면서, 보수와 진보를 자신의 ‘연합정치’의 하위 파트너로 삼는 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라고 예상한 바가 있다.(필자의 박사논문 및 다수의 학회 발표문. 이에 대한 요악적인 논지에 대해선 ”계급없는 진보정치, 그리고 좌파없는 노조정치- 1987년 민주화이행이후 민주, 진보, 그리고 좌파“, 2024년 2월 22일 참조)

문제는 진보 그리고 좌파에 있다. 한국 정치에서는 그동안 민주당이 유사 진보를 표방했기 때문에 독자적인 진보, 혹은 좌파정당이 자리를 잡기 어려웠다.
민주노총과 전농등 노동 농민 대중조직들이 기반이 돼 만든 민주노동당이 한때 약진했으나, 그것 역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반탄핵운동에 가담하고, 그로써 형성된 정치적 공간과 제도정당지형 속에서 민주당의 협조 속에서 치른 2004년 대선에서 이른바 ‘해방이후 의회 진출한 첫 진보 정당’이 된 것이었다.

이후에는 정의당이 좀더 시민적 지향과 기반 속에서 ‘대중정당’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정의당은 ‘민주대연합’이 의제가 되는 정치조건이 형성되면 민주당과 차별성을 내세우기 힘들었고, 대중들도 이를 수용하는데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작년 총선에서 정의당은 사실상 궤멸 수준으로 약화되었다.
반면 민주당이 정당비례대표제 위헌 선고 이후에 개정한 선거법을 교묘하게 활용하여,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탈당하여 만든 위성정당, 조국혁신당이나 기타 진보당등에서 소수 의원들이 의회에 진출했지만 독자적인 자기 영역을 갖지는 못했다. 
태생부터 위성정당을 통해서 국회에 진출한 정당들은 민주당의 연합정치의 일부라고 할 수 있지만, ‘진보정치’의 독자적인 존재라고 보긴 어렵다.

앞으로 들어설 이재명 정권은 현존하는 87년체제의 정치지형을 허물어뜨리고 자유주의 헤게모니를 중심화하기 위해서, 기존 보수를 ‘극우’ 프레임에 가둬두고 통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시에 ‘새로운’ 진보/좌파를 육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재명 정권은 표면적으로는 자유로운 이념의 경쟁을 표방하는 ‘백화제방’을 통해 새로운 정치세력의 형성을 관찰하고 통제해 나가려 할 것이다.

이에 따라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정치적 공간이 열리게 되겠지만, 그러나 그 공간은 중도를 표방하는 민주당의 ‘동맹정치’ (coalition politics) 구도 하에 머물러 있어야만 제도정당, 나아가 의회정당으로 자리잡을 수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통제 장치들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게임의 룰’을 
따르지 않는 정치와 정당들은 ‘제도권’ 밖으로 축출하거나 고립시키려 들 것이다.

3. 이재명의 경제정책 : New Governance
ㅡ 소리없는 민영화, 주택시장과 에너지 시장, 신성장산업(AI)

1) 기본소득을 포기하고 내세운 성장 우선주의

이번 대선은 계엄-민주주의가 다른 모든 의제를 사실상 모두 잡아먹었기 때문에, 정작 가장 중요한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제대로 논의되거나 혹은 전파되지 않았다.

이재명의 경제 부문 정책공약을 보면, 매우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첫째로 포괄적인 경제 정책, 혹은 한국 경제 프레임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 경제 분과별 선거 공약은 있지만, 그러나 이 전체를 하나로 묶어 말할 수 있는 슬로건은 적어도 공약집 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지난 22년 대선에서 이재명의 핵심 공약이었던 ‘기본소득’론이 폐기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기본소득정책은 그 적실성 여부와는 별개로 이재명을 ‘진보’로 보이도록 만드는 핵심정책이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이 정책이 폐기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다만 이재명이 직접 ‘지금 조건에서는 맞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유일하다.

‘기본소득’ 대신에 나온 슬로건은 ‘성장’이었다. 이를 단지 현재의 경제 조건에 맞춘 단기적인 또는 선거용 정책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보다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첫걸음으로 보아야 할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기본소득정책은 폐기했지만, 공약집에서는 대신에 ‘기본보장책’을 기본 이념으로 넣고 있어 복지국가 지향은 동일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재명이 선거를 대비해 꾸린 인선이나 경제 분과별 해결 방식으로 천명한 것들을 본다면, 이재명에게 ‘성장’은 단지 대선을 위한, 혹은 현재 경제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일시적인 우회로가 아닌 근본적인 성격 변화라고 볼 근거가 더 강하기는 하다.

대부분의 언론에서 크게 주목하지는 않았지만, 계엄 이후 ‘인선’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는 지난 2월 1일에 있었다. 당시 민주당 지명직 최고위원인 주철환이 자발적으로 사임하면서 공석이 된 자리에 홍성국 전 민주당 의원이 임명되었다. 그는 이미 민주당 경제자문위원장직을 맡고 있기는 했지만 이재명의 최측근인 주철환이 스스로 물러나면서까지 요직을 마련해주었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홍성국은 누구냐하면, 증권맨(대우증권, 미래에셋증권) 출신으로서, 리서치센터장을 거쳐 증권사 사장까지 올라간 인물이다(비명계이며 지난 대선 당내 경선시 이낙연 캠프의 정책본부장 출신). 증권사는 미국 월가로 따지면 투자은행(investment bank)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이재명은 예상되는 대선을 앞두고 자본시장 전문가를 핵심 요직에 앉힌 것이다.

그동안 이재명이 스스로 자신이 주장해왔던 금융투자세를 포기한 것이나, 주주(해외 주주 포함)의 이익을 위한 상법 개정안을 밀어붙인 것은 한국 금융자본 특정 분파(투자은행 및 사모펀드)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또한 국가 시스템의 디지털화(인공지능 포함), 반도체법 등을 주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또 다른 주요 인선은 홍성국을 임명한 직후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노무현 정권때 그 말썽 많았던 한미 FTA 협상 책임자)를 영입한 것이다(바로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길로 들이민 협정이 이것이다)
따라서 김현종의 역할은 단지 트럼프 정권의 관세 정책에 대응한 협상에 그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김현종은 외교안보 및 교역 문제를 총괄하는 대미 창구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국내경제는 홍성국, 국제경제는 김현종이 밑그림을 그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만 반도체법에서 주52시간 초과노동 규정이 결국은 제외된 것으로 보아서는 이들이 이재명 정권 하에서 완전히 실권을 장악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특히 조기 개헌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리스크가 있는 정책들은 현단계에서는 수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현재 금융자본과 민주당의 결합의 결과가 이념적으로는 이재명이 ‘중도’라고 표방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금융자본과 민주당의 결합은 과거 산업자본의 국가 개입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예컨대 에너지 시장과 관련한 이재명의 공약은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 및 반도체 클러스터를 위한 발전소 증설 및 송전망 확충을 언급하고 있는데, 유세 과정에서 이와 관련하여 아주 묘한 발언을 했다.

이재명은 특히 송전망 확충에 대해 필요하다면 민간자본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정치적 부담이 큰 한국전력 민영화를 추구하지는 않지만, 사실상 금융 자본의 입장에서는 그와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송전망 민영화 또는 송전망 민관합동 운영의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또 100조원(일부에서는 50조원) 규모의 인공지능 관련 펀드 조성에 있어서도 민간자본의 참여를 긍정적으로 시사했다.

인공지능은 홍성국의 핵심 주장 중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단지 자본을 투하한다고 이뤄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이미 미국과 중국 사이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한국은 아무리 투자한다고 해도 이들을 따라잡거나 혹은 독자 모델을 구축하는 것조차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IT 관련 신산업이 그렇듯이 업계에서 2등은 살아남지 못한다. 한국은 가장 우호적인 시나리오 하에서도 인공지능에 관한 한, 3등도 어렵다.

그렇다면 왜 이같은 인공지능 정책을 추구하겠다고 하는 것일까?
한 가지 가능성은 최근 트럼프의 중동(사우디, UAE, 카타르) 방문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미국이 소프트웨어와 칩을 제공하고 중동 국가들이 자본과 토지를 제공하며 이를 위한 IT 인프라는 중국이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다극화 속의 우회협력의 경로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인공지능 펀드 역시 내수용 경기 진작책에 머물거나(이 경우 단지 국산 플랫폼을 구축하는데 그칠 것이다), 아니면 전적으로 미국에 종속된 형태의 전초기지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펀드 조성 및 운용 과정에서 특혜 시비는 반드시 뒤따를 것이다.

현재 이재명이 유세 과정에서 언급한 경제문제는 분과별로는 조선, 방산, 반도체 및 내수진작책 정도다. 내수 진작책은 공정경제 구호 아래 지방 활성화(지역화폐)와 연관되어 있다. 현재 내수경기가 극도로 위축된 상태이기 때문에 경기 자극책으로 정부 재정을 확대하는 것은 아마도 일순위가 될 것이다.

(일부에서 논쟁으로 시끄러운 이른바 호텔경제론은 분석할 거리가 못된다. 다만 이 논리가 신고전학파 금융론에 대한 비판 속에서 밈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은 상기할 만하다. 호텔경제론의 진정한 의미는 첫째는 화폐는 순환하며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본은 허공 속에서 창출된다, 즉 화폐론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예금이 대출을 만들고 이것이 순환하여 자본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최초의 자본은 그냥 순수한 형태의 신용일 수 있다는 것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월가에서 이게 논쟁거리가 된 것은 양적완화 때문이었다. 호텔경제론에 대한 밈적 비판이 ‘호텔 캘리포니아’론이다. 현실에서는 호텔 예약 취소가 불가능하며 한번 양적완화를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재명이 이를 인식하고 썼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를 ‘학문적으로 얼마나 제대로 인식하고 있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이 개별 사안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가져야 하는 자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를 ‘학문적으로 얼마나 제대로 인식하고 있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이 개별 사안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가져야 하는 자리는 아니다.) 

이재명은 기본 소득은 폐기했지만, 그러나 그것이 곧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단편적인 복지 정책이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과 인권을 바탕으로 모든 국민의 기본적 삶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사회”라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그는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아마도 이것이 그의 정치 방식이 기존 정치방식들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는 구체적인 수치적 목표들(예컨대 임기 내 최저임금 인상률 몇 %, 기초생계보장지원금 얼마 등)을 제시하지 않고 이런 방향만 제시한 채, 이를 이뤄내기 위한 ’합의 틀‘을 만들겠다고 말한다. 

기본사회위원회의 경우, 그가 예시한 참여 대상들은 ‘민간기업, 시민사회조직, 사회적 경제 조직,협동조합 등 다양한 주체들’이다. 
이같은 방식은 정책이 관료나 정치인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토론에 맡겨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ㅎ 민주주의는 사회의 갈등조정자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단순한 자유민주주의(혹은 형식적 민주주의)와 구별된다. 그리고 이런 틀 안에서는 독일식 조합주의 모델(정부-자본-노동)은 해체, 흡수된다. 

이재명이 ‘백화제방’을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즉, 사회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보장하고 그 목소리가 충돌하고 논쟁하는 지점들을 정치가 마련해야 하며, 정책은 그 결과로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단지 ‘복지국가’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정치의 역할, 정치의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부동산 시장 – 불가피한 자산 버블

한국의 내수 경기 부진은 구조적 요인과 경기 순환적 요인이 중첩된 것이기 때문에 단지 재정확대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한국의 기존 정권들의 해결 방안은 주로 부동산 시장 부양책이었다. 이재명 정권 하에서 부동산 부양책을 쓸 것인가에 대해서도, 경기와 다른, 금융유동성의 관점에서도 거의 확실히 쓸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재명이 유세에서 계속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만일 민간 부채 부담을 정부로 이전시키는 정책이 추진된다면, 정부 재정 확대에 따른 시장금리(국채금리) 상승 압력은 스테이블 코인(원화 가치와 연동되어 움직이는 블록체인 화폐)으로 어느 정도 해소 가능하지만, 이는 원화 절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며 만일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한다면 그 압력은 더 커진다. 

국채 가격이 하락하면 금융시장은 추가적인 (유동)담보가 필요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보증하는 부동산 유동화 채권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대단히 경직적이며 부동산 총액 대출 규제를 하고 있어서 담보 유동화가 매우 어렵고 자칫 은행을 부실에 빠뜨릴 위험이 있다.

이재명 정권의 부동산 경기 부양책은 내수 진작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자산 버블을 야기할 위험이 있다. 출처 : <한국경제신문>

최근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정책인 ’지분형 모기지‘(equity shared mortgage)는 이같은 난점을 해결하기 위한 금융 기법이다(기본형은 미국에서 따 온 것으로 보인다). 언론도 연구자들도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참으로 기발한 정책이고, 부동산 문제에 대해 ’버블‘같지 않은 버블을 유도하는 정책이다.

문제는 지분형 모기지 제도는 신규 구매자의 주택 구입은 용이해지지만(주택 가격의 약 15%만 납입하면 나머지는 부동산 금융기관과 정부 펀드 대출로 충당된다), 손실이 발생할 경우 정부가 모두 그 손실을 떠안는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을 극도로 자극한다는 점이다. 즉 가뜩이나 주택 버블인 한국의 부동산 시장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이론상 레버리지가 무한대이기 때문에 무조건 부동산 가격 상승 유인으로 작용한다).

금융기관(특히 사모펀드나 투자은행 등)들로서는 손실을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유동화된 담보 채권으로 자금을 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대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재무 건전성에 (적어도 장부상으로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마치 주택 보유자나 신규 주택 구입자, 은행 모두가 윈윈으로 보이는 착시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부동산 경기 활성화로 내수 경기가 진작된다.
그러나 이는 주택 버블을 야기하며 버블이 터지면 결국 금융기관도 부실화된다. 사실상 폭탄돌리기에 불과하다. 그것도 ’집없는‘ 청년, 신혼부부등을 남아도는 부동산의 신규 구매자로 끌어들여서 그들에게 폭탄을 전가하는 것이다.

물론 이 정책은 당장은 공약집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것도 세부 내역을 보면 총액 약 4천억 규모로 주택 가격 상한이 정해져 있다. 따라서 당장 부동산 시세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다만 현재는 일종의 시범 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그리고 이재명은 유세 과정에서 ‘섬세하게’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지분형 모기지 정책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부동산 시장은 진성호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말한 것처럼 향후 2-3년 내에 공급 부족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만 동시에 인플레에 따른 원가 상승 압력으로 건설사들이 본격적으로 주택 건설에 나설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또 주택 거래 자체가 위축되어 있어서 제도적 부양책이 아니면 살아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버블 정책을 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이재명은 ‘국가 부채가 줄어도 민간 부채가 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여러 차례 언급했는데, 이는 단지 부동산만이 아니라 경제 전체에 버블 부양책을 쓸 가능성(그리고 그 부담은 국가가 지는)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부동산 관련 세금 문제에 대해서는 기존의 토지 보유세는 폐기했지만, 재개발/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재초환)은 여전히 고수할 의사를 밝히고 있어서(진성호), 제도적으로 일정 정도의 시장 규제는 유지하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하나 이재명의 ‘국가 손실 부담’론은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재명은 기존의 기본소득론은 폐기했지만, 대신 ‘기본 보장론’을 제시했는데(현재까지는 내용이 없어서 실체를 알기 어렵다), 만일 이 기본보장이 국가가 민간 자본과 합작으로 이루는 것이라면, 일차적으로 이같은 민관합동화(governance)가 민간이나 정부의 ‘손실’로 보이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는 서비스(혹은 상품)의 가격은 낮아야 하며, 그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혹은 관련 자산의 가격은 높아야 한다.

이재명은 이 기본보장을 ‘생활비 절감’이라고 소략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아마도 대표적인 것이 전력 관련 정책일 것이다. 이재명은 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전기료가 더 낮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발전소나 송전망 건설에 대한 지역 주민의 반발을 줄이면서도 이를 건설하는데 민간 자본이 투입되어 국가가 이들의 이윤을 보장해 주어도 반발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정치적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방식의 성장은 국가의 재정 지출은 상대적으로 낮출 수 있지만, 국가의 보증 채무는 증가하게 된다. 국채 시장이 과연 이를 어떻게 반영할지 역시 미지수다.
동시에 이 문제는 글로벌 통화구조(예컨대 트럼프가 압박하고 있는 마라라고 협정과 같은 환율결정 장치들)이 어떻게 도입되고 진행될지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것 역시 아직 미지수이기 때문에 공약으로 확정지을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 정권의 미국 경제구조 개편 정책 하에서 상대적 달러화 약세와 이를 위해 글로벌 통화체제를 복수화(bi-metalism; 달러 단일 기축통화에서 벗어나 여러 통화가 각 권역별로 기축통화 역할을 하거나 혹은 권역별 가상 기축통화를 만드는 방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재명 정권이 지향하는 방향은 상대적 원화 강세 하의 저금리, 재정 확대와 자산 유동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조합은 필연적으로 버블을 야기한다. 이 버블이 유지되는 동안은 한국경제도 현재의 경기침쳬를 벗어난듯이 꽤 좋아보일 것이다.

3. 이재명의 노동정책 – 정규직 보호 정책 강화

이재명의 노동정책의 핵심은 과거와는 달리 노동시장의 분극화에 맞춰져 있지 않다. 즉 정규직/비정규직 이슈에 직접 개입할 것이라는 시그널은 전혀 없다. 또한 임금 격차 문제도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는 이재명 정권 하에서는 노동시장 문제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간접적인 의사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더불어 노사정 사회적 합의와 같은 조합주의적 정책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는 문재인 정권과는 전혀 다른 점이다.

하지만 현재 이재명이 제시하고 있는 이것으로만으로는, 대선후 민주당 정권이 자유-노동 동맹(lib-lab coalition)을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는 다소 불확실하다. 그러나 최소한 정책 우선 순위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자유-노동동맹 개념에 대해서는 
계급없는 진보정치, 그리고 좌파없는 노조정치- 1987년 민주화이행이후 민주, 진보, 그리고 좌파“, 2024년 2월 22일 참조)

반면에 주 4.5일제를 시도 공약은 노동력 부족 하에서는 뜻밖의 정책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는 정규직의 지위를 더 강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만일 임금 삭감 없이 노동시간 감축이 이루어진다면, 기존 정규직의 상대적 우월성은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다.  

개별 노동자들에게는 아마도 포괄임금제 폐지가 더 중요할 것인데, 이 역시 정규직의 특권을 강화하는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임금 상여금 잔업수당 등이 총액으로 묶여있어 사실상 임금 삭감 효과 및 노동시간 유연화 효과를 갖는 포괄임금제는 사무노동자나 육체 노동자 모두에게 일방적인 손실을 안겨주는 제도로 특히 하급 노동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많았다.
이재명은 임금 측면에서는 정규직/비정규직의 차이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지만, 그러나 직업안정이나 노동시간의 측면에서는 정규직이 우선시되는 정책을 수행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주노동자 확대/축소 문제도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금융 정책으로 미루어 본다면 이주노동자의 대거 수입이 불가피할 것이다. 더구나 제조업을 강화하기 위한 직업교육 강화에 대한 공약도 전무하다). 
현재 한국의 노동력 인구 구조 하에서는 추가적인 자체 노동력 공급이 어렵기 때문에 생산성이 뒤쳐지는 산업군들은 노동력 수입으로 유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주노동자 문제는 노동시장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될 것이다. 
노동정책과 경제 정책으로 추론해 본다면, 이재명은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일부 제조업 분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지원하지 않고 재생에너지나 인공지능 등과 같은 신산업에 노동자들을 투입하는데 그치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임금 관련 공약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공약집에서는 소득 보장이 아닌, 생활비 절감을 정책 방향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로 미루어 볼 때 최저임금 상승률이 문재인 정권 때처럼 스케쥴을 가진 목표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며, 이는 반대로 최저임금 상승률이 그다지 높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갑자기 이재명의 대표적인 노동관련 선거공약으로 둔갑해버린 노조법 2조의 사용자 정의의 개정과 노조법 3조 손배가압류 조항 개정 역시 얼마든지 다르게 변질되거나 폐기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현재 제출된 노조법 개정안 자체도 2조는 비정규직 전체를  포괄하지 못한 한계, 3조는 손해배상이라는 민사상 면책조항을 조건부 조항으로 바꾼다는 점에서 원칙의 훼손이자 양날의 칼날이 될 수 있는데, 이마저도 너덜너덜해질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재명 노동공약의 문제는 구체적인 경로가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책 스케쥴도 없으며, 목표도 불분명하며 그나마 제시한 목표를 성사시키기 위한 제도적(법률 포함) 방안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단지 막연한 목표로서 제시되어 있을 뿐이다. 심지어 그 목표도 한국 사회 노동문제에 대한 새로운 청사진이나 비전을 담고 있지 못하다.

그만큼 이재명에게 있어 노동정책은 막연하다. 대선후 당선된다면 얼마든지 뒤집어질 수 있다. 특히 경제정책과 산업정책 속에서 노동정책을 위치지운다면 노동정책의 향배는 더욱 불투명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 노동체제의 핵심 문제인 정규직 대 비정규직의 분단, 그리고 비정규직까지도 다층화되면서 다양한 노동차별들을 통해서 자본의 노동착취가 가능한 현재의 구조에 대한 어떤 개혁적인 정책의 가능성도 불투명하다. 

4. 결론

선거 과정을 포함한 이재명 선거공약의 특징은 지난 2022년 대통령 선거는 물론 지난 2024년 총선시의 민주당 정책과도 다른, 이념적으로 선회한 정책들을 제시하면서도, 그 전체적인 윤곽은 아직도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 측면에서 ‘중도’는 요란하지만, 그 중도파적인 입장이 어떻게 경제/노동 정책에서 구현되는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선거전략의 일환인 것으로 보인다. 즉 어차피 이재명의 승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굳이 쟁점을 만들지 않고 낮은 자세(low key)로 넘어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민주당 내에서도 아직 전체적인 청사진을 그리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이 큰 상태에서는 고작해야 분과별로 단기적 정책을 제시하는 것 이상은 제시하거나 집행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정상화 혹은 내란세력 척결이라는 구호 아래 정적들을 제거해 가면서 정계를 재편하는 집권 초기의 열풍이 지나가면, 이재명표 ‘성장전략’ 혹은 ‘기본보장책’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는 그 내용만큼이나 방식도 중요한데, 민간자본의 이윤을 정부가 보장하는 방식을 취할 가능성이 높으며(국가 채무 여부는 2차적이다. 부채를 쟁점으로 놓는 것은 지난 80년대를 소모적으로 환기하자는 것에 불과하다), 이를 통해 내수 산업을 진작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금융자본주의로 한 단계 더 나아갈 것이며, 자본 증식이 유지되는 한은, 외람된 태평성대를(비록 부정부패는 만연할지라도) 누릴지도 모른다.

유세중에 이재명은 선거를 승리라고 하지 말고 ‘응징’이라고 부르자고 말했다. 혹은 ‘압도적인 승리’라고 말했다. 당선 자체가 아니라 세력관계 자체에 대한 언급인 것이다. 그 속에서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재명이 말하는 ‘진짜 대한민국’은 과연 누구의 대한민국이고 어떤 것이 ‘진짜’ 일까?
분명한 것은, 이재명이 선거 슬로건으로 내세운 ‘진짜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에서는 경제성장 우선이고, 기업 중심이고, 정규직 우선 보호이고, 에너지와 AI를 위해서 환경의 파괴는 불가피하다면 감당하여야한다.

노동은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당신이 좌파라면 어떤 시점에서 어느 단계를 어느 장소를 전쟁터(arena)로 삼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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